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기고 싶은 이야기-1>
전사자 유족연금 지급중단 36년 만에 부활시킨 보훈지원 사례
나의 도움을 받아 국가유공자(전몰, 순직, 전.공상이)나 유족으로 등록된 경우는 줄잡아 100여명이 넘지만 그 중 특이한 사례가 있어 여기에 남긴다.
6.25참전 중 전사한 고 김갑석의 유족인 황득점(1927.1.12생) 할머니는 보건사회부의 전몰군경 유족인 원호대상자로 지정되어 연금을 수령하다가 1961.8.5 군사원호청이 발족하면서 국가유공자 재확인 과정에서 고 김갑석의 군번, 생년월일, 사망일자 등이 상이하여 대상에서 제외되었었고, 이후 재등록을 다각도로 시도하였으나 불가능하던 중에 당시 대한해외참전전우회 부산광역시회 사무처장 겸 부산광역시 재향군인회 감사이던 나의 지원으로 전사통지서는 받게 되었으나 국가보훈처에 유족등록 과정에서 제적등본과 전사통지서에 기재된 고인의 사망일자, 생년월일 등이 상이하여 법 절차상 국가보훈처에 유족등록이 불가능하자 내가 그 사유를 규명하여 법원에서 “사망자의 호적정정 허가결정”을 받아 등록이 가능케 되어 연금중단 36년 만에 유족연금수혜를 부활시킨 사례이므로 소개합니다.
가. 인적사항
1. 전사자 : 김 갑 석 1922.4.29생
(호적에는 1922.1.29이었으나 1998.5.4 법원판결로 정정)
본적/경남 산청군 삼장면 00리(00부락)XXX
2. 미망인 : 황 득 점 1927.1.12생
당시주소/부산시 남구 용호3동XXX 윤CH 댁 624-XXXX
나. 연금중단과 재등록 시도에서 전사확인까지
1. 고 김갑석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1950.7.15. 마산군의학교에 소재하였던 27연대 신 병훈련소로 입대하였고 1950.11.24 00지구에서 전사함
2. 전사 후 미망인 황덕점은 1961년도까지 보건사회부의 원호대상자로 지정되어 연금을 수령 중에 1961.8.5 군사원호청(현. 국가보훈처의 전신) 창설로 국가유공자를 재등록 정비하면서 군번, 생년월일, 전사일자 등이 상이하다는 이유로 비대상자로 처리되어 연금지급이 중단됨
3. 이후 유족이 보관한 자료에서 아래와 같이 재등록을 수차 시도하였으나 기각됨
1)1989.1. 대통령께 청원결과 정부합동민원실로 이첩
1989.2.14 정부합동민원실은 국방부로 이송
1989.2.23 국방부는 육군본부로 이송
1989.4.11 육군본부는 군적(군번)확인불가 회신
2)1989.2. 국가보훈처에 진정
1989.2.16 해당 군 본부에 확인신청 할 것을 안내
*이후 육군본부에 수차례 신청하였으나 제시한 군번 2700915는 없다고 기각되었으며
이 군번은 나도 병무청 등 각급기관에 조회하였으나 다른 사람이었음
4. 본인에게 지원요청 배경과 진행사항
1)1996.6.29 본인이 KBS1TV(부산)<아침마당>에 출연하는 것을 보고 1996.7.16 본인 을 찾아온 6,25 전쟁 중 노무자로 소집되었다가 사망한 고 박사수의 미망인 강윤옥(1924.12.30생) 할머니가 7전8기 끝에 본인의 지원을 받아 45년 만에 전몰군경 유족으로 등록되어 보훈수혜를 받게 되었다는 사연이 소개되었고, 평소 불교신자로서 출입하던 부산시 동래구 명륜동소재 정각사에서 동료 보살들에게 남편이 사망한 후 45년 만에 남편의 덕을 보게 되었다면서 한턱? 낸 자리에 참석하였던 황덕점 할머니가 자신도 억울하다고 하소연 하자 강윤옥 할머니의 권유를 받아 1996.10. 사업체 부도로 방황하던 아들 김JY을 보내 본인에게 지원을 요청하여 왔음.
2)본인은 육군본부, 육군중앙문서관리단, 병무청 등 각 기관에 조회하였으나 전사자 명부에도 미등재되었고, 군번도 상이하여 확인이 불가능하였음.
3)1997.10.1자 국제신문에 보도된 6.25실종자에 대하여 국방부가 동년 10.7부터12.31까지 명단공개와 신고접수 안내문을 본 나는 즉시 아들 김JY 에게 연락하여 육군 제53사단(당시.051-741-4245)에 고인의 실종 신고서를 접수케 함.
4)1998.4. 이 신고에 의하여 육군본부는 고 김갑석의 전사확인서를 송부하여 옴.
다. 전사통지서로도 유족등록이 불가능한 문제점
나는 유족등록 서류를 준비 중에 고 김갑석의 전사확인서에는 1922.4.19생으로 1950.11.24 00지구에서 전사로 기재되었으나 제적
등본에는 1922.1.29.생이고, 1950.6.15 자택에서 사망한 것으로 등재되었으므로 고인은 6.25전쟁 발발하기 전에 사망한 것처럼 되었으니 동명이인(同名異人)이므로 현재로는 등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었으나, 등록을 신청한 날이 속하는 달
부터 보상됨에 따라 제적등본을 제외한 서류로 부산지방보훈청에 국가유공자 유족등록신청서를 일단 접수함.
라. 사유규명에 이르기 까지
*전사통지서까지 발급받고도 등록이 불가능하게 되자 나는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고, 왜? 생일이 3개월이나 틀리고, 입대는커녕 6.25전쟁 발발 전에 사망한 것으로 등재되었을까? 하는 문제를 풀기 위하여 밤잠까지 설치게 되었으며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입대 날짜인 1950.7.15은 음력 6월 초하루이고, 출생일인 1922.4.29은 음력 4월3일 임을 확인해 보면서 상관관계를 정립하려 하였으나 불가능하였다.
*나는 처음부터 시작하기로 작정하고 우선 제적등본의 前戶主란부터 확인 중에 사유 기재란에서 그 단서를 찾았다. <檀紀四貳八參年六月貳拾五日事變으로因하여滅失되였음으로檀紀四貳八六年參月參拾日本戶籍을再製함>
*그렇다. <호적을 再製(다시 만듬)하였으면 틀리게 기재될 수도 있고, 그 사유만 밝히면 규명 된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내가 당
시 면사무소의 호적담당 서기(書記)라면 자료조사를 어떻게 하였을까?
추정하면 고인의 미망인 또는 가족의 자택을 방문하여 고인의 생년월일을 문의하였을 것이고, 미망인은 그 당시의 시골풍습이며 알고 있는 음력생일로 답변하였을 것이다.
*안달이 나서 밤중임에도 집주인에게 부탁하여 미망인에게 전화로 확인하나 음력생일이 틀림없단다.
육군본부 전사통지서는 호적 멸실 전에 출생신고 된 양력생일이고, 재제 시에는 음력생일을 등재한 것이니 틀릴 수밖에---.(易地思之)
*그럼 사망신고 일자는 왜 틀렸을까?
문득 옛사람들의 관습을 들은 기억이 되살아났다.
가출하여 사망한 경우 사망한 날짜를 모르면 통상 가출한 날이나 최종 생존이 확인된 날을 사망일로 보고 기제사는 구월구일에 모시는 관습을---.
아울러 14일간이 틀리는 것은 1950.7.15 마산 27연대에 같이 입대한 마을 친구들과 신병 훈련을 2주간(당시 훈련은 2주간이었음)동안 받고 전선에 투입되었으므로 그때까지는 고인이 생존한 것은 확인된 사항이니 이 또한 음력으로 계산해 보면 6월초하루+14일은 6월 보름이 아닌가!----.(溫故知新)
마. 법원의 호적정정 결정으로 유족등록
*나는 이튿날 미망인에게 이 내용을 정리하여 문서화 하여 산청군 관할 법원인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에 고인의 ‘호적정정의 소’를 제기하게 하였다.
*1998.5.4 사건 98호파286 호적정정 신청은 이유 있다고 인정하여 다음과 같이 결정한다는 고종주 판사의 결정을 받았다.
<주문 : 경남 산청군 삼장면사무소에 비치된 위 본적 김YS의 제적 중 사건본인(김갑석)의 출생 월 1월을 4월로, 사망사유 중 1950년 6월 15일 오전5시 산청군 삼장면 석남리469번지에서 사망을 1950년11월24일 00지구에서 사망으로 각 정정하는 것을 허가한다>라고---.
*당일로 등본을 교부받아 삼장면사무소에 제출하여 정정된 고인의 제적등본을 발급받아 부산지방보훈청에 보완서류 제출 지체사유서와 함께 접수하여 고인은 전사자로 등록되고, 미망인은 1998년 4월분부터 매월 574,000원(1998년도 기준)을 받게 되었으니 어려운 생활에 보탬도 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고인의 명예가 36년 만에 회복된 것이다.
# 나중에 안일이지만 유족인 황득점 할머니(생존)는 진주에 거주하는 황모 전우의 고모가 된단다.
- 김일근/팔공산 -
첫댓글 보훈 가족들에게 등대가 되어 주시는 김 일근 전우 에게 고마움을 전 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보훈수혜 대상에서 배제되어 억울?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김일근/팔공산 대구에 계신것 같은대 가끔 좋은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통화함 했어면 좋겠내요!01025158000입니다!
@김지송(Rokmc145) 출생지는 진주, 고향은 대구 팔공산 동화사 아래인 동구 백안동, 1959년4월 공군부사관으로 입대, 1964년12월 육군준사관 임관, 1965년10월 맹호 기갑연대 통신보좌관 파월, 1966년10월 귀국, 26사단, 1969년 통신기지창 마이크로웨이브 정비장교, 1970년9월 의원전역, 삼성전자 등 --. 1961년부터 (군복무시를 제외) 2016년6월까지 부산 동래에 살다가 경남양산으로 이주하였으며, 요즈음 건강이 좋지않아 긴 통화는 지양합니다만 전화하겠습니다. 010-8008-2625
단결~ 김일근고문님! 오랫만에 들어오셨습니다. 사모님 건강은 좀 어떻습니까?
지난번 삼성병원에 오신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아무튼 죄송하기 그지없습니다.
바쁘기로나 부지런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홍하사님--,
덕분에 집사람은 수술하였고, 요양중이나 4월말에 검진받아야 합니다.
염려 감사합니다.
김 고문님 좋은일 하시는 모습에 감탄합니다
그래서 인지 사모님도 요양중이라시니 더욱 반가운 소식입니다
고문님의 하시는 일이 우리 카페를 한층더 밝고 아름답게 만들고 있습니다
매사에 고밉고 감사한 마음 드립니다
직전회장님도 건강악화로 고생하시는줄 잘알고 있습니다.
나도 건강상 자주 들리지 못하여 답답합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김고문님의 수고하심에 찬사를 드립니다. 늘 건강하셔서 무지해서 억울함을 당하시는 모든 참전자가족에게 소망과 기쁨을 안겨주시기를 간절히 기원드립니다.
목사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