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 깊이
잠긴 그리움의 저 편에서 . 9
ㅡ친구야,
오늘은 웃자
권
옥 희
봄은 꽃을
피우면서
시작된다.
4월.
첫사랑 같은 설레임으로
빨리 찾아온
꽃은 불꽃처럼 화르르 타올랐다가
연두잎
사이로 지고
그러면서
다른 꽃은 절정을 이루고
또 어떤
꽃은 새로운 세상을 향한 만남을 준비 중이고
그 꽃
속에서 꿈을 꾸는 사람들은
짧은 봄날을
양분처럼 가슴에 쌓으며
웃을 일
없는 삶의 허물을 기쁘게 벗겨낸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한꺼번에 피어
며칠을
행복하게 하더니
가느다란
실비로 봄가뭄을 촉촉히 적셔가던
빗방울의
무게에도 못이겨
그 꽃잎
꽃비처럼 떨어져 갈 때
지는 건 다
슬프다는 걸 다시금 실감했다.
그러나 꽃은
한번 져도
다시 피어날
희망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우리는,
우리의 생은 한번 지면
끝이기에
삶이 더 소중한 것이다.
비 오고
바람 불고, 따뜻했다 추워지는
알 수 없는
봄날의
좋았다가
싫어지는 사랑의 감정처럼
갈피를
못잡아서 허둥대게 하더니
꽃구경도 못
갔는데
곳곳의
꽃축제는 끝나고
지금은
철쭉과 영산홍의 세상이다.
어디로 눈
둘 곳 없이 화려한 색깔을 뽐내며
떠나는
봄을, 어느새 푸름으로 물든 신록을 하나로
묶는다.
싱그럽다는
말은 지금 이 푸름을 두고 하는 말이 딱
맞겠다.
너무 진하지
않은 연록의 잎들이 뿜어내는
싱그러움을
눈에 담으면
눈물을
잃어버린 안구건조증으로 뻑뻑해진 눈도
조금은
부드러워지는 것 같다.
작년에도
4월 26일이었는데 공교롭게
올해도 같은
날인 오늘은 우리 모두 고향 가는 날.
언제나처럼
고향에서 열리는 우리 임동인들의 축제,
총동창체육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전국에
흩어져 사는 고향 사람들이 모이는 날이다.
나는 긴
겨울 추위 속에서도 빨리 봄이 오길,
그래서 꽃
피는 4월이 무의식적으로 기다려진다.
각 기수
밴드마다 또 얼마나 많은 그리움을 담고
보고 싶은
친구들을 향한 소통의 이바구가 오고 갔을까?
친구야,
오늘은 웃자며 서로 얼싸안고
고리짝 같은
옛얘기들로 밤을 지샐 일을 생각하며
많이도
설레었을 거다.
올해는
기룡이네 53.29기수가 행사를 주관하기에
멋진 행사가
되리라~ 잔뜩 기대를
가졌다.
그리고
행사하기 좋게 날씨가 맑고 따뜻하도록
일기예보에
관심을 보내며 마음으로 빌었다.
그래서일까?
갑자기 날씨가 초여름으로 바뀐 듯 더워졌다.
그래도 추운
것 보다는 낫지.
산뜻하게
연두빛옷차림을 하고
설레고 들뜬
마음으로 고향행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군자역으로
가고 있는데
언제나
나보다 더 마음이 급한 은희는
한 시간이나
빨리 와서 혼자 기다리고 있단다.
아이참,
분명 잠 한숨 못 자고 나온 것일 게다.
친구들
이야기 들어보면
가난밖에 준
게 없고 꼴 베고 나무하고
어린 마음에
힘든 고생밖에 준 게 없는
고향이
뭐길래, 언제나 고향 가는 길은
우리 마음을
이렇듯 빨리 불러 내는 걸까?
<송골에서
학교 가는 길은 멀기도 하지.
굽이굽이
먼지 폴폴 날리는 길을
날마다
오르내려야 하는
가난한
시절이 우리는 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낭만이 있었고
배고픔과
농삿일 거드는 거 아니면
큰 걱정
없던 그 시절이 가장 기억에 남는건
다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
봄이라 한창 물오르던 송구.
찔레순과
찔레꽃을 따먹으며 주린 배를 채웠고
시커먼
너불매기 헤엄치던 움보물로 갈증을 해결하며
땡볕에
새까매진 얼굴로 서로 깔깔거리며
우린
지치게도 먼 길을 걸어다녔다
개구리
똥꼬에 바람 불어넣고
구불구불
길가에 많이도 기어다니던 뱀들을
겁없이
때려잡으며
순수한
우정과 사랑으로 다져진
내 그리운
깨복쟁이 고향 친구들.
눈 감으면
아련히 떠오르는 그곳.
지금도 못내
그리운 내 고향 임동.>
우리 은희가
쓴 어린 날의 힘들고도 아련한 추억이
손녀를 본
할머니가 되어도
지워지지
않고 가슴에 남아 있기에
아직도 소녀
같은 감성으로
삶을
메마르지 않게 살 수 있는 게 아닐까.
고향이
수몰되고 뼈를 묻을 땅.
정든 삶의
터전을 버리고
좋은 사람,
좋은 이웃과 헤어져 뿔뿔이 흩어져 갈 때
우리 고향
사람들의 심정은 얼마나 쓰리고 아팠을까?
그게 한이
되어 죽어도 눈 감지 못한 어른들은
또 얼마나
될까?
<그땐
그게 고생인지도 몰랐네.
다들 그렇게
살았으니까.
학교 갔다
오면 당연히 꼴지게 지고
꼴 베러
나가는 거고
방학 때면
나무 지게 지고 나무하러 다녀야 했지.
그런데도
부모님 원망은 커녕
항상 고맙고
죄송할 뿐 후회만 남지.
울엄마
수몰되고 해평으로 온 후
고향 그리워
임동 가서 빈집에 주무시다
풍이 와
가지고
그거
고친다고 좋다는데 안 가본 데가
없다.>
이처럼
친구가 밴드에 올린 글을 읽으면
어머니가
얼마나 고향이 그리웠으면
다 떠나고
없는 고향 빈 집에서
혼자
하룻밤을 주무셨을까 하는 애잔함이 스며든다.
수몰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실향의 비애~
저마다 아픈
사연 없는 임동인들이 어디 있을까?
작년처럼
버스 가득 우리를 태운 빨간색 범아관광 버스는
고향을 향해
달려간다.
회장님도 안
계신 버스 안은 어느새 44회가 제일 윗기수~
언제나 청년
같은데 벌써 쉰을 향해 간다는
우리
기중이가 막내다.
내가 왜
막내냐고 투덜대도
주관기수라서
먼저 내려간 기룡이형 대신
오늘 우리를
이끌 일꾼이다.
햇살은
눈부시고 어느새 푸름 일색인
산 구비구비
산벚꽃들이 피어
자연이 그린
한폭의 풍경화가 예쁘기만 하다.
다섯 시쯤
안동역에 내린 우리는
<안동역에서>
노래비 앞에 약속이나 하듯
쫄래기 앉아
사진을 찍었다.
새 역사로
옮겨가면 이곳도
수많은 세월
동안 떠나고 남은 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담긴
역사가 될 테니까.
많은
기수들이 일 년만에 찾은 이 안동 곳곳에서
신나는
전야제가 열릴 것이고
사느라
잊혀졌던 세월을 뛰어넘어
얼굴도
이름도 기억 안 나고 몰라도 좋다.
그냥 우리는
벌거숭이로 함께 했던 친구라며
친구야,
네가 있어 내가 좋다고 함께 내뱉는
웃음이
밤별처럼
마음에 총총 박힐 것이다.
우리는
낙동강변을 볼 수 있는
길벗팬션에
자리를 잡아놨다고
광호가
데리러 왔다.
많은 서울
친구들이 있지만
함께 갈
때는 언제나 소수의 정예 인원.
은희, 나,
동혁이, 상걸이, 원희, 오성이, 철현이다.
다른
친구들은 개인 차량으로 갔겠지.
대구의
인숙이는 일주일 전부터
빨간
안동식혜 해놨다고 밴드에 올라오고
그걸 먹고
싶다던 원식이를 고향으로 불렀다.
옥례는 우리
먹인다고
오늘 아침에
산나물 뜯으러 산에 간다고 했는데
꽃단장하고
쉬어야지, 친구가 뭐라고~
뭐든
해먹이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는 그 마음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랴. 그저 고맙다는 말밖에~
낙동강
물바람이 귓전에 와서 간지르는 길벗팬션.
오늘
이곳에서 우리는 또 어떤 추억을 쌓을까?
어느 기수든
깨복쟁이 친구와 함께 하는
오늘밤이
즐겁지 않으랴.
나는
체육대회 행사보다
이 만남이
더 좋은 건 부인하지 않겠다.
팬션
식당에서 광호가 매워서 못 먹겠다고 하던
매콤한
주꾸미볶음으로 맛난 저녁을 먹고
대구 부산
친구들까지
50여 명의
우리 친구들은 방으로 올라가서
강구의
석순이가 바다를 통째로 안아온 듯한
미주꾸리
회무침과 보리새우,
안동막걸리
사장인 광호가 특급조제한 머루 막걸리로
푸짐한
뒷풀이가 시작되었다.
어디 그
뿐이랴.
옥례가 하루
종일 청량산까지 가서 뜯어온 산나물무침에
새큼달큼한
산나물쥐, 집 앞 천변둑에서 뜯은
자연산
갓김치맛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누군가는
산나물무침만 세 접시를 먹었다고 하던데
그것은
산나물을 먹는 게 아니라
그 옛날
고향의 맛, 어머니의 맛에
목말라 있기
때문이었을 게다.
술을 못
마시는 옥례가 웬 일로
막걸리
두어잔을 마셨다고 하길래
집에 가려면
술도 깨야 하니까
노래나 한
곡조 하라고 옆에서 꼬드겼더니
산나물
하느라 피곤함이 역력함에도 불구하고 젓가락을
잡았다.
그러자
친구들 보려고 몇 년만에 찾아온 기탁이가
기다렸다는
듯 선창을 한다.
그 힘을
받아 우리는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상이 깨져라
젓가락을 두들기며
약속이나 한
듯 합창으로 노래를 불러대기 시작했다.
뚜들겨먹고
논다는 말은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랬지.
다 흘러간
옛노래지만 우리의 정서에는
옛노래만큼
흥을 돋우는 노래도 없다.
어깨춤이
절로 나고 모두가 하나된
이
순간만큼은 우리 친구들 마음에
근심 걱정
다 사라지고 웃음꽃이 함박 피었다.
아마 주인이
말리지 않았다면
밤새워
이러고 놀았을 거다.
노래방
없어도 신나게 즐길 수 있었던
이 만남은
내가 고향 찾은지 10년만의 일이다.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향해가고
아쉬움을
남긴 채 은희와 나, 지영이는
준비할 것
많은 옥례네 집으로 향했다.
운동장에서
도토리산나물 부침개를 한다고
커다란
광주리에 하나 가득 산나물이 담겨 있다.
세상에~
이걸 사려면 돈이 얼마야.
반찬 한다고
자연산 취나물 조금 사려고 했더니
한 근에
육천 원이라고 해서 들었다만 놨는데
새삼 이걸
뜯느라 고생한 우리 옥례의
친구들을
위하는 마음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산삼주에서부터
장식장 가득 채워져 있는 갖가지 약재술,
이게 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보물이 아닌가?
다음 날
일어날 때 몸이 가벼워진다고 해서
난디라고
불리는 산초술 한잔을 따라마시고
우리는 더
이상 얘기하고 말 것도 없이
금방
꿈나라고 가고 말았다.
눈부신
아침이 가볍다.
어제 마신
산초술 덕분인가?
밤새 녹은
도토리가루로 부침개 반죽을 하고
트림을 하면
산나물 향기가 나도록
산나물로
맛있는 아침을 먹고 운동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꽃잔디가 예쁜
안동대학교
입구에서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언제나 지나쳐만 갔던 농업기술센터
녹색체험공원에서
그 옛날
소꿉동무로 돌아가 소녀가 된
듯
우리는
옹기종기 앉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역시
한번도 없었던 일이다.
화사했던
분홍꽃 다 지고
어느새
푸름이 하늘과 땅 다 집어삼킬 듯
싱싱한 내
고향 임동~
이 보다 더
아름다운 동네가 또 어디 있으랴만
볼수록
쓸쓸하고 애잔해진다.
언제나
출렁거리는 임하호 물결에
환한 햇살이
내리꽂히고
저기~
노루메기 산 아래
가랫재 가는
다리 밑이 내가 살던 새들이랬지.
이름만
부르면 까까머리 얼굴로
친구들
불쑥불쑥 나타날 것만 같은데
어느새
우리는 삶의 절반을 넘어
황혼으로
가고 있다는 게 서글퍼진다.
운동장으로
가는 길목은 자동차들로 북적대고
조용했던
고향은
1년만에
찾아온 주인을 맞느라 시끌시끌하다.
주황색으로
산뜻한 단체복을 입은
주관기수들이
반갑게 맞아주고
우리
체육대회 뿐만 아니라
임동면 전체
스무개 리의 면민들
화합의
장까지 마련했다니
역시
주관기수가 젊어질수록 뭔가
달라진다.
올해부터는
안타깝게 중학교도 문을 닫았고
우리
초등학교도 학생이 없으면
폐교의
위태로움을 안고 있을 텐데
이렇게
우리가 해마다 행사를 열고
면민들을
위한 화합잔치까지 열면
백여 년에
가까워진 그 역사가 아까워서도
단 한 명의
학생이 있을 때까지 유지되지 않을까?
주황색과
청색의 산뜻한 천막이 운동장을 가득 채우고
역시
운동회는 만국기가 펄럭여야지.
오시든 안
오시든 선배어른들을 위해서
32회부터
막내인 64회까지 천막이 나란히 쳐져 있다.
그리고
중평리 수곡리 마령리 갈전리 고천 사곡 사월리 등
임동에 뿌리
내린 각 동리의 천막들도 쳐져 있어
주관기수들의
새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이게 바로
임동인들의 축제가 아닌가?
전교생이
19명인 보배 같은 아이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고향을 찾을 수 있다니 고맙고 감사할밖에~
언제나처럼
간단한 개회식이 시작되고
작년에
우승한 우리의 우승기가 반환되자 경기가
시작되었다.
기중이는
자신들의 57회가 우승하면
형님인
44회 기헌선배님들 환갑잔치 해준다고
힘을 팍팍
실어달라고 했는데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
단체
줄다리기 대신 단체줄넘기가 있고
사방치기,
김밥말기, 맥주 빨리 마시기가 게임으로 정해
있다.
우리 기수는
일 년 사이에 힘이 다 빠졌는지
아무
게임에도 나가지 않는다.
에구~
작년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나부터 힘이
없으니 당연하지.
ㅎㅎ~
번외경기로 장난감말 끌기에
우리 조희와
인숙이 나가서 열심히 끄는데
이 말이
앞으로 나가야 말이지.
그리고
몸빼바지 속에 풍선 넣어서
기계로
불어넣어 터뜨리는 경기도 재밌고
상걸이와
은희가 짝을 이뤄
엉덩이에
뭔가 달고 나가서 풍선 터뜨리는 것도 재밌다.
김밥말이는
여덟 명이 한 조가 되어
천에다가
김밥처럼 두루루 말린 채
달려가서
반환점을 돌아오는 경기인데
뛰는 발
박자가 안 맞으면 넘어지기도 하고 난리가
아니었다.
맥주 빨리
마시기는 그야말로 숨을 쉬지도 않은 채
한입에
털어넣는 솜씨가 보통 주당 아니면
아예 도전을
말아야 한다.
안 그러면
취해서 운동장에 드러누울 테니까.
운동장에서
시끌시끌하며 경기를 하고 있는 사이
고향
어른들이 모인 천막에서는
두손으로도
쥐기 힘들만큼 커다랗게 깎은 윷으로
마을 대항
윷놀이가 한창이었다.
맛있는 것
대접하고 오랜만에 만나는 이웃 어른들끼리
심심하지
않게 윷놀이 대회를 열은 건 참 잘한
일이였다.
땡볕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을을 빛내보겠다고
주름진
얼굴에 함박 웃음 가득
열심히
윷가락을 던지는 가운데
동네
이장님들은 마을사람들과 응원하느라 또 열심이었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국밥이 먹고 싶어도
아침을 너무
많이 먹은 탓에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대신 은희랑
줄 서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안동 간고등어 한 마리를 배당 받아
우리
천막으로 돌아와서 맛있게 먹었다.
광호의
막걸리 안주로 그만인
우리의
옥례표 도토리산나물 부침개와
우슬을 넣은
약재 감주, 그리고 큼직한 곶감 넣은 수정과는
목마름을
해결하면서 금방 동이 났다.
또 인숙이의
식혜도 일부러 여러 사람들에게 맛보일 정도로
늘 그리는
고향맛이었다.
올해부터
우리 안동향우회를 이끌어갈
새 회장님이
되신 류필휴회장님을 모시고
각 기수
천막을 다니며 인사드릴 때
아는
동생들을 만나 반가웠고
우리처럼
나름대로 알차게 준비해와
어울한마당
축제를 즐기고 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63회던가?
바베큐통까지 가져와
비싼
한우고기 지글지글 굽고 있는데
아,
이렇게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봄날이 짧듯 축제의 시간도 짧다.
오늘의 경기
결과표를 보니
병연이와
정한이네의 59회가 우승하고
올해 처음
참가한 64회가 2등,
일등하겠다고
큰소리치던 기중이네는
내년을
기약하며 3등을 했다.
우리 새들
출신인 55회 왕경이네가 행사주관하는 내후년에는
우리
환갑잔치해주겠다고 했는데 기다려봐야지~^^
경품추첨이
시작되면서 노래자랑도 시작됐다.
해마다 노래
하라고 해도 뒤로 빼던 우리 옥례가
올해는
용감하게 내가 노래 부르겠다~ 하며 먼저
나섰다.
그래서
친구들 약해준다고
어렵게
백봉오계닭 구해서 키우는 게 행복한지
이문세의
<나는 행복한 사람>을 불렀다.
그래
옥례야, 언제나 아프지 말고
네가 부르는
노래처럼 늘 행복해라
하면서
우리가 또 그냥 있나~
46.22푯말을
들고 나는 신나게 흔들며 응원했다.
진짜 우리
고향 사람들 노래 잘한다.
포항의
찬철이 동생도
그렇게 노래
잘하는 줄 몰랐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경품에 당첨되는 행운을 맛봤다.
내가 가지고
있는 번호표가 불려질 때
여기요!
하며 상품 받으러 나갈 때의 그 짜릿함이란~
상품의 크고
작음이 문제 아니라
그냥 내가
뽑혔다는 게 기뻤다.
내년의 행사
주관기수인 54.30 서울 수언이네와
포항
찬철이동생들이 각 기수 천막을 돌며 인사를 하고
노래자랑하는
무대로 기차놀이를 만들어
올랐다가
내려오면서 운동장은 완전 하나가 되어
축제의
휘날레를 장식했다.
아직도
노래자랑이 끝나지 않았는데
우리는 떠날
시간이 다 되었다.
언제나
즐거움 뒤엔 아쉬움이 남는다.
친구들과
손잡고 인사한 따뜻한 온기가 사라질까봐
돌아보며
돌아보며 움켜쥔 주먹을 차에 올라서야
풀었다.
<떠날
때는 눈물 난다>는 시도 썼지만
언제나
고향에 올 땐 즐겁게 왔다가
떠날 때는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것을 나는
굳이 임하호 물바람 탓으로는 돌리지
않으련다.
나 뿐만
아니라 고향 두고 떠나는
우리 고향
사람들 마음이 모두 같을 테니까.
오늘만큼은
웃자고 우리 친구들,
그리고
선배님들과 동생들의 친구들~
좋은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인생을
잘 살았다고
하는데
우리는 보고
또 보아도 좋은 옛친구를
수두룩하게
두고 있으니 얼마나 잘 사는 인생인가.
고향에
다녀온 후 우리 친구 기탁이는
다음과 같은
글을 밴드에 올려 우리의 마음을 울렸다.
(
화향백리
주향천리
인향만리라
했던가
삶이 내
성에 차지 않아
잠시 떠나
있었던 것 같은데
벌써 몇
년이 훌쩍 지나갔다.
그래서
오늘의 만남이 조금은 어색하지 않을까 하는
내 생각은
길벗펜션 4층에 들어서는 순간 여지없이 빗나갔다.
환한 미소로
손 들어 반겨주는 친구들의 모습에
모진 세파에
시달리며
이곳저곳
채워져 있던 빗장들이 하나 둘 풀어지고
석순이의
전매특허인 방구밑 뚜구리검사는
어색했던
마음을 완전 무장해제시켜버렸다.
몇 년만에
귀국한 새끼챙기듯
가랭이
찢어지도록 듬뿍 담아 주는 미주구리회와
옥례가 몸이
야위도록 채취한 산보물
광호표
신제품 복분자 탁배기 등등
보통 나처럼
모임에 지각하면
식당에서
준비된 메인요리의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여긴
다르다.
메인과
애피타이져가 바뀌니까
이건 음식이
아니고 감동 그 자체다.
나 같은
농땡이가 한참만에 가도
반겨 주는
이 모임을 지켜줘서 고맙고
못 보던
친구들 만나게 해줘서 감사하구나.
밤새 자지도
않고 골백번을 들락날락하며 친구들 챙기고
궂은 일
도맡아 처리하는 기하야,
정말 수고
많았어.
아침에
냉장고 열어보고 그 안에 든 것을 안 먹었다고
몇번이고
아쉬워하는 니 맘 찡하다.
우린
등신처럼 그거 먹으면
나중에
계산하는 줄 알고 일부러 안 먹었다.
밤새
장난치며 옛날로 돌아갔지.
운동장에서
인숙이 식혜는 동문들의 부러움이였어.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46ㆍ22기수가 💐이드만.
왼쪽 자리가
얼마남지 않음이 왠지 허허롭다.
꽃의 향이
제아무리 진해도
하루도
못가고 술의 향이 그윽한들 며칠이나 가랴.
울 친구들이
맹그는 우정의 향기는
도무지
깨어나질 않네.
벌써
보고잡다. 친구야!
우리 이
세상 여행 같이 마치자.
이런 걸
모두 두고 어찌 먼저 가겠노.
또 모두
가면 뭔 낙으로 더 뭐물꼬?
그쟈!!
살아 있어서
고맙고
그래서
훌륭한 거고^♥^ )
고향 친구는
이래서 좋은 거다.
오랜만에
만나도 만남 그 자체로
살아 있어
고맙고 반가운 거다.
답글로
광호는 이 자슥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우리
20년만 욕하고 살자고 했다.
어느 기수든
오랜 세월 돌아
어렵게
모임에 나오는 친구가 있을 테고
또
안타깝게도 그 친구들 다 두고
왜 하필
나여야 하냐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떠나기 싫은
먼 길을 홀연히 떠난 친구도 있을 거다.
그러니까
우리는 살아 있을 때 더 많은 만남,
더 많은
우정을 나누어야 한다.
내년엔 못
보던 친구들이 더 많이 나와서
다함께
고향에서 웃고 즐기는 축제를
기대해본다.
많은 고향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행사
주관하느라 애쓴 53.29동생들
고생 많았고
수고하셨습니다.
| | | |
첫댓글 눈앞에 아롱거린 내고향 임동! 옥희 후배가너무너무 자상하게 쓴글이 작가답게 잘도 써내러 같구나... 후배님들과 같은차량에 몸을싣고 갈러구 하였으나 뭐가 그렇게 바빤는지? 참석하지 못한것이 몬네 아쉽기만 한데! 옥희 후배님이써준 후기를 보면서... 조금은 아쉬움 달래고...내년엔 참석할것을 마음먹으면서.마음을 달레어 봅1니다..임동 향우선후배님 사랑합니다... 알...랴...뷰.....
선배님이 빠지시면
어느 곳에서든 우린 허전합니다.
당일날이라도 내려 오셨으면 좋았을텐데.
저 역시 정신없어
전화도 못드렸습니다 ㅜㅜ
언제나 그렇지만
연중 최다 인원이 모이는
임동초등학교 운동장은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설레이고 들뜬 그옛날.
운동회날 같앴습니다~~~
얼마나 참석할수 있을진
우린 아무도 모릅니다.
그저 건강할때 한번이라도
더 만나고 싶은게 고향사람들이죠. ....
다음엔 꼭 함께 하시길
소망하며
후회없는 휴일 보내세요~!~~~^^
에구, 선배님 얘기를 써야 되는데 빼먹었네요.
언제나 함께 했던 길이
어른들 아무도 안 계시고
우리만 갔네요.
내년에는 꼭 함께 가요.
글과 사진으로 보는 현장감 살아있는 생생한 후기에
한걸음에 고향을 다녀온 기분입니다
눈으로는 글을 보고 사진으로는 함성을 들으니
눈과 귀가 즐겁네요.
고향이 주는 푸근함과 여유로움에
정과 웃음이 넘치는 화합의 한마당 축제가 그려집니다.
비록 수몰되어 유년의 그 고향, 유년의 그 모교는 아니지만
수구초심일까? 고향과 친구 모교는
늘 가슴속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빨라지는 세월 앞에
동행할 수 있는 친구는 하나둘 줄어들지만
동행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기에 고향은 살아 있습니다.
시간이 추억을 만들어 내듯이
추억 속으로 들어가 함께 어우러져 또 다른 추억을 만들고 왔군요
시학이 동생, 언제나 버스 뒷자리에
자네들 동기가 쪼르래기 앉아가곤 했는데
이번엔 아무도 없어 동기들끼리 따로 간 줄 알았지.
그런데 병덕이도 안 보이고 옥자도 안 보이고
반가운 얼굴들이 안 보여 허전했네.
난 처음 은희와 고향에 간 이래
올해로 열 번째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하고도 남는데
늘 설렘을 안고 찾아가는 우리 고향은
언제나 그대로 반겨주더군.
이번에도 즐거운 고향나들이었어.
내년에는 빠지지 말고 함께 가기다~^^
은희야, 멋지게 사진 넣고 음악 넣어서
편집하느라 고생했어.
그 날의 열정과 즐거움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써야 되는데
시간은 자꾸 지나고
수업이 늦게 끝나서 예전처럼 밤새우는 일은
몸이 말을 안 들어서 엄두도 못내고
쉽게 느낌도 안 와서 애먹었어.
그러다 단기방학하면서
아이들이 쉰다고 하기에
기회는 이 때다~ 하고
작정하고 앉으니 그런대로 써지고
언제나 아쉽지만 마무리 잘했구나.
밋밋한 글이 네 손 끝에서 다시 살아났네^^
언제나 고향 가는 설레임만큼
삶도 설렌다면 얼마나 좋을까?
낯설고 어색하더라도
해마다 더 좋은 사람들
더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발길을 향했으면 좋겠어. 그쟈?
다음세상! 그 어디에
계신데도ᆞ카-페에 동문 체육회 소식 울리시는것 잊지 마세요!
행사장 역시 ! 아름다운축제.화합 의장!
열기 도가니임을 체감 할
수 있는데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제를
말하라면 철든 모든사람
하나같이 ? 임동초교
수몰 금싸라기 향우님!
면민 화합잔치 축제의
장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사랑 합니다!
건강 하세요!
행복 하세요!
감사 합니다!
권작가 님 !!!
쫀 득 쫀득한 글 잘 감상 하고가니더~~
누님,, 심금을 울리는 멋진글 보니,,, 온 당직근무 때려치우고,,, 고향으로 탈영, 잠수해야겟음, 아뭇던,, 유년기 이무렵,, 고향의 천수답 ,, 개구리 소리, 또한 소쩍새 소리가 귓전을 맴도는듯,, 주막집 생각나네,,, 일지춘심,,一枝春心입니다...
옥희 후배님! 고맙네^^
가보진 못해도 자네의 맛깔스럽고 정감가는 글을 읽으면
꼭~같이 참석한 마음처럼 생동감과 현장감이 살아있어서 좋네요~
올해는 더욱 큰 잔치였었고 물속에 가라앉은 고향의 곳곳이 들썩 거릴정도로
거대하게 잘 치루었는것 같아서 마음이 매우흡족하고
정감있는 후기 글을 올려줘서 무척 고맙게 셍각하고 건강하게 잘지내게나~
총동창회에 참석한듯 감동이 밀려옵니다.
지척에 있으면서도 가지못해서 동기들과 모든 향우님들께 죄송한 마음입니다.
좋은글과 사진을 잘 감상했습니다^^
권옥희여사님의 훌융한 필력에 찬사를 보냅니다.한편의 멋진 드라마를 보듯 단숨에 감동으로 보았습니다."쫄래기 앉아""깨복쟁이"같은 순수한 표현이 더욱 고향의 정취를 느끼게 합니다.잘 감상했습니다.♥합니당! 류사모펜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