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게 물든 달력...故이선호 산재 이후 속보로 알린 사망사고만 49건
43일 동안 안전보건공단 사망속보 없던 날은 9일뿐...“누락된 사고도 있을 수 있어”
평택항 고 이선호 사고 이후 6월 3일까지 안전보건공단 사망속보ⓒ민중의소리
경기도 평택항에서 이선호(23) 씨의 산재사망사고 발생 이후 43일 동안 누군가 일터에서 죽었다는 ‘안전보건공단 사망사고 속보’ 없이 조용히 지나간 날은 겨우 9일뿐이었다. 안전보건공단 속보가 즉사에 가까운 중대사고만 다룬다는 점에서 누락된 사고까지 합하면 조용히 지나간 날은 이보다 더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43일 동안 속보 없던 날은 9일뿐
하루에 3건 이상 속보 발생하기도
최근 16일 동안은 빠짐없이 발생
평택항 故이선호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한 지난 4월 22일부터 이달 3일까지 43일 동안 안전보건공단 사망사고 속보로 다뤄진 일터에서의 사망사고는 총 49건이다. 43일 중 누군가 일터에서 죽었다는 사망사고 속보 없이 조용했던 날은 5월 1일·2일·4일·5일·10일·14일·15일·16일·18일뿐이었다.
5월 20일·27일·29일은 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에 하루에만 3건 이상의 사망사고 속보가 올라왔다.
화물노동자 사고 자료사진ⓒ화물연대본부 제공
5월 20일 전라남도 광양시 제조업 사업장에서 자동절단프레스 이동레일과 컨베이어 사이에 안면부가 끼이면서 한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고, 경상남도 함안군 제조업 사업장에서 정지 상태에 있던 이송용 로봇팔이 NC선반 내부로 진입하면서 노동자가 NC선반 내부로 말려 들어가 사망했으며, 경상남도 거제시 선박건조 사업장에서 선박 내 배선 설치를 위해 이동 중이던 노동자가 추락해 숨졌다.
5월 27일에는 경상북도 안동 지하수 관정 개발공사 현장에서 이동식 크레인으로 자재 인양 중 자재가 떨어지면서 2명이 크게 다쳤다. 같은 날 인천 주택 재개발 정비사업 현장에서 굴착기로 흙막이 구간 메우기 작업 중 아래에 있던 노동자가 떨어지는 돌에 맞아 사망했고, 전날 세종시 쌍용 씨앤비(C&B) 작업장에서 컨테이너 문을 열다가 쏟아지는 압축 폐지더미에 깔려 병원으로 이송됐던 화물노동자 장창우(52) 씨가 이날 숨졌다.
5월 29일에는 충남 아산의 한 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산업용 로봇 용접 작업 중 제품을 꺼내기 위해 기계 안으로 들어갔다가 끼여 숨졌고, 강원도 홍천 우수관로 공사 현장에서 절토면 토사가 붕괴되면서 매몰돼 한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같은 날 세종 골재 제조 사업장에서 에어컨 수리작업 후 계단으로 내려오던 노동자가 추락해 숨졌다.
5월 19일부터 이달 3일까지 16일 동안은 하루도 빠짐없이 일터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4월 22일부터 6월 3일까지 발생한 49건의 사고 중 유족의 목소리를 전하거나 사고원인을 파악하는 등 여러 언론이 집중보도한 사고는 ‘평택항 故이선호 산재사망사고’와 ‘쌍용 씨앤비 故장창우 화물노동자 산재사망사고’ 정도였다.
평택항에서 일하다 산재로 사망한 고 이선호 씨 조문하는 문재인 대통령.ⓒ청와대
실제 사망사고 49건보다 많을 수도
공단 관계자 “일부 누락될 수 있어”
노동계·유족 “근본대책 마련해야”
안전보건공단 사망사고 속보의 취지 및 운영방식 등을 고려하면 실제 중대재해사고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사망사고 속보’는 산재사망사고에 대한 대국민 경각심 고취와 동종업계에 위험을 알리기 위한 취지로 지난 2019년 8월부터 운영을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산재사망사고 통계와는 차이가 있다.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재해자가 병원으로 이송되어서 며칠 있다가 돌아가신 경우, 사망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 등은 속보에 올리지 못하기도 한다”라며 “사망속보로 통계를 내려고 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9년 10월 30일 부산 경동 리인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추락 사고는 사고를 당한 노동자가 병원에 실려 가 이튿날 숨지면서 안전보건공단 속보로 다뤄지지 않았다.
끊이지 않는 산재사망사고로, 노동계와 산재사고피해 유가족들은 연일 산재사고를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는 오는 7일에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 해결을 위한 긴급 비상조치를 촉구할 예정이다.
한편, 최근 반복되는 산재사망사고로 고용노동부는 4일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 주재로 서울지방노동청에서 ‘산재 사망사고 위기대응 TF 대책회의’를 열었다.
노동부는 대책회의를 통해 법 위반 사업장에 대해서는 엄정한 행정·사법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또 중대재해 사업장의 경우 작업 중지를 원칙으로 하되 노동자 안전이 확보되는 경우 한해서만 작업 중지를 해제키로 했으며, 원청이 산업안전보건법상 하청노동자 안전관리 책임을 지도록 적극적으로 점검·감독하기로 했다.
안 장관은 “산업현장에서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이 최우선 요소로 고려되지 않는다면 산재 사망 감소는 이루어지기 어렵다”라며 안전수칙 준수를 위한 각고의 노력을 당부했다.
고용노동부는 3개월 단위로 산업재해현황을 정리하여 발표하고 있다. 최근 노동부 산재예방정책과에서 낸 ‘3월말 산업재해 발생현황’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재해자는 총 2만3464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40명 늘었다. 같은 기간 사망자는 238명이며, 전년 동기 대비 15명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