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성경을 읽고 말씀을 묵상하면서도
시편의 말씀 앞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겸손해집니다.
시편의 말씀은 읽고 또 읽고 묵상하여도
언제나 늘 항상 목마른 갈증으로 남습니다.
목마른 갈증을 채우기 위해 또 다시 시편을 묵상하지만
시인의 글은 항상 앞서 가고 있어 흠모하는 필객의 붓이 되었습니다.
필객의 붓이 된 시인의 혀와 이사야 선지자가 가진 학자의 혀와 그 귀는 영원한 왕이신 메시야를 찬양하고
곤핍한 자를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기 위해 아침마다 깨우치시는 진리의 음성이었습니다.
선지자와 시인의 계시적 영감은 위로부터 난 지혜요,
감추인 비밀을 알게 하는 다윗의 열쇠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이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 인 것을
성령으로 선포하였습니다.
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는 말씀은
과연 학자의 혀를 가진 임마누엘의 메시야적 통찰의 복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이사야 선지자는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말씀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울 복음의 정수를 수놓았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하였습니다.(엡2:12-22)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라는 시편의 말씀은
예수님은 자기 증거의 말씀으로 삼았으며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도들의 복음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의 말씀에서 베드로는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하였습니다.(행4:10-12)
이사야 선지자는 성전 제사의 무용지물을 언급하면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나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사66:1-4)
스데반은 사도행전의 공회 앞 증언에서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라며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였고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는
건축자의 버린 돌로서 머릿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 믿는 성도들이 영원한 성전으로 예수 안에서 지어져 간다고 복음의 본질을 증거하였습니다.
성경의 그 말씀은 다윗의 시편과 이사야서의 말씀과 사도들의 증거와 스데반의 증언과 사도 바울의 복음이
메시야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인 성령의 전을 계시의 복음으로 증거하였습니다.
참으로 시편의 말씀은 개인의 탄원과 공동체의 탄원, 개인의 구원과 공동체의 구원,
개인의 감사와 공동체의 감사를 통하여 성전으로 올라가는 영원한 왕이신 메시야를 찬양하고 노래하는
그 지혜가 함축된 구약의 정수를 시인의 염감으로 녹여낸 메시야의 복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잠언의 그 모든 지혜가 함축된 시편 1편은
하나님과 소통하는 지혜와 교훈을 주는 필객의 붓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메시야 예언시로 대표 되는 시편 2편은
시편 8편과 16편과 22편과 24편과 40편과 41편과 45편....등과 함께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적 영감의 계시로 가득합니다.
시편은 회개와 구원과 감사와 찬양으로 가득한 믿음의 보고요,
은혜의 서정으로 충만한 구원의 말씀입니다.
악인의 형벌과 의인의 복을 잠언의 지혜로 교훈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바로 깨닫고 찬양으로 영광 돌리는 아름다운 시로 가득합니다.
시인의 기도에 담긴 구원의 정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의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시인의 감성은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과 같이 찬송도 땅 끝까지 미쳤으며 주의 오른손에는 정의가 충만하였나이다는 시인은
주를 찬송함과 주께 영광 돌림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하리이다는 믿음으로 소통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그 모든 것으로 충만하고 가득한 시인의 마음은
하늘이여 위로부터 공의를 뿌리며 구름이여 의를 부을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는
은혜의 서정으로 넘치는 하나님의 정관, 그 자체였습니다.
시인의 기도에 담긴 하나님의 뜻은 창조와 구속의 경륜으로 충만하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그 모든 일을 깨닫고 존귀와 영광과 감사를 필객의 붓으로 찬양하였습니다.
문득 지난 날 9 여년 동안......
방송실 영상 사역을 협력하였던 어느 교회 장로님의 기도가 생각납니다.
시인의 기도라는 말씀에 합당한 장로님의 기도는
늘 새론 아침 이슬과 같은 싱그러운 시인의 감성으로 충만하였습니다.
주일낮예배 대표기도를 할 때마다 시적 감성으로 충만한 시낭송을 하는 듯한 기도는
다른 장로님들의 기도와는 다른 독보적인 기도였습니다.
어느 날 함께 식사할 일이 있어
장로님의 문학적인 기도를 탄성한다면서 어떻게 준비하느냐고 질문하였습니다.
반가운 질문에 옆에 계신 부인 권사님께서 우리 장로님은 두 달 정도 기도를 준비하시는데
마지막 1주일 전에는 꼭 기도원에 가신다고 하였습니다.
주일낮예배 대표 기도를 준비하는 그 놀라운 정성에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습니다.
부인 권사님은 장로님의 기도에 대해서
명설교에 비견되는 명기도라는 대단한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한편의 기도문을 완성하기 위해서 성경을 많이 묵상하고
또 기도하는 모습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습니다.
그냥 미사여구의 아름다운 말로 잘 꾸며진 기도가 아니라
구약의 정수를 영감으로 녹여낸 시인의 기도처럼 은혜의 서정으로 넘치는 기도였습니다.
기도문을 엮어 책으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는
명불허전의 기도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장로님의 기도에 대해서는
온 집안 식구가 가문의 전통으로 자랑할 정도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시인이라고 할지라도
주일낮예배의 대표 기도에 부합되는 탁월한 문학적 감각의 기도를 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벌써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장로님의 문학적 기도는 잊혀지지 않습니다.
언젠가 장로님과 연락이 되면......
장로님의 기도를 카페의 글로 싣고 싶습니다.
주일낮예배 대표기도를 하는 장로님들의 기도는
대부분 자기 기도의 틀이 있어 기도할 때마다 90%는 똑같은 기도를 매상 반복합니다.
탁월한 문학적 감각이 깃든 늘 새론 기도를 하시는 장로님은
학자의 혀와 필객의 붓을 가진 천국의 서기관으로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설교자의 설교가 느헤미야와 에스라의 기도와 같다면.....
사도행전의 스데반과 바울 같은 설교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포로귀환 후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백성은 기득권 세력의 텃새로 적응하지 못하고
큰 환난과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을 불탔다는 불행한 소식을 듣고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느1:2-11)
예레미야의 기도는 곧 유다의 총독이 되어 적당들과 싸우면서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였고
레위의 언약을 새롭게 하는 종교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그 때에 내가 또 본즉 유다 사람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아내로 삼았는데
그들의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을 못하니 그 하는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므로
내가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며 그들 중 몇 사람을 때리고
그들이 머리털을 뽑고 이르되 너희는 너희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이나 너희를 위하여 그들의 딸을 데려오지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 하고
또 이르기를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는 많은 나라 중에 비길 왕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으나 이방 여인이 그를 범죄하게 하였나니
너희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이 모든 큰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으므로
내가 쫒아내어 나를 떠나게 하였느니라
내 하나님이여 그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제사장의 직분과 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을 직분과 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을 어겼사오니 그들을 기억하옵소서
내가 이와 같이 그들에게 이방 사람을 떠나게 하여 그들을 깨끗하게 하고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을 세워 각각 자기의 일을 맡게 하고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느13:23-30)
참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의 70년 공백은
바벨론의 몽둥이로 심판 받을 때보다 영적으로 더 황폐하고 피폐 하였습니다.
유다에 남은 이스라엘 백성은 거의 멸절하였으며
유다와 예루살렘은 주변의 이방인이 터 잡고 살았습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지 아니한 유다에 남은 자들은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기근과 염병과 바벨론의 칼에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가 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지도자와 모든 용사 만 명과 모든 장인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매
비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고 하였습니다.(왕하24:14)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포도를 따듯이
그들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말갛게 주우리라
너는 포도 따는 자처럼 네 손을 광주리에 자주자주 놀리라 하시나니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하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
그것을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모인 청년들에게 부으리니
남편과 아내와 나이 든 사람과 늙은이가 다 잡히리로다
내가 그 땅 주민에게 내 손을 펼 것인즉 그들의 집과 밭과 아내가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하였습니다.(렘6:9-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유다의 왕 시드기야와 그 고관들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나빠서 먹을 수 없는 이 나쁜 무화과 같이 버리되
세상 모든 나라 가운데 흩어서 그들에게 환난을 당하게 할 것이며
또 그들에게 내가 쫓아 보낼 모든 곳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며 말거리가 되게 하며
조롱과 저주를 받게 할 것이며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 가운데 보내
그들이 내가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렘24:8-10)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여 환난을 내리고 온 유다를 끊어 버릴 것이며
내가 또 애굽 땅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고 그리고 들어간 유다의 남은 자들을 처단하리니
그들이 다 멸망하여 애굽 땅에서 엎드러질 것이라 그들이 칼과 기근에 망하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칼과 기근에 죽어서 저주와 놀램과 조롱과 수치의 대상이 되리라
내가 예루살렘을 벌한 것 같이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벌하리니
애굽 땅에 들어가서 거기에 머물러 살려는 유다의 남은 자 중에
피하거나 살아 남아 소원대로 돌아와서 살고자 하여 유다 땅에 돌아올 자가 없을 것이라
도망치는 자들 외에는 돌아올 자가 없으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렘44:11-14)
이렇게 70년만에 포로 귀환을 하였으나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은
포로된 바벨론의 생활보다 더 척박하였습니다.
또 다시 70년 동안 유다와 예루살렘을 점령한
주변 이방인의 기득권 세력과 싸워야 하는 형국이었습니다.
에스라를 중심으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을 건축하다가
겨우 기초를 놓고 방해꾼의 훼방으로 16년 동안 중단되었으며
예루살렘을 점령한 타인의 텃새는 귀환한 유다 백성이 불밭일 곳이 없도록 적대하였습니다.
이 때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눈물의 기도로
황폐한 예루살렘을 회복하였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이 일로 말미암아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내가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느13:14)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기도로 바벨론을 떠나 귀환하였고 기도로 종교 개혁을 하였으며
기도로 예루살렘 성벽을 수축하였으며 레위 언약을 회복하였습니다.
참으로 포로 귀환의 영웅 에스라는 바벨론의 험한 생활 가운데서도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으므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에스라의 이름 앞에는 항상 율법과 율례의 학사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에는 하늘의 하나님과 율법에 완전한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를 호칭하며 극존대하였습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고 하였습니다.(스7:10 )
고대 성경의 저자는
성경을 기록할 정도로 학문이 깊고 시와 글에 능하였습니다.
이사야는 학자의 혀를 주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감사하며 이사야서를 기록하였고
시인은 필객의 붓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왕이신 영원한 메시야를 찬양하는 시를 남겼습니다.
선지자의 글과 시편과 복음서와 바울 서신을 날마다 필독하면.......
창조와 구속의 경륜으로 가득하고 충만한 시인의 기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아침마다 꺠우치는 하나님의 그 음성을 듣고 학자의 혀를 가졌으며
시편 기지는 종일 주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필객의 붓을 가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