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려타곤(懶驢 坤) 28-4
갑자기 땅이 갈라지면서 그 위로 모습을 드러낸 열 세명의 사람들은 황당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크고 작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던 백초당에 남아 있는 건물은 오직 하나밖에 없었고, 그 앞에서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백색과 녹색의 광채가 끊임없이 교차하고 있는 그곳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신기서생은 품안에 간직하고 있는 주먹만한 쇠 구슬을 쓰다듬었다. 최후의 순간에 사용하기 위한 그만의 비밀 무기였다. 이것이 터진다면 반경 30장 이내의 모든 것이 가루로 변해 사라질 것이다. 죽을 때 죽더라도 절대로 혼자 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신기서생 정옥이었다.
"저곳으로 어서 가서 아내를 도우시오!"
싸우는 장소를 가리키며 신기서생이 소리치고, 선기를 잃고 방어에만 급급한 상황에서 칠호는 다급해졌다. 다가오고 있는 열 두 명의 복면을 쓴 자들이 구파의 장로 이상의 실력을 지닌 자들이라는 것이 느껴진 탓이었다. 게다가 다가오고 있는 자들의 손에 들린 동그랗고 길다란 모양의 통 또한 심상치 않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칠호는 이를 악물고 그의 머리를 노리고 떨어져 내리는 방수련의 하얀 광채를 머금고 있는 오른 손에 어깨를 내밀었고, 그와 동시에 그의 주먹이 방수련의 배로 파고들었다.
"크헉!"
"꺄 아 악!"
두 마디의 비명과 함께 칠호의 몸은 빙글빙글 돌면서 뒤로 물러나 땅에 착지하고, 방수련은 입으로 피 화살을 뿜으며 뒤로 훌훌 날아갔다.
피가 흘러내리는 왼쪽 어깨를 오른 손으로 감싼 쥔 채, 칠호는 앞을 바라보았다.
그의 주위를 검은 복면을 한 자들이 둘러싸고 그 중의 하나는 땅을 박차고 올라 땅으로 떨어지고 있는 방수련을 안아들고 있었다.
조금 전에 일장의 교환으로 들끓고 있는 기혈을 억누르면서 칠호는 입 밖으로 토해지려고 하는 피를 안으로 삼켰다. 지금 주위를 포위하고 있는 자들에게 어깨의 부상 외에 내상까지 입고 있다는 것을 들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방수련의 몸을 안아들고 땅에 착륙한 복면인은 바로 그녀의 몸을 서 있는 신기서생에게 넘겨주고 칠호를 향해 달려갔다. 비록 한쪽 어깨에 부상을 입고 있지는 하지만 그들 전부가 달려들어도 이길 수 없는 적이 그들의 눈앞에 서 있었다.
아내를 건네 받은 신기서생은 조심스럽게 아내를 땅에 눕히면서 소리쳤다.
"여보, 정신차려!"
의식을 잃어가고 있는 방수련은 희미해진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다 칠호를 보면서 힘겹게 입을 열었다.
"조---조--심----, 저--자가 칠호----."
힘없는 목소리로 그 말을 내뱉은 방수련은 바로 의식을 잃어버리고 신기서생은 분노에 찬 얼굴로 칠호를 노려보았다.
"무당의 제운종이로군. 구파 출신의 무사들은 대부분 나의 운룡회와 함께 하는 것으로 아는데---?"
칠호는 그 순간 방수련을 구한 복면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고 있었다. 비록 한쪽 팔을 쓸 수 없는 상태이기는 했지만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 칠호의 말은 여유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흥! 우리를 그런 돈과 권력에 눈이 먼 쓰레기들과 비교하지 마라!"
복면을 쓰고 있는 한 사람의 입에서 날카로운 호통이 터져 나오고 거의 동시에 그들이 손에 들린 열 두 개의 원통에서 푸른색의 액체가 칠호의 몸을 노리고 뿜어져 나왔다.
독인이 된 칠호였다. 암기통에서 발사된 액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였지만 대개의 경우 이런 암기 통에서 발사한 액체는 독이었고 칠호는 그것이 독이라면 전혀 피할 이유가 없는 칠호였다. 독은 그에게 영약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열 두개의 암기통에서 발사한 액체가 독만 있는 것도 아니었고, 칠호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그것에 위험을 느끼고 허공으로 몸을 솟구치며 암기통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들을 피해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신기서생은 아내를 안아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칠호라는 자와 자신이 데리고 온 열 두명의 무사들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이 장소에서 몸을 숨겨야 했다.
사방이 평지로 변해 숨을 곳도 보이지 않고---, 이대로는 위험했다. 칠호라는 자의 살기 어린 눈이 공격을 받고 있는 와중에도 틈틈이 자신과 의식을 잃고 있는 아내에게 쏘아지고 있었다.
백초당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한 건물을 바라보던 신기서생은 이를 악물고 아내를 안고 그 안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칠호는 열두명의 복면인들과 싸우느라 신기서생을 저지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목숨을 아랑곳하지 않고 공격하는 열두 명을 상대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기다 한쪽 팔은 부상으로 사용하지도 못하는 상태였고 내상도 입은 상태에서, 아무리 자신보다 하수라 하지만 열 두명의 공격을 받아가면서 다른 곳에 신경을 쓰는 것은 자살 행위였다.
동면실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그 건물 안으로 뛰어가면서 신기서생은 땅 바닥을 뒹굴고 있는 아내의 무기인 붉은 금이 발에 걸리자 그것도 같이 들고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그 광경을 보면서 칠호는 내공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자신을 귀찮게 하는 열 두명의 무사들을 빨리 처리하고 건물 안으로 숨어든 한 쌍의 부부를 처치해야 했다. 청방의 방주를 죽일 기회는 쉽게 오는 것이 아니었다.
신기서생은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서 몸이 꽁꽁 얼어붙는 추위와 부딪쳐야 했다. 거친 호흡을 내뱉고 있는 신기서생의 입가에는 순식간에 고드름이 맺혔다. 신기서생은 건물의 한가운데로 걸어가서 그곳에 있는 돌로 된 탁자에 아내의 몸을 눕히고 용과 봉황의 그림이 새겨진 벽면으로 다가갔다.
자신은 이 건물의 지하로 들어가면 죽게 되겠지만, 아내의 능력이라면 그 안에 들어가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림의 이곳 저곳을 신기서생이 바쁘게 만지자 탁자는 밑으로 내려가고, 그러면서 방수련과 방수련의 품에 안긴 붉은 금은 지하로 사라졌다. 그 와중에도 신기서생은 동면실과 꽤나 거리가 있는 지상에 있는 상태에서도 몸이 얼어붙고 있었다. 그러나 신기서생은 계속 그림으로 가려진 기관장치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아내의 몸을 열 두 개의 만년한철로 이루어진 문이 보호하고 있는 장소로 이동시켜야 했다.
싸움이 계속되고 있는지 요란한 파공성과 호통이 계속 신기서생의 귓가를 어지럽히는 가운데 얼어붙은 손으로 기관을 조작하고 있는 신기서생은 초조한 얼굴로 건물 밖을 향해 힐끔 힐끔 쳐다보았다. 그가 기관을 조작하는 일이 모두 끝날때까지는 밖에 있는 무사들이 버티어 주어야만 했다.
바쁘게 손을 놀리던 신기서생이 손을 멈추고 뒤돌아 섰을 때, 갈라졌던 바닥은 틈 하나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신기서생은 얼어붙어서 덜덜 떨리는 손을 가슴으로 가져갔다. 품안에 간직하고 있는 쇠 구슬이 만져졌다.
예전에 그가 가장 보기 싫어하던 소구의 모습, 온 몸에 하얀 성에와 살얼음이 붙어서 하얗게 변한 몸을 하고 건물 밖으로 걸어 나온 신기서생은 절망어린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가 데리고 왔던 열 두 명의 무사들 모두가 땅에 쓰러져 있는 상태였다.
그런 신기서생의 모습을 보면서 칠호가 소리쳤다.
"이제 너를 보호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신기서생은 이대로 혼자 죽기에는 너무나 억울했다. 그가 준비한 모든 함정과 기관 장치가 망가진 상태였고 진법도 망가진 상태였다. 게다가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건물 안에 들어갔다 나온 상태였다. 추위에 저항할 능력이 없는 보통 사람은 그 안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죽음을 면치 못하는 장소에 들어갔다 나온 신기서생은 얼마 못 가서 자신이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뚜벅뚜벅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칠호를 보면서 신기서생은 절망했다. 자신이 품고 있는 화탄을 터트린다 해도 저자의 능력이라면 화탄의 폭발 속에서도 죽지 않을 수도 있었다. 신기서생의 생각으로는 죽어도 저자와는 같이 죽어야 했다. 이대로 혼자 죽기에는 너무나 억울했다.
몸을 떨면서 건물 앞에 서 있는 신기서생을 바라보는 칠호는 기분이 좋았다. 그가 원하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자신을 바라보며 공포에 떠는 인간들의 모습---, 비록 한 사람뿐이었지만 그 한사람으로 충분했다. 지금 앞에 서 공포에 떨고 있는 인간이야말로 청방의 방주라는 신분을 지닌 자였기에 그 혼자서 충분히 만명 이상의 가치를 지닌 자였다. 그런 자가 공포에 떠는 모습을 보는 것은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살기를 풀풀 날리면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칠호의 앞에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신기서생이 있었다. 몸에서 풍겨 나오는 무형의 기운만으로 사람을 제압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는 칠호였다.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꼼짝 못하고 몸을 떨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신기서생 정옥이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신기서생은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학문을 깊숙이 터득하면서 그의 정신력 또한 크고 높았다. 단지 기도만으로 신기서생이라 불리는 정옥의 정신을 제압할 수 없는 것이다. 고개를 숙이고 떨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신기서생이었지만, 그의 머리 속은 끊임없이 현재의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를 찾고 있었다.
신기서생이 준비한 암기는 아주 비싸고 귀한 물건이었다. 그것을 자신의 열두명의 호위 무사들에게 주었지만 그들은 칠호라는 자의 몸에 그것을 적중시키지 못했는지, 다가오고 있는 자의 옷은 어깨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피 자국 외에는 푸른색의 액체의 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꽈르릉!"
기어코 비가 내리려는지 멀리서 천둥번개가 울리고 있을 때, 정옥은 입가에 환한 미소를 흘리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의 눈은 칠호라는 자의 발에 가득 묻어 있는 푸른색의 액체가 보였던 것이다.
그 어떤 것으로도 꺼지지 않는 불꽃-영혼까지 태워버리는 액체라고 일컬어지는 마화린이 칠호의 신발에 가득 묻어 있었고,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을 향해 다가올 때마다 칠호의 발에는 더 많은 푸른 액체로 적셔지고 있었다.
이리 저리 움푹 움푹 패인 바닥 이곳 저곳에는 푸른색의 액체가 고여 있었고, 칠호의 발이 움직일 때마다 그 액체가 그의 발을 적시고 있었다.
칠호는 갑자기 고개를 들며 환하게 웃는 상대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떠오른 생각은 단 한가지였다.
'위험하다!'
칠호는 뒤로 퉁기듯 물러나고 있었지만 이미 상황은 늦어 있었다.
"꽈------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백초당이라 불리는 건물 전체를 뒤덮는 불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칠호의 몸은 불길을 피해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고 넘실거리는 불꽃이 그의 몸을 삼키려 위로 솟구쳐 올라왔다.
잠시 뒤 하늘 높이 솟구쳤던 불길은 땅으로 가라앉고 있었지만 허공 높이 치솟아 올랐던 칠호의 발에서 시작한 불꽃은 그의 몸 전체를 감싸고 타올랐다.
'쏴아아'
하늘에서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불덩이가 되어버린 칠호의 몸에 붙은 불은 결코 꺼질 생각을 안하고---.
칠호는 몸을 거꾸로 세우고 땅으로 무서운 속도로 쏘아졌다.
바로 저 아래 자신의 몸을 태우고 있는 불을 끌 수 있는 차가운 장소가 있었다. 허공 높은 곳에서 밑으로 떨어져 내리는 칠호의 손에서 녹색의 광채가 아래로 뿜어졌다.
"꽈앙!"
백초당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도 조금 전의 폭발로 사라졌지만 그 아래에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장소가 있었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들이 사방으로 날리면서 땅에 커다란 구멍이 나고 거대한 철판이 드러났다. 온 몸이 타들어 가는 와중에도 칠호의 손에서 녹색의 광채가 뿜어져 나오면서 또 한번 요란한 폭음이 터지면서 그 철판은 주르륵 녹아버렸다. 그러나 그 밑에 또 하나의 철판이 모습을 드러내고--.
지하로 삼십여장 깊이까지 내려와서야 바닥에 깔려 있던 열 주 철판은 사라졌지만 칠호는 온 몸을 태우는 뜨거운 불길에서 벗어날 장소에 가려면 다시 관문을 넘어야했다.
바닥에 사방 벽면이 모두 만년한철로 이루어진 장소였다. 벽도 만년한철이고 문도 만년한철로 이루어진 장소였고 문도 하나가 아니라 사방 벽면에 모두 있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불꽃이 그의 피부만이 아니라 살 속까지 파고들어 그를 시체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칠호는 몸을 빙그르르 돌며 장력을 계속 날렸다. 이미 만년한철로 이루어진 천하에서 가장 단단한 문을 열 두 개나 부순 상태였기에 내공이 바닥이었지만 지금은 내공을 아낄 때가 아니었다.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죽음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아는 칠호는 필사적이었다.
네 개의 문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고 그 중의 한 곳에서 차갑고 하얀 안개가 뿜어져 나와 칠호의 몸을 감싸면서 그의 몸을 태우고 있는 불꽃이 꺼졌다.
'치지직'
하는 소리를 내면서 칠호의 몸에 붙은 불꽃은 모두 사라졌지만, 이미 전신이 숯덩이처럼 까맣게 탄 상태인 칠호였고, 아직도 그의 몸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그는 이제 자신이 타죽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꽃이 꺼지고 일단 목숨이 붙어 있는 상태였지만 전신에 화상을 입고 있는 칠호는 몸 전체에서 고통이 밀려오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칠호는 놀란 얼굴로 그가 들어선 장소의 앞을 바라보았다. 투명한 수정관이 보였고 그 안에 누워 있는 얼굴의 반쪽이 화상을 입은 한 남자가 보였다. 그가 그토록 죽이고 싶어하던 방종구라는 것을 알아 볼 수 있었지만, 그 앞에는 무릎 위에 적금을 올려놓고 앉아 있는 방수련이 지키고 있었다.
방수련은 숯덩이가 되어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칠호를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다음순간 그녀의 손이 금 위에 올려지고 일음이 퉁겨졌다.
"띠----잉----."
"크 아 악!"
비명을 내지르면서 이번에는 칠호가 뒤로 날라 갔다.
무려 오장을 뒤로 퉁겨져 그가 뚫어 놓은 지상으로 통하는 구멍에 난 벽에 부딪치고 땅바닥에 널브러진 칠호는 고통을 참고 재빨리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보았다.
방수련의 손이 다시 금 위에 올려지고 있었다. 칠호는 도저히 더 이상 누군가와 싸울 힘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고, 또 공격당하면 죽을게 분명했다. 칠호는 그대로 몸을 위로 솟구쳐 사라지고, 금을 타려고 움직이던 방수련의 손은 금 바로 위에 멈추어진 채 움직여지지 않았다.
첫댓글 감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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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독 입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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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잘 보고갑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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