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성균생원공파(成均生員公派)
성균생원공파는 장흥위씨 대동보에는 없는 파명이다. 그러나 다른 파(派)와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불가피해서 일단 붙인 이름이다. 다른 파의 파명도 불완전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우리 위씨는 15세 통선랑공(휘 悳龍)이 네 아들로써 처음으로 분파(分派)하게 된다. 알다시피 큰아들 자온(自溫)은 능주파, 둘째아들 자량(自良)은 관산파가 되고 넷째 아들 자검(自儉)은 후사가 없다.
그런데 유독 셋째 아들 자공(自恭)의 후손은 전체를 아우르는 이름이 없다. 즉 그의 아들 종립(宗立)의 두 아들 서(瑞)의 후손은 사월파(沙月派)라 부르고, 둘째 아들 돈(頓)의 후손은 관북파(關北派)라 부른다. 하지만 이런 명칭은 자공을 중심으로 붙여진 이름이 아니고 손자를 중심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므로 자온·자량 등 두 형의 파명과는 형평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상계분파와 명칭에 모순이 있다. 자온의 능주나 자량의 관산은 후손들이 그곳에서 살았다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렇다면 자공의 후손도 사월방(沙月坊)에서 살았으니 사월파 또는 용산파(蓉山派)로 총칭(總稱)했어야 마땅했을 것이다. 그런 연후에 경천파(擎天派)·중준파(重俊派)·관북파(關北派)로 나눈 것이 오히려 합리적일 수 있다.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된다.
사실 성균생원공은 관북입조이기 전에 사월방의 입조이다. 그는 장원봉 밑에서 태어났다. 그러다 평화로 이거해 살다 산을 넘어 지금 용산면 계산리 옛 사월방으로 이사, 보금자리를 잡았다. 그 사월방에서 두 손자가 상당히 성장하도록 살았으면 족히 30년은 살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다 조정의 북진정책에 따라 작은손자를 데리고 주북에 정착, 관북파를 있게 했기 때문이다.
(1) 경천파(擎天派)
성균생원공은 생소한 이름입니다. 관북입향조네요.함흥에 위문을 중흥시킨 선조네요.
휼륭하신 위문중 조상님들 옛발자취와 성균생원공파.경천파.증준파의 세거지에 대한글 잘보고 공부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