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절 추라이 ( Chu Lai ) 지역 작전
2) 해룡작전시 제 1중대의 작전초기 상황
* 제1 중대장 이 영희 대위 *
해룡작전시에 우리중대 소대장들의 관등성명은, 제1소대장 이무수 소위, 제2소대장 유재원 중위, 제3소대장 이길남 소위 였습니다.
당시 우리중대는 대대 예비중대로 대대CP경계및 1번도로 경계임무를 수행하다가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07시경 대대본부및 제1중대의 전술기지인 쑤언엔떠이( Xuan Yen Tay) 를 출발해서 1번도로 를 따라 남쪽 으로 3Km 쯤 도보행군을 해서 LD 까지 도착한후 08시에 LD를 통과했습니다.
이지대는 중대가 자주 정찰하던곳이었습니다. 목표14까지는 비교적 평정된 지역으로 적정이 별로 없었 습니다. 목표 25 부근에서 제2중대와 같이 야간방어를 했습니다.
ㅇ 이날 목표 16에서 베트콩 7명을 체포했는데, 정보보고에는 베트콩 7명사살로 기록되어 있는둥, 모호한점이 많은데? ㅇ
현장에서 베트콩이나 베트콩 용의자의 구분이 곤란합니다. 의심스러우면 군사정보대에 후송해서 분류하고, 양민은 돌려보내니까 여러명을 후송해도 베트콩이 몇명이 나왔는지 정확한 인원수는 모르는수가 많습니다.
이날 상황은 정확한 기억이 없는데, 마을에 남은 용의자 다수를 후송했습니다.
ㅇ 4월 3일 2단계 전투로 바딴간 반도로 공수되어 갔는데, 이날의 상황은? ㅇ
오후에 헬기편으로 32고지 부근에 랜딩했는데, 내릴때에는 별 저항이 없었던것 같습니다.
ㅇ 4월 4일 탐색상황은? ㅇ
교량건너쪽 목표12 하단에는 동굴이 있었는데, 적은 여기에 숨어서 제방을 통한 교량을 건너면 저격을 하던 곳입니다. 즉 교량엄호와 도피하는것이 베트콩의 임무였던것 같습니다. 이날의 탐색활동은 전투상보 대로 입니다.
ㅇ 4월 5일은 Cho Moi 강에서 수로측량 엄호를 했는데? ㅇ
강구전투때 실패했던 수로측량을 다시 실시한것입니다. 이날은 월남군과 협조해서 Cho Moi 강에 배치되여 수로측량을 엄호했는데, 적정이 없었습니다. 돌아오다가 동굴을 발견 베트콩용의자 1명을 체포했습니다.
ㅇ 4월 6일 복귀때의 상황은? ㅇ
이날은 해안까지 도보로 걸어가 대대에 집결해서 최종제대로 중대기지까지 복귀했습니다. 복귀할때 적의 저격을 받아 함포사격을 했습니다. 어두워질때 헬기가 떴는데, 상당한 불안을 느꼈 습니다. 헬기뜰때가 가장 취약한 때입니다.
ㅇ 기대하던것 보다 전과도 없이 전투가 끝났는데, 교훈이 될만한 사항은 ㅇ
공격하기 전에 함포사격, 항공폭격,을 실시했기때문에 적은 아군의 작전기도를 알고 모두 도피하거나 은신해서 큰전과를 못 올렸습니다. 기습작전이 중요합니다.
둘째는 적은 도피했다가 철수할때면 기습하거나 저격을 해서 아군에 피해를 강요했습니다. 이런점에 대해서 충분히 대비 해야합니다.
* 제1중대 제1소대장 이무수 소위 *
나는 1967년 2월에 파월되어 1968년 7월에 귀국했습니다. 파월근무기간중 제1중대 소대장 10개월 제1대대 106mm소대장 2개월, 주월사 태권도 교관으로 6개월을 근무했습니다.
ㅇ 첫날(4월 1일) 목표16 (An Thinh2 마을) 에서 베트콩 7명을 생포했는데? ㅇ
목표11부터 14까지는 통로도 양호하고 경치도 좋은 명승지 였습니다. 이날 우리 제1소대는 첨병소대 로서 활동했는데 큰적정이 없었습니다, An Thinh 마을에는 할머니, 아이들이 잔류하고 있었습니다. 이마을에서 첩자 2명을 사살한 기억이 있고, 7명을 생포한 기억이 없습니다.
ㅇ 익일(4월 2일) 의 전투경과는 ㅇ
제1소대는 이날도 첨병소대였으며, 뒤에 제3소대-본부-제2소대 순으로 탐색을 했습니다. 이날 아침 제2중대가 먼저 도섭하고, 제1중대는 후속중 적의 사격을 받고, 제2중대 박창웅 소위(동기) 가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때 제1중대가 제2중대를 지원해주었습니다. 108고지에서 109고지를 연한 능선은 잔디풀만 덮여 있고, 나무도 없었으며, 별상황없이 전투를 마쳤습니다. 적은 남쪽 삼각주 지대로 도망쳤습니다
ㅇ 4월 4일(D+3일) 제1소대에서 4명이 부상을 입은 사고가 있었는데? ㅇ
이날도 제1소대는 첨병소대로 활동을 했습니다. An Hai 마을을 탐색했는데, 미국여자 종군기자 가 중대에 나와서 동굴 수색사진을 찍으려고 하던중 이었습니다.
이때 마을 울타리 사립문에 설치된 부비트랩이 폭발하여 제1분대장이 중상을 입고, 3명은 아주경미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미국기자는 직업의식으로 부비트랩이 폭발하는 순간의 사진을 찍었다고 들었습니다.
4월 5일은 별상황이 없었으며, 4월 6일은 복귀했는데. 별교전이 없었던것 같습니다. 바딴간 반도는 개활한 편이고, 모래땅 지대였습니다.
* 제1중대 제3소대장 이성호 소위 *
나는 1967년 3월 11일부터 1968년 12월 25일 까지 청룡부대에 근무했으며, 제1중대에서 소대장9개월 주월사 전투평가단 요원으로 10개월간 근무했습니다.
소대장으로 참가한 주요전투는 해룡작전 및 길용작전과 용두작전에 참가했습니다. 제3소대는 4월 4일 예비소대로 중대본부 후위를 담당했는데,특별한 상황이 없었습니다. 이전투에서 제1중대는 주로 대대TAC-CP 경계를 맡았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