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8일 베이징에서 제29회 하계올림픽대회가 막을 열었다.
다음달에는 또 하나의 올림픽이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9월 6일부터 17일까지 20개 종목별로 열리는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이다.
우리나라는 양궁·탁구·육상·사격 등 13개 종목에 79명의 선수가 참가해 금메달 13개, 은메달 7개, 동메달 7개 이상의 성적을 거둬 종합 14위에 오른다는 계획이다.
유럽 등 스포츠 선진국들이 탄탄한 생활체육 기반을 바탕으로 장애인올림픽에서도 좋은 성과를 기대하고 있는 반면, 아직 전용 선수촌조차 확보하지 못한 우리 장애인 대표선수들은 전국 각지의 훈련장에 흩어져 기록과, 자신과, 주변 환경과의 힘든 싸움을 견뎌내고 있다.
김성일(60) 베이징 장애인올림픽 한국선수단장(전 공군참모총장)은 “한국의 장애인 체육은 그 잠재력과 가능성에 비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면서 “이번 대회를 장애인 체육을 활성화하고 비장애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도전과 극기의 무대’인 장애인올림픽을 준비하는 그들의 값진 도전을 살펴본다.
육상 휠체어 바퀴 때리고 또 때리고… 손가락 마디마다 옹이
지난 대회 2관왕 홍석만 “이번 목표는 400m 금메달”
지난 7월 21일 경기도 고양시종합운동장. 육상 대표팀 유희상(45) 감독과 코치 2명, 8명의 선수들이 훈련을 펼치고 있다. ‘2008 베이징 장애인올림픽 국가대표 육상선수단 화이팅’이란 플래카드만 한 장 외롭게 붙어 있고 스탠드에는 응원단 한 명 없지만 강화훈련의 열기는 뜨거웠다.
손가락으로 휠체어 바퀴를 치고 나가는 타격음, 선수들의 가쁜 숨소리가 이어졌다. 간간이 터지는 유희상 감독의 매서운 고함 소리가 경기장을 울렸다. 합숙훈련 초기에는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근력을 다졌고, 대회 개막을 40여일 앞두고부터는 실전 감각을 키우기 위한 레이스 기술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홍석만(33) 선수는 2004 아테네대회에서 2관왕에 오른 우리나라 휠체어 레이스의 대표 주자. 당시 200m에서는 세계신기록(26초31), 100m에서는 대회신기록(15초04)이 나왔다. 400m에서는 은메달. 이번 대회에선 200·400·800m 세 종목에 출전하는데, 400m에서 금메달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작년 스위스 휠체어 레이스 시리즈 400m에서 48초82의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하며 상승세를 이어가는 상태. 홈페이지 초기화면에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고 내 꿈을 꿀 수 있게 하는 휠체어 레이스를 난 사랑한다’고 적어 놓을 만큼 경기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아내가 전해준 수제 은목걸이를 부적처럼 늘 걸고 다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팀의 막내인 김규대(24) 선수는 휠체어 육상의 기대주로 꼽힌다. 해군 UDT 출신. 2004년 12월 훈련 중 부상을 당해 하반신을 쓰지 못하게 됐지만, 실의의 시간을 접고 휠체어 레이스로 재활을 시작했다. 운동을 시작한 지 1년2개월 만인 2007년 10월 국가대표에 선발될 정도로 성장 속도가 빨라 기대를 모은다.
선수들이 보통 사용하는 경기용 휠체어의 길이는 1m75㎝에서 1m85㎝ 정도. 홍석만 선수의 휠체어는 1m78㎝짜리다. 본체를 알루미늄 재질로 만들어 손가락으로 가볍게 밀어도 움직인다. 지난 대회에서는 7㎏짜리를 사용했는데 100·200m에서 400m로 주 종목을 바꾸면서 8.5㎏짜리를 쓴다고 했다.
스타트에선 약간 손해를 보지만, 중반 이후 가속도를 붙이는 데는 무게가 나가는 휠체어가 한결 낫다는 판단에서다. 앞바퀴의 지름은 20인치(50.8㎝)로 카본 재질. 뒷바퀴 두 개는 각각 27인치(68.58㎝)로, 안쪽으로 14도 정도 기울어져 안정감을 준다. 본체와 바퀴를 합한 휠체어 한 대의 가격은 대략 900만원 안팎이다.
개인 훈련이 마무리되자 400m 계주 연습이 이어졌다. 홍석만·정동호(33)·김규대·유병훈(37) 선수가 팀을 이뤘다. 배턴을 주고 받는 대신 이전 주자가 앞 주자의 휠체어나 신체 일부분을 터치하면 되는데, 20m의 터치 구간에서 가속도를 이어가며 안정적으로 터치하는 것이 훈련의 핵심. 훈련을 마친 선수들의 손을 보니, 손가락 마디마다 큼지막한 옹이가 박혀 있었다. 35㎞ 안팎의 순간 시속으로 달려나가기 위해서는 엄지와 검지·중지 손가락 끝으로 팽이를 치듯 휠체어 바퀴를 쉴 새 없이 내리쳐야 하기 때문.
운동장 한편에서는 뇌병변 장애인 박세호(39) 선수가 성희준(34) 코치의 지도로 곤봉 투척 연습을 하고 있었다. 높이 75㎝의 고정된 의자에 앉아 무게 397g의 곤봉을 똑바로 던지는 일이 얼핏 쉬워 보이지만 장애인 선수들에겐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박세호 선수는 지난 1988년 서울대회 때 곤봉과 포환 종목에서 2관왕에 오른 메달리스트. 20여년 전의 영광을 또 다시 재현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모습이 아름답다.
선수단을 이끄는 유희상 감독은 1988년 서울대회 100m 금메달리스트 출신이다. 그는 “장애인 국가대표를 위한 선수촌 하나 없는 것이 바로 한국 장애인 체육의 현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선수들을 모텔에서 재우고 식당밥 먹여가면서 훈련장을 찾아 돌고 돕니다. 두어 달 사이에 네 번째 옮긴 곳이 여기예요. 합숙훈련 기간은 1년에 90일. 그나마 올림픽이 있는 해에 그렇습니다. 이번 대회에서는 금·은메달 각각 1개와 동메달 3개를 예상합니다. 소속팀 하나 없는 선수들을 소집해서 3개월 동안 체력 강화훈련부터 시작해 기술 훈련까지 보완해 올림픽에 내보내는 것 자체가 사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죠.”
탁구 6연속 金 도전 55세 이해곤 “나이도 날 막지 못해”
선수들 삭발 투혼… 여자는 사상 첫 메달 노려
7월 22일 오후 대전 보훈병원 재활체육관. 녹색 테이블 앞의 장애인 탁구 선수단이 자체 리그전을 펼치며 실전 감각을 가다듬고 있다. 14명의 선수는 이번 대회에 출전하는 13종목 중 가장 많은 규모. 오전 9시30분에 시작해 저녁 8시30분까지 이어지는 훈련의 연속이다.
양현철(52) 감독은 “최근 3~5등급의 선수들이 정신무장을 위해 자체적으로 삭발을 할 정도로 메달을 향한 의지가 높다”고 귀띔했다. 탁구 장애인 대표선수단은 11개 세부 종목에 출전,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 금메달 24개가 걸린 이번 장애인 올림픽에서도 탁구 강국인 주최국 중국의 독무대가 예상된다.
1988년 서울대회 금메달을 시작으로 5대회 연속 금메달 사냥을 이어간 이해곤(55)씨는 대표팀의 간판. 6대회 연속 우승이라는 장애인올림픽대회 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고 선수 생활을 마감하겠다는 각오로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공을 네트 바로 앞에 띄워 상대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로브(lob) 기술이 특기.
양현철 감독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유승민 선수가 남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 당시 대표팀의 사령탑으로, 2006년 장애인 탁구와 인연을 맺었다. “장애인 탁구선수는 장애의 경중에 따라 휠체어 앉아서 하는 1등급부터 5등급, 서서 경기할 수 있는 6~10등급으로 나뉘어집니다. 1등급의 장애 정도가 제일 높아요. 1·2등급은 함께 경기를 치르는데, 코너웍 위주로 진행됩니다. 라켓을 쥐기도 쉽지 않아 선수들이 압박붕대를 감아 고정시키고 경기를 치르죠. 장애 정도가 덜한 3~5등급의 선수들은 라켓을 잡지 않은 다른 손으로 휠체어를 순간적으로 움직이며 경기를 벌이는데 한층 격렬합니다.”
다양한 스타일의 비장애 선수와는 달리 휠체어 위에서 경기해야 하는 장애인 선수들은 테이블 앞에 바짝 붙는 전형이 대부분이다. 바운드된 공이 정점에 오르기 전, 한 박자 빨리 스매시 하는 것이 특징. 장애인 선수 대부분은 빠른 공격 성향의 셰이크 핸드 그립을 선호한다.
경기 규정도 비장애인 경기와는 약간 다르다. 사이드 라인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엔드라인을 통과해야 정식 서브로 인정되고, 회전을 많이 주는 방식으로 ‘깎아치는’ 커트성 서브는 인정되지 않는다. 비장애인 복식 경기에서는 한 팀의 두 선수가 반드시 번갈아 쳐야 하지만 장애인 경기에서는 3구 이후부터 랠리가 이어질 때는 아무 선수나 쳐도 상관 없다.
이번 대회에서는 휠체어(문성혜·최현자), 스탠딩 종목(나유림) 등 여자 선수들이 처음 출전한다. 장애인올림픽 여자탁구 사상 첫 메달 소식을 기대하는 만큼 훈련의 강도는 높았다. 숨돌릴 틈 없이 스매시를 퍼부어대는 남기정(38) 코치와의 볼 박스 훈련을 마치면 선수들의 입에선 단내가 날 정도다.
양현철 감독은 “그동안 전문 지도자의 코치를 제대로 받지 못해 장애인 선수들이 연습한 만큼 기량을 발휘하기 힘들었지만 최근 전임 감독과 전일제 지도자들이 투입되며 확 달라지고 있다”면서 “가능성이 보인다”고 했다. 지난 6월 중순, 태릉선수촌을 찾아 비장애인 대표선수들과 합동 훈련을 가진 것도 선수단의 자신감을 키우는 데 한몫 했다. 앞으로 30여일 동안 예상 선수별 대진표를 짜서 가상 대결을 벌이고, 경기장의 온도나 관중의 소음 등 경기 당일의 분위기와 비슷한 환경 속에서 실전 경기를 방불케 하는 모의 시합도 가질 예정이다.
양궁 세계 최고 실력 남녀 10여명 아테네 설욕 다짐
간판 이화숙 “상대보다 나를 이기는 것이 관건”
7월 22일 오전, 수원시 장안구의 보훈교육연구원 양궁장. 10여명의 남녀 선수들이 70m 거리에 놓인 8개의 과녁을 겨냥해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피잉~’.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화살이 푹푹 ‘골드’에 꽂힌다.
실력 면에서는 세계 최고의 수준이지만 지난 아테네대회에서의 성적은 금·은메달 각각 1개와 동메달 3개로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 사실. 양궁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는 금·은메달 각 3개와 동메달 1개를 확보해 지난 대회의 부진을 깨끗이 씻어내겠다는 각오다. 박용석(51) 감독은 남녀 단체전과 여자 스탠딩에서 각각 금메달을 기대하고 있다.
20개의 장애인올림픽 종목 중 양궁은 휠체어 규정을 제외한 모든 규칙이 일반 양궁 규칙과 동일해 비장애인과 경쟁이 가능한 종목으로 꼽힌다.
경기는
△경추를 다친 중증장애인 부문인 ARW1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 부문인 ARW2
△서서 쏘거나 의자에서 발사할 수 있는 ARST 등 3등급으로 나눠 펼쳐진다.
장애인올림픽 경기는 70m 타깃을 놓고 경기를 펼쳐 순위를 결정한 뒤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하는 올림픽라운드 방식으로 열린다.
양궁 대표팀의 간판은 여자 스탠딩(ARST)의 이화숙(42) 선수. 2005년 이탈리아 세계선수권에서 1위에 올랐다. 여유 있지만 치밀하게 활시위를 당기던 그는 휴식 시간 동안의 짧은 인터뷰에서 “상대를 이기는 것보다 나를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고 강조했다. 이화숙 선수의 망원경에는 시합 당시의 주의사항이 깨알 같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허리 중심 세우기(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왼쪽 견갑골을 표적 방면으로 밀면서 드로잉(어깨 내리기)
△점수에 연연하지 말자. 자신감과 일정한 자세가 기록을 올린다….
코칭 스태프의 강조사항을 한 번이라도 더 되뇌어보자는 뜻이라고 했다.
같은 종목에 출전하는 김란숙(41) 선수의 망원경에는 ‘Dream comes true(꿈이 현실로)!’라는 암시 문구가 붙어 있었다.
훈련장 바로 옆에는 실전 경기장과 같은 규격의 모의 양궁장이 들어서 있었다. 한층 무더울 것으로 예상되는 베이징의 경기장과 비슷하게 온도를 올리기 위해 경기장 측면에는 부직포로 가림막을 설치해 놓았다. 경기 당일 경기장에서 들리는 다양한 소리를 미리 녹음해 적응시키는 훈련도 준비돼 있다.
김재철(38) 코치는 “체력이나 기본적인 기술 훈련은 마무리된 상태”라면서 “시합과 똑같은 환경과 상황에서 집중력을 키우는 훈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훈련장이 있는 보훈교육원에서 숙소와 식사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어 다른 종목의 선수단보다 훈련 환경은 한결 나은 편이다. 하지만 남녀 실업팀이 하나도 없어, 선수들이 개인 자격으로 훈련에 참여해야 하는 점은 아쉽다. 윤영배(56)씨는 대회 출전을 위해 훈련을 시작하며 개인택시의 핸들을 잠시 놓아야 했다.
전국의 장애인 양궁선수는 70여명 정도로 얇은 선수층도 ‘세대 교체’를 위해서는 부담이 된다. 대표팀의 경우 이번 대회에 첫 출전하는 고성길(36) 선수가 최연소일 정도로 선수 연령층이 높다.
| 한국 장애인올림픽 출전사 |
1968년 첫 출전… 서울올림픽 때 종합 7위 최고
우리나라가 장애인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것은 1968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열린 제3회 대회였다. 2개 종목에 10명의 선수단이 출전했지만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1972년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열린 4회 대회에는 16명의 선수단이 출전해 금메달 4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얻었다. 안방에서 개최된 1988년 서울올림픽에는 366명의 초대형 선수단이 참가, 역대 최고 성적인 종합 7위(금 40·은 35·동 19)에 올랐으나 이후 조금씩 처져,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대회에서는 종합 10위, 1998년 애틀랜타대회는 종합 12위, 2000년 시드니대회 때는 9위로 떨어졌고, 지난 2004년 아테네대회 때는 종합 16위에 그쳤다.
13회를 맞는 이번 베이징대회에는 160여개국에서 7000여명의 선수단(선수 4000명, 임원 3000명)이 참가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양궁·육상·보치아·역도·사격·수영·탁구·축구(5인제)·조정 등 13개 종목에 출전한다. 이번 선수단 규모는 예년에 비해 줄었지만 올림픽 선수단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재도약에 나선다는 각오다. 지난 3월 말부터 ‘톱 팀(top team)’ 제도를 도입해 메달 획득이 유망한 7종목 24명의 선수를 발탁,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훈련을 집중적으로 실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