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6.25 한국전쟁 74년을 맞아 미국이 얼마나 고맙고 존경받을 국가인지!
미군은 1950년 7월 1일 한국에 첫발을 디딘 후 3년 1개월 간의 전쟁 중 전사자 54,246명, 실종자 8,177명, 포로 7,140명, 부상자 103,284명 등 17만 2,800여명이 (매달 4800명) 희생 됐다.
국군 희생자 (64만5천여명)의 무려 27%의 미군이 한국 땅에서 전사하 것이다.
특히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미국 장군의 아들들 142명 참전, 그 중 35명이 전사, 그들 중 대통령 아들, 장관의 가족, 미 8군사령관 아들도 있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 존 아이젠하워 중위는 1952년 미3사단 중대장으로 참전, 한국에서 전사했다는 사실을 상상 할 수 있는가?
미 8군사령관 월튼 워커 중장은 다부동 전투에서 북괴를 저지, 한반도 적화를 막은 일등공신이며 그의 아들 샘 워커 중위도 미 24사단 중대장으로 참전했다.
워커 장군이 1950년 12월23일 의정부에서 차량 사고로 순직하자 아버지 시신을 아들이 운구했다. 그는 6.25 전쟁 후 1977년 미국 육군 대장이 되어 자유의 불사신이 되었다.
세계 2차 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던 벤 플리트 장군도 한국전에 사단장, 군단장, 8군사령관까지 올랐다.
그의 아들 지미 벤 플리트 2세도 한국전에 지원, B-52폭격기 조종사로 참전 중 1952년 4월 4일 새벽 전폭기로 평남 순천 지역 야간 출격 전투 중 괴뢰군 대공포에 전사했다.
지미 대위가 참전을 결심,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는 우리의 심금을 울리게 한다.
“어머니!
아버지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한국전선에서 싸우고 계십니다.
이제 저도 힘을 보탤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어머니!
저를 위해 기도하지 마시고, 함깨 싸우는 전우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 들 중에는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내를 둔 사람도, 아직 가정을 이루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 편지가 마지막이 될 줄이야!
그 외 6.25 전쟁중
미 해병단장 필드 해리스 장군의 아들 윌리엄 해리스 소령은 중공군 2차 공세 때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했고
미 중앙정보국 알렌데라스 국장의 아들 데라스2세도 해병 중위로 참전, 머리에 총상을 입어 평생 상이 용사로 고생하며 살고 있다.
미 극동 군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 클라크 육군 대장의 아들도 6.25 한국전쟁에 참전 중 부상당했다.
한편, 미 의회는 한국전 참전 중 전사자나 중상 입은 136명의 장병들에게 명예 훈장을 수여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464명보다 작지만 제1차 세계 대전 124명보다 많은 치열한 한국전쟁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 자랑스러운 훈장을 마지막 받은 자는 고 에밀 카폰 대위로 전사한지 62년이 지난 2013. 4월에 추서되었다.
카폰 대위는 1950년 11월 군종 신부로 평북 운산에서 중공군의 포로가 되었다.
그는 탈출을 포기, 남아서 병들고 부상 당해 고통 받는 포로들을 위로, 희망을 주었다.
자신도 많은 고생 끝에 폐렴으로 사망때까지 병사들을 돌보며, 신부로서 사명을 다한 공로로 명예훈장이 추서되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시 미국 웨스트
포인트 사관학교를 졸업, 임관한 신임 소위 365명 중 한국전 참전, 희생된 장교가 30%가 넘는 110명이란 사실이다.
세계를 가슴에 품고 대망을 펼치고자 사관학교에 입교, 임관하자마자 한국 전선에서 허망하게 희생되 피어 보지도 못한 그들의 통한!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거저 얻는 것이 아니다)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met"
(미 와싱톤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비 글)
자유를 위해 이름도 모르는 나라를 위해 아낌없이 목숨 바친 그들!
한국인들이여!
우리는 그들에게 한 없는 감사와 존경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백석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