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불명의 재앙이 벌어진 전라남도 목포시 외곽 고속도로 위 방독면을 쓴 한 여인이 멈춰 있는 차량 사이를 걷고 있었다.
무질서한 고속도로 한 가운데를 비집고 홀연 단신 들어온 여미지는 국가에서 파견된 조사단원이었다.
처음엔 차로 이동하다가 거리에 시체와 차량들이 가득 메워진 탓에 두 시간 전부터 걷기 시작했다.
목포 시내에 들어서자 머리 위에는 드론들이 떠다니면서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그것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주변 상황을 촬영하는 것 말고는 없었다.
거리에는 시체로 넘쳤다. 전복되고, 상가를 뚫고 들어가고, 그대로 멈춰버린 차량들이 사고난 그 상태로 버려져 있었다
잔혹하리만큼 사인도 밝히지 못한 채 영혼이 떠나버린 시체들의 모습들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사망한 시체들의 살들은 마치 빵처럼 부풀어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그들의 명복을 빌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다만 살아남은 자들의 평안을 위한 기도일 뿐이다.
빠른 걸음으로 죽음의 도시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그러나 상가 쪽에 자전거전포 하나가 눈에 띄었다.
걸어가는 것 보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었다.
그중에 제일 체격에 맞고 값비싸 보이는 자전거를 꺼냈다.
목포역까지 가는데 시간이 단축될 것 같았다.
한 시 간이 더 흘렀다. 목표역에 도착했을 때 벌써 날은 어두워졌다. 시침은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길거리에 죽은 듯 엎어져 있는 사람들을 피하며 겨우 전복된 열차 앞에 도착한 그녀는 싸늘한 주검을 밟으며 열차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시체와 함께 이러 저리 뒤집힌 칸을 건너가며 실험체가 있는 곳을 찾던 여미지는 좌석 밑으로 엎어져 있는 키가 2m이상은 되어 보이는 덩치 큰 짧은 금발머리의 백인을 발견했다.
잠시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파왔다.
죽은 백인이 누군가와 육탄전을 벌이다가 상대방을 창 밖으로 떨어뜨리는 광경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 다음 머릿속 영상은 승객들을 모두 살해하고 있었다. 그 영상들은 마치 그녀가 겪었던 일처럼 뚜렷하게 떠올랐다.
"뭐지?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미지는 정신을 차린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백인의 주검 옆의 구석 쪽에 특수 용도로 제작된 철제 가방이 떨어져 있었다.
재질이 티타늄과 알루미늄, 그리고 스테인레스가 합성된 가방이었다.
그녀는 그 특수가방 속에 실험체가 들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미지는 일단 가방을 양쪽으로 잡고 보안장치를 확인했다. 그녀가 등에 짊어지고 있는 가방도 역시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열 수 있는 특수 가방이었다. 맡은 임무는 그 가방속에 실험체를 넣고 복귀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비밀번호를 알 수 없었다. 애초에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아 스스로 알아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백인이 죽기 전 비밀번호 하나 하나가 선명한 영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번호가 떠오르는 대로 잠금장치 숫자를 하나하나 맞추었다. 마지막 번호를 맞추자 덜컥 소리가 일어나며 가방이 열렸다.
가방 속에는 세 개의 튜브 중 병원체가 든 튜브 한 개만이 깨진 상태였다. 깨진 화학물질 실험체가 그 사태의 원인인 모양이었다. 나머지 두 개는 멀쩡했다.
미지는 곧바로 등에 지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나머지 두 개의 실험체가 든 튜브를 꺼내서 그녀가 가져온 가방에 속에 넣었다. 그 가방은 두 개의 튜브를 감싸는 쿠션까지 들어 있었고, 튜브의 모양에 딱 맞게 제작되어 있었다.
그녀는 최첨단 장비로써 최대한 생화학물질의 누출을 차단하는 가방이라는 생각에 안심을 하며 가방의 커버를 닫았다. 디지털 잠금 장치가 삐릭 하는 소리를 내며 자동으로 잠금장치가 작동했다.
미지는 돌아갈 길이 불안했다.
그녀에게 그 일을 시킨 사람들을 일단 믿을 수가 없었다.
본능적으로 그자들이 나쁜 의도를 가졌다고 확신했다.
처음 그들이 접근해왔을 때 일단 태도는 공손했다. 하지만 그게 더 무서운 점이다. 이들에게 자칫 실험체를 넘겼다가 더 세상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그녀에게는 또 다른 임무가 있었다. 그것은 이전 조사단들이 설치한 바이러스나 신경가스의 성분을 분석하는 기계에서 출력된 데이타를 가져오는 일이었다. 인터넷과 전력이 끊기는 바람에 중앙컴퓨터로 전송받는데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 베아체 아파트에 남겨진 자료 같은 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본능은 그들이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점에 도달해 있었다.
그 순간만이 그녀가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판단이 들었다. 오랜 시간 그녀는 누군가에게 감금이 되어 실험까지 당했었다. 어쩌면 목포 그곳이 그녀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가 될지도 몰랐다.
그녀에게는 달리 특별한 대안이 없었다. 그녀를 도울 수 있는 사람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들로부터 벗어나야 했다.
드론이 그녀를 감시한다해도..
우선 전라남도를 벗어나 남해안도로를 따라 부산으로 넘어갈 계획을 세운 그녀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최대한 빨리 달려 1시간 만에 초토화된 지역을 벗어났다.
도로가 펼치지는 부근에 도로 위에 있는 차를 발견하고 그 안에 한 여인이 엎어진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예전 같으면 기겁을 했을 텐데 그녀에게 초능력이 생기면서부터 예전의 나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녀는 여자 시체를 꺼내서 밖으로 빼낸 뒤 바닥에 내려놓으며 죽어 있는 사람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부디 좋은 데 가시길 빌게요."
그런데 그녀의 손에서 시체의 싸늘한 기운이 전혀 감돌지 않았다.
'사망한 사람이 아닌가?'
그녀는 가슴에 손을 더 깊게 눌러보았다.
심장 박동은 느껴지지 않았다.
'사망한 지 얼마 안되어서 온기가 남아있나?'
한참 동안 그 주검을 내려다보았다.
아주 잠시 동안 그녀의 뇌리에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사망한 여인이 살아 있을 당시 특별한 이유도 없이 차에 타는 순간 그대로 머리를 떨구는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이렇게 절명 할 수 있는 건가?'
그녀는 운전석에 올라타서 꽂혀 있던 열쇠를 돌려보았다. 한참 돌려도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어찌된 일이지? 여기선 시동이 안 걸리는구나."
유일한 탈것이 자전거 밖에 없어서 할 수 없이 허벅지 아파라 열심히 페달을 밟아 달렸다. 아무래도 멀곳까지는 이동하기 힘들 것 같았다.
***
몇시간 전
오전 9시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했다. 이른 아침 침상 위에는 삼십대 중으로 보이는 여자가 누워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았음에도 눈이 부셔 이불을 덮었다. 그러다 정신이 들었는지 자리에서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한동안 납치 감금되는 동안 일상을 병실에서 지내야 했다.
그녀는 여전히 지난 번 걸린 MI바이러스 때문에 격리된 상황이었다.
그녀가 납치된 것 역시 비밀요원들의 임무였다고 한다.
하지만 납치 당시 요원들은 마스크 조차 쓰고 있지 않았다.
아마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아직도 격리되고 있었고, 감금과 격리의 차이를 잘 못느낄 뿐이었다.
그때 검은 색 양복 차림의 남자 요원이 병실 문을 열고 안으로 불쑥 들어섰다.
"누구시죠?"
여미지는 흥분하여 호출기를 연달아 눌러댔다.
남자는 곧바로 신분증을 꺼내 보였다.
"저는 국내 초인정보기관 AET(ACE ESPER TEAM) 요원입니다.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 동안 저희가 여미지 씨의 모든 병원비를 다 지불했으니까요."
"네? 무슨 소리에요? 바이러스 걸렸다고 잡아 가두어 놓고서!"
"감염되어 놓고선 격리 지역을 마음대로 벗어나셨으니 당연한 결과지요."
미지는 당시 순간이동으로 격리병동을 벗어난 기억을 못하고 있었다.
남자요원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잠시 만 기다리라는 손짓을 하면서 병실 밖으로 나갔다.
미지는 이상한 표정으로 캐비넷에 옷을 꺼내 환자복과 갈아입었다.
완전히 외출 준비를 한 그녀는 자신의 소지품을 챙겨서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방금 전 그 남자요원이 다시 문을 열고 불쑥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녀에게 명품 핸드백을 건네며 말했다.
“잠시만 가방 안에 있는 것을 확인하면서 기다리세요. 조금만 있으면 박훈 팀장이 도착할 테니 까요.”
"네? 이게 뭔데요? 난 갈 거예요."
"제발 확인 부탁 드립니다. 중요한 물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 여미지씨 소유물이고요."
"제 소유물이라고요?"
남자 요원이 핸드백을 그녀의 손에 건네고 바로 나가자 미지는 의아한 표정으로 핸드백의 지퍼를 열어보았다.
뭔가 가득 들어 있는 것이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궁금증을 빨리 해결하기 위해 핸드백 속 내용물을 침대 위에 쏟아 부었다.
가방에는 여권과 지갑이 있었다. 지갑 안에는 오 만원 권 뭉칫돈 1권이 들어 있었고, 지갑의 신분증 넣는 곳에 AET(Ace Esper Team)이라는 약자와 함께 국가 공인 요원 신분증이 끼워져 있었다.
잠시 후 두 명의 여자 요원과 두 명의 남자 요원과 나타난 박훈은 그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지시를 내렸다.
"여미지! 당신은 정부의 명령에 의해 3급 국가공무원 자격이 부여됐다. 팀명은 AET(Ace Esper Team) 약자로 사용하고, 최정예 초능력 팀이라는 의미를 두고 있다.
우리 팀은 다섯 명으로 구성되며 각자 에스퍼로서의 특기를 지니고 있어서 국가에서 요원으로서의 자격증을 부여한 것이다. 앞으로는 국가에 필요한 모든 명령들을 수행해야 한다."
미지는 그들이 하는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소리에요? 내가 요원이라뇨?"
“지금은 국가 비상사태다. 위험한 병원체가 목포시를 초토화 시켰다. 정부는 조사단을 파견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치명적인 화학물질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목포시와 인접한 외곽 베아체 아파트 1층 로비에 포말 생화학물질 탐지 시스템을 설치했다. 공교롭게도 전력을 손실 하는 바람에 수집한 데이터 내용을 전송받는데 실패했다. 자네는 베아체 아파트를 찾아가서 그 수집내용을 찾아와야한다. 너는 이번 사건에 큰 책임이 있고, 이번 임무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초인적 면역력이 있는 자는 오직 자네 뿐이니까.”
"그 일을 왜 제가 해야 하죠? 그런 거 할 시간 없어요."
박훈 팀장은 그녀가 잘 상황파악을 못하는 것 같아서 텔레비젼을 틀어주었다. 뉴스에서는 전군 계엄령과 정체를 알 수 없는 포말형태의 병원체가 확산되는 상황을 전하고 있었다.
"현재 위험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대피령이 내려졌으며, 계엄령군경부대의 통제에 따라 안전하게 피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국민여러분께서는 군경합동부대의 통제에 따라 최대한 침착하게 대피를 해주십시오."
세상이 아비규환으로 바뀌어있었다. 미지는 현재 상황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다.
"저 물질은 대량살상무기인 것은 확실하니 이제 네가 이 일을 수습하는 일만 남았어. 당신은 이 생화학물질의 정확한 정체를 확인해줄 데이타를 가져와야 하네. 그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를 하고 저 실험체가 더 이상 확산하는 것을 막아야 하지 않겠다. 시간이 없다. 확산 속도로 봐서 한반도는 한 달을 버티지 못할 거야."
미지는 갑자기 정신이 아찔해졌다. 순식간에 눈앞이 보이지 않으며,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헌 시간 후 AET 요원들의 차량이 목포 경계선에 이르렀다. 바리케이드와 초소를 설치한 군경합동 부대가 철저하게 그 지역에 검역을 실시하고 있었고, 그들이 도착하자 차를 세웠다.
그들은 군인들의 통제에 따라 차를 멈췄다.
보조석에 타고 있던 박훈이 창문을 열고 그의 신분증을 군인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행정 안전부 소속 공무원입니다. 이곳에서 단 한 사람만 목포시 안으로 들어갈 예정입니다."
"이곳은 어느 누구도 통과할 수 없습니다."
박훈은 검역지역으로 상부기관의 지시가 내려진 것으로 알고 있었다.
"별도로 통과시키라는 전달을 받으셨을 텐데요."
그때 대위 한 명이 다가와 물었다.
"조사단입니까?"
"그렇습니다."
"단 한 분 만 통행이 가능하다고 전달받았습니다. 암호명을 대십시오."
박훈은 그들이 절차를 따른 다는 판단에 마지막에 제시하기로 되어 있는 암호명을 말했다.
"데스 투 얼라이브!(Death to alive)"
대위는 암호명을 그가 들고 있는 테블릿에 쳤다. 그리고 곧바로 여미지의 사진이 떠올랐다. 그는 뒷좌석에 있는 여미지를 보고 그가 확인한 테블릿 속 통과 가능한 여자라는 것을 확신했다.
"한 분만 통과 가능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창문을 닫은 박훈은 여미지를 돌아보며 말했다.
“여기까지는 아직 안전한 지역이야. 지금부터 여미지 요원이 단독으로 움직여야 한다.”
미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서 내렸다.
박훈이 미지에게 양 어깨에 짊어지는 케이스 가방과 방독면, 바이러스 차단복을 건네며 말했다.
“근접지점에서 갈아입어. 딴짓할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아. 너를 주시하는 드론 수십 대가 계속 감시할 것이야.”
“알았어요.”
박훈과 다른 요원들이 차에서 내린 뒤 여미지는 운전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군인들이 바리케이드를 열어주자 차는 천천히 위험지역 방향으로 진입했다. 목포를 목적지로 고속도로를 한참 달려가다 보니 점점 빈 차량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미지는 다량의 빈 차량들 사이를 지그재그로 비켜가며 미지 정지를 알리는 경고 표지판을 지나쳤다.
그녀는 기존에 설치 되어 있던 버려진 바리케이드가 500미터 앞에 눈에 띄게 설치된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우측 목포IC로 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