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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환의 중국은, 왜] #113 '중국의 테슬라'...미래차 없었다
정용환 기자입력 2023. 6. 19. 07:00수정 2023. 6. 19. 11:39
中 전기차 스타트업 '바이톤'
2021년 제기된 파산건 심리中
14일 법원에 다시 파산 신청
中, 세계 최대 전기차 판매 시장
보조금 중단 등 구조조정 한창
레드오션 '지옥 경쟁'서 생존
'대륙의 실수' 역습 대비해야
지난달 중국을 방문한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가 중국 공장에서 생산된 신차에 탑승하고 있다.
2018년 이맘때 MWC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중간에 코로나의 강이 길게 가로막아 시간 감각이 틀어졌지만 벌써 5년이 흘렀네요.
아시아 최대 규모 모바일ㆍ이동통신 전시회인 MWC(Mobile World Congress)상하이 전시회장. 전시회 성격에 맞게 모바일ㆍ통신 관련 첨단 기술 기업들의 각축이 한창이었습니다. 이런 자리는 삼성전자와 화웨이가 최신 모바일칩 또는 5G 제품을 선보이며 기술 선점을 향해 질주하는 경연장이 되곤 합니다.
이런 곳에 전기자동차 업체도 명함을 내밀었습니다. 양산 전의 콘셉트카였지만자율 주행의 미래와 전기차의 실내 컨셉이 어떻게 구현될지 엿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CES 같은 전자제품 전시회에 애플의 콘셉트카가 등장해 화제를 뿌렸듯이 전기차는 전자제품일 뿐 아니라 모바일ㆍ통신제품이라는 발상을 MWC를 통해 각인시킨거죠.
이 콘셉트카는 자동차와 5G의 관계를 실물로 구현했습니다. 차의 운전석 전면에는 대형 디스플레이만 있었습니다.
손가락 접촉만으로 네비게이션, 자율주행, 주행현황을 볼 수 있게 구조를 짰습니다. (※이제는 음성이나 눈빛으로 구현하는 단계까지 왔으니 기술 발전 속도에 아찔할 지경입니다.)
관람객들은 자동차의 운전석에 앉아 '먼저 온 미래'의 통신 기술을 만끽했습니다.
이 콘셉트카 설계 업체는 '중국의 테슬라'로 불렸던 바이톤이었습니다. 2018년 당시 MWC를 참관했던 업체의 한 대표는 “모바일ㆍ통신 장비 전시회에서 정작 가장 기억에 남는 기술 구현은 바이톤의 미래차였다”고 한마디로 정리했습니다.
미래차. 꿈 속에서나 가능할 먼 미래의 일이라는 의미는 아니었을 텐데, 이 말이 저주가 된 걸까요.
바이톤이 다시 파산 위기에 내몰렸다고 합니다. 바이톤의 모기업이 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지자 채권자가 파산 신청을 한 겁니다.
바이톤의 모기업은 2021년 파산 신청의 전적이 있습니다. 당시 파산 신청에 대한 법원 심리가 진행 중인 와중에 또 다른 건이 얹어지면서 파산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는 지경으로 가고 있습니다.
한때 중국의 테슬라라는 명성에 1조5000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받는 등 중국의 전기차 혁신을 선도한다는 호평을 듣는 등 기염을 토했지만, 성과가 없었습니다. 2018년 MWC 이후 3년이 흘렀지만 단 한 대의 전기차도 시장에 내놓지 못했습니다.
투자금은 운영비와 직원 복지와 보너스 잔치로 흥청망청 쓰고 결국 임금 삭감에 체불, 감원, 납품대금 연체라는 악순환 끝에 회사 경영 중단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부상한 중국. 〈그래픽= 비주얼캐피털리스트 캡처〉
바이톤만의 일이 아닙니다. 지금 중국 시장 상황이 이렇습니다.
중국은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시장입니다만 현재 신차 판매량 중 전기차 비율이 25%까지 올라와 단기 과열로 시장 포화상태라고 합니다. 게다가 지난해 말 정부 보조금도 중단되면서 산소 호흡기마저 벗겨진 상태입니다. 이래저래 성장 속도가 둔화되는 요인들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시장 점유율을 놓고 혈투를 벌이는 선도 업체들은 가격 인하로 출혈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후발ㆍ영세 업체들이 '먹을 게 없는' 시장이 되면서 거품이 꺼지고 있습니다.
〈 바이톤 홈페이지〉
경쟁에 뛰어든 전기차 완성차 업체가 62개에 달할 정도로 중국 시장은 레드 오션이 됐습니다.
그동안 전기차 시장을 키운다고 보조금을 주고 세제 지원을 하는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면서 수 백 개에 달하는 스타트업이 우후죽순 솟아 나왔습니다.
이제 옥석 가리기 단계로 거칠게 진입하면서 거품이 꺼지고 산업 구조조정의 칼날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지옥도'를 건너 살아난 전기차만 선택과 집중형으로 지원을 받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이 중국 시장은 중국 기업 BYD와 미국 GM과의 합작사, 그리고 테슬라, 중국차 업체 지리, 창안 등 상위 5개 업체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전기차 시장에서 격전 중인 5대 메이커. 〈그래픽=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캡처〉
잘 기억해둬야 하는 전기차 업체들입니다. 한·중간 최종 완성품·소비재 교역은 그간 한국이 화장품ㆍ게임IPㆍ드라마 콘텐츠 등을 앞세워 주도했지만 최근엔 중국의 중저가 소비재들이 알리바바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우리 시장에 활발히 침투하고 있습니다.
한·중 소비재 교역의 패러다임 체인지가 초읽기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첨병은 차이나 전기차입니다.
중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과 마케팅으로 극강의 생존력을 끌어올린 중국 전기차들이 평균 이상의 디자인으로 포장해 한국 시장을 노리고 있습니다. '메이드 인 차이나' 테슬라도 한국 시장 공략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대륙의 실수'급으로 내려볼 수준이 아닙니다. 역습에 대비해야 합니다.
중국 전기차의 또 하나의 무기인 마케팅은 다음 칼럼에서 이어가겠습니다. 〈계속〉
[정용환의 중국은, 왜] #114 국적 세탁 '밀수 반도체'
정용환 기자입력 2023. 6. 20. 06:59수정 2023. 6. 20. 11:48
뒷문 열린 러 반도체 제재망
日반도체 제3국 우회해 유출
지난 1년간 1400억 규모
중국 통해 70%, 韓도 경유
반도체=최첨단 군사 기술
경제ㆍ안보 차원으로 격상
규제ㆍ제재 장벽 있어도
기술 탈취 공세엔 틈새
법적 제도적 방어벽 높이고
범정부 차원 인력관리 시급
〈셔터스톡〉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경제제재를 받는 러시아가 반도체를 몰래 들여오다 들킨 모양입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19일 보도인데요. 요약하자면 일본제 반도체가 러시아에 불법으로 유입된 사례가 적어도 89건, 15억엔(약 135억원) 규모였다고 합니다.
불법 유입 경로는 70%가 중국이었다고 합니다. 중국의 업체를 동원해 일본 반도체를 구매한 뒤 이를 러시아에 되판 거죠. 한국과 튀르키예도 우회 경로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서방의 대러 제재로 반도체 수급에 구멍이 생긴 러시아가 밀수망까지 동원한 건데요. 전쟁까지 하는 마당에 군사 무기 개발에 필수재인 반도체 수급이 안 되니 급하긴 했던 거 같은데요.
〈셔터스톡〉
반도체는 현대 군사무기 기술 개발에 필수불가결한 핵심 부품입니다. 프로세서든 메모리칩이든 반도체 기술과 군사 기술은 정비례해서 발전해왔습니다.
두 부문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건 1980년대였습니다. 그러니까 현대전의 패러다임이 개막한 것도 불과 30~40년 밖에 안됐다는 얘기입니다. 70년대만 해도 반도체 기술이 구사된 군사 무기는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 수준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등장한 무기들과 비교 불가였습니다.
미군은 1973년 월남전에서 황급히 철수했습니다. 현격한 전력차와 기술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정글의 한계를 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18년 뒤 걸프전에선 족탈불급의 군사력으로 현대전의 패러다임을 바꿨습니다. 첨단 IT 전쟁으로 말이죠.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요.
전투함에서 발사되는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셔터스톡〉
전쟁 개시의 신호탄은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이었습니다. CNN을 통해 생중계로 봤던 토마호크의 타격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합니다.
토마호크의 개발 시점이 1983년인데 이 시점이 묘합니다. 일단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91년 걸프전에 첫선을 보인 토마호크는 마치 네비게이션을 켜놓고 운전하는 자동차처럼 지형지물을 우회하면서 타격 목표로 향하기 때문에 방공 레이더망에 잘 잡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개전 초기 촘촘한 방공망을 뚫고 상대의 전략 목표물을 공습하려면 적잖은 조종사의 피해가 불가피합니다.
토마호크 미사일이 지형지물을 피해 항로를 비행하는 개념도. 〈셔터스톡〉
조종사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 멀리서 고정 목표를 때리기 위해 개발된 미사일이 토마호크입니다. 전투함 또는 잠수함에서 발사되는데 사거리가 1250∼1500㎞에 이른다고 합니다.
1973년 월남의 정글에서 비교 불가의 전력차와 가공할 네이팜탄에도 불구하고 황급히 철수했던 미군이 18년 만에 전쟁 수행의 콘셉트를 뒤집었습니다.
현재전의 패러다임을 바꾼 토마호크는 스스로 목표물을 찾아가는 미사일이라는 개념으로 개발됐습니다. 정밀 타격용 무기체계입니다.
스스로 목표물을 찾아간다? 날아가는 동안 수많은 지형지물을 인식해서 실시간으로 발사 전 입력된 목표물과 비교하면서 '맞다, 틀리다'를 판단해 알아서 날아간다는 말인데요.
그 많은 정보를 분석한 뒤 날아가는 짧은 시간 동안 판단까지 끝내 목표물을 정확하게 때린다는 것은 고도의 연산과 컴퓨팅 작업이 미사일의 헤드에서 이뤄지고 있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월남전에선 교량 하나를 폭파하는데도 큰 비용을 치러야 했습니다. 조종사들이 피격되거나 날아간 미사일이 엉뚱한 곳에 처박히곤 했습니다. 당시 상황을 자세히 묘사한 『칩워(Chip War,크리스 밀러 저, 노정태 옮김)』의 한 대목입니다.
"북베트남의 마강을 가로지르는 길이 165m의 철교는 방공 시설로 둘러싸여 있었다. 다리 주변에 패인 800여개의 자국을 헤아려봤다. 그게 다 미군 폭격기나 (저성능 유도 시스템) 로켓이 만들어 낸 것으로 하나 같이 과녁을 맞추지 못해 생긴 흔적이었다."
〈네이버 캡처〉
아무튼 인도차이나 정글에서 맥을 못 추던 미군의 전쟁 수행력이 토마호크 등 정밀 유도 미사일을 개발하면서 전환점을 맞은 건데요. 83년이면 73년 월남전 철수 이후 10년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입니다.
짧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반도체의 비약이 있었습니다. 반도체가 해마다 배 이상 성능이 개량되면서 급격한 군사 기술 향상을 끌어냈던 겁니다. 반도체 기반의 강력한 유도 시스템을 탑재한 미사일들이 개발됐고 정밀 타격의 혁신을 구현했습니다.
반도체는 이렇게 최첨단 무기의 개발과 고도화의 성패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입니다. 기술력의 관건인 거죠.
〈셔터스톡〉
대(對)중국 반도체 제재의 밑그림을 그린 미국 국무부의 보니 젠킨스 군비통제ㆍ국제안보 담당 차관은 지난 4월 반도체와 군사 기술의 확장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국이 첨단 반도체를 자율무기체계 개발, 핵폭발 모델링과 미사일 모의실험 등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필요한 프로그램, 그리고 주민 감시장비 등에 사용할 수 있다.“
중국은 반도체 자력갱생에 총력전을 펴고 있습니다. 냉전 당시 소련은 자국 반도체 제조 업체를 키워 보려 대대적인 지원에 첩보전까지 동원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원천 기술을 가진 미국이 설계ㆍ소재(일본)ㆍ장비(유럽, 일본)ㆍ제조(한국, 대만)까지 일원화된 공급망을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계 1위 반도체 장비회사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가 미국 실리콘밸리에 대규모 연구시설을 짓기로 했다. AMAT가 7년간 최대 40억 달러(약 5조2720억원)를 투자해 짓는 이 시설에선 AMAT의 첨단 반도체 장비 개발이 이뤄진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오른쪽 첫번째)이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서니베일에 있는 세계적 반도체 장비회사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를 방문해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반도체가 이렇게 첨단 군사 기술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이상 반도체의 소재ㆍ장비ㆍ제조 공정이 미·중 전략 경쟁과 기술 갈등으로 지정학적 취약성에 노출돼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발신합니다.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과 중국의 자력갱생 반도체 생태계와의 패권 경쟁입니다. 중국은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습니다.
기술 확보를 위해 자금과 시장을 동원해 총력전을 펴고 있습니다. 취약한 고리가 대만과 한국입니다. 누적된 교역과 인적ㆍ사업적 네트워크로 침투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용이합니다.
〈셔터스톡〉
얼마 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고위 임원을 지낸 제조 공정의 전문가가 중국에 삼성전자의 복제 공장을 세우려다 발각돼 검거된 사건은 충격과 공포를 안겼습니다.
기술 탈취와 산업 스파이는 경제ㆍ안보 사안입니다. 보안 장벽을 높이고 세밀히 감시한다고 기술 유출을 다 막아낼 수 없습니다.
범정부 차원에서 경각심을 갖고 중대한 안보 사안으로 총력전 태세를 정밀하게 구축해야 하는 일이 시대적 과제가 됐습니다.
중국 반도체 진영의 기술 자력갱생 현황은 다음 칼럼에서 이어가겠습니다. 〈계속〉
[정용환의 중국은, 왜] #115 美ㆍ인도 반도체 밀착은 위협, 왜?
정용환 기자입력 2023. 6. 24. 10:59수정 2023. 6. 24. 12:12
美 전투기 엔진 기술 인도에 이전
메모리 반도체 엔지니어도 양성
떠오르는 반도체 제조 인력풀, 인도
韓 메모리반도체 진영 바짝 긴장해야
전국가적 차원 인재확보 전략 시급
'삼성반도체 도약' 산증인 임형규 전 사장
『히든 히어로스』에서 '미+인도' 위협 지적
조 바이든 대통령과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22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 국빈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환영하고 있다.
미국과 인도가 첨단기술ㆍ국방ㆍ교역 분야에서 초강력 밀착하고 있습니다.
인도는 중국이 공들이고 있는 브릭스(BRICSㆍ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흥 경제 5개국)의 기둥급 멤버죠. 미·중 전략 경쟁 시대에 인도는 나중에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으나 당장의 이익엔 철저하게 셈법을 가동하고 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이 회담에서 합의한 사항들에는 묵직한 함의가 있습니다.
미국은 무장 드론을 인도에서 제조하고 전투기 엔진 기술을 인도에 이전하기로 하는 한편 양자컴퓨터ㆍ인공지능(AI)ㆍ오픈랜 통신망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인도와 협력을 강화한다고 합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반도체입니다. 미국의 챔피언 기업들이 반도체 역량 전수에 팔을 걷어 붙였습니다.
〈셔터스톡〉
1. 마이크론은 인도의 반도체 제조ㆍ시험 시설에 8억달러를 투자키로 했고,
2.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는 반도체 상용화ㆍ혁신센터를 건설하는 한편,
3. 램리서치는 인도 엔지니어 6만명을 교육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마이크론은 삼성전자ㆍSK하이닉스와 함께 메모리반도체의 3강 중 하나입니다.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는 세계 반도체 장비시장 점유율 1위 기업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글로벌 고객사에 반도체 장비를 공급하는 회사입니다.
그리고 램리서치. 어플라이머티어리얼즈와 일본의 도쿄일렉트론, 네덜란드의 ASML과 함께 반도체 공정 장비 4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장비 업체입니다.
그러니까 메모리 반도체 제조 업체와 장비 업체의 핵심 부문들이 인도에 둥지를 튼 겁니다.
이 포석, 무슨 의미일까요. 답을 해줄 적임자가 있습니다.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설계 분야 입문부터 글로벌 최첨단 기술까지 연구ㆍ개발 역사를 써나간 사람이 있습니다.
임형규 삼성전자 전 사장.
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 그가 시작한 낸드 플래시 사업은 삼성전자의 메모리 독주의 견인차로 평가받습니다.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대담집으로 풀어 낸『히든 히어로스』에는 반도체 제조 공정 특히 메모리 반도체의 생산 현장 스토리가 실감 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미국과 인도의 메모리 반도체 협업 체제가 갖는 의미에 대해『히든 히어로스』의 설명을 함께 보실까요. 우선 메모리 산업 지형에 대한 평가입니다.
〈디케 제공〉
“메모리 산업은 크게 보면 한국과 미국 기업의 경쟁체제다. 미국 기업들은 일본과 대만의 메모리 기술 인력을 활용하고 있다.”
메모리 산업 지형을 양분하고 있는 한국과 미국 기업의 경쟁 구도에서 한국은 1970년대부터 2000년 초반까지 양성한 풍부한 인력풀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반면, 미국의 메모리 반도체 진영을 이끌고 있는 마이크론은 일본과 대만의 기술 기업들을 인수해 그 회사의 인력들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같은 구도가 이어지려면 인력 공급에 변화가 없어야 한다는 게 전제입니다. 임 전 사장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현장 경험의 직관과 인사이트가 녹아 있는 진단입니다. 함께 보시죠.
“미국,일본,대만의 기술 인재들이 메모리 산업으로 새롭게 대거 유입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인도 기술 인재들이 미국 메모리 산업에 대거 참여할 가능성은 예의 주시해야 한다 ”
인도 공대(IIT).〈 셔터스톡〉
왜 인도일까요.
인도는 이미 구글ㆍ페이스북 등 플랫폼 기업들에 많은 인력을 공급하는 핵심 인력풀입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아르빈드 크리슈나 IBM CEO, 샨터누 너라연 어도비 CEO가 인도가 배출한 실리콘 밸리의 히어로스들입니다.
이들 CEO의 90% 이상이 명문 인도공대(IIT) 출신입니다. CEO 트랙을 밟고 있는 잠재적 CEO 그룹에서도 인도공대 출신들이 즐비하다고 합니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22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모디 총리를 위한 국빈 만찬에서 잔을 부딪치고 있다.
미국은 공급 안정화를 위해 미국 영토 안에 반도체 제조 기지를 다시 세우려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엔지니어입니다. 미국에선 수급이 원할치 않습니다. 지난 20~30년간 미국은 소프트웨어의 시대였습니다. 수많은 인터넷 서비스 기업이 명멸했고 수 십 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S급 인재들이 인터넷 서비스 업계로 쇄도했습니다.
구글ㆍ애플ㆍ페이스북(요즘은 메타로 불립니다)ㆍ아마존ㆍ넷플릭스 등 전자공학ㆍ기계ㆍ정밀화학이 아닌 인터넷 기업으로 몰려 디지털 전환의 첨병이 됐습니다.
첨단 나노공학의 경연장이 된 반도체 산업을 채워줄 인력들의 수급이 바이든 행정부의 뜻대로 돌아가기 어려운 배경이기도 합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선택은 인도였습니다. 예전 같으면 중국이었겠지만 첨단 기술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기로 작심한 이상 중국의 대안은 인도로 귀결된 겁니다.
〈셔터스톡〉
그렇다면 인도의 기술 인재들이 대거 미국 반도체 산업에 유입된다는 게 우리 반도체 진영에 어떤 의미를 던지는 걸까요. 임 전 사장은 '위협 요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그의 논리가 흥미롭습니다.
우선 그는 “반도체 산업은 신흥공업국 시기의 한국에 주어진 역사의 선물”이라고 규정합니다. '한국에 쏟아진 역사의 선물'. 출신 배경까지 고려된 과찬스러운 호평 아닐까요. 그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유럽과 일본은 그들이 신흥공업국이었던 2차 산업혁명 기간에 화학ㆍ제약ㆍ자동차ㆍ항공ㆍ정밀기계 등 당시 빠르게 발전한 산업을 발판으로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이와 유사하게 한국과 대만은 반도체 산업에서 강국으로 도약했다. 한국ㆍ대만의 산업화 시기인 1980~1990년대 반도체 산업이 크게 성장했기에 특별한 기회가 주어졌다고 볼 수 있다.”
유럽과 일본은 후발 주자들과 기술 격차를 벌린 기존의 거점산업을 기반으로 안전하게 산업 생태계를 넓혀 가는 전략에 비중을 둔 반면 쫒아가는 입장에선 모험과 도전을 수반하는 신산업에서 승부를 볼 수 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그게 반도체였던 건 우리나라에 축복이었다는 얘깁니다.
인도 대학생들의 수업 장면.〈셔터스톡〉
그렇다면 인도와 미국의 밀착은 우리 반도체 산업에 어떤 위협이 된다는 걸까요. 임 전 사장의 직설입니다. 한번 들어보시죠.
“선진 산업국이었던 유럽ㆍ일본이 반도체라는 신산업에서 한국ㆍ대만 등 신흥공업국에 밀려난 사례는 기존 산업국이 신산업에서 인건비가 낮고 인재 공급이 충분한 신흥공업국을 이기기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인건비와 인재 공급. 미국 내 반도체 제조 기지 건설을 기치로 걸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의 돌파구로서, 공학 엔지니어 인력풀 인도의 잠재력과 가치가 새롭게 보이지 않습니까.
임 전 사장은 책에서 “미국 정부가 메이드 인 USA 반도체 제품 사용을 강제할 수 있는 수준으로 미국 내 메모리 제조 비중이 올라가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중국 제조 2025'처럼 중국의 반도체 국산화 드라이브 못지 않게 미국의 메이드 인 USA 전략도 한국 반도체 진영에 위협 요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인도의 반도체 공학 엔지니어들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미국의 산업 전략과 미국ㆍ인도의 반도체 밀착 행보는 우리 반도체 진영에 심각한 경고등이 켜졌음을 의미합니다.
발등에 불이 된 우리의 반도체 수성 전략에 대해선 다음 칼럼에서 이어가겠습니다. 〈계속〉
[정용환의 중국은, 왜] #116 5호16국 후손 '경례아기' 띄우는 당의 정치공학
정용환 기자입력 2023. 6. 27. 06:59
학생들의 사회주의 중국식 경례법. 〈인민망 캡처〉
2008년 쓰촨 대지진에서 극적으로 구조됐던 유아가 구조대를 향해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사진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이 사진을 보면서 시간의 강을 건너 15년 전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셔터스톡〉
규모 8.0의 쓰촨 대지진의 참화는 도시와 산간 마을 가릴 거 없이 도처에서 목격됐습니다. 무너진 유치원 폐허 더미에서 지진 발생 20여 시간 만에 발견된 3세 아이는 현장에서 급조한 나무판 들것에 실려 세상 속으로 나왔습니다. 그때 아이는 오른손을 들어 경례로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돼 신문과 방송을 도배했습니다.
참혹한 재난의 악몽 속에서 무겁게 가라앉았던 중국인들은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인해 큰 위로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무력감을 이겨내고 재건의 삽을 뜰 수 있도록 인민을 통합하는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셔터스톡〉
'경례 아기(敬禮娃娃)'로 불렸던 랑정(郞錚ㆍ18)이 올해 가오카오(高考)에서 최상위 성적을 거뒀다는 소식입니다. 쓰촨성(省) 수험생 전체에서 상위 30명(0.003%) 안에 들었다고 합니다. 중국의 관영ㆍ비관영 매체들은 이 뉴스를 크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랑정의 인간승리 스토리가 며칠 간 뜨겁게 매체들을 달굴 것으로 보입니다.
베이징대학. 〈셔터스톡〉
중국 34개 성ㆍ시ㆍ자치구는 도농, 민족, 지역 등 변수가 달라 입시를 따로 진행합니다. 쓰촨성에서 상위 0.003%라면 중국 내에서 원하는 대학은 골라서 갈 수 있는 성적입니다. 이미 베이징대에서 러브콜을 보냈다고 하는군요.
2008년 쓰촨 대지진 당시 군인들에 의해 구조된 3살짜리 아기 랑정(왼쪽)과 15년 뒤 18살 소년으로 큰 랑정. 〈사진= 연합뉴스〉
랑정은 한족이 아닙니다. 강(羌)족입니다. 중국은 55개 소수민족과 1개 한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입니다. 강족도 이 중 하나입니다. 강족은 중국 역사에서 5호16국 시대를 무대로 활약했던 종족입니다.
4세기 초~5세기 초 중국 대륙을 휘저었던 흉노ㆍ선비ㆍ갈ㆍ저ㆍ강족 등 5호(한족 관점의 이민족)들이 세운 16개국 격동의 시기를 일컬어 5호16국 시대라고 합니다. 우리는 소수림왕, 광개토대왕, 장수왕이 고구려의 전성기를 열고, 백제에선 근초고왕이 영토를 확장하고, 신라의 내물이사금과 눌지마립간이 나라의 기틀을 세우던 시기였습니다.
5호 16국 시대. 〈사회과부도 캡처〉
그 옛날 대륙을 호령했던 강족이 지금은 31만명 정도 수준의 소수민족으로 남아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무튼 당 선전부는 자질이라든가 불굴과 희망의 상징으로서 랑정의 '스타성'을 일찌감치 눈여겨봤던 것 같습니다.
〈인민망 캡처〉
중학생으로 큰 2018년에는 당 선전부 관할의 중국중앙방송(CCTV) '쓰촨 대지진 10주년 특집 방송'에 출연했었죠. 이듬해인 2019년 10월 1일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신중국 건국 70주년 기념식에서는 강족과 '쓰촨 대지진 생존자'를 대표해 단상에 올랐습니다.
고등학생 때인 2021년엔 CCTV의 '백년가성(百年歌聲)'에 얼굴을 내비치며 '전국구'로 이름값을 했습니다.
랑정의 가오카오 성취는 미담인 건 틀림 없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품성과 자질은 어디 내놔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중국공산당 선전부 입장에서 주목하는 포인트는 그의 출신 배경일 겁니다.
인구 31만명의 강족.
강족 출신의 랑정 만큼 중국의 소수민족 동화 정책에 착 들어맞는 모델이 있을까 싶습니다.
중국은 다민족 국가답게 분리·독립이란 단어에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1년 넘는 소모전 양상이 이어지면서 소련 붕괴 이후 다민족 사슬이 느슨해지면서 독립과 분쟁의 난마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러시아의 현실은 당 지도부를 바짝 긴장 시킬 만한 일입니다.
소련 붕괴든 장기 소모전이든 다민족 통제가 이완돼 소수민족의 정치 활동이 늘어날 경우 중국 내 소수민족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감하게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중국공산당은 소련의 개혁ㆍ개방을 이끈 고르바초프에 대해 냉담한 스탠스를 취해왔습니다.
1991년 12월 고르바초프가 대통령직에서 하야를 앞둔 시점 공산당 선전부 산하 신화통신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신사고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치적 다원주의는 정치적 혼란과 종족분쟁, 경제 위기만을 불러왔다”고 혹평했습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노선이 정치 혼란과 종족분쟁을 초래했다는 표현은 소수민족 문제를 분리독립과 연계해 사고하는 중국공산당의 강박증을 내포합니다.
쓰촨 지도. 티벳과 가장 근접한 위치에 있다. 〈셔터스톡〉
티벳과 신장 지역은 분리·독립의 마그마가 지표 아래서 들끓는 지역입니다.강족은쓰촨성 서부와 가까운 간쯔티벳자치주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스타성 풍부한 소수민족 유아가 등장해 한족 주류에 통하는 성공 스토리를 써가고 있는 겁니다.
중국 인민의 사랑을 받는 강족 유아가 성장해 베이징대에서 수학하고 공산당의 관료로 출세한다는 서사는 소수민족 동화ㆍ통합정책을 펴는 중국공산당의 입맛에 딱 들어맞는 스토리일 겁니다.
어제 오늘 또는 한 주 내내 중국 주요 관영 매체를 덮을 랑정의 뉴스는 미담 자체의 힘뿐 아니라 고도로 계산된 당의 선전 전략이 가동되고 있다는 걸 시사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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