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30일 온고을교회 수요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겟세마네 동산의 실상 》
슥 13:7~9
<예수님의 스가랴서 인용>
주전 6세기 선지자 스가랴, 그가 쓴 스가랴서를 설교하면서 겟세마네 동산을 이야기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겟세마네 동산의 실상”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은 예수님이 붙잡히신 곳입니다.
금요일 새벽에 붙잡히고 그날 십자가에 달려 숨을 거두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활동했던 때로부터 500년이 지난 후의 사건입니다.
스가랴 선지자와 500년 후 겟세마네 동산에서 붙잡히신 예수님!
두 분은 어떤 관계이기에 오늘 설교 제목이 “겟세마네 동산의 실상”입니까?
☞ 예수님이 붙잡히시기 전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스가랴서 13장 7절을 인용하여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막 14:2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이 구절의 뜻은 이런 겁니다.
“내가 잠시 후면 붙잡혀 간다. 그때 너희는 다 나를 버리고 도망칠 것이다.” 이 말씀 뒤에,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입니다.
제자를 이끄는 목자이신 예수님! 겟세마네 동산에서 잠시 뒤에 체포됩니다.
곁을 지키던 제자들은 모두 위협을 느껴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납니다.
지난 3년간 동고동락했던 예수님과 제자들, 위기 앞에서 오합지졸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흩어지는 일은 ‘이미 500년 전에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을 했다.’라는 뜻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걸음아 날 살려라” 달아나는 제자들, 500년 전에 예고되었습니다.
위기 앞에 달아나는 것은, 본능적으로 목숨을 부지하려는 사람들의 순발력에 따른 것입니다.
위기가 닥치면 사람들은 ‘우선 나부터 살고 보자’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달아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예수님 말씀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씻는 샘이 터지는 날>
예수님이 인용하신 스가랴 13장 7절 말씀의 요지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입니다.
둘째는 양들이 흩어지리라” 입니다.
정리하면 “하나님이 자기 목자를 칠 때가 이른다.”
그리하면 “목자를 따르던 양들이 흩어진다.” 이 뜻입니다.
☞ 우리가 은혜를 받으려면,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왜 자기 목자를 치실까 하는 것입니다.
답은 스가랴 13장에서 찾아야 합니다. 13장 1절을 먼저 보겠습니다.
(1절)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스가랴 13장은 ~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 열리리라”
사람들의 죄와 더러움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때가 올 것입니다.
아무리 씻어도 소용없게 되는 때가 올 것이란 말씀의 선포입니다.
_ 개구쟁이 꼬마 녀석들이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어놉니다.
_ 흙먼지를 뒤집어씁니다. 옷이 더럽혀지고, 무릎이 까지기도 합니다.
_ 아이들은 그렇게 자랍니다. 부모들은 그렇게 크는 아이들을 어느 선까지 그냥 둡니다.
_ 그러나 어느 한계에 이르면 붙잡아다가 옷을 벗기고 목욕을 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하여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사탄의 휘하로 들어갔습니다. 선악과 범죄입니다.
선악과 범죄이후 사람들은 타락일변도를 갑니다.
하나님이 어느 정도까지는 참으시며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의 인내에 한계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참으십니다.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싫다는 아이 붙잡아다가 옷을 벗기고 목욕을 시켜야 하듯,
하나님이 사람들의 죄악 문제 해결에 나서는 때가 옵니다.
☞ 그 날이,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 열리는 날”입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활동하던 주전 6세기에도 사람들의 타락은 극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나 아직은 참아 주실만 합니다. 하나님은 참아주시면서 경고합니다.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하나님의 눈물>
하나님이 스가랴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이 참는데까지는 참으시겠지만, 한계점에 이르면, 하나님이 직접 나선다!”
스가랴 선지자가 이 말씀 선포하고 500년이 지났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목자로 파송하셨습니다.
☞ 예수님은 이 땅의 최후의 목자이십니다.
그동안 숱하게 많은 목자를 하나님이 보내셨지만, 죄악 된 세상, 죄로 물든 사람들!!
목자에게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선포하지만, 마이동풍입니다. 한 쪽 귀로 흘려버립니다.
나중에는 제사장, 선지자는 물론 왕들까지 백성을 외면합니다. 타락하는 겁니다.
_ 왕들은 자기 잇속을 챙깁니다.
_ 선지자는 우상을 따르고 우상을 섬기라고 부추깁니다.
_ 제사장은 싱싱하고 좋은 제물은 자신이 챙기고, 부패하고 썩은 것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은 그렇다고 엎으시지 않으십니다. 오래 참으시다가,
“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 열리리라”
☞ 하나님은 그 샘을 어떻게 열어주십니까?
①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마지막 목자로 보내십니다.
___스가랴 선지자의 선포 후 500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② 하나님은 마지막 목자 예수님을 스가랴 예언대로 치십니다.
(7절)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내 목자, 내 짝된 자” ☞ 하나님의 눈물이 보이지 않습니까?
돌아오라고, 죄에서 돌이키라고 수 천 년 동안 숱하게 목자를 보내셨습니다.
듣는 듯 하다가, 죄에 빠지고, 돌이키는 듯 하다가, 다시 토한 것을 삼키는 죄인들!
그들에게 파송했던 마지막 목자 예수님까지 치십니다. 하나님의 눈물을 보아야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실상>
하나님의 독생자,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기가 붙잡힐 것을 아시고 하신 말씀,
막 14:2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시던 그때,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입니다.
그때가 하나님이 참고 참고 또 참으시다가 죄인들 붙들어 옷 벗기고, 목욕시키는 때입니다.
죄를 씻어주시는 샘을 터뜨리는 날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이 진리를, 하나님의 이 섭리를,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 경륜을,
너무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스가랴서 13장 7절을 인용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버리는 것은 500년 전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한 그대로다!”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드러내면서 한편 달아나는 제자들을 치유하시는 말씀입니다.
나중에 제자들은 알았을 겁니다.
그때 우리가 경황중에 36계 줄행랑을 쳤지만,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이었구나!
주님을 버리고 도망친 일을 부끄러워하는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합니다.
도망친 제자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힐링의 말씀입니다.
“~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 본문 스가랴 13장으로 돌아가서 겟세마네 동산의 현실을 진단해 봅니다.
하나님이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시는 때를 예고합니다.
그때가 되면 하나님의 백성, 양들까지 모두 흩어집니다.
목자가 변고를 당하니 양들이 흩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시겠다? ~ 판을 갈아엎고 다시 짜겠다는 섭리입니다.
기존의 것을 고쳐서 쓰기에는 너무 썩었습니다. 부패했습니다. 판을 다시 짜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왕, 제사장, 선지자의 타락에 일갈하십니다.
왕, 제사장, 선지자들도 돌보지 않는 ‘목자’ 그 목자까지 다시 세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최후의 목자이십니다. 그러나 그 목자까지도 새롭게 갱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한번 죽었다가 살아난, 부활한 완전한 목자를 세우고자 하십니다!
<부활하신 완전한 목자>
예수님은 “최후의 목자”이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님이 보내신 “최후의 목자”입니다.
하나님은 그러나 최후의 목자 예수님을 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제자들은 뿔뿔히 흩어졌습니다.
스가랴 선지자의 선포가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최후의 목자 예수님을 사흘만에 되 살리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그 분은 이제 진정한 목자이시고, 영원한 목자이십니다.
부활하신 목자,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스가랴서 본문이 드러냅니다.
흩어졌지만 돌아오는 자들이 있습니다. 7절 뒷부분에서 말씀합니다.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흩어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자들, 그들을 “작은 자들”로 칭했습니다.
(8절)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거기 남으리니”
성경에서 이렇게 수를 분명히 밝히는 대목은 드문 편입니다. 여기서는 예외입니다.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거기 남으리니” 매우 흥미로운 수치입니다.
공교롭게도 역대 세계 인구 중에서 종교 분포를 보면 이 대목과 연관되는 현상이 있습니다.
세계 인구 중에서 가톨릭과 개신교인과 유대인을 합하면 세계 인구의 삼분의 일입니다.
(나무위키 종교/인구 - 나무위키 (namu.wiki))
그러면 세계 인구의 삼분의 일이 모두 구원받은 사람들일까요? ~ 그렇지 않습니다.
(9절) “내가 그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에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나님은 “작은 자” 즉 남은 자로서 흩어졌다가 다시 돌아온 삼분의 일을 연단하십니다.
“~불 가운데에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하나님이 연단하고 시험하여 구원받은 이들,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과 시험으로 구원하시면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우리를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할렐루야~
<연단과 시험>
갈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예수님이 오신 것은 “때가 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최후의 목자를 보내야 하는 때가 이르렀기에 2천 년 전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 때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붙잡히시는 바로 그 때입니다.
예수님이 여자에게서 나고, 율법아래 나서 신성과 인성을 지닙니다.
최후의 목자는 그렇게 이 땅에 오셨습니다.
스가랴서 13장에서 최후의 목자까지 하나님은 치라 하십니다.
마지막 목자로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습니다.
하나님은 그러나 사흘만에 무덤에서 주님을 일으키십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완전한 목자가 되게 하시려고 다시 일으키십니다.
그때이후 완전한 목자는 부활하신 주님 한 분 뿐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이자,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 섭리와 경륜으로 우리가 구원받았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는데도,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이 팍팍하고 힘이듭니다.
“내가 예수 믿었는데, 왜 이래?”
일단 우리는 삼분의 일에 속하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삼분의 일에 속했다고해서 모두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삼분의 일을 하나님은 어떻게 하신다고요?
(9절) “내가 그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에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이 땅에서의 삶은, 하나님이 우리를
“불 가운데에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하시는 과정입니다.
‘이 고난 언제 끝이 날까?’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십자가 고통은 부활의 때에 이르러 멎게 됩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부활하기 전까지는 고난 중에 살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고 주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중에 견디면 행복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