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자, 그럼 이제 모두의 의견이 모아졌으니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러 가실분들은 이곳으로 모이십시오!"
단상 위에 서 있는 무당장문인 임지한의 말에 따라 여기 저기 흩어져 무어라 떠들고 있던 중원의 무림인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무당 장문이 지정한 장소로 모이기 시작했다.
"이쪽은 소뢰음사, 서쪽의 소뢰음사로 가실 분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소뢰음사로 가실 분들은 이곳으로 모이십시오!"
"여기는 남해검문입니다! 남해검문을 방문하실 분들은 이곳으로 모이세요!"
"빙궁으로 가실분들은 이쪽입니다. 북쪽으로 떠나실 분들은 이곳으로 모이십시오!"
군웅들이 모여 있는 광장 세 군데에서 그런 외침이 연신 터져 나오고 사람들은 각자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이제 갈곳이 정해졌으면 세 곳으로 떠나는 분들의 대표를 선출해 주십시오!"
무당 장문의 그 같은 외침에 군산에 모여든 군웅들은 또 한바탕의 소동을 일으켰다. 어쩌면 이번 세외의 세력을 확인하러 가는 무리의 대표로 선출되는 사람이 무림맹주로 선출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한바탕의 이전투구 끝에 각 무리를 이끌 대표가 선출된 것은 다음날이 되어서였다.
"본인은 이곳에 남아 여러분들의 경비 조달과 연락을 위한 업무를 진행시키도록 하지요."
무당파의 장문인 임지한은 그렇게 말하면서 북해로 가는 사람들의 대표로 뽑힌 늙은 거지를 바라보았다. 십년이 넘는 세월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던 개방 방주 취문설개 탁한성의 등장은 거기 모인 군웅들을 놀래키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무당의 장문인 뿐만이 아니라 다른 무림인들 역시 갑작스런 개방 방주의 등장에 놀라고 있었다.
군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군웅 대회가 예정보다 길어지고 있는지 동료들은 다음날이 되도 올 생각을 안하고 혼자 악양루의 밀실에서 꼼짝을 안하고 있던 왕질악은 예전의 일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개방이 어떤 문파인지 또 사부가 되어준 왕소팔이 어떤 인물인지 전혀 모르고 있던 소년 왕질악이었지만 사부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부는 모두가 알아주는 가장 정의로운 사람, 그래서 거지 중의 협사라고 해서 협개(俠 )라고 불린다는 것을 알게 된 왕질악이었다. 자신을 개방에 입문시켜주고 사부가 되어준 왕소팔 왕장로에 대해 알게 될수록 왕질악의 사부에 대한 존경심은 깊어만 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부에 대해 알게 된 왕질악의 사부에 대한 존경심은 깊어만 갔다. 천대받고 구걸하는 비렁뱅이가 천하인의 존경을 받는 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알았기에 사부가 되어준 왕소팔에 대한 왕질악의 존경심은 무척이나 큰 것이다. 그래서 왕질악은 자라면서 사부인 왕소팔의 가르침에 충실히 따랐다.
약관의 나이가 되었을 때 왕질악의 무공 수위는 그 또래에서는 발군의 실력을 지니게 되었지만 아직 무림에서의 활동을 하지 않은 탓에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는 않은 상태였다.
그 때 무림은 정파 무림 연맹인 구환맹과 마도 무림맹인 귀혈맹이 전쟁 중이었고, 개방 또한 그 전쟁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리고 개방의 방주였던 용두신개는 너무 늙고 노쇠해서 새로운 방주에 대한 말들이 한창 거론되고 있었다. 그 때 다음 대의 방주로 거론되는 인물은 사부였던 왕소팔이었다.
왕질악은 그 때 모르고 있었다. 항상 주변을 잘 살펴보고 주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을---. 무림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항상 칼날 위에 서서 위태로운 삶을 사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 때의 비참한 일을 겪지 않고 흑룡이라 불리지도 않게 되었을 것이다.
인간 중의 용이라 불리는 사람 중의 하나가 되었지만 왕질악은 많고 많은 이름 중에 하필 흑룡(黑龍)이라 불리게 된 그 사연을 생각하면서 입가에 쓴 미소를 흘렸다.
사부인 왕소팔이 한창 다음 대의 방주로 거론되고 있을 때였다. 사부가 귀혈맹의 군산 분타를 조사하게 된 것은---.
그날도 개봉에 있는 개방 총타 근처에서 왕질악은 무공 수련에 여념이 없었다. 그날 수련하고 있던 무공은 옥룡팔장이라는 무공이었다.
"하앗!"
날카로운 기합과 함께 왕질악이 손바닥이 나무에 부딪치고, 다음 순간 앞에 서 있던 고목나무는 우지끈 소리를 내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아직 장풍을 일으킬 수준은 아니었지만 왕질악의 무공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이대로 내공이 조금만 더 올라간다면 왕질악도 무림의 절정고수들이 사용하는 검기(劍氣)와 장풍(掌風)을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왕질악이 있는 근처에 있는 바위에는 삼촌 가량의 깊이로 패인 손바닥 자국이 난 바위가 있었다.
"열심이로구나."
땀을 뻘뻘 흘리며 무공을 수련하던 왕질악은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뒤도 돌렸다. 자신의 손바닥 자국이 나 있는 바위를 쓰다듬으며 서 있는 사부 왕소팔의 모습이 왕질악의 눈에 들어왔다.
"사부님, 나오셨어요?"
"그래, 이번에 내가 악양에 갈 일이 생겨서 당분간 너와 떨어져 있어야겠구나."
"얼마나 가 있으셔야 하는데요?"
"글세---, 잘 모르겠다. 일단 가 봐야 알 것 같구나."
사부의 말을 들으면서 왕질악은 사부와 오래 떨어져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말했다.
"그럼 같이 가요. 저도 이제 제 한 몸 지킬 힘이 생겼으니 사부님의 일을 방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왕질악의 말을 듣고 사부 왕소팔은 바위에 새겨진 제자의 손자국을 바라보았다. 바위에 새겨진 삼촌 깊이의 그 자국은 제자의 무공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것인지 분명히 알려주는 것이었다.
"이 정도라면---, 그래 같이 가자. 가서 위험한 일이 생기면 도망치면 그만이니."
그렇게 해서 왕질악은 사부인 왕소팔과 함께 삼십년 전의 그 겨울 날 쏟아져 내리는 눈을 맞으며 개봉을 떠나 악양에 오게 되었다.
악양에 도착할 때까지는 싸움한번 벌어지지 않고 무사히 도착하게 되었지만, 왕질악은 동정호라 불리는 거대한 호수 속에, 정들고 존경하는 자신의 아버지요 어머니요 스승이었던 사부 왕소팔이 동정호 속에 잠드는 광경을 보게 될 줄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날은 일은 음모였다.
사부와 함께 악양에 도착해서 동정호의 장관에 심취해 있을 때 갑자기 나타난 군림맹의 무리들---. 온 몸을 검은 천으로 뒤덮고 얼굴마저도 검은 천으로 뒤덮은 그자들이 마도 최강의 척살대라 불리는 암흑전사단이라 불리는 자들이라는 것을 왕질악은 악양에서 탈출한 뒤에야 알게 되었다.
"도망쳐!"
그 때 사부가 왕질악에게 해 준 단 한마디의 말이었다. 그자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사부는 그자들의 정체를 안 모양이었다. 그들을 보자마자 한 말이 그 말이었고, 왕질악 갑자기 나타난 그자들이 무서운 자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괜히 어물거리다간 사부에게 방해만 될 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왕질악이 바로 도망쳤고, 도망친 것은 동정호의 수면 속이었다. 육지 쪽은 그들이 길을 막고 있어 도망칠 길이 없었다. 사부 왕소팔 역시 혼자서 그들 열 명을 상대할 수 없었는지 왕질악이 도망치자 뒤따라 한겨울의 동정호의 수면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날 한 겨울의 차가운 물 속으로 도망친 사부와 제자가 다시 물 밖으로 나온 것은 한 밤중이 되어서였다. 그날의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가 쳐지는 왕질악이었다. 추워도 그렇게 추운 날은 없었다. 물 밖으로 나와 어딘지 모를 절벽 아래 동굴 속에 모습을 감추고 사제는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도 불을 지필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적들이 근처를 수색하고 있을 테니 그들이 있는 곳을 드러나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딱 딱 딱----사--딱--부--님, 딱딱딱--- 여--여기가 어---딱딱--디죠?"
너무 추워서 이빨을 딱딱 부딪치면서 왕질악이 동굴 속에서 물어 보았을 때 사부는 침통한 얼굴로 대답해 주었다.
"이곳은 군산이다. 귀혈맹의 총타가 있는 곳이지."
말을 하고 있는 사이 사부의 몸에서는 뿌연 연기가 피어오르고 사부의 젖어 있던 옷이 순식간에 마르는 광경을 보게 된 왕질악이었다. 말로만 듣던 삼매진화를 일으킬 실력을 지닌 사부가 피해서 도망칠 정도로 무서운 자들이 사부를 노리고 대기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왕질악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리 오너라. 일단 젖은 옷부터 말리고 보자."
물속에 하루종일 들어가 있었기에 왕질악의 몸 또한 젖어 있는 상태였다. 사부의 손이 몸에 닫고 일다경이 지나지 않아 몸이 훈훈해지고 옷도 완전히 말라서 추위에서 벗어나게 된 왕질악이 급히 물었다.
"이곳에서 탈출 할 수 있을까요?"
"죽기 싫으면 탈출해야 된다.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해야지."
"사부님, 그자들이 우리가 이곳에 온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요? 우리가 이곳에 온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잖아요?"
"글쎄다---. 모르겠구나. 나를 상대하기 위해 마도(魔道) 최강의 살수가 열이나 동원되다니---. 귀혈맹의 대접이 너무 황송하구나."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말하는 사부의 모습을 자세히 바라보게 된 왕질악은 깜짝 놀라 말했다.
"사부님, 가 가슴에서 피---피가------?"
"허허, 이제 발견했느냐? 아무래도 난 오늘을 넘기기 힘들 것 같구나----."
그리고 그곳에서 받게 된 개정대법, 사부가 육십년 동안 쌓은 내공이 왕질악의 몸 속으로 흘러들어 오면서 왕질악은 순식간에 절정고수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죽을 사람은 죽더라도 살 사람은 살아야지. 이대로 있다간 너하고 나, 둘 다 죽게 될 것이다. 곧 죽을 목숨에 내공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 그러니 아무 말 말고 내 내공을 받도록 하거라."
개정대법을 시행하기 전에 사부가 해준 말이었다.
왕질악이 편안한 미소를 흘리며 앉은 채로 잠들어 있는 사부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였다. 낮에는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은 추위를 느꼈고 밤이 되어서는 온 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끼면서, 왕질악은 존경하는 사부의 죽음을 담보로 새롭게 태어났다.
사부의 편안한 미소가 어떤 의미인지 왕질악은 알고 있었다. 죽는 그 순간까지 사부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에 편안한 미소를 흘리며 잠든 것이다. 그러나 남겨진 왕질악은 미소를 흘릴 수 없었다.
소리 없이 통곡하는 시간이 하루 동안 흘러갔다. 떠나야 했지만 사부의 시신을 이대로 놓아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군산의 절벽 아래 동굴에 맨손으로 땅을 파고 사부의 시신을 일단 매장하고 흔적을 지운 왕질악은 군산을 탈출하기 위해 발악을 해야 했다. 군산 일대에는 천라지망이 깔려 있는 상태였고, 탈출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갈대를 입에 물고 동정호의 물결을 따라 무려 천리를 떠내려가는 일을 감행한 것은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인 상태에서 왕질악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사부의 복수를 할 수 있을 테니. 한 겨울의 뼈 속까지 저려오는 강물 속에서 무려 사흘을 버틴 끝에, 왕질악은 귀혈맹의 천라지망을 탈출해서 개봉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군산을 탈출하기 위해 한겨울의 강물 속에서 무려 사흘을 버틴 왕질악의 피부는 새카맣게 죽어 있었지만 그 당시 왕질악은 그런 것을 알 수가 없었다. 개봉에 어떻게 도착한 것인지 조차 기억하지 못한 채 의식을 잃어버린 그였고 다시 의식이 돌아 왔을 때에는 취문설개가 방주의 자리에 올라 있었고, 왕질악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는 다음 대의 방주 자리를 있는 후개로 정해진 상태였다. 의식이 없던 한달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때의 일로 왕질악은 마교의 살인마들 - 암흑전사단의 포위망을 온 몸이 검게 변해서 탈출했다는 이유로 흑룡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왕질악은 어떤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존경하는 사부의 석연치 않은 죽음과 사부를 대신해 방주의 자리에 오르게 된 취문설개에 대한 의혹은 시간이 갈수록 깊어만 갔다. 그러면서 왕질악은 호탕한 성격 대신에 점점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무공 수련 대신에 술로 나날을 보내는 게으르고 나태한 생활이 계속되고 있던 왕질악에게 내려진 명령 - 마교가 있는 황산으로 가서 마교의 동태를 살피라는 것이었다.
그 때 왕질악은 자신을 꺼리는 취문설개 - 비록 자신을 제자로 삼고 두 번째의 사부가 되어준 인물이었지만 -가 사부 왕소팔을 죽게 만든 것처럼 자신도 황산에서 죽게 만들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을 겉으로 표현할 수 없었다. 어떤 꼬투리든 잡아서 후개라는 지위를 박탈하고 자신을 매장시키려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사부의 복수를 할거야."
황산으로 떠나면서 왕질악은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라고 결심했다. 살아남아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다. 사부인 왕소팔의 죽음에 취문설개가 관련되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왕질악은 반드시 황산에서 살아남아서 사부의 복수를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아무 것도 없는 산 속에서 몇 년을 버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배가 고프면 나무껍질이라도 씹어먹으면서 버티던 왕질악에게 황산을 탈출할 기회가 찾아온 것은 칠호가 찾아 왔을 때였다.
황산을 벗어나는 순간이 자신이 죽을 순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왕질악은 헐벗고 굶주리고 추위에 떨면서도 결코 황산에서 벗어날 수 없었지만, 몇 년간의 야인 생활은 그를 아주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취문설개의 무공도, 마교의 무리도 상대할만한 실력이 아니었기에 탈출은 꿈도 꿀 수 없었던 왕질악이었다.
혼자서 마교를 멸망시킬 정도의 실력을 지닌 칠호와의 만남은 왕질악에게 크나큰 기회였다.
그의 생각이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때는 그의 힘이 절실히 필요한 때였다. 자신이 강해질 때까지는 누군가 보호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힘..감사합니다
즐감
즐감하고 감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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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감사..
즐감합니다
즐독.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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