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준이의 생일! 준이가 가장 싫어하는 음식이 미역국이니 일부러 아침에 미역국은 생략하고 주간보호센터에서 돌아오는대로 좋아하는 중국요리로 대신해 봅니다. 준이녀석 집에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 어려우니 돌아오자마자 바로 차에 태워 수산한못으로 직행. 태균이는 벌써 성큼성큼 먼저 걸어가고 있습니다.
생일이어도 가족들에게서 연락 하나 오지않는 외로운 녀석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케익은 아무래도 낼 아침에 주어야 할 듯 합니다.
아직은 봄인지라 날씨의 변덕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습니다. 금방 여름이듯 뜨겁더니 오늘은 서늘한 기운이 바람결에 꽤 묻어있습니다. 계절이 그런지 요즘 수산한못은 결혼기념사진 찍는 장면이 매일 있습니다. 아마 결혼사진 배경으로 그 세계에서 꽤 선호되는 모양입니다. 수산한못은 우리의 많은 산책사진이 그렇듯 사진배경으로 치면 인생샷 감인 듯 합니다.
그러고보니 우리가 머무는 곳 2층에서 한달살이하던 처자는 서둘러 짐을 싸서는 원래 부산집으로 돌아가버렸습니다. 제주도 정착을 목표로 남편보다 몇 달 앞서 주거지를 알아보러 온 모양인데 한달 내내 지켜본 것은 아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좀 있기는 합니다.
정착지 물색도 그렇고, 제주도 자연을 즐기는 것도 아니고 거의 한달을 애완견과 함께 집에만 있었으니,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특별한 여행지에서의 나날이 너무 아깝게 느껴집니다. 제가 소개한 숙소 몇 개 보았을 뿐 정착지에의 물색노력도 적극적으로 하지도 않습니다.
직업이 발달장애 활동도우미라고 하는데 온갖 관심이 애완견에게만 있으니 가장 빛나야 하는 30대 초반의 시간이 너무 아까와서 제가 다 안타까울 지경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활동도우미 제도의 헛점을 보는 것 같아 그것도 아쉽습니다. 얼마 간의 교육으로 그 어려운 발달장애 아이들을 활동보조를 맡게되니 원래 기대도 별로 없지만 기대저버림의 현장이기도 한 듯합니다.
자신의 직업에 대한 배움의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 중의 하나입니다. 제가 여기 카페에 우리 아이들에 관한 뇌과학적 사실을 적극적으로 올려놓았던 가장 큰 이유는 발달학교 운영하면서 저와 함께 근무한 교사들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강요한 적은 없지만 여기에 올린 글들이 현장에서 반영되고 적용되길 바랬던 마음은 지난 10년동안 별로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끝내 카페를 보지않았던 대부분의 교사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직업은 직업이고 돈벌이수단일 뿐, 직업도 자기삶의 중요한 부분이고 자기계발의 핵심이라는 것을 간과하는 것이 아닌지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직업이 인생 전체를 차지할 수는 없지만 어떤 류의 직업이든 그것을 수행하는데는 프로의식이 분명 필요합니다. 프로의식은 그냥 저절로 배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도 오랜 세월 아이들에게 행해지는 교육의 일환 속에서 자연스럽게 몸에 배도록 해주던가, 혹은 사회적 메뉴얼을 잘 갖추어놓던가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꼭 필요합니다.
오랜 자본주의 역사를 가진 국가들은 이런 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줄만합니다. 작은 가게 캐셔를 하거나 주유소 직원이라도 프로의식이 있는 것과 그저 돈벌이수단으로 대하는 것에는 천지차이의 수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저 돈벌이수단으로 자기 직업을 대하는 태도가 만연할수록 그 사회의 건강은 크게 악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느 사회나 필요한 엘리트 지배체제의 건강성은 곧 우리들의 직업 프로의식과 직결되기에, 비리나 불법이 개입되지 않고는 사회적 부를 축적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의 현재 만연한 모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 처자의 한달살이 모습을 뜻하지 않게 지켜보며 오만가지 생각으로 확대된 듯 합니다.
화 목 아이들 도예하는 동안 예전 직장선배 말동무 상대를 넘어 가끔 손님응대 서비스도 도와주게 됩니다. 어제는 크루즈선박이 제주도에 입항했는지 중국 일본 대만 등 관광객들이 대거 민속촌을 거쳐갔는데 간식꺼리가 있는 음식점에 보이는 그들의 눈길이 재미있기도 합니다. 눈길에 비해 실제 구매인구는 많지 않았지만, 그들의 눈길을 무시하라는 선배의 일갈과 그래도 좀 자신없는 눈길을 거들어주고픈 저의 직업의식은 좀 갈리기도 합니다.
그러고보니 제주도에 온 이후 영어쓸 일은 많아졌습니다. 며칠 전 동네에서 우연히 만난 영국관광객. 한국이 너무 좋아 벌써 한국방문 네번째, 제주도는 세번째랍니다. 손자가 넷이나 되는 할매급인데 (아마 여권까면 저랑 비슷한 나이일수도!) 어찌나 활기가 넘치는지 남편은 영국 리버풀에 놔두고 혼자 그리 여행을 다닌답니다. 전직 교사인지라 한국에서 영어강사를 하려는 계획도 있다하는데, 그녀와의 수다삼매경 끝에 서로의 연락처까지 교환.
요즘 자주 들리는 문닫은 카페 하나, 이상하게 그 곳은 외국관광객들이 자주 들어옵니다. 일요일 만난 인도네시아 관광객, 영어를 너무 잘해 깜놀! 여동생이 최근에 한국드라마 삼달리에 빠져 그걸 보면서 삼달리를 찾아 거기까지 왔답니다. 차림이 동남아 귀공자급으로 멀끔한데 인도네시아에서 식당을 하고 있답니다. 성산일출봉 앞쪽으로 삼달리 드라마 촬영장소가 있어 거길 가보라고 했더니 어찌나 좋아하던지 바로 그거였어! 하는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제주도에서의 생활에는 또이런 묘미가 있기도 하네요. 이미 많은 외국인들이 제주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인정하는 듯! 그럼에도 인도네시아 귀공자급 남자가 묘사해 준 발리는 구미를 당기게 합니다. 발리가 유명한 관광지라해도 가보질 않았으니 그리 큰 곳인지는 그를 통해 듣게 되었습니다. 태균이랑 한번 가보아야 되겠습니다.
이러니 아이들이 주간보호센터에 가있는 동안에도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재미있는 일들로 하루를 금방 가게 합니다. 잠시 짬내 네잎, 다섯잎 클로버 찾아보기도 하루일과가 되서 아직까지는 하루에도 수 십개씩 찾아내는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제주도는 여러가지로 저를 흥분시키기도 하고, 즐겁게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잘 말린 클로버들을 코팅해서 캔버스판에 올려보니 멋진 한 폭의 작품이 되었는데요, 이런 시간조차 새롭고 흥미롭습니다. 코팅기?는 오랜 제 친구입니다. 학교운영할 때 아이들 교구를 직접 만들면서 코팅기는 늘 끼고다녔는데 제주도에서 할 일없이 뒹굴던 녀석이 할 일을 찾은 양, 신나서 멋진 작품을 만들어주네요!
첫댓글 준이씨, 생일 축하합니다.🙏
코팅한 네잎 클로버 잎이 유혹적입니다.
오늘도 잼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