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11아! 황악산 인고의 시간은 더디가고 설화속에 묻허가네(산행후기)
아! 황악산 인고의 시간 한없이 더디가고 설화속에 묻허간 김천 황악산 산행 버스멀미로 인해 컨디션이 안좋은 것은 알았지만 충분하게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산행을 시작한지 바람재까지는 괜찮아는데 이후부터 한없이 더디 흘려가는 인고의 시간들이 기다리고 걷는 걸음에서 현재의 내컨디션이 상당하게 안좋은 쪽으로 지나감을 느낀다.
다행스럽게도 날씨가 영상으로 계방산 처럼 불어오는 칼바람과 혹한의 한파가 없어서 그나마 떨어진 체력을 덜 떨어지게 만든다. 버스에서 멀미한 것이 계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한발 한발 띄는 것도 물을 먹은 눈송이 처럼 천금만금 몸을 힘들게 하고 아이젠은 했지만 이로 인하여 얼어붙은 눈이면 좋은데 영상의 날씨로 눈은 녹고 녹은 눈에 산행로의 낙엽들이 노출되면서 아이젠에 붙은 낙엽들이 등산화 무더기로 붙어 연신 나무에 틀어내지만 곧 같은 것의 연속이라 몸은 무거운데 걷는 걸음을 더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한다.
산행로는 무릎깊이 눈은 쌓여있지만 영상의 날씨에 물을 먹은 눈이라 걷는 걸음걸이가 불편하고 바닥으로 향하고 가고 있는 체력은 컨디션난조가 계속 찾아온다. 선두리딩을 자처했지만 이미 선두그룹은 눈앞에서 멀리 사라저 가고 중간그룹에 속해 걷는다. 눈에 띄게 걷는 걸음은 불편하니 나를 알고 있는 모두는 조금은 이상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황악산 이는 지도상에 정식으로 나와있는 고산준령의 재와 봉우리을 제외하고 하나의 재를 넘으면 또하나의 작은 봉우리들을 만난고 이를 또 넘으면 새로운 봉우리가 나타나고 이렇게 그 끝을 알수 없는 백두대간 중 황악산 백미구간에 접어든 것이다.
들머리인 해발 870m인 우두령에서 시작하여 삼성산 여정봉 바람재 황악산 백운봉 운수봉 직전 절뒤고개까지는 백두대간 일부코스이고 궤방령 지나 추풍령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길에서 우두령에서 백운봉까지는 황악산백미구간이기도 하다. 백두대간에 주 능선길에서 사방을 돌아보면 백두대간 산마루금들이 하얀눈을 안고 한눈에 들어온다. 마루금은 이렇게 좋은데 이미 컨디션 난조는 더 심해지고 걷는 걸음에 이상이 느껴 비타민제를 복용하지만 속은 매스껍고 울령거리이니 몸하고 걷는 걸음하고 머리가 따로 논다는 느낌이 드는 것처럼 힘든 걸음을 옮긴다.
함께 동행하든 중간그룹도 어느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지고 지치고 힘든몸 홀로 걷는데 후미를 형성하는 작은거인회장님 일행분과 합류가 된다. 이 또한 황악산 이후 다시 시야로 사라지고 후미그룹으로 걷는다. 그 만큼 내 몸상태는 최악은 아니지만 안좋은 상태였고 때문에 이 여파로 평소 산행을 하면 서 선두에서 100여장 이상 사진을 담는데 오늘은 사진을 담을 기력조차 없으니 눈앞에 펼쳐지는 황악산의 백두대간 주능선에서 설화나 아름다운 겨울 서정의 풍광과 정취들을 사진으로 담아내지 못한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걷는 걸음이 평속 2.0km/h정도로 떨어지면서 앞으로 가야하는 시간들은 점점 멀어저 간다. 또 하나의 산을 넘어가면 또 하나의 산이 버티고 있고 오르락 내리락 기울려진 체력은 컨디션 난조에 방전된 바닥으로 앞 당기고 가야 할 황악산은 점점 멀어지고 어느 산악회에서 온 산객분들은 거침없이 걷고 돌파하는 것이 부렵게 느껴지고 평소의 나였다면 전혀 느낄지 못할 산행이거만 한계를 향해 가고있는 내 몸상태가 그들을 부렵게 보는 것아다. 어찌하라 내 몸상태로 좁은 산행로에서 피해주고 피해주면서 황악산 가는 백두대간 주능선을 타고 있는 것이다.
황악산 그 자체가 인고의 시간이 되어 하나의 재와 봉을 넘어면 또하나의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어 내려갔다 올라왔다 수없이 산행을 하니 그나마 조금 남아 있는 체력들도 더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한다. 그렇게 몇번의 재와 산과 봉을 넘어 마주하는 것이 황악산 그 황악산을 목전에 두고도 직전 있는 쉼터에 앉아 떨어진 체력을 보충을 한다. 산행내내 물을 먹은 눈과 낙엽의 더미에 좀처럼 아이젠을 붙어 걷는 걸음을 힘들게 하고 물을 먹은 눈이니 체력은 고갈 상태인 방전으로 몰아간다.
황악산 정상에서 돌아보면 백두대간 마루금들이 한눈에 파노라마 처럼 시야에 들어오는데 이도 사진을 담지 못한다. 평소라면 사면에서 마루금을 담아내는데 그 아름다운 겨울 설경과 풍광을 볼 마음의 여유조차 없는 것이다. 체력은 방전상태로 가고 있고 그나마 황악산 부터 백운봉에서 직지사에 이르는 길이 내리막 길이라 조금은 나은데 컨디션 난조에 빠진 체력은 쉽게 회복되지 못한다. 황악산에서 내려오는길 체력의 극한상태가 느껴지고 설상가상으로 무리하여 산행하다 보니 근육통에 다리에 쥐현상 까지 있어 배냥속에 있는 응급약인 근육이완제와 소염진통제를 복용한다. 지금것 의례 산행을 하면 응급약품을 가지고 다니는데 나를 위해 한번도 복용한 적이 없는데 오늘 황악산 산행에서 이를 복용을 한다. 이후 그 약효과인지 바닥을 보이든 체력들은 조금씩 회복이 된다.
백운봉 지나 절뒤고개 쉼터에서 조금 쉬어가니 조금씩 체력은 회복이 되어 무거웠든 몸은 약간은 가벼움이 찾아오지만 여전히 한번 떨어진 체력은 방전직전까지 간 후에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하면서 힘들고도 힘든 산행을 한 것이다. 황악산 구간은 백두대간길을 걷는 것인데 그 주능선의 아름다운 눈내린 겨울 풍경과 아름답게 핀 눈꽃인 설화를담아 내지 못하고 즐기지도 보지도 못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앞만 보고 산행을 했으니 황악산 구간은 인고의 시간이 되어 더디 지나가고 흘려간다.
운수암을 지나 직지사 가는 차도를 따라 걷는다. 황악산 산행후 시간을 내여 조계종 제8교구 본찰(사)인 김천 직지사 말사만 하여도 62개 많은 암자도 있는 산사 절집을 구석 구석돌아보면서 사진을 담을려고 했는데 컨디션 문제로 직지사에 도착한 시간이 이미 4시를 넘겨 당초 생각했든 직지사 경내를 보지 못하고 일주문 까지 갔다가 주차장으로 향한다. 직지사는 천년 고찰이고 강원(불교 승가대학)이 있어 스님들의 교육 사찰인데 지금 사미와 사미니계 수료 교육이 한참 진행중이고 대웅전을 비롯해 석탑들이 대부분 보물이고 성보 박물관을 보지 못한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
직지사는 웬만한 성처럼 높디 높게 있는 담벼랑에서 구중궁궐 같은 분위기에 외부인 접근을 차단한 커다란 장애물 처럼 느껴진다. 이는 직지사가 스님들의 강원과 학원으로 승가대학으로 특화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조계종 제8교구 본사로 큰 가람이고 고구려대에 만들어진 천년사찰인데 어는 산사의 절집에 비하면 폐쇄성이 있어 보인다.
황악산 산행은 나에게 있어서 버스 멀미로 인한 컨디션 난조로 어떻게 직지사까지 내려왔는지 모를 정도로 인고의 시간은 더디만 간 황악산 산행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날씨가 도와주어 체력이 방전되었지만 걷는 속도는 느리지만 별 탈없이 안산하면서 황악산 산행을 끝맺음한 것 만으로도 내 자신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경험하지 못한 좋은 경험을 하였고 힘든 나에게 매실차.육포.과일류.커피.초코파이.베지밀을 건내준 산벗님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 힘들었지만 함께 동행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직지사에 접어드니 내면교에서 봄이 오는 소리를 듣고 겨우내 얼어있든 얼음들이 녹으면서 개울물은 졸졸 흘려 내리고 입춘을 지나 우수가는 길목에서 봄의 전령들이 새봄이 오고있는 봄의 길목에서 직지사 개울은 황악산 산행에 지친 산객에게 수고했다고 위로의 말을 직지사 개울은 봄이 오는 봄의 뜨락에서 말을 건내주는것 같다. 고맙습니다.
산행코스)
1.들머리..백두대간 우두령 09:55
2.삼성산 11:07
3.여정봉 11:52
4.바람재 12:25
5.형제봉 13:32
6.황악산 14:01
7.백운봉 14:46
8.직지사 내원교 15:55
9.날머리.. 직지사 일주문 16:13
산행정보)
1.총 거리: 13.4km
2.소요시간: 5시간 50분
3.평균속도: 2.2km/h
덧붙임..김천 직지사 경내를 돌아보지 못한 아쉬움에 직지사 관련 공유된 자료를 올립니다. 직지사를 제대로 보기위해 중요내용은 대부분 숙지했는데 보지 못한 아쉬움 특히 대웅전과 앞 석탑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 황악산 산행이었다.
도움말) 김천 직지사
直指寺
요약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황악산(黃嶽山)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승려 아도가 창건한 사찰.
시대고대/삼국/신라건립시기418년(눌지왕 2)성격사찰유형유적소재지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직지사길 95분야종교·철학/불교
개설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이다.
역사적 변천
418년(눌지왕 2) 아도(阿道)가 창건했다고 한다. 직지사라고 한 데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아도화상이 선산 도리사(桃李寺)를 창건하고 황악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쪽에 큰 절이 설 자리가 있다’고 하여 직지사로 불렸다는 설과, 고려 초기에 능여(能如)가 절을 중창할 때 절터를 측량하기 위해 자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손으로 측량하여 지었기 때문에 직지사라고 하였다는 설, 선종의 가르침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에서 유래된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창건 이후 645년(선덕여왕 14)에 자장(慈藏)이 중창하고 930년(경순왕 4)에 천묵(天默)이 중수하였으며, 936년(태조 19)에 능여가 태조의 도움을 받아 크게 중창하였다. 당시의 중요 건물로는 대웅대광명전(大雄大光明殿)·대비로금당(大毘盧金堂)·극락전·원통전(圓通殿)·지장시왕전(地藏十王殿)·응진전(應眞殿)·설법전(說法殿)·선등각(禪燈閣)·대장전(大藏殿) 등이 있었다. 현재 금석문으로 남아 있는 대장전비에 의하면, 이 절의 대장전에 금자사경(金字寫經) 593함(函)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1399년(정종 1)의 중건과 1488년(성종 19) 학조(學祖)의 중수가 있었으며, 1596년(선조 29) 왜병들이 불을 질러 43동의 건물 가운데 천불전(千佛殿)·천왕문(天王門)·자하문(紫霞門)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타 버렸다. 이때 법당 앞에 있던 대형 5층목탑도 함께 소실되었다.
그 뒤 1602년부터 70여 년에 걸쳐 절을 중건하였는데, 1681년(숙종 7)에 조종저(趙宗著)가 쓴 사적기에 의하면, 당시의 규모가 8전(殿)·3각(閣)·12당(堂)·3장(藏)·4문(門)에 정실(正室)만 352칸에 달했으며, 부속 암자는 26개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805년(순조 5) 이후부터 사세(寺勢)가 차츰 기울기 시작하여 퇴락을 거듭하게 되었다.
현대에 이르러 대대적인 중건에 착수하여 1966년부터 1981년 10월까지 10동의 건물을 중건하고 10동을 이건했으며, 9동을 중수하였다.
내용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보물, 2008년 지정)을 비롯하여 비로전, 극락전, 응진전, 관음전, 남월료(南月寮), 명부전, 약사전, 설법전, 만덕전, 조사전, 제하당(齊霞堂), 명월료, 청풍료(淸風寮), 사명각(泗溟閣), 범종각, 일주문, 금강문(金剛門), 사천왕문 등이 있다.
이들 가운데 1735년(영조 11) 태감(泰鑑)이 중건한 대웅전은 앞 뜰에 2개의 삼층탑이 놓여 있는 2탑식 중정형 가람배치를 가지고 있으며, 이와 같은 가구의 구성 및 부재의 표현기법은 조선후기의 건축적 특징을 잘 드러낸 것이라고 한다.
대웅전은 2008년 지정된 보물로서 내부 중앙의 수미단(보물, 2015년 지정)에는 석가모니불, 좌우에 약사여래와 아미타불이 봉안되어 있으며, 후불탱화로는 영조 20년에 조성된 삼존불탱화(보물, 1980년 지정)가 있다.
비로전은 천불전이라고도 하는데, 조선시대에 경잠(景岑)이 경주의 옥석(玉石)으로 만든 천불상과 1852년(철종 3)에 조성한 석가모니불·비로자나불·약사여래, 1886년(고종 23)에 조성한 신중탱화(神衆幀畵)가 모셔져 있다. 이들 천불상 가운데에는 나아상(裸兒像)이 있는데, 첫 눈에 이 나아상을 보면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극락전은 서전(西殿)이라고도 한다. 극락전은 1986년 주지 혜창 화상에 의하여 중창되었다.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이며 총 59.64평으로 비교적 큰 건물이다. 1999년 새롭게 개원을 하여 현재는 선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응진전은 931년(태조 14) 능여 대사가 창건 하였으나 임진왜란에 모두 불탄 후 1656년(효종 7) 관음전으로 중건되었다가 뒤에 응진전으로 바뀌었다. 지금의 건물은 1970년 주지 녹원(綠園)에 의하여 중수 되었다. 남월료는 사중의 강당으로서 현재 직지사 승가대학(강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청풍료는 1971년 주지 녹원에 의하여 신축되었는데, 형태는 팔작지붕이면서 귀틀을 낸 ㄱ자형이다. 본래는 7칸이었으나 현재는 정면 9칸, 측면 5칸의 금단청 건물로서 크기는 총 92.76평이다. 이 건물은 현재 성보유물전시관인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명각은 임진왜란 때의 승병장 사명당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15세에 이 절에서 출가하여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한 그의 뜻을 되새기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또 범종각에는 1981년에 만든 1,600관의 범종과 법고·운판(雲板)·목어(木魚) 등이 있다.
만덕전은 일명 불교연수회관이며, 주지 녹원에 의하여 1991년부터 1994년에 걸쳐 건립된 직지사 최대의 건물이다. 넓이는 총 361.54평으로서 외부는 완전 목조건물이지만 내부 중량의 일부는 철근 콘크리트로 들보가 구성되어 있으며 기와는 동기와로 제작되었다.
설법전은 불법의 선양과 불자들의 수련을 위해 마련한 건물로서 주지 녹원에 의하여 1987년 3월부터 1992년 6월 20일에 걸쳐 3층으로 신축된 건물이다. 총 294.51평 넓이의 거대한 복합 건물로서 1층에는 식당이 있고, 2층에는 손님접대를 겸한 11개의 방이 있으며, 3층은 설법전이 있다. 이와 같은 만덕전과 설법전은 주로 직지사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위해 활용되는 공간이다.
절에 소장된 중요 문화재로는 석조약사여래좌상(보물, 1963년 지정)과 대웅전 앞 삼층석탑(보물, 1976년 지정), 비로전 앞 삼층석탑(보물, 1976년 지정), 청풍료 앞 삼층석탑(보물, 1993년 지정)과 대웅전 삼존불탱화(보물, 1980년 지정) 및 괘불도(보물, 2019년 지정), 석조나한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97년 지정)이 있다. 이 가운데 석조약사여래좌상은 통일신라시대의 조성 양식을 반영하는 불상으로서 마멸이 심하지만 전체적인 윤곽은 광배와 함께 부드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현재는 성보박물관에 모셔서 상시 전시하고 있다. 부속 암자로는 운수암(雲水庵)과 백련암(白蓮庵)이 있고 현재 직지사의 말사는 62개이다.
백두대간 황악산 정상석
들머리인 백두대간 우두령
소나무와 설화
백두대간 산성산
백두대간 여정봉
아직 설화가 남아있다
황악산 산행로 물을 먹은 눈과 낙엽이 쌓여있다.
눈꽃이 곱게핀 황악산 가는 산행로..겨울운치와 눈내린 설경의 풍과과 정취를 제대로 보여주는 황악산 산행로 중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다. 겨울 설경속으로
백두대간 마루금
바람재 정상석..바람재 글씨가 바람처럼 비슷듬하게 쓰여있다.
바람재 정상석에서 실 바람재 고개는 0.7km 앞에 있다. 작은 고개가 바람재..정상석 못미처
형제봉인데 정상석은 없고 조금 앞으로 산봉우리를 3개를 넘어면 황악산 정상이다.
형제봉에서 바라본 마루금
형제봉에서 바라본 마루금
형제봉 이정목
백두대간 황악산 정상에서
백운봉에서 황악산 올라가는 쉼터에서..황악산 600m 힘내세요..이는 계속 황악산 까지 계단 오르막 된비알이기 때문이다.
백운봉..산행로에서 살짝 옆으로 비켜있다. 여기서 조금 내려가면 궤방령과 직지사로 내려가는 절뒤고객가 나온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직지사이다. 2.8km 하산
직지사 본사찰 직전 있는 내원교..다리 석지지대가 절집의 동종모형 형상이다. 아마도 직지사 내에 있는 동종을 닮은 것이리라
내원교에서 바라본 봄이 오는 계곡의 서정인 정취..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직지사 사리탑원..폐쇄되어 있다. 개방해도 좋을려만..여하튼 직지사는 높은 담벼랑도 그렇고 폐쇄적인 사찰이라는 느낌이 든다. 승가대학(강원)이라 그런 것인지
봄이 찾아온 직지사늬 개울..앞 보이는 다리가 인상적이다
직지사 승가대학(강원)
황악산 직지사..일주문..이곳 부터 직지사 절집 사찰 경내로 접어든다.
첫댓글 컨디션 난조로 넘 고생하셨는데
산행기가 넘 리얼 그리고 순간 순간
마음이 느껴 집니다 ㆍ
후기 감사합니다
작은거인회장님 고맙습니다. 황악산 백두대간 산행 몸상태 안좋아 힘든 여정이었고 백두대간 사진들을 잘담아내지 못했네요..김천 직지사 이모 저모를 담지 못한 아쉬움이 크기도 하고요..
많은 공부하고 갑니다
데레사님 고맙습니다. 조계종 8교구 본사 김천 직지사에 조기 산행을 끝내고 사진을 담을려 했는데 아쉬움 남는 황악산 산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