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중국 정부가 좋아 할리 없지요. 장개석 대만 정부이지만!
최규하 대통령에 관한 나의 구술(3)
구술자: 권영민 전 대사
구술일자: 2009년 9월 24일(목) 오후 3시 - 오후 5시
구술 장소: 한. 독 미디어 대학원대학교 총장실
구술진행: 연세대 박OO 교수, 장OO 교수
권영민: ... 그래서 (제가 최규하 총리에게) 아, “독일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최 총리 말씀인즉 “자네 외무부에서 인정을 못 받는 모양이군? 왜 또 독일이야?” 이러시더라고요. 글쎄. 자기는 이야기 한 마디도 안 해 주면서 말이 야요. (전화의 끝 부분)
Q. 좀 서운 하셨겠어요.
권영민: 이 분 별명이 있어요. 그 분 가까이에 있으면 안 봐줘요. 자기가 알아서 해야지. 비서실, 이런 사람들은 그 밑에서는 대개 오히려 손해를 봤어요. 저도 부이사관 될 때도 손해를 봤고 ... 반OO 씨 같은 이는 지금 유엔 사무총장 하시잖아요. 외무고시는 그 양반이 나보다 일 년이 아래에요. 그 양반이 초년병 때에 같은 과에서 나하고 시작을 거의 같이 했는데... 그래서 노OO 총영사보고, 인도로 가도록 종용한 것도 ... 김정기 대사라고 추후 주 사우디 대사를 하신 분하고 나하고 함께 종용하였지요.
그 때 당시에 인도대사가 (훗날) 노OO 총리였기 때문에 ... 그래서 인도 가서 꼭 노OO 총리한테 잘 보였고, 착실하고 훌륭한 분이기 때문에 그렇게 믿었지요 ... 그런데 최 대통령 이 분은 자기 밑에 사람을 그렇게 봐주시는 분이 아니에요. 그게 철저한 분이에요. 그래서 독일로 간다고 하니까 “자네 외무부에서 인정을 못 받는 모양이로군.”이러시는 분이니, 뭐라고 그러겠어요. 하, 참 ... 자기는 이야기를 않고 말 이예요. 하하하 ...
그런데 지난번에 박동진 장관을 뵈었더니, 우리 동료 어느 누가 자기 아버지를 통해서 자기를 워싱턴에 보내 달라고 그랬다고 ‘자격’운운 하시던데 ... 워싱턴에 가야 우리나라는 출세를 할 수 있어요. 왜 그러냐 하면 ... 한미관계가 우리나라의 중요한 관계거든요 ... 그러니까 독일만 다니니까, 이거 출세가 되겠어요?
그런 어른이에요. 음 ... 우리 국민들은 정말, 나도 다 끝나고 ... 이제 생각이지만 ... 우리 국민들은 ... 독일 국민하고 비슷한데 ... 우리나라에서 ‘통일은 됩니다.’ 언제 되느냐 하는 것은 모르지만 … 그런데... 통일된 뒤가 나는 더 걱정이에요. 내 참, 한 번 여쭈어 봅시다. 야당 지도자의 한 분인데 이런 이야기를 해요 … 야당 지도자의 한 사람인데 이박사보다도 더 위대하다고 해놓으니, 감정적인 우리 국민들이 말이 예요 ... 이승만 박사라는 사람은 우리나라 초창기에 건국한 사람인데 야당 지도자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지만, 어떻게 한 나라를 세운 사람하고 ... 이승만 박사보다도 더 낫다고 할 수가 있을까요?
또한 작은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는 아무리 똑똑하다고 하여도 일단은 제처졌습니다. 박 대통령의 생각으로는 외국 사람을 내려다 보는 사람이 외무부를 맞아야 된다고 생각하셨지요. 외무장관으로서 김용식 장관이 가장 컸고, 최대통령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키가 외무장관이 되는 첫째 조건인줄 알았죠. 윤OO 차관이란 분은 박 대통령이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외무부장관을 안 시킨 분이었고 … 뭐, 그건 둘째 문제 치고 ...
우리 국민들은 화합도 공무원들이 신경을 써야 할 중요한 것 중에 하나라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이 양반 임병직 장관의 이 회고록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자기가 임정 ... 미국 사람 누구를 만났더니 이 John Carter Vincent 라고 추후에 국무성 고관도 지낸 사람이지요. 이 분이 주중공사로 와서 외무성에 들어갔대요. 그 당시에는 국 공 합작 전의 일이거든요.
상해 임시정부 사람들을 담당하던 동아 국장을 만났다는 거예요. 이 당시 중국 외무성의 동아 국장이 뭐라고 하는가 하면 미국 공사한테요. “임정사람들을 승인해주면 어떠냐 ...”는 미국 정부의 이야기에 “우리도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사람들을 못하는 이유는 「임정 사람」들이 사상적으로도 갈려있다. 이거 야요. 더욱이 이 사람 이야기가, 특히 “중요한 분 파 중 하나로서 급진적이고 투쟁적이던「고려 혁명당」과 화합을 못 이루고 있습니다. 두 개의 분파, 즉 「임정 사람」들과 「고려 혁명당」 출신 인사들이 단합만 할 수 있다면, 중국 정부도 “승인문제”를 미국 측과 협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라고 말하고 동 Vincent의 견해로는 ‘이 두 분파의 화합은 요원하다고 본다.’라고 보고를 해 왔다는 거예요.
이 당시에도 관계각국에서도 한인 들의”분열“에 대하여 이미 알고 있어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는 바, 통일이 되어 보세요. 우리나라가 안 그런다는 보장이 있어야죠? 이건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이 당시에는 남북이 갈라졌는데 지금 또 정치적으로도 영호남이 갈라져요? 앞으로 몇 개가 더 갈라질지, 원! 그게 걱정이에요.
Q. 장개석 정부라...
권영민: 장개석 정부 때이죠. 반공정부로부터 승인도 못 받은 그런 상해임시정부 측의 사람을 ... 주재국과 같은 계열의 반공정부의 승인도 못 받은 사람을 우리가 핍박을 받았다고 더 높이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한국 민이 매우 감정적이라는 이야기 예요. 상당히 감정적이기 때문에 이런 속에서 현실적이고 이상적으로(rational) 뭘 할라고 하면, 참으로 어려워요. 통일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 통일이 되면, 상해 임시정부 꼴이 안 된다는 것을 어디 보장할 수 있겠어요. 제가 주독대사 할 때요. 독일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가 하면, 당신네 한국이 통일이 되면, 북한에 가서 소위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고 북한의 경제력에 맞게 조정하여 북한의 화폐와 남한의 화폐 간에 환율을 독일과 같은 불합리를 되풀이 하여, 저지르지 않도록 하라고, 신신 당부를 하면서 이와 같은 법을, 새로이 만들라고 주문 하던데요 ...
Q. 아, 그 이유가 뭡니까?
권영민: 복부인들이 지금 이북 땅을 그냥 두겠어요? 그리고 이북 사람들이 여기 와서 취직 한다고 난리치고! 그리고 그것이 잘 안되면 사람 차별 한다 뭐다 하여 야단을 칠 테고. 동서독이 통일이 되었을 때, 젊은 사람들은 ... 서독으로 많이 넘어 갔단 말이에요. 이성적인 독일사람 들도 젊은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갔고, 동독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할머니나 할아버지 밖에 없었으니까, 이 사람들은 전부 은퇴자고 그러니까 통일 후, 동독에 자금 1조 4천 4백억 유로를 지금까지 쏟아 부었어요.
서독에서. 그래도 저 모양 인데 ... 남북한이 못 한다는 것을 이 사람들은 뻔히 알면서도 하는 말씀이에요. 이 사람들은 MBC 방송국이 가장 안전한 미국 산 쇠고기를 못 먹게 하려고, 교묘한 방법으로 촛불 시위를 일으킨 사건도 훤히 알고 있고요. 그래서 통일할려면 아무래도 미국의 지원이 제일 중요하다고 기회있을 때마다 저에게 이야기하던 독일 정치인 들의 경고가 엊그제 같이 분명하게 남아 있네요. 북한이 목탄차 타고 다니는데, 당신 ... 우리들 인터뷰를 하는 교수들의 개인 생각을 이번엔 한 번 여쭈어 봐야지 ... 우리나라 군사력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해요?
Q. 지금 세계 6위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남한을 말씀 하시는 거죠?
권영민: 네 ... 6위면 북한을 ... 통일 가능한가요?
Q. 단독전쟁을 일으켰을 때요? 음 ... 거기 까지는 자신 있게 말씀 드리기 어렵겠네요.
권영민: 현대에 있어, 그 대치 (confrontation) 라는 것은 물론 제일 중요한 것이 무기에요. 이북 사람들이라는 것은 우리하고 ... 성능의 질 면에서는 다소 떨어져요. 질이 떨어지면 한 두 푼 이라고 이들 무기를 누가 사겠어요? 상거래가 주를 이루는 시장경제시스템과 자유 민주주의 체제는 계획하여 경제를 이끌고 가는 소위 공산주의체제하고는 다릅니다. 그러고 지금 이북이 안 쓴다고 그러지만, 한국 사람이 제일 위험한 한국에서 살고 있다고 그래요! 영국에서 나오는 저, 디펜스 포럼이라고 있어요. 거기서도 그랬는데 ... 남북한의 경쟁은 난 끝났다고 봅니다.
거기서도 그래요. 우리가 다섯 대라고 그러지만, 북한이 가지고 있는 잠수함이 몇 대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낡았지만 말이지요. 그러니까 그거 ... 비행기도 미그 21기를 북한이 많이 가지고 있다고 우쭐댔지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F15기 숫자 만큼은 북한이 갖고 있을 것 아니겠어요. 미그21기를 F15기 숫자보다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겠어요? 북한이 갖고 있는 미그 기 말이 예요. 숫자 면에서는 경쟁이 안 돼니,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살 특공대 이야기는, 머리를 세뇌한 북한사람들에서는 비교적 손쉬운 이야기지요. 그래서 남한은 위험하다 이겁니다.
그러나 북한이 목탄차 타고 다니는 것까지도 다 알아요. 광우 병의 원조인 영국에서 병이 확산되었지마는 독일과 스위스에서도 광우 병이 났을 때, 북한 사람들은 이광우 병이 난 쇠고기를 달라고 하여, 광우 병이 안 난 쇠고기를 준 적이 있지요. 유일 체제인 북한 에서만 가능하고 아무리 광우 병이라도, 인간에게는 안 옮는 다는 것을 아는 거지요?
독일 사람들이. 그러면서도 우리가 제너러스(generous, 관대)해야 한다는 것을 다 알아요. 힘이 있는 자가 제너러스(관대) 해야 되나요? 힘이 없는 자가 제너러스(관대) 해야 되나요? 힘이 있는 자가 제너러스 해야 돼지요. 대통령이 관대 (제너러스) 해야 되나요? 국민이 관대(제네러스) 해야 되나요? 국민과 대통령이 관대(제너러스) 한 시합을 하나요? 근데 대통령이 제너러스(관대)하면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을 깔보고 ... 힘을 쓰면, 아~ 저 잘 한다 이러고, 참 우리나라 국민은 이상한 국민이에요.
그래, 내가 맨 처음에 간 외국이 오지리 에요. 오스트리아. 그 때 크라이스키 수상이라고 있었는데 이 사람은 일요일만 되면, 이 비닐 봉 다리를 들고 번화가 거리에 다니면서 쇼핑을 해요. 어느 나라 수상이 아무리 당시에 구라파라고 하지만, 그렇게 하겠어요. 이 사람은 본래는 유대인이었었죠. 물론 오지리 수상으로서 자기를 오지리 국민들이 그렇게 하도록 격려한다는 것 예요.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보다도 분단의 가능성이 더 높았던 곳이 오지리 입니다. 이런 덕분에 정치인들이 분단 가능성을 피하고 억제하고 이렇게 해가지고... 이 사람은 나한테 “대한민국 대통령은 제너러스 해야 됩니다” 하는 이야기를 자주 하더라고요. 여유가 있어야 된다. 그리고 아량이 있어야 된다고 강조를 하였죠.
70년대 초 예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 그러면 당시에 김대중씨나 같은 부류의 야당 인들 한 테 좀더 잘하라는 거지요. 그러나 그들은 경부 고속도로 설치를 반대하였던 사람들인데 “노벨”상 이다 뭐다 하고, 목소리를 높여 가는 방법으로서, 남의 나라 정치인들인 … 독일 정치인들의 영향력을 많이 받았쓰니까요. 그만큼 우리 국민들은 순진하여 몰랐던 것이 지요. 그 당시만 해도 6.25이전의 영향력 때문에 외국이라면 무조건 좋아했으니까요!
그리고 내가 아까 말씀 드렸지만,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의 공통된 현상이 있어요. 이 사람들은 국가관이 투철해요. 박정희 대통령을 내가 만난 적이 있는데 이야기를 할까요? 하루는 청와대를 올라갔는데 내가 양지 회 일을 가지고 2부속실에 갔는데, 그 이유는 최규하 대통령 사모님이 크고 작은 결정을 잘 안 하세요. 모든 결정은 육영수 여사가 하시게 만들었지요 ... 그래서 갔지요 ... 근데 육영수 여사는 사무실이 있단 말이 야요 ... 사무실이 어딘가 하면 제2부속실이라고 있었어요. 그곳에 김OO 비서관 이라 던지 미세스 정 이라 던지. 다음에 나OO씨도 있었고. 이 분들 통해서, 내 배포 계획를 만들어 가지고 가서 간접적인 보고를 드렸단 말이야 ... 지금은 없어진 그 청와대인데 ... YS가 다 때려 부셨지요...
Q. 건물을요?
권영민: 예, 건물이요. 옛날 청와대. 이승만 대통령도 사셨고 박정희 대통령이 사셨고, 거기서 쭉. 그 최규하 대통령도 사셨는데... 그 조선 총독부 총독관저죠. 일본 냄새가 난다고 추후에 YS 가 부셨지요. 근데 ... 그곳에 들어 가면은 여기 서재가 있는데, 서재에서 이층을 올라가면 각하 퇴청 ... 요렇게 나오면, 여기가 의전 비서실 있고 여기가 경호실이 있고, 이층으로 올라가서 ... 비서실장 실이 있고 그 앞에 영부인 부속실이 있고 그 뒤로 들어가면, 이층에서 관저로 통하는 길이에요. 근데 여기 올라갔는데 여기 제2부속실에 올라 가는데,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2층에서 들려요.
그러더니 대통령께서 내려오시는 것이 아니겠어요. 놀래가지고 이렇게 서 있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 키 조그만 양반. “어디서 오셨어요?” 하고는 나를 쳐다보고 웃어요. “외교부 에서 올라 왔습니다.”라고 부동자세로 말 했더니 “어 휴," 이 분 말씀이 … "굉장히 멀리서 오셨구만요 ... 부동 자세를 취하는 것을 봐서 대통령 앞이라고 굉장히 얼었고 만요. 나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대통령께서 그러시더라고요. 웃으시면서. 내가 ... 부속실에 들어가 꾸벅 절하고, 서류를 놓고 나오려고 하는데, 나OO씨가 그걸 줍디다. 넥타이를 두 개 주셔서, 그 넥타이가 지금은 없어 졌어요. 고 육영수 여사가 주셨다고 하면서 ... 그때가 8.13.인가 그랬어요. 그런데 박 대통령을 포함하여 대한민국의 지도자 들은 국가관이 참 철두철미 한 게 있었어요. 이게 누가 없다는 게 아니라 우리 국가지도자들이 그렇게 다 어느 분이나 그런 게 없으면, 국가 지도자가 되질 않습니다. 일반사람들하고는 달라요. 우리 국가 지도자들은 정말 뛰어난 뭔가, 그런 게 있다고 ... 그러니까 지금처럼 호황을 이루죠. 단군 이래 ... 근데 이런 호황을 이룰 수 있었던 게,
왜 그러면 됐느냐 이거에요. 우리 국민은 위대한 국민이죠. 우리 국민보다는 우리 지도자 들이에요. 우리가 가지고 있던 지도자 상 들이 굉장히 중요했었어요. 초창기에는 ... 이승만 박사, 우리가 그렇게 욕하고 뭐하지만, 이승만 박사가 토대를 놓았지요? 박정희 대통령, 요새 와서 독재다 뭐다 하지만, 경제발전을 이룩했습니다.
그 밑에서 최규하 대통령도 경제에 박대통령이 몰두하실 수 있도록, 외교 분야 책임을 졌고요 ...
내가 공간장을 하는 기간, DJ를 두 번씩이나 만났습니다. 그때 보니까 이분도 나라 걱정을 많이 하드군요. 이분은 나의 대선배로서 내가 매우 존경할 분이더군요. 해외 공관장으로서 애틀랜타 있을 때, 우리 집에 오셔서 두 번 저녁을 했는데. 그 때 총영사인 저로서는 분명히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나라 정치 민주화를 이룬 것은 선생님 보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기여가 굉장히 크다”라고 그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내외분께서 오셨더군요. 자기들이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되어야지 민주화가 이루어지지요. 경인 고속도로 놓는데도 그 반대다 뭐다 하고 난리를 치고. 그래서 그 후, 소위 IMF 사태 이후에 그 누군가가 소위 경제문제에 있어서 우리나라 지도자들의 역할과 관련하여 IMF사태를 극복하는데 큰 기여를 하셨다고 추켜 세웁디다. 또 그를 위해 큰 기여를 하셨구요.
생각해 보면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사람들이 IMF 사태를 만들고 이를 수습하느라고 국민을 고생시킨 것밖에 더 있나요? 또 민주화를 위해서 지방자치제를 했지만 소위 지방자치제를 해놓고 보니까 ... 지방자치 재정자립도가 20 몇 프로밖에 안 되는데, 사무실을 그렇게 늘려놓고, 빚더미에 올라가 있는 지방자치제가 많잖아요. 이것이 이들이 이루어 놓은 결과예요.
Q. 재정 자립도가 상당히 낮지요.
권영민: 낮지요. 그러니 중앙정부만 쳐다보고 중앙정부에서 ... 지금 인터뷰를 하는 교수들 생각은 어떠세요? 보시기에. 재정 자립도가 저렇게 낮은데, 우리나라 같이 이제 발전해 가는 작은 나라가 진정한 민주화가 됩니까?
그 중의 하나가 중앙정부에서 노(no)하고 예산을 안주면 ... 재정자립도가 낮은데 ... 생각대로 실질적인 민주화가 되겠습니까?
위에서부터 확고한 철학이 없다면 말 예요. 그걸 우리가 알아야 돼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지도자들의 의지로 다른 나라에서 못 본 민주화를 이룩한 것이었지요. 그건 둘째 쳐놓고, 하여튼 우리 지도자들로서는 이루어 놓은 것이 굉장히 크다. 하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종합적으로 말씀 드립니다. 그걸 꼭 좀 우리 국민들이 앞으로는 지켜가야 될 것 같아요. 그리고 ... 소위 우리가 말하는 민주 투사 ... 나는 다 보지 않았습니까 ... 이 사람들이 어떻게 했다는 것을 ... 미안한 이야기지만 말이 예요. 앞으로는 이들도 배워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박대통령은 그렇게 검소하게 사셨어요. 박정희 대통령이 말이 야요. 그분이 청와대 변기에 물을 아끼려고 벽돌을 넣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이야기지요 ... 그리고 동국대의 박 모 교수라고 , 이OO 선생(시인) 있죠? 시인 ... 그 분이 한 번은 육 여사께서 돌아가신 뒤, 박정희 대통령이 퇴청하신 뒤에 사람들을 오라고 해서 갔는데 ... 청와대에 올라갔더니 박정희 대통령이 꾸부리고 앉아서 양복바지 깃이 떨어졌는지 이걸 짓더라고 그러면서 눈물이 글썽해가지고 ... 그 코도 크고 동국대학 선생님 있었잖아요 ..." 그런데 우리나란 말 이예요. 그 지도자를 그때그때 필요한 때에 잘 만났어." 우리나라는 정말 찬란한 역사에 지도자 들 만큼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그때 그 때 잘 나왔다고. 이래서 대한민국의 국운이 상승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나라가 잘될 수밖에! 이건 제 이야기가 아니고 일본 사람들도 그런 이야기를 해요.
최규하 대통령은 짧게 했어요. 1년도 못 했지 만은 ... 총리를 몇 년 했으며 외무장관은 최 장수 외무장관이었죠 ... 거기다가 외교안보수석 그걸 했으니 ... 그게 몇 년이에요. 십 ... 사오 5년인데 ... 그럼. 장관급 하고 총리만 한 게 68년 서부터 79년 까지 예요. 그러니까 이 분이 우리나라에 기여한 게 굉장히 많아요. 근데 우리 국민은 그런 걸 안 알아준다 그거 야. 내가 답답한 게 그거 야요. 하, 우리나라는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금세기 초에 나라를 주변국에 잃어버렸던 그런 어려움을 다시는 당하지 않을 거예요.
나는 손가락에 절대 장을 지져요. 제가 청와대에서 부속실에 있다가, 서구과장으로 내려왔어요. 그 당시에 전두환 대통령이 되셨는데 권정달 선생이 대령일 때이에요. "권정달 입니다" 하고 이러던 분이 하루아침에 집권 여당의 사무총장이 됐죠 ... 저 같은 놈이 보이겠어요 ... 그 양반은 사람이 커요 통이. 전두환 대통령도 통이 크다고요. 그 양반들이 어찌됐던 그래도 우리나라를 끌어온 지도자예요. 경제를 계속 발전시키고. 전 대통령은 한두 가지 잘못은 저질렀다고 하드라도, 그때그때 국가의 필요에 의해서 불려온 분들이죠. 통이 크니까요 ...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 양반들이 일 안하고 우리나라를 망치려고 했다면, 망칠 위치에도 있었어요.
Q. 최규하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이 상당히 두터웠네요.
권영민: 상당히 두터웠어요. 신임이 높았죠. 박정희 대통령이 생존해 계시다면 자기 후계자로 삼으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추후에 알았습니다. 음 ... 그랬다는 것을 알았지요. 그 당시에는 우리는 그런걸 ... (아, 당시에는) 몰랐어요. 미안한 이야기지만 우리나라 현대 정치인들이 지역감정 문제는 잘못 했어요 정말. 왜 지역감정을 부추겨 놓습니까? 왜요? 왜, 나라의 장래를 생각한다는 사람들이 ... 그러나 우리나라가 지금 현대사에서 단 군이래 처음으로 부유한 발전과정을 겪고 있지만 지역감정문제는 잘못했다 이거 야요. 그런데, 우리 국민이 독일 국민하고 비슷합니다. 빨대만 있다면 확 끌려가요. 빨대만 있다면... 독일국민이 히틀러라는 그런 사람에 다 끌려가듯이 ... 박정희 라는 사람에게 도취되어 있었지요.
근데 독일이 ... 통일이 된 것이 언제냐 ... 프러시아 때 처음 통일 되었는데 그전까지는 독일 연방이에요. 왕국 ... 내가 이 당시에 관해 쓴 것도 이 방안에 많아요. 여기 뭐가 있었는가 하면 지역감정과 관련 ... Bonn에 케네디 Bridge라는 다리가 있었어요. 케네디 Bridge가. 그 다리를 Beuel이라는 강 건너 도시하고 협력하여 놓았죠. 그런데 케네디 Bridge에는 어린애 똥싸개 동상이 붙어 있어요. Scheisse 동상’이라고 현지에서는 그래요. 샤이세라는 게 독일 말로는 영어로는 쉿(shit)인데, 독일말로는 샤이세라고 하면 제일 나쁜 욕이에요. 똥이라는 얘기죠. Bonn은 ... 저 독일 왕국이고 ... Beuel은 프러시아에요. 여기서 달라져요. 저 Rhine 강에서 ... 근데 60년대 초에 이 다리를 놓자고 Beuel하고 Bonn이 합의가 되었단 말이야. 합의가 되어서 놨는데 ... 이쪽 Beuel 사람들이니까 Kennedy한테, 케네디 브릿지(다리)라고 생색내려고, Bonn 사람 들이 하면서, 지역사회 개발이라고 Beuel쪽에 대고는 말하는 거야. 그러니까 Beuel쪽 사람들이 의회에서 보이콧 했어요. 돈 내는 걸 ... Bonn 사람들이 가만 생각해 보니까 저놈들 Beuel 놈들이 나쁜 사람들이거든요 ... 그래서 똥싸개 동상을 그 브릿지에다 만들어 놨다고 ... 독일에서 지독한 욕이거든요.
그런 것은 사람이 살다 보면, 어디나 다 있습니다. 우리도 정치지도자 들 중 적은 숫자 이지만, 다 흡수되는 흡인력이 있거든요. 독일 사람들도 그래요. 그런데 ... 그게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이거 야요.
그러고 나서는 박정희의 대통령 향수가 있어서, 원주 출신인 최규하 대통령은 개떡이고 영호남 간에 정치적으로 갈라져요. 지금도 영남의 표가 대통령 되는 데는 한국에서 중요한 변수이지요. 남북이 갈라진 데에 이어, 정치적으로 또 갈라지는 거예요. 한심한 이야기지요. 그래서 DJ는 호남이다 YS는 또 영남이다 그래가지고 갈라져요.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이를 결과적으로 고무한 적도 있지요, 슬픈 이야기지만 ... 제가 느끼는 것은 말씀 드렸지만, 그러나, 우리나라는 세기 초에 겪던 어려움을 더 이상 겪지 않을 것이란 점을 아주 제가 손가락을 걸고 말씀드릴 수 있겠어요. 어려움을 다시 겪으면, 제 손에 장을 지질 꺼 예요. 여러분 ... 오늘은 이것으로 끝내지요. <계속>
<권영민/아산 평화포럼 공동대표/주(駐) 독일, 노르웨이. 덴마크 대사, 애틀랜타 총영사 역임/저서: "자네 큰 실수 했네", "자네 출세했네"/서울대 문리대 독문학과 졸/아산 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