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프렌드
43. 강희이야기
주원이와 성현이랑 셋이서 주원이네서 또 술을 마셨다. 다음날 학교에 가야하지만 주원이가 너무 안 되보엿 셋이서 술을 마신 것이다. 진실게임이후로 침울해 있다. 예원이가 주원이에게 쌓인 게 많앗 폭발해 버려서 얘기 해더니 충격을 받았나보다. 예원이가 그렇게까지 자기를 싫어할 줄은 몰랐나보다. 예원이가 상처를 많이 받았고 힘들어 했던 건 사실이니까... 그런데 주원이가 걸려서 그때 주원이를 따라나갓고 얘기를 들어주었다.
주원이는 잘못된 방법을 선택하였다. 아니, 방법에 있어서는 뭐라고 탓할 수 없으나 다만 그 방법을 시도할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게 문제였다. 차라리 정말 싫어했다면 싸우고 말았을 텐데 주원이가 예원일 좋아한다고 하니 그게 문제였던 것이다. 그건 성현이와 내가 얘기해주었다. 상대를 잘못 골랐고, 예원이의 처지도 생각을 해주었어야 했다고. 방법 그 자체보다 그 상대를 잘못 선택한 거라고. 주원이는 인정하지 않았으나 결국 인정하고야 말았다.
"그래서 이제 내가 어떻게 하면 될까?"
"내 보기엔 예원인 그냥 두는 게 나을 듯 하다."
"예원이는 좋아하는게 뭔지 모르고 아직 사랑에는 관심없어. 아마 시간이 필요할 거야. 그리고 냉정한 말이지만 예원이가 널 선택하는 일 없을 거고."
주원이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답답한지 한숨을 쉬었다.
"강희야,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거냐?"
"니 잘못이 아니라고. 다만 예원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라고. 어제부터 얘기했잖아."
"후.... 뭐가뭔지 모르겠다."
"예원인 그냥 두자. 시간이 필요한 애야. 재촉한다고 예원이 마음 열리지 않아. 예원이에겐 친구가 필요해. 친구에게 마음을 완전히 열어야만 너같은 유형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거고, 그래야 상처를 안 받게 되는 거고. 그 후에도 남친이 없다면 너랑 사귈 수 있게 되는 거고.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니가 아무리 개지랄 떨어도 예원이 마음 안 열려. 잘해주는 은휼이나 동하에게도 안 열리는 마음이 너에게 열리겠냐?"
"후...."
나와 성현이도 담배를 물었다.
"주원아, 예원이는 포기해. 예원일 위한다면 포기하는게 맞을 듯 하다."
"솔직히 후회는 안 해."
"너한테 후회하라고 한 적 없고, 후히 안 해도 돼. 다른 애들이 너 나쁘다고 욕해도 우리는 욕 안 해. 나랑 성현이는 널 이해할게. 이애하고. 예원이가 너에 대해 몰라서 그런 거야. 예원이도 익숙하지 않고, 그래서 그런 거지 특별히 니가 잘못한 건 아니야."
주원이가 나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쪽에서 생각해보면 주원이가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다. 일부로 좋아하는 애 괴롭혀서 관심 끌려는 애들이 많고 그건 이미 어릴적부터 시작되는 것일테니. 티격태격하는 애들 중에 정들어서 사귀는 애들이 꽤 있고, 나와 성현이도 그렇다.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긴 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친하고 없으면 심심한 사이다.
예원이는 온실 속 화초처럼 고이고이 귀하게 자랐고, 주원이 같은 친구가 없어 낯설었던 것이다. 괴롭히는 애들 밖에 없으니 주원이가 자기를 좋아하는지 알 리가 없다. 괴롭히는 애들은 모두 자기를 정말 싫어하는 애들이고 반어법이, 역설법이 아니니까. 그런 애들만 보았고, 주원이도 그랬으니 당연히 예원이로서는 주원이도 자기를 싫어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 밖에. 누구든 그렇게 생각했을 거고 도가 지나치긴 했다. 가장 가까운 친구들도 몰랐는데 예원이라고 알까?
"예원이가 은휼인지 동한지, 아무도 아닌지 우리는 잘 모르겠지만 주원이 넌 확실히 아니다. 예원인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게 맞고, 둘이 사겨도 내 보기엔 오래 못 가."
예원이가 주원일 견디지 못할 것이다.
"은휼이처럼 자상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아서 안돼. 너는 툴툴거리고 짜증내면서 은근 챙겨주는 스타일이라 안돼. 사귀면 잘해줄 거라고 하지만 제 버릇 못준다고 했다."
주원이는 말이 없었다. 타 버린 담배를 재떨이에 끄고는 술을 마신다. 참.... 주원이는 주원이의 싸가지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예원이는 주원이의 싸가지를 받아줄 수 없다. 그러기엔 상처가 너무도 많은 아이이기 때문이다. 예원이는 자기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주원이는 술을 많이 마셨다. 많이 답답한 모양이었다. 술 먹고 뻗은 후로 학교에 가지 못했다. 우리 셋이 학교를 모두 제꼈다. 애들이 전화하고 톡하고 난리났지만 우리는 전화를 받지 않기로 했다. 거기다가 담임 선생님 전화도 안 받고 아예 전화기를 꺼버렸다. 후처리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셋이 롯데월드에 갔다.
"신예원 따위 이제는 신경 안 쓸 거다."
롯데월드에서 풍선 비행을 타면서 주원이가 한 말이었다.
"누구랑 사귀든 말든 이제 신경 안 쓴다. 나랑 상관없는 일이다."
"밤새 생각을 많이 했나 봅니다, 서주원군."
"좀 많이?"
"얼~ 서주원~"
"진짜로 싫어질지도. 쿡."
자식이 철든가 싶더니만 아니었나보다.
"그러면 죽여버린다."
"내 마음인데?"
그러더니 혼자 웃는 주원이. 주원이에게도 좋은 사람이 나타날 걷. 주원이의 개싸가지 없는 성격을 받아줄 수 있는 여자. 그게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성현이도 그렇고 강희도 그렇고.... 같이 있어줘서 고맙다...."
"알긴 아냐, 멍청아?"
"안다, 또라이야."
이 자식이 기껏 위로해줬더니만 또다시 지랄모드로 넘어왔다.
"솔까해서 너네 둘 잘 어울린다."
주원이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동안 느꼈던 거지만 너네 둘이 제일 잘 어울린다."
"그래? 그렇다네?"
성현이가 나를 툭툭 치며 말했다. 어쩌라는 건지.
"계약 어때? 100일 목표."
계약은 얼어죽을 계약. 왠지 그건 싫다.
"계약 같은 소리하네. 너는 좋을지 몰라도 난 아니거든? 사귀면 사귀는 거고 헤어지면 헤어지는 거지 계약으로 사귈 필요가 있나?"
"그럼 그냥 사귀던가."
마성현,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얘기한다. 정원언니 좋아하던 애 맞아?
"너 언니 좋아하던 애 맞냐?"
"맞고. 지나간 과거 얘기는 접자. 뭐, 너도 나도 어차피 피차일반 아니냐?"
"난 아직 아닌데? 성현오빠 포기한 건 아닌데?"
물론 거의 끝난 거나 다름없긴 하지만 정리가 되진 않았다고.
"주원이도 잘 어울린다잖아. 너도 나 좋아하면서~"
지랄도 병이다. 좋아하긴 한다, 친구로.
"우정이거든, 그건?"
"한쪽이 사랑인 이상 우정은 이미 깨진 거라고. 그냥 나한테 넘어오면 되는 거라고, 차강희."
그러더니 나를 풍선 벽으로 민다. 헐. 떨어지는 줄 알았다. 풍선이 잠깐 흔들려서 셋이 놀랐다.
"야, 고백하다가 죽지는 말자."
성현이도 내심 식겁했나보다. 우리의 위치를 생각하라고. 풍선은 둥둥둥 떠다니며 마침내 출구에 도착했다.
"죽는 줄 알았네."
"그러게 왜 밀고 지랄이야, 멍청아."
"멍청이 멍청이 하지 마시라고!"
마성현 좀 화났나보다. 하여튼 삐돌이라니까. 잘 삐져요, 아주.
"알았어, 안 한다고. 졸라 삐돌이라니까, 하여튼. 그치, 주원아?"
"마성현 삐돌인 거 원래 알고 있는 사실 아니었냐?"
"뭐야!"
마성현 진짜 삐졌다.
"성현아, 핫도그 먹자. 만득이."
그러자 돌아보는 성현이. 화가 좀 풀린 듯 하다.
"어."
핫도그를 받아든 성현이는 원래의 성현이로 돌아왔다. 자식, 배가 좀 고팠나보다.
"바이킹 또 타자!"
배 채어진 성현이는 씩씩해져서 바이킹을 탔다. 마성현 역시 단순하기 그지없다.
"성현이 다를 수 있는 건 너 뿐이다."
주원이가 내게 귓속말로 말해주었다. 성현이가 화장실 간 사이에. 마성현 단순해서 누구나 쉽게 다룰 수 있는데 뭘 나뿐이야.
"성현이랑 누구나 조절 가능해."
"잘 삐지고 잘 화내고 투덜거리는 걸 누가 커버해."
"하긴 서주원 너보다 낫겠지."
성현이랑 연애.... 왠지 어색하다. 친구로 10년을 지내왔고, 친구라고 여겼던 애가 남자가 된다고? 정말 선뜻 받아들여지진 않는다. 친구에서 연인이 되면 사귈 때는 좋지만 헤어지면 다시 친구로 돌아가기 힘들다고 하였고, 차라리 친구로 끝까지 남는게 나을 뻔했다고 후회하는 애들 많이 봤다.
성현이는 내게 좋은 친구이고 나의 가장 베스트 프렌드다. 성현이와 사귀게 되면 그런 베스트 잃게 되는 것이다. 이게 과연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 없어서는 안될, 내가 제일 믿고 의지하는 친구라서, 너무도 소중한 친구라 잃고 싶지 않다. 헤어지면.... 성현이와 더이상 친하게 지낼 수 없을 텐데.... 솔직히 두렵다. 나중에 잘못되어 잃기라도 할까봐.
"넘어오는 거냐?"
주원이와 헤어지고 성현이랑 둘이 동네를 걸어오며 성현이가 한 말이었다.
"....."
"앞으로만 생각하자. 지난 시간 신경ㅆ즤 말고."
"성현아...."
성현이와의 연애는 너무 어색하고 좀 걸리는게 많다. 친구가 아닌 성현이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연애는 아닌 듯 하다."
내 말에 성현이의 표정이 굳어졌다. 미안하긴 해도 어쩔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