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들과 강
단편소설/원영
미망인이 된 전주댁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산골짜기 부자라고 소문난 김천판 댁 소실로 들어갔다. 아이의 성씨가 없는지라 의붓아버지 성씨를 따라 유민이냐 되었다. 전주댁이 얼마 안 가서 씨가 다른 아들을 낳았다. 때늦게 아이를 얻어 옥이야 금이야 커가는 사이 아이는 어른들 눈을 속이는가 하면 거짓말이 세월을 만들었다. 고물을 보면 엿을 사서 먹고 곡식을 보면 점방으로 달려가 과자와 바꿔먹으면서 자라더니 일가 집에 염소를 훔치다가 시장에 내다 팔아 쓰고 어릴 때는 인물이며 말을 잘해서 귀염둥이로 살았다.
그 버릇을 놓지 못하더니 집에서는 왕으로 한동안 군림하더니 아랫목 앉아 아빠 노릇을 하고 형은 동생 노릇과 아빠는 아들 노릇 하더니 엄마는 화병으로 형은 질병으로 아빠는 이웃에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자살을 택했다. 도둑놈으로 전락해버린 귀염둥이 마을 이장네 소 판 돈을 훔쳐서 새벽 열차를 타고 서울로 가는 도중에 경찰에 잡혀서 구치소로 넘어가 십 년을 복역하고 반건달로 돌아다녔다. 피 끌던 외로움을 잘 낼 수 없어 지금의 아내를 공원 벤츠에서 눈과 마주치는 순간 피하려던 그때의 학생과 여러 번 대화가 이루어진 끝에 오빠와 동생 하면서 강을 건너간 후로 고생 많은 안 시키고 웃으면서 살자고 한 것이 날마다 아내는 눈만 뜨면 경운기 운전으로 밭과 논 오가며 아이를 키웠으며 귀염둥이는 아빠의 속과 겉이 닮았다. 씨도둑 못한다더니 아내는 병으로 남편은 교통사고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끝냈다. 씨도둑 하나 그늘 되니 누구 하나 알아주는 데가 없는지라 고향을 떠나간 지 오래됐는데 올까 무섭게 지금도 대문 열쇠가 채워져 일가마다 살아가고 있다.
산골의 기쁨도 잠깐 참판 말에 따라 산에 가 땔감을 해오라고 곰방대로 머리를 헤아릴 수 없이 얻어맞아 온 유민이의 눈물이 비가 오듯이 했다.
밥값을 해야 한다고 의붓아버지 말을 늘어놓았다. 유민이 나이는 겨우 10살이 되던 해 깔 담 살이 집으로 송아지 끓여가듯 멀리 떠났다. 친아버지 없는 설움일까? 서당 근처는 하늘이라 배움은 상상의 꿈나라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배움의 문턱을 쳐다보지 못한 채 짠지로 세월을 살아가다 보니 장가갈 날짜가 되었다. 내 처지와 똑같은 골짜기 이웃에 사는 한 참판 댁 딸을 중매로 만나서 결혼생활이 이루어졌다.
사랑의 증표로 김인숙이란 이름으로 날개를 달았다. 날마다 양아들을 소 부리듯이 공동묘지 산에 가 땔감을 들에 가 천수답을 일하라는 의붓아버지 말소리에 주눅이 들어 지게를 매고 돌다리 사이로 소금쟁이와 물가재가 내 마음에 힘을 주웠다. 틈나는 대로 다랑이 밭에 나가 채소밭을 일구느라 눈, 코 뜰 새가 없이 해는 그렇게 밤을 맞았다. 호롱불 밑에 멀건 죽 한 그릇 처자식 앞에 어려운 살림살이 채반을 만들고 칡뿌리를 캐다가 장날마다 그걸로 생활했다.
가난이 쇠사슬 같은 인숙이의 배움은 먼 산일 뿐, 울타리 넘어 소 같은 현실의 삶이 싫었다.
어른들의 말투는 무식의 언어가 잠재되어 있었고 그런 가정 속에 날개는 뭘 배울 수가 있을까 어린 나이지만 생각해 봤지만 길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먹구름 하늘 스친 지금 숲 이룬 이곳만이 그럴까? 욕 같은 언어가 그 당시에 살벌했고 툭하면 “이 가시네 봐라. 행동이 야릇하면 저년이 양년이 될까?” 쥐구멍으로 들려오는 말투 덩어리 듣는 순간에 열이 확 치밀었다. 속마음을 뒤집듯이 하였으나 큰 나무들인데 어쩔까? 할 눈초리였다. 어린 것들이 뭘 알까 무시를 대놓고 해버리는 시골나무들 그럴 때마다 듣기 싫었다. 그러면서도 큰 나무 말하는 모습이 신기할 때가 있어서 다가가면 “너희가 뭘 알아 저리 안 갈래?” 호령의 말 한마디 스쳐 갈 때마다 아이들은 쥐구멍이 어디야 날개 나무에 그림자가 되어 몸을 숨겼다.
나무들 버릇이 자신도 모르게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어른들이 부를 때마다 모름지기 뒤로 한 발 빼다가 못 이겨 대답하려고 하면 “애가 왜, 수줍으냐? 언어장애인가 봐” 뜻하지 않게 말을 날린다. 그런 환경에 살아가는 날개는 학교에 가면 친구들과 놀기도 싫었고 선생님만 봐도 무서웠다. 때로는 숙제 물이 없다는 핑계를 삼으면 유리창과 교실바닥, 화장실 청소를 도맡아 하게 한 선생님께서 원망스러웠고 큰 나무들 말 한마디가 그 시대의 법이었다. 하지만 누가 날개 마음을 알까? 봄꽃들 보면서 너는 행복하겠구나! 울화가 치밀어 올라와도 무더운 날씨 속에 매미 울음으로 시원한 느낌이 감돌았다. 가을 하늘 자락을 보고 풍성함을 나누니 얼마나 좋을까? 하얀 눈으로 세상을 꽁꽁 얼리니 지상과 지하 어느 쪽이 시원할까 밤마다 날개는 말 없는 별과 친구가 되어 계단을 오르는 학년이 되었다. 어른들이 살아온 세월을 놓고 날개를 얼른 다루듯이 어느 날부터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날짜가 갈수록 파김치 된 정든 고향이 싫어졌다. 성적은 미끄럼을 타다가 동구 밖 쓰레기 더미로 밀렸다. 통지표를 보자 “야! 이것이 성적이라고 학교에 다니느냐? 때려치워라,”라는 어머니의 성화로 날개는 속마음을 흔들었다. 다니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겨야지 뭘 해줬다고 솥뚜껑이 열리는 생활이었다. 명절 때마다 서울에 간 동네 언니, 오빠들이 예쁜 옷을 입고 고향이라고 짐을 싸들고 버스에서 걸어오는 그 모습이 부러웠다. 이웃에 사는 영자 언니를 개울가 빨래터에서 만났다.
“인숙아 오랜만이야.”
“언니 언제 왔어요?”
“보름달 그림자 내려앉을 무렵 새벽에 왔어.”
“언니 따라가면 일할 수 있을까?”
“그럼! 할 수 있어!”
날개는 속으로 이 동네만 피하면 잔소리를 안 듣고 돈을 많이 벌겠다. 어린 속으로 하나만 알고 둘은 전혀 몰랐다. 그런 나는 고민 끝에 사립문을 열고 밖에서부터 뛰어들어가 “엄마~ 엄마~”불렀다.
“난리라도 났느냐? 왜, 시끄러워?”
“서울에 간 언니를 우물가에서 만났는데 부모님의 허락만 되면 회사취직을 할 수 있대. 엄마 허락해줘요.”
“다니던 학교는 어떻게 하고.”
“안 다닐래.”
“나중에 후회하려고?”
“안 할 거야!”
“소원이 그러면 그렇게 하고.”
말떠러지기가 무섭게 쏜살같이 아랫마을 달빛 따라가 언니 집 대문을 두드렸다.
“언니! 엄마한테 허락을 받았어. 가래.”
“그래! 진짜지.”
“서울에 가면 뭘 해?”
“옷을 만드는 봉제회사야.”
“내가 만든 옷 입을 수 있어?”
“그렇지 돈만 주면.”
“돈 어디서나?”
“회사에서 일을 열심히 하면 사장님이 한 달에 한 번씩 월급을 줘 그걸로 내가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어.”
“아! 그렇구나! 나는 몰랐네.”
“모를 수 있지 그래서 배우는 거야.”
“언니랑 같이 있을 수 있어 올라가면.”
“그럼! 잠도 생활도 같이 할 거야 회사 가는 날부터 언니가 다 알아서 해줄 거야 그리고 인숙이는 특별히 잘 챙겨줄게.”
“참말이지 야! 신이 난다.”
인숙이는 콧노래를 노을 바람 따라 사립문을 들어서는 순간에 아버지한테 말해야지 했다. 엄마가 다가와 “소문을 내지 말고 조용히 올라가라 아빠가 아시면 못 가게 할 수도 있다.”
“엄마가 알아서 말씀을 잘 드리세요.”
“그래! 언니 말 잘 듣고 잘 배우고 시골에 내려올 때 함께 와 몸 아프면 언니한테 말을 해서 약도 사 먹고 알았지?”
입 하나를 든 엄마였다. 언니랑 같이 마을 고샅을 빠져나가니 시원한 바람이 날개를 반기듯 그날 따라 하늘 갈매기는 수놓았다. 완주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들뜬 초행길로 스쳐 가는 산과 들녘 강과 계곡이 아름다웠다. 몇 시간 만에 도착한 강남 버스 터미널 앞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버들고개 위치한 공장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생각보다 아니었다.
“언니 회사가 어디야?”
“어, 개인 공장인데.”
“개인이 뭐야?”
“사장님이 적은 돈으로 공장을 운영하는 것.”
“어, 그렇구나.”
연휴가 끝나고 일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서 사장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우리 공장은 소규모지만 가족적인 분위기입니다. 새로운 식구가 왔으니 부족하지만 서로 간에 형제처럼 돌봐주시고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니 반갑습니다.”
모든 것이 낯선 이곳이지만 적응기간을 통해서 하나씩 시다, 일을 습득한 그날부터 허구한 날 작업 때문에 쉬는 날 없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부족한 잠자리가 소원이었다.
10년 세월 동안 돈 한 푼을 맛본 적이 없이 일만 했지만, 월급날이 되면 부모님께서 올라오셔서 돈을 가져다 시골에 있는 전답을 샀다. 집도 샀다. 그런 줄만 알았다.
뜻밖에 두 분이 올라오셔서 시집을 가라고 다그치셨다. 지금 당장 안 가면 큰일 나는 것처럼 그때만 해도 거역할 수 없는 시절 부모님 말씀이면 하늘이고 법이었다. 그렇게 강산이 또 10년 변했는데도 공장 사장님 가족에 대해서는 전혀 눈치를 못 챘다. 신랑 되는 사람이 사장님의 셋째 아들인데 갓난아기 때 하반신 장애인으로 태어났다. 멀쩡한 내가 그런 사실을 알고 시집가기 싫다고 했지만, 양가 어른들 강요 끝에 속결로 결혼식이 산 도깨비장난 같았다. 날개는 도주하려고 여러 틈으로 망을 봤는데 미리 눈치를 챈 가족들에 의해 그만 어두운 별 밤하늘에 몸을 허락했다. 남편이란 자는 허구한 날 술로 낮과 밤을 그렸고 날개가 없으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시아버지 살았을 때는 집안이 조용했지만, 세상과 이별하는 날부터는 형제간에 재산싸움으로 매일같이 날이 궂었다. 두 형은 대학교까지 나왔다. 재산이면 금전이면 기루 울 것 없는 직업이었다. 장애인 신랑께서 그런 몸으로 학교를 못 나와서 학벌이 깡통이었다. 아버지께서 전 재산을 막내한테 주기로 입버릇이 되므로 신체적인 불구란 이유---. 두 형과 싸움으로 남편은 결국 술에 의해 흙이 되었다.
장래아빠로부터 태어난 아이 엄마의 자궁 유동으로 통증이 밀려온다. 그러나 생명체를 얻는 기쁨이 아픔을 넘어선다. 둘, 셋 또는 넷까지 하향분만 될 때 통증의 차이가 낮아짐으로 내리사랑이랄까 소유욕도 많아진다. 태아 갖는 것 흘러가는 세월과 같다. 순간의 선택을 놓칠 때 되돌릴 수 없는 행복을 모르고 살아간다. 나는 남편 없이 아이 셋을 데리고 살아보려고 했건만 여건이 안 되어 친정집에다 아이를 임시로 맡기로 경제적으로 우수한 남편을 소개받았다. 우리가 믿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혼인신고가 첫째라고 노래를 불어서, 좋은 것이 좋다는 생각에 승낙했다. 그런 후로 시간이 가면서 굴뚝에 연기가 나듯이 전직이 채소 장수였다. 야! 속았다. 말 떨어지기 무섭게 둘이 장사를 하자고 날마다 졸라대는 남편 결국은 그러자고 했더니 부동산 중개업자를 통해서 가게를 얻었다. 물건들을 가게다 채우는 순간 부자 부럽지 않았다. 하루 장사를 끝내면 배춧잎 한단 같은 금덩어리 보고 욕심 없는 놈이 있나 남편 모르게 바람 손이 되다 보니 습관이 되었을까? 하루 원금과 차액을 통째로 빼낸 것처럼 의심병이 생긴 바람벽 매일같이 부인을 의심하는가 하면 이유를 말할 것 없이 폭력으로 둔갑하더니 더는 살 수 없는 정신병자처럼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언젠가는 너하고 더는 종사하지 못 할거란 생각이 들면서도 친동생을 가게다가 직원으로 함께 있으면 낳아지지 않을까 그러다가 남편의 눈을 피할 때마다 미운 생각이 드는 날에 화물로 쌀포대와 채소 등을 빼돌렸다. 전화벨이 울려서 받았더니 친정엄마였다.
“조금 전 최 서방이 현금 2천만 원을 빌려 달라고 사정하더라. 그러라고 했다가 며칠만 쓴다고 하기에 줬다.”
“그러니까 사위는 처가 형편을 잘 알아 친정으로 빼돌린 것 아닌가---. 의심을 품으므로 날개를 더 괴롭혀.”
“그래, 그놈 눈깔이 삐었나 보다.”
“엄마는 상의도 없이---.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해?”
“미안하다.”
전화기를 놓자 남편은 통화하는 걸 보고 따져 물었다.
“누구 전화냐?”
“알아서 뭐하게?”
얼굴에 핏기를 내면서 밖으로 휑하니 나갔다. 어두컴컴한 밤하늘 고샅길 술이 사람을 먹었나? 울타리 너머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인수가 너 말 좀 하자.”
“왜, 기분이 나쁜 것 있어요?”
“그래, 그동안 참아왔지만 어지간하면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당신 행동이 더는 못 참아.”
“그것이 뭔데 뭐야?”
“몰라서 물어? 친정으로 돈 빼돌렸지?”
“야! 사람 잡네! 살기 싫으면 그냥 살기 싫다고 해! 나가줄게!”
“내 돈 내놓고 가”
“증거 있어?”
“장모님 돈이 내 돈 아니냐?”
“당신이 말한 대로 친정엄마한테 말할 거야.”
“해라! 무서우냐?”
(따르릉~~따르릉~~)
“여보세요.”
“엄마다, 왜.”
“엄마! 최 서방한테 돈 빌려준 2천만 원자기 돈이래.”
“그놈 미쳤구나, 돈만 알고 사람은 모르는 놈이 인간이냐, 시 부모 연락처 대라.”
“알았어. 전화번호 02-874-X XX 이거야.”
사돈끼리 격한 감정으로 잘 밝은 밤하늘에 치달았다.
“무식한 생짜 배기하고 고스톱을 쳐 산 지가 3년이나 됐었는데 이렇게 날마다 살려면 이혼을 하자.”
“위자료 준비됐어?”
“그동안 당신이 먹고산 것이 그것이다.”
“아이 둘이나 낳았잖아.”
“그래! 내가 키울 테니까.”
더는 말이 안 통했다. 아쉬울 때는 친정으로 택시 타고 밤바람으로 달려가 고샅 너머로 “엄마~엄마~”
“누가 죽었냐? 호들갑 떨게.”
“그 인간이 아이를 키운대.”
“야! 그 핏줄 가져오면 뭐하냐? 성씨도 보기 싫은데.”
“엄마는 내 자식 아니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듣기 싫어. 너도 내 나이 되면 알 거다. 독하게 마음먹어야 산다.”
이해가 가면서도 너무나 심해나 “엄마 너무한 것 아니야.”
“뭘 제 놈 지금부터 고생하라고 놔둬라.”
“그 인간 고생 뭘요, 아이들만 생고생해요.”
“어쩔 수 없다. 운명인걸---.”
“그리고 너는 젊으니까 딴 데로 시집을 가면 주식이 좋다.”
“애 낳는 강아지 딸 아니야. 엄마 착각하지 마.”
“야! 어떻게 혼자 사느냐?”
“그건 엄마 생각이고 날개는 충분히 살아갈 수가 있어.”
“독한 년 네가 알아서 해라.”
친정집에 왔다가 전철을 타고 이틀 후에 집으로 돌아갔더니 다짜고짜 말할 것 없이 협박에 머리채를 잡혀서 개 끌려가듯이 날이 밝자 가정 법원으로 가 바람벽 하라는 데로 위자료 면목으로 5백만 원과 용달차 쓰는 조건으로 합의 이혼을 해줬다. 1달에 한 번씩 법적으로 아이를 볼 수 있게끔 하고 갈라섰다. 그렇게 5개월이 흘렀을까. 아이 아빠는 매일같이 전화를 걸어와 차를 달라는 것이었다. 그걸로 당분간 택배 일을 해가며 생계를 이었는데 당신 명의로 되어 있으니 똥보다도 더러워서 돌려줬다. 때늦게 생각을 해보니 억울했다. 아이 둘에 5백만 원뿐---. 배경도 없는 친정집 힘도 없으니---. 싸우면서 같이 있을 때는 몰랐다. 헤어져 살다 보니 아이 생각을 하면은 미칠 것만 같았다. 모정일까 틈만 나면 학교 정문으로 달려가 또래들만 봐도 눈물이 앞길을 가로막았으며 그러한 기분으로 한동안 그렇게 지냈다. 때로는 아이를 만나서 고기도 사서 먹이고 용돈을 손에 줘주고 돌아올 때면 얼굴 밭에 눈물이 진흙탕 밭이 되었다.
며칠 후 들려오는 바람 소리에 아이는 아빠한테 콩 타작과 할머니한테는 잔소리로 앞으로 엄마를 안 만나는 것이 좋았다. 훗일이 무섭다는 아이들 이혼한 엄마로부터는 모든 것이 통제되었으며 그냥 얼굴만 잠깐 보는 것이 다였다. 결별 후 1년도 안 가서 최 서방은 다른 여자를 안 식구로 맞아들였다. 혼자서 등산을 즐기다가 헛디딘 발에 골짜기로 추락한 여름날 돌 바닥에 머리가 부딪쳐 사망했다고 들려왔다. 다급한 마음으로 현장에 가보니 휴대전화 배터리가 분리되었다. 여러 날 동안 경찰서다가 행방불명 신고가 되었는데 등산객들에 의해서 발견이 되었고 알아볼 수 없는 몰골에 부패한 몸 상태였다. 그동안 오만 정이 떨어졌지만,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았다는 생각에 경찰관 입회하여 확인된 시신 앞에 싸웠어도 그때가 행복했었다. 날개의 삶을 그때를 뒤돌아보게 했다. 사람을 의심하고 악하게 살면 언젠가는 벌이 그대로 받는다는 사실을 순간순간 잊고 사는 우리 그러던 어느 날 남편에 의해서 태어난 아이들이 찾아왔다.
“엄마 조금만 고생해요. 우리가 크면 행복하게 잘 모실 거야 약속하는 것 잊지 마세요.”
“그래, 너희가 꿈이야.”
새끼손가락으로 약속을 걸고 떠나보내는 엄마 마음이 하늘을 우러러 선광처럼 반짝였다. 가족이 뭉쳐 사는 날이 언제일까? 긴 여정이 되어서 커가는 아이의 중학생이 되니 며칠마다 한 번씩 들려오는 선생님의 말씀 “오늘 인성 윤리 위원회 모임이 있으니 교무실 3층 건물로 아침 9시까지 아이들 등교 시간을 꼭 맞춰서 오세요.”
“무슨 일이 있나요?”
“오시면 압니다.”
선생님을 찾아가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 궁금증 때문에 밤인데도 잠이 오지 않았고 뜬눈으로 날을 지새웠다. 창틀로 들려오는 빗소리는 억수같이 쏟아져 내리는 푸른 가로수 길로 삶을 접고 달려간 학교였다. 여러 선생님 의견에 엄마는 말 한마디 못하고 죗값 때문에 자필 서명을 한 다음에 이런 잘못을 다시는 안 하기로 도장을 찍었다. 오 교사는 준섭이를 밖으로 불러낸 다음에 다가오시더니 “염려가 많이 되시죠?”
“그러게요.”
“아이들이 클 때는 다들 그렇게 커요. 사춘기라고 하네요. 준섭이를 통해서 들으셔서 아시겠지만.”
“대충 들었어요.”
“동생 이름은 팔아서 돈 내어놓아라. 뜯어 쓴 돈이 1십만 원이 넘어요.”
“이 학교 학생이 아닌데---.”
“옛날에 준섭이 동생한테 맞은 아인데 빼앗긴 경험이 있고 형이니까 달라고 하면 스스럼없이 안 맞으려고 주워놓고 아까우니까 부모님께 말을 하면 그쪽 부모가 알면 시끄러우니 1십만 원을 대 돌려줘야겠네요. 친구는 정한, 심부름, 한우 돈도 챙겨 가지고 오셨죠.”
“예, 여기 있습니다.”
“얼마 전에 송도로 견학 갔을 때 두 아이가 자전거를 훔쳐서 전철에다 싣고 왔다고 들었어요.”
“동현리 친구가 훔쳤다고 하던데요.”
“둘이 그랬어요.”
“환장하겠네! 이놈 짓이라니---.”
“화내지 마세요. 그렇다고 해결될 것이 아녜요. 그만할 때 호기심으로 그럴 수가 있거든요. 두 아이 보고 주인한테 자전거를 가져다주라고 했거든요. 육지 끝 바다 아파트 경비아저씨가 CCTV를 보고 수소문 끝에 학교로 연락해 와서 잘 말씀을 드렸어요. 현재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고 문제가 될 때 앞길이 씻을 수 없는 상처니 자전거만 받으시고 사인 좀 해서 보내라고 연락이 오고 갔어요.”
“선생님께서 고생이 많으셨네요.”
“어미라는 제가 그런 줄도 모르고 죄송합니다.”
쥐구멍이 어디 있느냐 교문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부모복도 없으니 서방 복도 없고 자식도 그렇구나! 다행히 좋은 선생님을 만났으니 그렇지! 학교 갔다 돌아온 아들이 자전거를 갖다 줘야 한다며 전철을 타고 간다기에 엄마는 자전거를 용달차에 꼭 붙들어 매고 시속 90으로 40분간 달려서 내비게이션으로 찾아가 바다 아파트 경비아저씨 손에 인계되는 걸 먼발치로 확인한 다음 도장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햄버거 가게를 들렀다. 한 개씩 아이들에게 물렸다.
“자전거 한 대는 어디 있느냐?”
“그날 타고 오다가 망가져서 버렸어요. 오늘 갖다 준 자전거는 친구네 현관에 숨겨 놓고 그동안 탔어요.”
“너희 죄목이 뭔지 아니?”
“몰라요.”
“절도야 경찰한테 걸리면 교도 소가고 또는 벌금을 물어줘야 해.”
집으로 끌고 와 처음으로 아이한테 훈육을 시키면서 “빌어먹어도 남의 물건에 손대는 것 절대로 안 된다. 네가 엄마의 얼굴에 똥칠하고 다녔다. 이놈아.”
“잘못 했어요. 다시는 안 할 거예요.”
“그래, 하지 마! 그건 도둑놈이 하는 짓이야 내 뼈 녹여서 사는 거야.”
한동안 조용했나 했더니 전화가 걸려와 받고 보니 오 교사였다. “준섭이가 학교에 안 나왔어요.”
“어제 오후에 집에 돌아오지 않았어요.”
“또래 친구랑 가출했나 봐요. 다른 반 아이랑 나간 것 같아요.”
“그래요? 어떻게 해야죠?”
“기다려 봐요. 돌아올 거예요.”
3일째가 되던 날 오 교사께서 이틀에 걸러 하루씩 아침과 오후로 전화방문을 하셨다.
“아이 성적이나 행동을 봐서는 고등학교 진학이 안 되는 것 아시죠?”
“압니다. 경제적 어려운 관계로 될 수 있으시면 교통비라도.”
“집 근처는 안돼요, 세거든요. 인문계와 기술계 관내는 더 안 돼요.”
준섭이를 얼마나 선생님께서 살맛 나 학교에서 돌아온 후로 먼 바닷가 전기학교에 가면 돈 많이 번다고 했든가 버스로 한 시간 거리를 갑자기 그곳으로 희망한다고 했다. 나는 하던 일을 팽 계쳐놓고 슈퍼에 들어가 주스와 신사임당 그림을 가방 속에 넣었다. 등굣길에 아이 따라 교무실을 찾아가 선생님을 만났다. 눈웃음 지으며 “준섭이 어머니,”
“안녕하세요, 선생님.”
속으로 그동안 전화방문으로 아이를 헐뜯는 말을 나는 너무나 많이 들었다. 얼굴 좀 볼 겸 갔는데 교육자가 만나 할 정도였다. 구청 내는 안 된다는 하늘 같은 오 교사 막상 대면을 해보니 대머리에 얼굴이 기름기가 자르르 흘렀다. 아이 엄마의 부탁 말이 안 먹힐 거 계산했으니 실망 따위는 없었다.
“선생님 늦게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상담할 말이 있으니 앉으시지요, 전화하려던 참에 잘 오셨네요. 다름이 아니라 준섭이의 진로에 관한 말씀인데 조리와 전망이 좋아요.”
“제가 음식점 경험으로 15년인데 싫어요.”
“그럼 자동차과는요?”
“일전에 카센터운영을 했는데 비전이 없어요. 다른 과는 몰라도.”
“준섭이가 전기과를 좋아했어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하면 대학을 갈 수 있어요.”
“네! 알았습니다.”
싸들고 간 가방에서 회포인지를 꺼내 드리자 “받아도 되나요?”
“책이에요.”
머쓱한 나는 학교를 빠져나왔다 보내려던 아이의 학교에는 마음으로부터 산산조각이 되었고 빈손이나 앞으로 꿈도 멀어졌다. 아이에게서는 잊고 일을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받았더니 오 교사였다.
“집안 사이의 끼어든 책을 시간이 있어 읽었는데 세종대왕 그림이 여러 개가 있어 깜짝 놀랐어요. 준섭이의 인편에 보내드리겠습니다.”
“세종대왕을 포기했으니 정이나 그러시면 아이와 죽으로 드세요.”
“내일 준비물이 있는데 그걸로 대체할게요.”
“그렇게 하세요.”
그런 후로 아이들의 흉보는 일이 사라지고 위성으로 칭찬이 날마다 메아리쳤다.
답답한 나머지 관내 파출소를 둘러 가출신고를 해놓고 돌아왔더니 전화가 울려서 받았다. “경찰서입니다. 아이가 가출한 적 있나요?”
“처음인데요.”
“이런 아이들 있나요?”
“생각보다 많아요.” 2010년 11월,
“경찰서 소년계입니다. 아이가 돌아왔나요?”
“아직 안 왔어요.”
“들어오는 데로 연락을 주세요.”
“왜요?”
“처리하게요.”
“예, 그러겠습니다.”
통화를 끊은 후 5일째가 되던 날에 오 교사께서 연락을 해왔다. “아이를 잡았어요. 수업이 끝날 때까지 오시면 돼요.”
수화기가 뚝뚝 걸렸다. 너무나 여러 번 엄마의 마음을 건드려서 자식 하나 포기하려고 했다. 그러나 힘들다고 부모가 포기하면 이 아이의 설 자리가 어디 있나! 속으로 죽는 날까지 부처님 손바닥 모르느냐 하던 일 핑계치고 엄마는 중학교로 달려갔다. 교사님이 다가오시더니 “다른 2명의 아이는 줄행랑을 쳤어요. 준섭이만 끌려왔어요. 현장 실적을 올려줘서 고맙다. 성취감이 들었어요. 그리고 어머니께서 아이를 혼내지 마세요. 이 덩치에 뿌리치고 도망가면 못 붙들어요.”
“선생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준섭아. 잘 들어라, 뭐든지 기회는 여러 번 오는 것 아니다. 시기 놓치면 후회가 올 거야. 지금 손 씻어라, 알았지?”
선생님의 뼈 있는 말 한마디 그때는 “예” 했지만, 엄마는 속으로 언제 철드는지---. 그런 일이 있는 후로 친구들과 흡연을 즐기는가 하면 헛구역질이 바람 되어서 산과 강을 넘었으면 한 푼이라도 금전을 벌기 위해서 일터 간 엄마의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이웃에 사는 할머니는 들러리 장터였다.
준섭이 대면할 때마다 흡연은 끊어라, 건강을 위해서는 배움이 부족하면 살아가는데 힘들다. 요즘 시대에 영어, 중국어, 일본어는 기본이다. 알아야 면장이다. 또 모르면 손짓 발짓 얼마나 답답하냐?
밥 먹듯이 알아듣게 입방아 짓으로 귀가 아프게 자식을 위해서 설득작업이 필요했다. 2년 동안 아이들한테 시달리다 보니 사는 맛이 떨어졌으나 그래도 희망의 끈을 가지고 바람 부는 데로 비가 오는 대로 대치해가면서 여기까지 왔다.
주일날이 돌아와 교회를 찾아가서 가족들과 함께 기도를 올리고 돌아왔다.
“아들아, 엄마의 글씨 쓴 것을 컴퓨터로 워드 쳐 줄래?”
“힘들어요.”
“그럼, 힘들지. 쉬운 것 있니?”
“대가를 지급해야죠.”
“그것이 뭐야? 배춧잎?”
미소를 머금는 아이한테 몇 번을 워드를 쳐 달라고 했더니 “다음부터는 시간이 없어요. 아들이 워드 안치면 작품활동을 못해요?” 그런 말을 듣는 순간에 울화통이 확 올라왔다. 차라리 돈을 주고 컴퓨터 학원에 가 배우는 것이 좋겠다. 컴맹인 엄마는 때늦은 외출로 학원 발길을 디뎠다. 무조건 모르면 바보다. 늙어도 세 살 아이한테 배워야 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가난을 느껴본 자들이 알 수가 있다. 서글픔, 외로움, 그리움으로 인생의 행복마다 나 스스로 찾아서 충만하게 사는 것이야 가난으로 멈춘 먹물로 낮과 밤이 따로 없다. 준섭이는 어느덧 졸업식 날이 되어서 아침부터 서둘러 학교에 간다고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그 뒤에 따라가 학교 정문에 이르자 꽃들로 교문 입구가 활짝 피었다. 엄마와 할머니도 꽃다발을 손에 사 들고 아들의 졸업식장을 찾아가 두리번거려보지만 준섭이는 보이지 않았다. 담임선생님께서 먼- 곳으로 보시고 다가오셨다.
“아이가 안 왔어요.”
주인공 없는 잔치마당에 엄마의 얼굴이 가려웠다. 준섭이는 틈만 나면 만화책과 컴퓨터 게임 텔레비전을 즐겼다. 새벽에 가끔 나갔다 온다는 말에 미심쩍했다. 그러나 이웃에 사는 분께서 붕어빵 장사를 하는데 물건을 들어다 주기로 약속했으나 우리 집 방구석 한번을 안 거 드는 아들이 이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폐지 줍는 곽 영감이 찾아왔다.
“아이 아버지 되나요?”
“그런데요.”
“서운하게 듣지 마세요. 옆집에 헌 옷을 가지고 나오는 학생을 만나 어디로 가느냐? 물었더니 준섭이의 심부름이라고 두 눈으로 보았어요. 그리고 늙은 동료의 손수레가 통째로 폐지와 같이 도둑을 맞았다고 들었어요. 주의시키세요. 고물상에 찾아갔더니 집의 아이가 CCTV에 찍혔어요.”
“그러면 법정에 의해서 죗값을 받아야죠.”
“이번은 주의니 앞으로 이런 문제가 있으면 다 물을 겁니다.”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겨울방학이라서 밖에 나가 놀다가 돌아온 준섭이었다.
“아들아 혹시, 남의 물건을 팔아서 돈 썼지?”
“아니요. 엄마가 사람 잡네.”
“그럼, 가보자 증거로 CCTV로 녹화해 놓았다고 하더라 하늘 고물상에 가보자.” 당당하던 말투가 고개를 떨어트렸다.
“앞으로 한 번 더 걸리면 이번 것까지 다 물린다고 했으니 친구들한테 말해줘 이놈아.”
겨울방학이 끝나고 학년이 오른 푸른 고등학교 선생님께서 연락이 왔다.
“입학식 날을 포함해서 며칠간 결석을 했어요. 중학교 생활기록부를 보니 그렇더군요.”
“아이는 아침 일찍부터 학교 간다고 갔습니다.”
“늦은 시간에 교실을 왔다 갔다고 또는 점심만 먹고 갔다고 들었어요.”
“연락을 주셔서 고맙네요.”
거짓말로 학교 갔다 돌아오는 아이를 머리채 잡아 흔들어 버렸다. 칼바람으로 너 죽고 나 죽자 공부가 싫으면 이 자리서 죽어버려라. 이놈아, 한 번 비명이 오고 갔다.
“엄마 다시는 안 그럴게요.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그래, 너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들이 돈을 버는 거야. 엄마는 일터에서 일하는 것이 돈 버는 거고.”
양반이 노숙자하고 어울려 살아가면 거지가 되는 거고 무식자가 서당을 기웃거리면 풍월을 읊는다 하듯이 코앞만 보지 말고 멀리 봐라,
오늘도 엄마는 운전하지만 노는 물이 글 쓰는 작가, 음악가, 미술가 아니냐? 안될망정 꿈은 커야 행복이 열 배다.
가진 풍파가 그렇게 해서 가고 있으나 올바른 나무로 키워가는 부모의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되는 죽순과 같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11.22 11:06
첫댓글 샬롬!^^...잠시 머물다 갑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읍니다
건강히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