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검사의 역사 3단계>
1단계 : 1980년대 이전까지
전국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에서는 매년 봄이 되면 변검사를 실시했다.
옛날 영화에도 종종 나오는 장면이다. ‘내 마음의 풍금’이라는 고전적 명화에 속하는 영화에도 이 장면이 등장을 한다!
학교에서는 인적사항을 기록할 수 있도록 인쇄된 작은 겉봉투와 변을 담을 수 있는 속지를 나누어 주고 다음날 대추알 크기
정도의 실지 자기의 변을 담아 오도록 했다.
비닐이 나오고 부터는 비닐봉투에 담아오게 해서 덜 했지만, 비닐이 나온 것도 70년대 이후 였으니 1960년대까지의 상황은
각자 미루어 짐작하시기 바란다.
결코 즐겁지 않은 이 연중행사는 목적이 ‘기생충 박멸’이다.
변봉투에도 시행기관이 ‘한국기생충박멸협회’라고 명백히 찍혀 있었다.
먹는 것이 부족하여 영양상태가 좋지 않던 옛날, 그 부실한 음식조차 혼자 다 영양분으로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몸 속에
기생하는 상당한 양의 여러 기생충과 나누어 먹으니 영양결핍이 심한 어린이가 많았다.
장차 나라의 기둥이 되어야할 어린이가 빼빼 마르거나 누렇게 뜬 얼굴, 얼룩얼룩 버즘이 핀 얼굴로 복통, 빈혈증, 어지럼증
등등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기생충은 회충, 요충, 십이지장충, 촌충, 디스토마 등 여러 종류이지만, 대표적인 기생충은 작은창자에 사는 ‘회충’이다.
회충이 단순히 작은창자에서 영양분만 흡수하고 있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숫자가 많아지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장을 뚫고
나오거나 다른 기관에 들어가기도 하고 심지어 위에 까지 올라와서 구토증을 일으켜 회충을 토하기도 한다.
채변방법을 학교에서 매년 자세히 설명을 해 주지만 아무리 자신이 생산해 낸 ‘변’, 아니 확실하게 ‘똥’이라고 하자!
똥을 밖에 싸놓고 가는 막대기로 떼어서 봉투에 넣어 학교로 가지고 가는 행위가 즐거운 사람 전국에 하나 없다.
잔머리를 굴려 길가에 흔했던 개똥을 가져가거나 옛날엔 집집마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도 많았으니 아기 귀저기에서 얻어가는
아이인들 없었으랴!
경험 많은 선생님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미리 선생님들이 엄포를 놓는다.
‘현미경으로 보면 개똥인지 사람 똥인지 다 알고, 심지어 똥 주인의 나이까지 다 나온다’고!
채변봉투 수집하는 날, 아무리 비닐봉투에 넣어 등잔불로 입구를 지져 붙여 오라고는 했으나 똑바로 하지 못하는 아이도
있어서 겉봉투에 얼룩이 지는 것도 있고 냄새도 만만치 않다. 선생님께서 그걸 걷으실까? 매우 드물게는 그런 훌륭하신 분도
계시겠지만 대부분은 아이들을 시킨다! 아이들도 다 싫어할 텐데 누가 하나?
시골 작은 학교에서는 반장을 시키기도 하지만, 학급을 대표하는 반장에게 그런 일은 체면을 생각해서 잘 시키지 않는다.
대부분 각 학급에는 반장, 부반장과 특활부서장이 있다. ‘학습부장, 생활부장, 보건부장(나중엔 체육부장으로 바뀜), 미화부장,
오락부장’ 등이다.
채변봉투 수집은 보통 부반장을 시키거나, 건강을 위해서 하는 것이니 ‘보건부장’을 시킨다!
좀 부정적인 얘기 한마디!
어린 아이들이야 싫어하거나 말거나 나라에선 전국의 아이들에게 빠짐없이 변검사를 하여 기생충을 없애려는 큰 야망을 갖고
있었다. 기생충이 많다는 것은 후진국이라는 직접적 증거이기도 하고 대외적 나라 체면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100% 수집이 어렵다. 이런저런 사유, 예를 들면 똥이 안 나왔다든가, 잊었다든가, 설사를 했다든가 등의 이유로 안
가져오는 아이가 꼭 있는데 학급별 통계를 잡아 교장, 교감 선생님들은 100% 수집을 강요한다. 학교별 통계도 보고를 해야
하므로 윗분들은 실적이 낮은 것을 무척 싫어한다.
내가 교사일 때 나는 이런 비상사태를 대비하여 ‘특공대 선발제도’를 운용해왔다!
가끔 가다가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 내용을 말하지 않고 특공대 지원을 받는다!
물론 지원자에게는 유혹을 떨치기 어려운 반대급부가 주어진다! 힘들거나 싫어하는 임무의 강도에 따라 청소 빼주기, 숙제
안해 와도 벌 받지 않기, 맞을 일이 생겼을 때 원하는 경우 빼주기, 급식으로 나오는 옥수수 빵 제공, 때로는 과자나 사탕을
성과급으로 걸기도 한다.
어떤 때는 지원자가 넘쳐나서 가위 바위 보나 운동장 돌기 선착순 등으로 선발하기도 한다.
선발한 다음에는 구체적 공격목표와 작전요령을 숙지시키고 적지에 투입 시킨다.
시급을 요하는 사안이 발생하면 특공대원들은 공부시간에도 힘차게 특공대가를 부르며 씩씩하게 전투현장에 투입된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전투와 전투 속에 맺어진 전우야 ♩♪♬♩
- - - - - 후 략 - - - - - -
군사독재 시대에는 학교에도 군가가 널리 보급되는 등 군사문화가 곳곳에 침투되어 있었다.
이런 즐겁지 못한 일은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세 번에 끝난다.
첫 번째 채변, 두 번째 구충제 약 먹기, 세 번째 나온 회충 마릿수 세기!
전교에서 모아진 변봉투는 학급별 명단, 통계표와 함께 학교 소사아저씨가 시군교육청 보건담당자에게 가져다준다.
한 달 쯤 뒤에는 검사결과표가 구충제와 함께 학교로 전달된다.
선생님께서 아이들 명단을 부를 때마다 아이들은 조마조마 초조하게 기다린다.
기생충알이 발견 되었다 아니다에 따라서 희비가 크게 엇갈린다.
없다고 하면 ‘만세!’환호가 터지고, 있다고 하면 비명을 지르며 죽을 상이 된다. 발견된 어린이가 압도적으로 많다.
즉시 기생충 보유자로 판명된 어린이는 앞에 나와서 물컵과 구충제를 받고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먹어야 된다.
옛날에는 약을 잘 먹어보지 않아서 물과 함께 입에 넣은 약을 영 삼키지 못하고 물만 몇컵씩 삼키는 아이도 있었다.
더 환장하는 것은 다음날 또 채변할 때 처럼 똥을 한데다 싸 놓고 헤집어서 회충이 몇 마리 나왔는지 세어보고 선생님께
말해야 하는 것이다.
1950년대 초중반 까지는 구충제조차 보급되지 못하여 구충효과가 있다는 ‘해인초’라는 미역 비슷한 해초의 일종을 가마솥에
넣고 끓여서 한 사발씩 먹였다 한다.
나는 1957년에 국민학교 입학을 했으나 이미 구충제가 보급된 후로 해인초 맛은 보지 못했다!
내가 일학년 때 직접 목격한 충격적인 일은, 학교에서 같이 약을 타 먹은 아이가 있었는데 얼굴색은 흰 편인데 피부가 곱지를
못하고 좀 얼룩댄다는 느낌이 있는 아이였다.
한동네 아이이므로 학교가 파하여 집으로 같이 가는데 갑자기 똥이 마렵다고 하며 나에게 책보를 맡기고 논두렁 밑으로
내려갔다. 잠시 후 나보고 이리 와보라고 불러서 가보았다.
세상에! 하루도 지나지 않은 불과 몇시간 만에 회충을 쏟아내었다. 똥보다도 훨씬 더 많이....!
정확하지는 않고 1980년대쯤 들어 기생충 검사를 해도 보유자가 거의 나오지 않아 우리나라에 기생충이 퇴치되었다고
판단되어 이런 아름답지 못한 연중행사는 바로 없어졌다!
옛날에 기생충이 이렇게 많았던 데는 비료가 부족한 것이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농사를 짓는데 부족한 비료 대신 똥, 오줌을 논밭에 거름으로 뿌린 결과 기생충 알이 채소에 묻어와서 다시 몸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6.25전쟁 때 우리나라에 들어온 주한 미군은 그러한 한국의 농사법 때문에 1970년대까지도 위생문제로 한국의 채소를
먹지 않고, 채소를 본국이나 일본에서 공수해 와서 먹었다.
지금이야 우리나라에서도 인분을 비료대신 쓰지 않지만 어떤 경로인지는 확실히 모르나 기생충에 감염될 수 있다.
(육회, 민물고기 날것 등은 감염원으로 이미 알려져 있고, 바다 생선회나 애완동물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가족과 함께 지금도 1~2년에 한번 정도 구충제를 먹고 있다.
요즘의 발달된 구충제는 옛날처럼 실물이 보이지 않고 녹아 나오기 때문에 끔찍한 경험은 하지 않아도 된다!
2단계 : 2010년대 까지
불특정 다수에게 시행되다가 없어졌던 변검사가 다시 부활을 했다!
다만 검사 목표와 대상이 변했다. 목표는 옛날의 기생충에서 지금은 대장암으로!
그리고 초등학생 대상이 아니고 전국 50세 이상의 남녀를 대상으로 매년 한 차례씩 하도록 되어있다.
국민건강보험에서 무료로 시행을 한다.
채변방법은 2020년대 까지는 옛날의 사진 필름통보다 약간 더 넓은 플라스틱통에 담아서 건강검진이 가능한 종합병원이나
내과의원에 제출하면 되었다.
검사 전에 병원에 가서 설명을 듣고 채변통을 받아와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옛날처럼 재래식 화장실이라면 화장실 안의 한 옆에 신문지 몇 번 겹친 위에 변을 보고 퍼 담고 남은 것은 신문지와 함께
화장실 안으로 밀어 넣으면 되었다.
기술이 좋다면 통에 직접 적당량을 받아낼 수도 있지만, 조절 기술이 부족하면 죄 없는 손이 폭탄을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세월이 흐른 후이니 더 이상 자세한 이야기는 패쓰!
3단계 : 2020년 이후
현재에 이르러서는 전국의 대한민국 국민 남녀 만 50세 이상이면 매년 한 번씩 겪어야 될 일이니 구체적으로 언급을 할
필요가 있다!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이 이런 구저분하달까, 기분 좋지 않아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누군가가 편리하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여
인터넷에 올릴 만도 하건만 난 아직 찾지 못했다.
뭔가 좋은 방법이 있겠지만 그 방법을 모르는 분이라면 내가 추천하는 방법을 사용해 보시길!
만약 더 품위유지를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으면 댓글로 공유를 정중히 부탁 드린다.
사실 나는 ‘분변잠혈검사’라는 것을 올해 처음 해 봤다.
왜냐하면 매 2년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무료로 건강검진을 하도록 하는데 대장내시경을 한번 했다가 용종을 몇 개 제거한
후로 매번 내시경을 하는데 구태여 분변검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였다.
3년전 사위의 직장에서 가족 종합건강검진을 해준다고 하여 했을 때도 대장내시경검사를 했는데 처음으로 용종이 나오지
않았다.
앞으로 몇 년 간은 대장내시경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 해마다 ‘분변잠혈검사’안내가 집으로 배달 되었다.
나는 대장내시경검사에서 용종도 없어서 당분간 내시경검사를 하지 않아도 되므로 분변검사는 할 필요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분변잠혈검사는 내시경과 관계없이 해마다 해야 하는 것이라 한다.
처음으로 해보자니 골치가 아팠다!
좀 편한 채변방법이 없나 찾아보려고 인터넷 검색을 해도 안 나온다!
아무데고 산속에 가서 채변을 하자니 번거롭고, 욕실 바닥에 볼일을 보고 하기도 지저분 추잡하다!
어디 사람이 살려고 하는 짓이 치사하지 않은 것이 있을까마는....!
간호사의 설명은 신문지에 받아서 하고 남은 변은 변기에 버리라 한다!
‘변기 옆에 신문지 깔고 볼일 보기도 기분 좋지 않다. 그리고 신문지에 묻은 변은 어쩌라고? 물로 씻어 두어 말렸다가
버리란 소린가?’시간이 걸리는 좋지 않은 방법이다.
신문지채 변기에 넣었다간 막혀서 다시 손으로 잡아 빼야 할 것이다!
그런 연유로 내가 생각을 해 봤다. 별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신문지 처리보다는 품위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품위유지하며 채변하는 방법>
1. 적당한 크기의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 빈 용기 준비 - 변기 아래 위치 시킨다.
(아래 영상 참조)
2. 시트 내리고 앉아 볼일 보기
3. 용변 후 ‘분변잠혈검사키트’로 채변 - 아래 자료는 비영리의료기관 '나래의료재단' 블로그에서 인용
4. 남은 변 변기에 쏟고 플라스틱(or 스티로폼) 용기를 변기 안에서 샤워꼭지로 씻어내기
(이 부분은 개인의 프라이버시 문제로 구체적 영상은 생략)
5. 씻은 플라스틱(or 스티로폼) 분리수거. 이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