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치, 만화, 장르, 다 섞어버려!
못 보던 것은 아니나 봤던 것도 아니다. 올해 익숙하면서 낯선 그림으로 무장하고, 키치문화와 만화적 상상력을 뒤섞은 것도 모자라 장르까지 혼용한 영화들이 여럿 출현했다. 부실고딩 송병태가 상대에게 한 방 맞고 하늘을 날거나 코믹하게 코피를 튀기는 <싸움의 기술>, 가난이 사람 몸에 붙어 다니고 순정만화처럼 꽃가루가 날리는 상황에서 아이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다세포소녀>는 아주 대표적인 영화들이다. 오동구가 마돈나 분장을 하고 ‘라이크 어 버진’을 부르는 <천하장사 마돈나>, 기괴하고 퇴락한 꿈의 공장 같은 극단에서 인간과 혼령이 뒤섞여 노니는 <삼거리 극장>은 또 안 그런가? HD의 화사한 화면 속에 ‘최종병기그녀’처럼 몸에서 총알과 미사일을 발사하는 소녀와 요들송을 부르는 사이코 소년이 등장하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립싱크 가수 뚱녀가 전신성형으로 인기가수 미녀가 되는 <미녀는 괴로워>까지 열거해보니 은근히 많다. 이들은 청춘영화 혹은 기괴한 판타지에 뮤지컬을 접목하거나 과감한 과장과 생략을 통해 만화적 웃음을 유발했다. 때론 싸구려처럼 보이는 이미지들에서 독특한 즐거움과 환상적인 미감을 찾아내기도 했다. 무조건 섞는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늘 보상이 뒤따른 것도 아니지만 분명 시도에 대한 존중이 필요했던 영화들이다. ‘무모한 도전’ 보다는 ‘대단한 도전’에 가깝기 때문이다. 단순히 하나의 결이 아니라 다양한 층위의 발상을 포함하는 이들의 등장은 분명 한국영화가 대중과 만나는 여러 지점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다.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2007년엔 쉽게 찾아볼 수 없을, 한국영화의 모험적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김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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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만든 배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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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줄은 몰랐다. 정말 몰랐다. 제작기간 내내 화제와 기대가 만발했다가 개봉 이후 관객들에게 극렬한 배신감을 안긴 영화들이 등장했다. 바로 8월 개봉한 <다세포소녀>와 12월 개봉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다. 인기 만화 원작과 ‘흔들녀’ 동영상으로 인터넷과 입소문을 타고 기대를 모았던 <다세포소녀>와 박찬욱 감독이 연출하고 스타 임수정과 비가 출연하니 독특한 이야기일 거라 여겨졌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둘 모두 타깃 관객층이었던 10, 20대들로부터 '낯설다‘ ’이상하다‘ '도대체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는 강한 거부감에 부딪혀 박스오피스에서 고전해야 했다. 두 영화 모두 일반적인 내러티브 구조를 가지지 않고, 다양한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상상력의 충돌을 담아냈는데, 이들이 발생시킨 낯선 배신감은 지금껏 한국영화를 향해 보인 관객들의 태도 중 가장 기이하다. 관객의 취향과 영화의 취향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을 것인가? 두 편의 사례는 향후 기획될 한국영화의 숙제로 남을 만하다. 김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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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에 저출산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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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가 고령화된 건 맞다. 죄다 애들이던 스크린에, 주인공의 부모로 밥이나 뜨고 잔소리나 하던 중장년층 캐릭터가 무척 두터워졌다. 그들도 연기를 할 수 있게 됐다. <괴물> 변희봉, <구미호 가족> 주현, <열혈남아> 나문희 등은 올해 한국영화 캐릭터 고령화에 따른 큰 수확이다. 하지만 한국영화에 저출산은 없었다. 단역을 제외한 주조연급의 편당 캐릭터 수가 증가했음은 물론이고 주조연을 가리기 힘든 ‘떼거리’ 캐스팅 영화가 올해는 어느 해보다 풍성했고, 폭넓은 지지를 받아냈다. 걱정거리가 는 사람은 이들 모두를 한 장의 사진에 담아야 하는 포스터 사진작가뿐. <가문의 부활 – 가문의 영광 3> <가족의 탄생> <괴물> <구미호 가족> <구타유발자들> <다세포소녀> <모두들 괜찮아요?> <무도리> <삼거리 극장> <타짜> <투사부일체> <한반도> 등등. 한 명이나 한 쌍, 많아야 셋을 넘지 않았던 드라마를 끌어가는 주요 배역이 여러 명으로 분산됐고, 비중도 평준화됐다. 일차적인 이유는 어느 해보다 가족 및 특정 공동체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많았다는 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제작 편수의 급증에 따른 스타 캐스팅이 어려워진 면이 크다. 배우들 입장에서도 지난해 <내 생애 아름다운 일주일>의 성공에서 보듯, 굳이 개런티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주연작만을 늘릴 필요가 없어졌다는 면도 있다. 무엇보다 다수의 캐릭터를 능숙하게 엮어낼 시나리오와 연출력의 전반적인 향상과 더불어, 우르르 몰려드는 캐릭터들을 머리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영화 보는 재미를 찾을 수 있게 된 관객의 수준 향상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난 연말 개봉한 <왕의 남자>는 이 같은 멀티 캐릭터 영화의 ‘다시 보기’ 재미를 일깨워 1천 만 관객 동원에 성공했으며, <가족의 탄생>은 멀티 캐스팅의 의외성을 주제적 차원으로까지 승화시켰다. 한승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