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국민의 참여가, 단 13명의 표결로 한 번에 바뀌어버렸다.
이보다 더 졸속인 경우가 있을까?
왜 졸속인가?
졸속(拙速)의 사전적 의미는 ‘어설프고 빠름’이다. 국가교육위원회(이하 국교위)는 지난 4월 26일, 초등학교 1·2학년의 ‘즐거운 생활’ 통합교과에서 체육 교과를 분리하고, 중학교 스포츠클럽 활동 시간을 136시간으로 확대하는 결정을 내렸다. 여기서 드러난 국교위의 의결 과정은 지나치게 어설펐고 날림이었다. 이날 국교위 표결에선 위원 17명 중 4명이 불참하였고, 찬성 9명, 반대 2명, 기권 2명이었다. 국가 교육과정을 개정하면서 단 한 번의 표결로 결정되었다.
국가 교육과정 변경을 심의·의결할 때에는 교육전문위의 사전 검토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규정 또한 형식적이었다. 최근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교육전문위원들이 다양한 문제점을 제시하면서 좀 더 장기간의 전문적인 연구가 필요함을 제시하였음에도 국교위는 표결을 강행하였다. 또한 국교위는 교육부의 요청서를 받고 불과 두 달 만에 이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였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국민과 함께 만드는 교육과정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2년 동안 지금까지 어떤 교육과정보다 많은 국민이 개정 작업에 참여하여 만든 교육과정이다. 이렇게 만든 국가 교육과정이 초등학교에 적용된 지 단 두 달 만에 과목을 변경하였고, 중학교의 경우 실제 적용하기도 전에 스포츠클럽 시간을 늘렸다.. 그 많은 국민의 참여는 단 13명의 표결로 한 번에 바뀌어버린 것이다. 이보다 더 졸속인 경우가 있을까?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까지 기르고자 한 교육 목표,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교과목, 편성 시수 등이 담긴 국가 교육과정을 이렇게 졸속으로 바꾸는 것이 정말 가능한지 묻고 싶다.
정당성이 있는가?
국교위 위원 17명 중 위원장을 비롯하여 위원 5명을 대통령이 지명하고, 여당 추천이 1명이며, 교육부 차관이 당연직이다. 최소 7명은 교육부의 요청을 거부하기 어렵다. 국교위는 이번처럼 17명 중 13명이 표결에 참여한 경우, 교육부에서 요청만 하면 교육과정은 수시로 변경될 수 있는 구조이다. 다른 나라는 어떤 시스템을 갖고 있을까?
교육 선진국이라는 핀란드의 사례를 살펴보자. 핀란드도 이미 오래전부터 국가교육위원회가 국가 교육과정을 개정한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모두의 참여를 기반으로 하며 전문적인 연구를 통해 오랫동안 준비해서 시행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교육 정책에 따라 2년, 6년, 7년 등 수시로 국가 교육과정을 변경하고 이번처럼 시행 2달 만에 개정하기도 하지만, 핀란드는 대략 10년을 주기로 국가 교육과정을 개정한다. 국가교육위원회에서 교육과정을 개정하면 일선 학교는 4년에 걸쳐 교육과정을 적용할 준비를 한다. 그동안 국가교육위원회는 개발 네트워크와 교육, 연수 등을 통해 학교와 지자체의 교육과정 적용 준비를 지원한다.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는 국가 교육과정이 학교에서 시행되면 교육과정에 대한 모니터링과 동시에 다음 교육과정 개정을 준비한다. 구조를 좀 더 살펴보면 국가교육위원회에는 다각적인 참여와 전문성 확보를 위해 다양한 그룹을 편성하고 있다.
우선 국가교육위원회의 상위에서 교육과정 개정의 방향성과 편성 과정에 피드백을 제공하는 지도그룹이 있다. 지도그룹은 교원노조, 교육부 장관, 학부모협회 등 16개 이해당사자 그룹의 대표자로 구성되어 있다. 지도그룹을 통해 교육과정의 개정 준비 상황과 방향은 상시 공유되고 있다.
그 외에도 교육과정의 방향을 정하는 3개의 워킹그룹과 과목별 교육과정 개발과 실무를 담당하는 30여 개의 개편 그룹이 있다. 이 모든 그룹들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두 모여 의견을 나눈다. 또한 법에 의한 운영이사회가 있다. 운영이사회는 교사와 학생 대표 조직, 직업의 세계를 대표하는 조직과 정당 대표들이 참여하며 국가 교육과정 개편과 발전 과정을 지켜보고 평가한다.
핀란드는 국가교육위원회의 기관장이 국가 교육과정의 개정을 결정하지만, 교육과정의 목표와 방향성 및 내용은 다양한 그룹 편성과 네트워크, 토론을 통해 국가의 모든 단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그 과정을 개방하여 공유하기에 우리나라와 같은 깜깜이 개정은 일어날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의 1/10 밖에 안되는 핀란드가 국가 교육과정을 바꾸는 데 왜 이런 절차를 밟는지 국가교육위원회는, 교육부는 고민해야 한다. 법적인 정당성은 갖추었더라도 우리가 못 갖춘 정당성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칼도 칼 나름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은 누가 들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사용된다. 그렇다고 칼을 사용하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칼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 왔다.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40년 동안 이어진 초등 통합교과를 한순간에 깨뜨린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국교위가 함부로 결정할 수 없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우리의 삶이 통합되어 있듯이,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신체 표현이 빠진 음악과 미술만 통합해서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지 체육 교과를 분리하기 전에 충분히 연구했어야 했다. 이런 국교위에게 교사의 부담과 환경의 부족을 얘기하기보다 오로지 학생의 성장만을 중심에 두고 전문적인 연구를 하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사회적 제안이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