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5 눅 24:30~35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우리 교회는 주일마다 안식일은 무슨 날인지 안식을 왜 지켜야 하는지 안식일을 지키면 무슨 유익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키라고 말씀하신 창조 명령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애굽에서 탈출시키시고 제4계명으로 주신 구속 명령입니다. 선지자들은 안식일을 지키면 하나님의 백성이고 지키지 않으면 백성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지난주는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에서 예배드리셨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셨고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님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보다 우월하신 분으로 안식일에는 주인이신 예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안식일에 예배를 드리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안식 후 첫날 즉 주일에 부활하시면서 예배드리는 날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은 요한복음 20장 1절에서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후 3시에 돌아가셨고, 오후 6시부터 안식일이 시작하기에 너무 급하게 장례를 치르느라 향품을 바르지 못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여자 제자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즉 주일 새벽에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무덤에 가보니 맷돌같이 돌로 된 무덤 문이 활짝 열려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무덤 문은 장정 여러 명이 밀어야 열릴 수 있었습니다. 여자 제자들은 남자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남자 제자들이 무덤에 달려 가보니 시신을 쌌던 세마포(수의)는 흩어져 있었고 머리를 쌌던 수건은 개어져 있었습니다. 유대인은 산허리에 있는 바위를 파서 무덤을 만들었기에 입구가 하나였고 그 입구를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이 보낸 경비병들이 굳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시신이 도둑맞지 않은 게 분명했습니다. 남자 제자들은 고개만 갸웃거리고 돌아갔습니다. 마리아는 그냥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사람이 죽으면 가족무덤에 안장했다가, 1년 정도 후에 시신이 다 썩으면 유골을 납골함에 담아 다른 묘실에 안치했습니다. 시신이 없으면 납골함에 넣을 수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무덤을 떠나지 않고 목 놓아 울었습니다. 천사들은 마리아에게 어찌하여 우는지 물었고 마리아는 누가 예수님의 시신을 옮겨갔고 어디에 두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천사들은 마리아를 부드럽게 책망했습니다. 마리아가 뒤를 돌아보니 예수님이 서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는지 물었습니다. 마리아는 그 사람이 산을 관리하는 동산지기인 줄 알고 당신이 예수님의 시신을 옮겨 갔다면 어디 두었는지 알려달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습니다. 마리아의 눈은 어두웠지만, 귀는 밝았습니다. 마리아는 그제야 그분이 예수님이신걸 알아보았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랍오니’ 즉 큰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가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승천하신다고 알리라 하셨고, 마리아는 ‘내가 주를 보았다.’라고 제자들에게 전했습니다(요20:18).
예수님은 부활 주일 저녁에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은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이 무서워 다락방 문을 닫아걸고 향후 진로를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이 다락방에서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을 드셨고, 이 다락방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때 제자들이 앞으로 어떻게 할지 의논하였고, 이 다락방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벽을 뚫고 들어오셨고, 이 다락방에서 오로지 기도할 때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마가 해석과 적용, 432쪽). 이 다락방의 주인은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이었습니다(행12:12). 예수님은 이 다락방을 찾아오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에서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을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직접 나타나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의 몸도 있지만 영의 몸을 가지셨기 때문에 벽을 뚫고 들어오셨습니다. 그때 도마는 외출하고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도마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전했고 도마는 유령을 봤을 거라고 넘겨버렸습니다. 예수님은 8일째 되는 날, 유대인들의 문화로는 그날도 세기 때문에 주일부터 다음주일까지는 8일이 됩니다. 예수님은 다음 주일에 다시 다락방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6절에서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내밀어 예수님의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예수님의 옆구리를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령이 아니라 실제로 부활하셨다고 만져 보라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영의 몸도 육의 몸도 있으십니다. 도마는 그제야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을 ‘주님(퀴리오스, κυριος)’이자 ‘하나님(테오스, θεοs)’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요한복음은 도마가 의심했다가 나중에는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듯이 모든 독자가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길 바라고 있습니다(ESV 스터디, 2,110쪽).
예수님은 부활 주일에 다른 제자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누가 행전에서 제자는 예수님을 믿고 따라다닌 사람들을 가리키고 사도는 그중에서 가려 뽑은 열두 제자를 가리킵니다. 두 제자는 예루살렘에서 25리나 떨어진 엠마오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13절에서 “그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그날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일을 가리킵니다. 두 제자 중 한 사람은 글로바(눅24:18)였고 다른 한 사람은 누군지 알 수 없습니다. 두 제자는 스승이 돌아가셔서 슬프기도 하였고 예수님이 힘없이 돌아가셔서 실망하기도 하였습니다. 두 제자는 더 이상 예수님을 따라다녀 봤자 별다른 소득이 없을 것 같아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뒤에서 두 제자에게 다가오셨습니다. 두 제자는 그 사람이 예수님인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순례자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교회를 다니지만,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는 경우가 많거든요. 예수님은 두 제자에게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물으셨습니다(눅24:17). 두 제자는 예루살렘에 있으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톱뉴스를 듣지 못 했느냐고 반문하였습니다(눅24:18). 예수님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구체적으로 물으셨고, 두 제자는 천사들이 여 제자들에게 나타나 예수님이 살아나셨다고 해서 사도들이 가보았더니 시신은 온데간데없고 무덤은 비어있었다고 말했습니다(눅24:19~24). 예수님은 두 제자에게 성경(구약성경)에서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눅24:25~27).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돌아가신다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스도가 로마제국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할 ‘영광의 왕’이길 바랐으나 예수님은 백성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돌아가신 ‘고난의 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제자는 집에 도착하자 예수님에게 하룻밤 머물다 가시라고 초청하였습니다(눅24:29). 밤에 여행하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였고 이스라엘은 나그네를 환대하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제자는 종을 시켜 예수님의 발을 씻겨 주고 머리에 올리브기름을 발라주고 볼에 입을 맞추었을 것입니다. 거실 식탁에 떡(빵)과 포도주가 놓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손님이 새벽에 찾아오더라도 먹을 것을 주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두 제자는 손님인 예수님을 중앙에 앉히고 양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보통의 경우는 주인이 식탁을 주관하지만, 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신 예수님에게 주도권을 넘겼습니다. 예수님은 축복기도를 하시고 빵을 떼어주셨습니다. 두 제자에게 길에서 성경을 풀어주시고 집에서 빵을 떼어두신 분은 길을 가던 나그네가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여 제자들의 말처럼 정말로 살아나셨습니다. 두 제자는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는 이 장면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엠마오의 저녁 식사(1648년))]라는 그림을 보면 어둡고 넓은 실내 한가운데에 식탁이 차려져 있습니다. 그림은 자연스럽게 중앙에 집중되지요.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길에서 만난 나그네를 집으로 초대합니다. 소년이 음식을 나르고 상이 차려지자 나그네는 감사 기도를 드리고 빵을 떼어줍니다. 바로 그때 두 제자는 그 나그네가 예수님인 것을 알아봅니다. 왼쪽에 등을 보인 제자는 화들짝 놀라 손을 얼굴에 대고, 오른쪽에 있는 제자는 너무 놀라 몸을 뒤로 젖히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지요. 빵을 나르는 소년은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을 보아 예수님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이 길에서 성경을 풀어주실 때 마음이 뜨거웠습니다. 누가복음 24장 32절에서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이 집에서 빵을 떼실 때 눈이 밝아졌습니다. 누가복음 24장 31절에서 “그들이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성경을 풀어주신 것은 설교이고 빵을 떼신 것은 성만찬이 라기도 하고(그 말씀, 2010년 3월호, 31쪽), 빵을 떼신 것은 단순히 식사 즉 교제 라기도 합니다(LABC, 누가복음, 896쪽). 나는 설교와 성만찬이라고 즉 예배라고 생각합니다. 예배에는 설교와 성만찬이 포함되거든요. 두 제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달라졌습니다.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두 제자는 부활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13절에서 “그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즉 실망하고 해코지당할까 봐 예루살렘을 떠났으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는 24장 33절에서 “곧 그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즉 두 제자는 밤중에 강도가 나타날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집에서 떡을 뗄 때 예수님이신걸 알아보았다고 말했습니다(눅24:34~35). 열한 제자들도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베드로를 만나셨다고 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이 두 제자를 바꾸어 놓았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달라집니다. 우리 교회는 그동안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전하면서 죄에서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서 담대하게 신앙 생활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주일에 부활하셨고 주일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면서 자연스럽게 안식일에서 주일로 예배 날짜가 옮겨집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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