자살하면 지옥 가나요?
출 20:13
(13) 살인하지 말라
자살은 하나님과 영원히 단절되는 죄입니다.
우리를 지옥으로 끌고 가고 싶어 하는 마귀가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사람을 직접 죽이기보다(그런 경우도 있지만)
사람이 스스로 죽고 싶게 만들어서 자살로서 하나님과 영원히 단절시키는 것이
바로 마귀의 교활한 계략 중의 하나입니다.
우울증에 사로잡혀서 사소한 일로도 죽고 싶은 마음을 먹고,
가난 때문에 죽고 싶고,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도 않고 의미 없이 느껴져서 그냥 죽고 싶고,
짜증과 분노가 일어나서 죽고 싶고, 누군가와 다퉈서 죽고 싶고... 등등
어떻게든 사람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끔
마귀와 귀신들은 틈만 나면 사람들의 마음속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마구 집어넣고 있습니다.
자살은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완전하게 끊어지도록 만드는
확실하고도 강력한 죄이기 때문입니다.
나중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자살을 권장하여
“더 이상 질병이나 생활고로 고통 받을 필요가 없다.
죽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가지며,
당당하게 약을 먹고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라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알고 계시는 것처럼 이런 자살권면(안락사)을 이미 시행하고 있는 나라도 있고,
실제로 이렇게 자살을 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직은 대부분의 나라가 이것을 시행하지 않기에
안락사가 합법인 나라에 가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먼저 성경 말씀에 등장하는 자살자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삼상 31:4-5
(4) 그가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무기를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감히 행하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의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지매
(5) 무기를 든 자가 사울이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한 때는 하나님의 영이 크게 임하여 예언까지 했던 사울 왕은
육신적인 탐심을 버리지 못한 채 점점 타락하여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고,
임계점에 이르기까지 회개하지 아니하고 계속 변명만 늘어놓다가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악령이 들린 채 불같은 질투심에 사로잡혀 다윗을 죽이려 했던 그는
마지막에 스스로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삼하 17:23
(23) 아히도벨이 자기 계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일어나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의 조상의 묘에 장사되니라
아히도벨은 원래 다윗 왕을 모시던 모사(책사)였지만
다윗의 아들인 압살롬이 반역을 시도할 때에 간사하게도 압살롬에게 붙어 다윗을 배반했습니다.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서 일단 몸을 숨기기 위해 도망치던 다윗을 즉시 추격하여
최대한 빠르게 죽여 버리자는 자신의 계략이 시행되지 못하고
다윗이 보낸 첩자인 후새의 의견이 시행되어 다윗이 피신할 시간을 얻게 되자
압살롬의 반역이 결국 실패로 돌아갈 것을 미리 예상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왕궁의 모사로서 지혜로운 자로 여겨졌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진정한 지혜가 아니라 기회주의적인 잔꾀를 부리는
어리석고도 세상적인(마귀를 닮은) 지혜를 가졌기에
이처럼 마지막엔 허망하게 자살로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망친 것입니다.
왕상 16:18-19
(18) 시므리가 성읍이 함락됨을 보고 왕궁 요새에 들어가서
왕궁에 불을 지르고 그 가운데에서 죽었으니
(19) 이는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범죄하였기 때문이니라
그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이스라엘에서 병거 절반을 통솔하던 군대 지휘관 시므리는
자신이 섬기던 왕, 엘라를 직접 쳐 죽이고 왕위를 빼앗았습니다.
당연히 이 일은 하나님을 노하시게 했습니다.
시므리가 왕을 살해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의 무리는
당연하게도 시므리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군대 지휘관 오므리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은 후
반역자 시므리를 처단하기 위해 성읍으로 몰려들자
시므리는 왕궁 요새에 들어가서 불을 지르고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여로보암의 길, 즉 왕을 죽인 하극상과 배반의 길을 선택한 탐욕의 시므리는
결국 자살을 통해 스스로 지옥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스스로 왕이 된 시므리가 왕위를 누린 기간은 단 7일이었습니다.
마 26:24, 27:3-5
(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3)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4)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가룟 유다는 돈을 사랑하는 자신의 욕심에 이끌려
마귀가 명령하는 대로(마귀가 넣어주는 생각대로) 순종하는 것을 선택하여
결국 돈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 넘겼습니다.
예수님께서 정죄 받으시는 것을 본 그는 스스로 뉘우쳐 양심에 가책을 느꼈고,
예수님을 팔아서 받은 은 삼십을 다시 돌려주고(성소에 던져 넣고) 난 후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모든 결말을 다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라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애초에 그는 나를 팔아넘긴 후 자살하여 지옥에 갈 운명으로 태어났으니
차라리 태어나질 않았다면 더 좋았을 걸 불쌍하다.”가 아니라
“그는 돈을 가장 사랑하는 탐심을 따라 자신이 가진 자유의지로 마귀가 넣어주는 생각에 순종해서
나를 배반하여 팔아넘길 것이고, 나중에 스스로 뉘우치긴 하지만
끝까지 회개는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살을 선택하여
결국 지옥에 가는 것을 스스로 선택할 것을 내가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매우 안타깝다.
그러므로 너희는(저와 여러분들 포함) 절대로 그와 같은 인생을 살지 말길 바란다.“
는 의미로 해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선 가룟 유다의 결말을 미리 알고 계셨을 뿐
운명이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즉 그의 안타까운 결말은 오롯이 가룟 유다 자신이 스스로 결정한 선택의 결과입니다.
이 부분은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완전히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여러 가지 고난이 힘들다, 가난이 괴롭다, 몸이 아프다, 우울하다 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순간적으로 자살을 선택해버린다면
결국 우리 자신이 스스로 지옥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 말씀에는 긍정적인 의미의 자살, 구원 받은 자살이란 아예 존재하질 않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자살자들의 공통점은 모두 타락하여 스스로 죄를 선택한 사람들이라는 점,
육신적인 것을 가장 사랑하는 탐욕을 가졌다는 점,
그 탐심과 야망이 이루어지지 않자 도피하듯 자살해버렸다는 점,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교만하며,
어리석은 고집이 있어서 끝까지 회개를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삶과 죽음은 누가 봐도 구원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예수님과도 아무 관계가 없어 보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기에 하나님의 시선을 항상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뜻에 즐겁게 순종, 혹은 아직 잘 몰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일단 무조건 순종하는 모습으로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것을 자신의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여
하나님의 인정하심을 받았던 신앙의 선배들은 단 한 명도 자살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자살을 통해서도 천국에 갈 수가 있다면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믿고 자살해라. 특히 성령으로 충만하여 영적으로 깨어있을 때,
회개를 한 직후, 즉 너희에게 죄가 없을 그 때에 신속하게 자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단다.
이 악한 세상보다 천국이 훨씬 좋은 곳이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천국에 이르기를 바라는 분이시니
어서 다들 자살하여 천국에 이르도록 해라.”
이렇게 천국으로 가장 빠르게 가는 방법을 알려주셨을 것입니다.
(어떤 어리석은 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만약 자살을 해도 천국에 갈 수 있다면
자살이야말로 죄와 유혹이 가득한 이 세상을 뒤로하고
가장 빠르게 천국에 갈 수 있는 쉽고 간단한 방법일 것인데
예수님께서 자살권유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으셨다는 사실로 미루어보아
자살은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업신여기며 스스로를 살인하는
교만하고도 어리석은 죄로서 반드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행위라는 것이 확실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당시에
“예수님, 사람이 자살을 해도 천국에 가나요?”라는 질문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당시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들은 생명에 대한 주권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기에
자살하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그런 질문을 할 필요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모두가 ‘자살은 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당시의 엄중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를 살해하는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주권을 내세우는 교만함,
당장 눈앞의 육신적인 위험에서만 벗어나면 될 것 같다는 미련함이라는 사실입니다.
교만하고 교활한 마귀는 오늘날 지혜 없는 자들을 충동시켜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는 내용이 성경 어디에 있어?
한 번 구원을 얻은 사람은 구원을 절대 잃지 않아! 하나님은 사랑이시니까!
따라서 구원을 받은 적이 있다면(영접기도를 한 번이라도 읽은 적이 있다면)
마지막에 자살을 해도 당연히 천국이겠지? 아마?
지금 너무너무 힘들지? 죽을 만큼 힘들잖아~ 일단 시도해보자. 아마도 편안해질 거야.”라며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연약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자살로 유도하고 있습니다.
고전 6:19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끊는 행위는
모든 생명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 받았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부정하여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반역의 죄이자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악한 행위입니다.
모든 생명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는 그 명백한 사실역시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기에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자살은 하나님의 것을 함부로 훼손하는 악한 범죄이며,
감히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죄이며, 지극한 교만이며, 세상을 향한 탐욕이며, 어리석음입니다.
또한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모든 사람이 본능적으로
자살은 옳지 않은 것이라 생각하고, 자녀들에게 권장하지도 않으며,
그저 부정적인 일, 안타깝고 슬픈 일로 여깁니다.
그러므로 논쟁의 여지 조금도 없이 ‘자살은 확실하게 지옥에 가는 죄’라는 사실을
우리의 마음에 분명하게 각인시켜 두십시다.
창 9:5-6
(5) 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6)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마저 자살을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리스도인들이 죽고 싶은 마음을 품는 이유는
자기 자신을 그 무엇보다 가장 사랑하는 마음과 세상의 것들을 향한 탐심을 버리기가 싫고,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기도 싫어서, 한 마디로 고난이 싫어서입니다.
그전에 먼저 이것을 생각해보십시다.
바로 당신을 구원해주시기 위해 날카로운 금속이 달린 채찍을 대신 맞아주셔서
살점이 다 떨어지고, 관절과 혈관과 내장이 다 드러나
온 몸에서 물과 피를 흘리고 계신 예수님 앞에 가서
“예수님, 저 돈 주세요. 사업 좀 잘 좀 되게 해줘 봐요 쫌. 초대형교회가 되게 해주실 줄 믿쓥니다!
내 새끼 대기업에 취직시켜 주세요. 공무원 시험 할렐루야! 명문대 합격 바랍니다.
부유한 집안의 배우자를 원합니다. 제 문제들 좀 해결해주시죠.”,
“예수님, 저를 구원해주시려고 고난 당해주시느라 수고가 참~ 많으셨네요. 고맙긴 고마워요.
근데 저는 고난 없이, 걱정 없이, 안전하고, 행복하고, 부유하고, 재미지게 인생 즐기면서 살다가
늙어서 자연사 하고 싶으니 지금은 돈과 명예 좀 주시죠?“
여러분들, 진심으로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바로 당신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물과 피를 다 흘리고 계시는 그 십자가 앞에서 정말로 이런 말씀 드릴 수 있습니까?
‘절대 나는 아니라’고 하며 거룩한 대사들을 이용해서 그럴듯한 기도를 하겠지만
결국 이런 탐욕이 마음 깊은 곳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으니까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는 구원 받고 싶다고, 순종하고 싶다고, 마음을 잘 지키고 싶다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닮고 싶다고 말하면서
막상 구원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과 협착한 길,
즉 예수님과 함께 받는 고난은 죽을 만큼 싫어하여 차라리 죽고 싶다는 것은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는 잘못된 신앙입니다.
완전하게 육신적이고, 탐욕스러운 세속에 물들어 부패해버린
더 이상 신앙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오물에 불과합니다.
마치 ‘밥은 먹고 싶은데 일하기는 싫다.’, ‘밖에 나가고 싶은데 현관문을 나서기는 싫다.’,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은데 공부하기는 싫다.’ 이런 것과 비슷합니다.
고후 1:6
(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롬 8:17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구원으로 인도하는 생명의 길이 곧
예수님을 따라가는 고난의 길이라고 확실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선 이 중요한 부분을 누구나 잘 알 수 있도록
성경 말씀에 기록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여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으며 기뻐하는 삶,
영적인 성장(예수님을 닮는 성화)을 위해 고난과 징계가 있어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가운데서 감사를 하며 끝까지 순종하여 열매를 맺는 삶,
즉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고난이 있는 삶이
바로 구원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앞으로 더 힘들어지기를 축복합니다.
더 아프고, 더 고달프고, 더 괴롭고, 더 지치고, 더 가난하고, 더 외롭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순종하기 때문에 받는 고난, 천국복음을 위해서 받는 핍박,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베푸시는 징계와 훈계를 통한 영적성장으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기를 축복합니다.
히 12:6-8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더불어 고난(예수님과 함께 하는 고난)과
징계(사랑하시는 자녀들에게 주시는 복된 훈계)의 한 가운데에서
우리들의 밑바닥 끝을 발견하고, 숨겨져 있던 치졸하고 더러운 성질,
게으른 나태함과 탐욕스러운 욕심들을 재확인하며,
도무지 우리에게선 선한 것을 발견할 수가 없다는 그 명확한 사실을 확실히 깨달아
하나님 앞에 나아가 겸손히 머리를 조아리며 이렇게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저는 예수님이 꼭 필요합니다.
예수님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또 다시 확인했습니다.
이런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시기를 간청 드립니다.
나의 주님이신 하나님 앞에서 제가 머리를 조아리며 손에 꼭 쥐고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사는 것이 아니고, 제 안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유일한 희망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남은 인생, 제 생명과 모든 것을 다하여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살아가겠습니다.
저를 죽기까지도 사랑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롬 7:18-19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자기를 부인하여 손에 꼭 쥐고 있던 육신적인 것들을 다 내려놓고,
이제는 자기의 십자가를 (억지로가 아니라) 기쁘게 지고,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어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다 같이 죽으십시다.
목숨을 걸고 천국복음을 전하고, 목숨을 걸어서 순종하고,
목숨을 걸고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십시다.
(참고로 복음을 전하고, 순종을 하고, 사랑하는 것도
우리에게 임해주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면서 전도를 하면 역효과만 날 것이고,
사랑하는 방법도 때와 상황에 따라 다르기에 먼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서 해야 합니다.
무조건 찾아가서 돈을 많이 쓰면서 친하게 지내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성경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우리도 한 걸음씩 그 길을 따라가십시다.
그렇게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천국의 길을 멈추지 말고 계속 걸어 나아가십시다.
잠시 생각해보십시다.
우리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감당이 불가능한 일들이 있었습니까?
당시에는 진짜 당장 죽을 것 같이 극도로 힘들었고, 괴로웠어도
지금 객관적으로 솔직하게 생각해보면 그 과정들이 내 영혼의 성장과 유익을 위해 꼭 필요했으며,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선 내가 감당할 만한 것들만 허용해주셨으며,
또한 피할 길도 주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전 10:13-14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14)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폭풍 같은 시간을 보낸 뒤에는 일정 기간 쉬는 시간도 주셨고,
때론 우리가 육신적으로 바라는 것들도 분명히 허락해주셨습니다.
진짜 죽을 것만 같이 힘들고,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는 지하 최하단의 밑바닥처럼 느껴졌어도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와 베푸시는 은혜는 여전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끔찍한 고난만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많이 사랑해주시는 분입니다.
그 누가 우리를 많이 사랑해준다 해도 하나님의 사랑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현재 자신의 삶이 힘들어서 차라리 자살하고 싶다는 한심한 마음이 있다면 빨리 내다버리고,
툭하면 차라리 죽고 싶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는 어리석음도 빨리 내던져야 합니다.
그리고선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계시며,
가장 좋은 길, 구원의 길, 좁은 문과 협착한 생명의 길로 친히 인도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정말로 믿어 의심하지 않는 이 가치관을 확고히 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히 2:10
(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진리의성령교회 가족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를 살인하는 죄인 자살은 해선 안 됩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상황에서도,
살아 있는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을 부러워하게 될 정도의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우리가 죽고 싶어도 죽질 못하고 끊임없이 고통만을 받는 고문을 당하는 상황,
즉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면 바로 육신적인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회유하지만
절대 그럴 수는 없으니 차라리 어서 죽고 싶은 상황에서도
자살하지 않고 끝까지 예수님을 바라보며 인내하는 자들만이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중에 그런 상황에 처해질 자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데리러 와주시는 시점을 우리가 알지 못하기에,
즉 환난 전인지, 환난 도중인지, 환난이 다 끝난 후인지 우리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경우의 수를 미리 생각해두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우리 모두가 빠짐없이 예수님의 공중 재림에 다 참여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계 9:6
(6)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
계 14:12
(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마귀도 똑바로 듣게끔 담대하게 소리 내어 선포하십시다.
“와라 고난아! 고통아! 최대한 세게 달려와서 내게 부딪혀봐라.
어떻게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나를 결코 끊을 수 없다.
나는 사랑하는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것이다.
나는 목숨을 걸었다.“
고난 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고 싶거든 하나님께 모든 것을 감사하면 됩니다.
고난을 주셔서 감사하고, 가난해서 감사하고, 멸시 받아서 감사하고, 버림받아서 감사하고,
아파서 감사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합니다. 마귀도 패배하며 떠나갑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은 우리 영혼의 구원이지 세상적인 부와 명예가 아닙니다.
생각과 가치관을 180도 바꿔 하나님의 진리에 맞춰야 자살 같은 생각을 안 하고
진짜 구원의 길을 담대하게 걸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인생은 등산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등산을 할 때에 힘들면 중간에 앉아서 쉬는 경우가 있는데
충분히 쉬고 나서는 다시 정상을 향해서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올라가기가 힘들다고 얼마 못가 다시 뒤돌아서 쉼터로 돌아오면
그 사람은 절대로 정상에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이 힘들 때에 주저앉아서 자살 생각이나 하고 있으면
나아갈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구원의 길을 걸어갈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구경도 못한 채 그대로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징징거리고 있을 여유도, 시간도 없습니다.
마귀와 귀신들과 마귀를 섬기는 자들은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영적 세계에서는 끊임없이 치열한 전쟁을 치르는 중인데
그냥 바닥에 주저앉아서 자살 생각을 하고 있고,
힘들다면서 술이나 마시고, 담배나 피우고, 돈 걱정에 사로잡혀 있거나, 남 탓이나 하고 있거나,
잠시라도 잊어보기 위해 세상 쾌락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도, 천사들이 보기에도,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 보기에도 얼마나 한심하고 답답합니까?
마귀는 우리가 눈에 보이는 이 세상만을 생각하며,
여기에 갇혀서 육신적인 인간이 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게 하여
진짜 인생이 시작되는 다음 세상에는 어떤 관심도 갖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진리와 영적 가치관을 가르쳐주신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완벽히 정반대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살하고 싶어 하는 이유들을 생각해보면 사실 전부 육신적인 내용입니다.
세상적인 가치관 상위에 있는 것들이 충족되지 않기에 살기 싫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나님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살을 싫어하신다는 사실을 솔직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살을 생각하는 이유가 전부 세상적인 이유라고 말하면 맞습니다.
히 11:36-37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눅 21:19
(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영의 세계에서는 오늘도 계속해서 살벌하게 전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담대히 싸워야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알고, 예수님도 알고, 성령님도 알고, 천사도 알고,
마귀의 궤계도 알고, 귀신도 알고, 영적세계도 알면서, 지금 한창 전쟁 중인 것도 알면서
아무 대책 없이 그저 하루하루 버티는 수준으로 주저앉아 힘들다면서 자살 생각만하고 있다간
언젠가는 진짜로 패배하고 말 것입니다.
늦어버리기 전에 두 무릎에 힘을 주어 일어나 맞서 싸워야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하며, 말씀과 기도와 순종으로 무장하여
예수님 편에 서서 부디 끝까지 담대하게 싸우십시다.
마지막으로,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보혈로서
죄 사함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계속 되뇌며, 계속 선포하십시다.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와 늘 함께 해주실 것이며,
언제든 믿음을 잃지 않도록 마지막 순간까지 도와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며 기뻐하고, 담대히 나아가십시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저와 여러분들이 마음에 깊이 새기고 즉시 삶에 적용함으로서
그리스도인에게 자살은 그 어떤 경우에도 고려되는 사항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하여 미리 마음에 깊이 새겨놓으며,
오직 예수님께 모든 초점을 맞추고,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우리가 스스로 선택함으로서
우리가 앞으로 그 어떤 상황에 놓인다 해도, 고난이나 징계가 있어서 힘들다 해도,
예수님을 부인하라면서 자행하는 고문과 핍박 때문에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일을 겪어도
자살은 하나님의 주권을 우습게 여기는 교만한 살인죄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기억하여
끝까지 인내로서 우리의 영혼을 얻게 될 안전한 구원의 길을 걷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히 11:24-26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마 13:44-46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진리의성령교회 윤경훈 목사 올림
진리의성령교회 2022.10.09. 주일설교
감사와 다짐의 노래
424장 나의 생명 되신 주
1. 나의 생명 되신 주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주의 흘린 보혈로 정케하사 받아 주소서
2. 괴론 세상 지날 때 나를 인도하여 주소서 주를 믿고 나가면 나의 길을 잃지 않겠네
3. 세상 살아갈 때에 주를 더욱 사랑합니다 밝고 빛난 천국에 나의 영혼 들어가겠네
[후렴]
날마다 날마다 주를 찬송하겠네 주의 사랑의 줄로 나를 굳게 잡아 매소서 아멘
첫댓글 아멘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셔서
하나님 앞에 서는 그 날에 크게 칭찬을 받고
영원한 하나님의 가족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몇몇 유명인들이 자살한후 기사나 동영상이 나올때
그들의 위패에 "성도" 혹은 "집사" 누구누구라고 씌여 있던
모습을 보면서 씁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가감없는 명확한 메세지를 통하여 아직도 헷갈리는 성도들이
있다면 명쾌하게 깨닫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있을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살은 선택지에 넣지도 않는 참된 예수님의 제자로서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조금의 후회도 없는 복된 최고의 인생을 완성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몇년전에 서울 중형교회 목사님이 자살하시며 정신적인 병으로 자살은 지옥과 무관하다며 합리화적 얘기들을 들었습니다. 참 위험한 꾀임들이었죠
자살이 많은 이 때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올립니다.
앞으로 육신적으로 아무리 힘들고 괴로운 상황이 있다 해도
하나님과 영원히 단절되게 만드는 자살은 생각도 하지 않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서실 때에 칭찬만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