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혁명 _ 어소운, 이연우
들판에 자라나는 잔디처럼 끈질긴 생명이 비폭력을 외쳤다.
이렇게 시작된 작은 변화는 마침내 우리에게 주어져 있던 역할마저 버리게 만든다.
피켓
나는 전쟁이 시작되리라는 말에 두려워했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있는 곳은 별일이 없다. 지구 어디에선가 총성이 울리고 그들이 삶을 허덕이는 동안 우리가 얼마나 안전했는지 몰랐다. 내가 그곳에 있지도 않은데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두려움을 느꼈다. 같은 하늘 아래 어느 곳은 생명이 무자비하게 죽어 나가는데 이곳은 소름끼치도록 평범한 일상이다. 아무도 걱정하지 않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지역에서는 여전히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삶에 대해 호소했다. ‘두렵다’고, ‘지켜달라’고. 그 비명은 화면 너머로 전해져왔다. 우리가 일어났던 건 단순한 사명감도 동정심도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했을 뿐이다.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기에 그 들판에 모였다. 들판에 자라나는 잔디처럼 끈질긴 생명이 비폭력을 외쳤다. 권력이 폭력으로 작용하는 시대에 비폭력을 주장하는 일은 곧 권력의 타파를 주장하는 일과 같다.
나는 여태까지 시위할 때 피켓을 드는 일에 표현하기 어려운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그 일을 창피하다고 생각했다. 눈에 띄게 되니까. 아마, 나 정도의 혁명심과는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도 내 진심을 나무란 적이 없다. 나는 왜 부끄러워했던가. 내가 하는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던 걸까? 사회의 틀, 그러니까 어느 권위자들의 압박에 나를 끼워 맞추려고 한 건 아니었을까. 피켓은 부끄럽지 않다. 피켓은 그 누구보다 강력한 지지이고 의지이고 단결이다. 피켓은 굵은 글씨로 자신의 목표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피켓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ANTI-WAR”
꽃
꽃이 건네진다. 반대편에 서서 수없이 들었을 그들의 구호와 뜻이 그렇게 건네진다. 꽃을 건네받는 우리가 이전에 어떤 감정이었든, 어떤 생각이었든, 어떤 표정이었지는 중요치 않다. 이와 무관하게 꽃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불편함을 떨쳐내기 위해 우리는 변화를 꾀한다.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맞는지 의문을 던진다. 옳다고 믿었던 무엇이 흔들린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우리 앞에 다가온 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이렇게 시작된 작은 변화는 마침내 우리에게 주어져 있던 역할마저 버리게 만든다.
나치당 소속 사업가로, 당으로부터 엄청난 지원을 받았음에도 유대인을 데려가 보호했던 이처럼, 전쟁에 참전하고 명예롭게 돌아왔다 인정받았지만, 그 명예와 상징적인 배지를 내려두고 반전시위에 참가했던 어느 이처럼. 수많은 촛불을 막아서야 했지만, 그 시간이 지옥 같았다던 어느 청년처럼. 전쟁을 일으킨 국가의 국민이지만, ‘stop war’를 외치는 그들처럼.
수없이 다양한 모양의 꽃이 그들에게 전해졌을 거다. 그리고 앞으로 수많은 꽃이 우리에게 전해질 거다. 그 순간, 꼭 그 꽃을 건네받아야만 하는 건 아니다. 피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변할 테니.
[참고 문헌]
차명석, 『68혁명, 인간은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 북튜브, 2021
516군사쿠데타_ 도연우, 유현욱
5.16 군사혁명 다른 말로는 쿠데타는 학생들과 국민들이 힘을 모아 이승만 정부를 끌어 내린지 약 1년이 된 시점에 일어난 새로운 독재의 시작이었다. 모든 독재의 시작이 그렇듯 박정희와 그와 함께한 육사8기들은 지금 보다 더 나은 국가를 만들겠다는 생각과 부정부패를 끝내버리겠다는 의지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거쳐 다시금 돌아본 5.16은 그 의미가 변질된 혁명이 아닌 쿠데타였다.
사전적 의미의 혁명이란 피지배계층이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탈취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5.16은 단순히 피지배층이 정권을 탈취한 것이 아닌 군대라는 가장 힘 있는 지배계급의 압박이 있었던 쿠데타였다. 이들이 먼저 자신들의 의지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사용했던 것은 대화와 호소가 아니었다. 군대라는 권력을 이용하여 무기를 내민 것이었다. 누군가에겐 이 모습이 열광의 대상이었을 수 있다. 힘 있는 군대, 단호하고 결단력 있는 표정. 하지만 누군가에겐 목소리조차 내기 힘든 공포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선택한 쿠데타는 결국 이 공포를 가장 극대화하는 방법이자 자신들의 성공을 이뤄낼 수 있는 수단이었다. 박정희의 모습은 군인 그 자체였다. 정권을 장악하고 대통령이 된 뒤에도 국민 모두가 군대처럼 복종하기를 원한 듯하다. 그렇기에 그는 국민들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았고, 자신의 권력을 휘둘러 더욱 오래 집권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꾸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들이 의견을 얘기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박정희의 민주주의 에선 그것은 반역이었다. 그렇게 박정희는 군인의 모습을 버리지 못한 체 18년의 시간을 통치했고 끝내 막을 내렸다.
‘어쩌면 위 사진은 박정희가 가장 바라던 자신의 모습이었을 수 있다. 굳은 표정, 군인과 군대의 권력이 보이는 사진처럼 박정희는 국민이 자신을 바라보길 바랐을 것이다.’
[참고문헌]
서중석,김덕련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5』,오월의 봄,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