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15. 11;30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세상은 텅 비어 간다.
들판도, 산도 모든 걸 다 내려놓고 텅 비어가는데 유독
성불산만 소나무의 초록이 꽉 찼다.
예정보다 1시간 반 이상 늦게 도착한 괴산 성불산,
이 산속의 세상은 어떨까.
새로운 산을 오를 때마다 설렘이 가득하다.
이것 또한 역마살(驛馬煞)이 강한 산병(山病) 아니겠는가.
성불산 매표소 아주머니는 사방댐을 건너면 바로 등산로
입구라 했다.
난이도는 보통이며 정상까지 1시간 반정도, 빠른 사람은
왕복 2시간 반이면 된다고 한다.
충청도 아주머니의 말을 믿어야 할까.
미리 등산지도를 보고 자료 등을 확인했으면 처음부터
이 코스를 선택하지 않았을 텐데,
들머리부터 시작되는 급경사는 성불산 산행의 난이도를
추정하게 한다.
여러 번 비슷한 글을 썼지만 충청도 사람의 말투와 속내는
같은 충청도 사람인 나도 헤아리기 힘들다.
됐어유, 그류, 괜찮여, 알았슈 등의 의사표시,
요기유, 저기유, 거기유 등의 거리개념,
무엇인가를 특정하지 않은 '거시기'라는 말과 '그려'라는 말은
잘 새겨들어야 한다.
오늘 매표소 아주머니의 "거시기 다른 등산객이 그렇게
말합디다."라는 충청도 말은 '접는 화법'이라 해도 해석하기
어렵다.
충청도 말에서
'됐어유'라는 말은 되었다는 긍정이 아니고 절대부정이다.
'괜차녀, 괜찮아유'라는 말을 진짜 괜찮다는 말로 알아들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
그 말은 그냥 지나가는 투로 의미 없이 말하는 거다.
'알았슈'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냥 알아들었다는 이야기이며,
'그류'라는 말이 나와야 비로소 긍정인 것이다.
'그려'라는 말도 말꼬리가 위로 올라가면 부정이요,
말투가 앞과 뒤가 같으면 알아들었다는 말이다.
그 밖에도 '뭐여', '뭐랴', '혀봐', '갔슈', '왔슈','몰러유', '댕겨',
'지덜', '갠신히', '어트케', '데따', '혼처' 등이 충청도 특유의
접는 화법이다.
암튼 선택을 하고 오르기 시작했으니 끝장을 볼 수밖에 없기에
호흡을 조절하며 희미한 산길을 천천히 오른다.
이럴 때야 말로 느림의 미학이 필요한 게 아닌가.
아래에서 비상용 호루라기 소리가 갑자기 들린다.
선등을 하던 친구가 데크길을 찾았으니 아래로 내려오라고
신호를 하는 거다.
스틱을 의지하고 1봉에서 급경사를 내려오는데, 종아리가
뻐근하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박무(薄霧)를 뚫고 도덕산(458m) 너머 군자산(君子山 487m)이
희미하게 보인다.
예로부터 산세가 빼어나고, 산을 끼고 흐르는 쌍곡계곡의
맑은 계류와 기암괴석이 아름다워 충북의 소금강이라 불렸던
군자산,
퇴계 이황과 송강 정철의 사람을 받았던 군자산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경기동부연합과 통합진보당, NL(민족해방파)와 주사파(주체
사상파)의 운동권,
이들을 대표하는 이석기와 이정희,
NL (민족해방파)과 PD(민중 민주), 중부지역당과 일심회
간첩조직 등,
저곳 군자산 보람원 연수원에서 2001년 9월 22일~23일까지
주체사상파 700여 명이 민족민주전선 일꾼대회를 하며 연방제
결의를 한 '군자산의 약속'이 폭풍이 되어 대한민국을 거세게
흔들어댔다.
김대중과 김정일의 6.15 공동선언 이후를 '조국통일의
대사변'으로 규정하고 연방통일조국과 김정일을 연방제 통일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이들은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철폐, 연방제 통일을 위해 '군자산
약속'을 한 이후
전교조는 민노당에 가입하였고, 좌익혁명 세력이 되어
촛불난동의 주동자들이 되었다.
지금도 내 머릿속에는 오종렬, 한상렬, 정광훈, 강기갑, 천영세
박석운 등 전국연합, 민중연대, 통일연대 출신과,
이들과 같은 노선을 걷고 있는 민노당, 민노총, 전교조에 대한
불신이 뿌리 박혀 있다.
"태어난 게 재수 없는 나라 대한민국,
나라도 아닌 나라, 대한민국 아 C 발"하며 대한민국을 노래하던
어느 종북시인도 있었다.
12;30
이정표가 별로 없고 있어도 정확하지 않은 성불산,
들머리 시작점 이정표는 정상까지 1.3km로 되어있었다.
한 시간 이상 경사 45도가 넘는 비탈길을 간신히 올라왔건만
정상까지는 여전히 1.3km가 남았으니 참 애매하다.
성불산(成佛山)은 괴산지역의 군자산, 보배산, 칠보산, 군자산,
좌구산과 함께 100대 명산이요, 괴산의 35대 명산에 이름을
올린 산이다.
소나무 군락지역을 벗어났다.
이쪽에 소나무가 없고 고사목이 많다는 건 산불의 상흔 때문인
모양이다.
고사목을 바라보며 자연의 숙명이라 생각하면서도 안타깝고
아쉬움에 가슴 한편이 아려진다.
산속 어딘가에 부처를 닮은 바위가 있어 성불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아님 험한 산길을 오르내리며 인내(忍乃)를 감당하면
나같이 평범한 사람도 번뇌의 굴레에서 벗어나 해탈(解脫)하고
득도하여 부처가 될 수 있는 산이라 하여 성불산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데크를 깐 길을 만나며 조금 안심이 된다.
아래로는 수천 길 낭떠러지기라 장가계 잔도와 비교가 된다.
산불이 얼마나 심하게 났는지 소나무는 죄다 고사목이
되었고 참나무 등 작은 활엽수만 겨우 보인다.
절벽에서 굴러 내려온 바위덩어리가 데크길을 작살냈다.
이 정도로 큰 바위라면 이곳을 지나던 산꾼이 다치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산에서는 세상 어떤 일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특히 이렇게 험한 산이라면 안전이 최우선이다.
차갑게 느껴졌던 바람은 어느새 따뜻한 바람으로 바뀌었고,
안전하게 만들어진 데크길을 걸으며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 간다.
성불산보다 높은 고산준령들의 산 모습을 두루 볼 수 있는
조망처에서 잠시 숨을 조절한다.
이정표 근처에서 추위에 시달리는 '산박하'를 만났다.
'박하'는 영어로 Mint라고 하는데,
그리스 신화에서 지옥의 신인 하데스의 연인 '민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하데스는 제우스의 딸인 페르세네포와 결혼을 했다.
그녀는 미인이었으나 성질이 급하고 사나워 아내 몰래 미모의
민트라는 처녀와 밀애를 나눴고, 히데스는 불륜을 아내에게
걸리자 민트를 향기는 좋으나 볼품없는 꽃으로 만들었다.
껌, 사탕, 치약, 화장품 담배 등에 널리 쓰이는 박하를 뜻밖에
이곳에서 만나다니 여태 힘들었던 수고로움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 산박하 >
13;00
꽤 많이 걸었는데 여전히 정상까지 1.3km라니 최초 들머리의
이정표 1.3km와 다르지 않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정표는 제대로 만들었을까.
성불산은 초행이라 더 이상 무리하지 않고 하산하기로 결정한다.
2011년 10월 20일 거창 금원산(1,353m)~기백산(1,331m)을
종주하며 4-1과 4-4의 애매한 이정표 때문에 다시 정상으로
올라가다가 깜깜한 밤이 된 7시 반쯤 소방서 구급대원의 도움을
받았다.
금원~기백산 종주 한 달 전인
2011. 9. 21일 영남알프스 종주 첫날,
능동산(983.1m)~천황산(1,189m)~재약산(1,108m)에 올랐다.
하산길 고사리분교를 지나 잘못된 이정표와 재약산 수미봉에서
만난 여자가 가르쳐준 길이 엉터리였다.
누가 이정표 방향을 돌려놨는지 고도 560m에서 다시 900m로
높였다가 어둠 속에 간신히 내려왔는데 산에서 이정표는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생명줄이기도 하다.
정상을 밟지 못하는 아쉬움보다 안전이 최우선이라 오늘
산행은 미완성으로 끝내야겠다.
어차피 우리네의 인생 모두 미완성이 아니겠는가.
하산길도 만만치 않다.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비탈길을 걸으며 두 다리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얼지는 않았지만 낙엽에 미끄러지거나 아래로 떨어지면 최하
중상이다.
다음에 저곳을 또다시 오를 수 있을까.
안전하게 하산을 하고 성불산 정상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세월은 하염없이 흐르고 흐르는데 체력이 언제까지 감당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성불산 하늘이 파랗고 참 곱다.
어느 시인은 봄 하늘을 창천(蒼天), 여름 하늘은 호천(昊天),
가을 하늘은 민천(旻天)이요, 겨울 하늘은 상천(上天)이라
했는데,
지금은 늦가을(高秋)의 하늘이니 민천(旻天)이라 해야겠다.
원객(遠客)으로 불리는 기러기 떼들이 편대를 이뤄 성불산
너머로 사라진다.
급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으나 이미 다 지나갔다.
2023. 11. 16. 08;00
빗방울이 떨어지다가 멈췄고,
그 틈을 타 성불산 생태공원 둘레길을 걷기 시작한다.
도덕산 자락에 난 무장애길을 걸으며 심호흡을 한다.
2023. 11. 16. 09;00
힘들고 멈추고 싶었던 순간들이 유독 많았던 금년,
각연사 마당에 서서 '너는 행복하니 나는 행복한가'라고
마음속으로 묻고 답을 해본다.
아픔이라는 낭떠러지기에 몰렸다가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산다는 자체가 천당이고 극락이 아닌가.
한참을 번아웃(Burnout)에 시달렸다.
여기저기 아프고 병원문턱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무기력감이
생겼고 삶에 대한 에너지가 고갈되었던 모양이다.
몸에 저축되었던 체력의 배터리가 방전된 듯 한참이나
무기력감에 시달렸으니 오늘 천년고찰 각연사라는 고즈넉한
산사에서 재충전을 하고 대처(大處)로 나가야겠다.
09;10
옛날 어느 스님이 칠보산 아래 절말에 절을 지으려고 공사를
시작했지만, 한밤중에 수많은 까치들이 날아와 나무
부스러기들을 물고 칠보산을 넘어 지금의 각연사 자리에 있던
연못을 메우려 했다.
스님이 그 연못 안에 있던 석불을 발견하여 연못을 메우고
절을 지어 석불을 모셨는데 그 석불이 지금 각연사에 모셔져
있는 보물 제433호 '석조비로자불좌상'이라 한다.
눈이 많이 내렸던 날,
2009. 3. 4일 올랐던 칠보산(778m)이 지척이다.
14년이 흘렀어도 여전히 또 오르고 싶은 칠보산,
그날 정상에서 만나 우리 일행의 하산을 안내한 '뭉치'라는
검정개가 지금도 살아있을까.
저곳에 또 올라야겠다는 투지가 갑자기 생긴다.
수령 400년이 다돼가는 '보리자나무'가 적적(寂寂)하다.
텅 빈 절간 마당에 홀로 서있는 보리자나무는 해탈을 하였을까.
보리자나무에 무성했던 나뭇잎이 다 떨어졌다.
나목(裸木)이 된 나무에 고요함과 깨어 있음이 같이 배어있다.
고요한 가운데 깨어 있고, 깨어 있는 가운데 고요한 모습을
보여주니 성성적적(惺惺寂寂)이요, 적적성성(寂寂惺惺)이로다.
해학적인 모습의 이 불상의 이름은 무엇일까.
설명을 하는 안내판이 없어 아쉽다.
달마대사를 연상하는 불상을 바라보며 마음에 평화를 느끼고,
평화를 느끼니 비로소 마음이 고요하고 고요해지며 번뇌망상
(煩惱妄想)은 사라지고 잡념도 없어졌다.
이번 산행 중 마지막으로 들린 각연사에서 고요를 알았고,
고요 속에서 경내를 걸으며 여유와 부드러움을 찾았다.
인적이 끊긴 각연사 뒤 보배산(772m)과
스님이 싸리비로 정갈하게 쓴 절마당을 바라보며 이곳에선
발걸음 소리는커녕 숨 쉬는 소리마저 조심스럽다.
09;40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청량하다.
목탁소리 들리지 않는 고즈넉한 산사에서 물소리만 듣고
가는구나.
나뭇잎은 낙엽이 되어 다 떨어지고 나무는 나목(裸木)이
되었다.
나무의 꿈과 나의 꿈은 어디로 사라졌는고.
가는 세월 아쉽지만 남은 인생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검박(儉朴)한 황혼이 되겠지.
이틀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왜 이리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
바람과 물 그리고 흐르는 시간,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아무 생각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잠이 들었다.
나 또한 무기(無記)의 경지에 오른 모양이다.
2023. 11. 16.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