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금각사부터,
금각사의 원명은 로쿠온지( 鹿苑寺) 인데 금각사로 이름 바뀐 연유는
로쿠온지였을때 별로 감흥이 없었다
그러던중 로쿠온지에 방화에 의한 화재가 발생 재건축을 계획한바
이왕 재건축을 할바에는 감성을 이끌어낼수 있도록 금으로 건축하자는 썰이
분분해졌다 금으로 건축하기위해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되고
지역주민들은 모금운동에 나섰다
모금운동이 진행되는 사이 금당누각이 세워졌는데 실패로
이미 들어간 금만해도 상당 금액인데 실패로 끝낼수 없다며
일본정부에 공식적으로 개축을 건의 한바
일본정부는 불허했었지만 끈질긴 민원으로 겨우 통과
일본을 대표하는 금도금회사에 하청을 하게 되었다
일뽕소설가인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란 소설에 의하면
마치 세계에서 최초로 금건축 누각이라고 써 있지만
천만에, 금각사의 금누각은 미얀마의 황금사찰을
벤치마킹 한 것이다
로쿠온지의 이름을 금각사로 개명하고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으며 관광명소로 거듭나는 쾌거가 일어나자
은각사 또한 이에 질세라 그럼 우리는 은으로 재건축한다고
기염을 토하며 지역주민들의 모금운동에 나섰다
그런데 은이라는것은 가장 변색되기 쉬운 철이다
역시 번번이 실패하자 금각사때 처럼 정부에게 손을 벌린다
그러나 정부는 맛들렸나 하며 단호하게 거절,
하는수없이 지역주민들은 금도금회사에 의뢰한바
은은 가장 변색되기 쉬운 철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라는 답변
은각사의 원명은 지쇼지(慈照寺) 이다
때문에 실패로 끝난 은각사에는 은으로 만든 누각은 없고
이로 인해 은각사 주지들은 망한다
철학의 길을 따라 가면 마지막으로 난젠지( 南禪寺)가 나온다
난젠지는 상당 일본사가 얽혀있는 곳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견제하기 위해
세운 천연요새의 사찰이다
난젠지를 들어가보면 삼면이 산이고 정문 아니면 들어가기
힘든곳이다 그안에 삼문이라는 높은 대문이 있는데 삼문위에
오르면 교토가 한눈에 보인다
난젠지하면 로마식 수로각에만 무아몽중되기 쉽다
이 수로각의 탄생은 상당 아이러니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수도를 오사카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교토로 주장한다
이에 히데요시는 대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물이 필요한데
교토는 물부족이다라며 일갈, 그러나 이에야스는 물은
가까이 있는 바다같은 호수인 비와코에서 끌어오면 된다해서
탄생한것이 수로이다
그런데 그 수로각을 히데요시 사후 그의 영혼이 담긴
난젠지에 세운다는 계획에서 출발한다
일본을 최초 통일한자가 오다 노부나가이다
그는 교토의 혼노지라는 사찰에서 심복부하가 배신해
일으킨 난으로 죽음을 당한다 그 난을 일컬어 혼노지의 변이라 한다
혼노지는 교토여행 둘째날 저녁식사하는 가와라마치 근처에 있다
그를 죽인 사무라이는 심복인 아케치 미츠히데,
여전히 그가 왜 오다 노부나가에 반기를 들어 난을 일으켰나는
지금도 여전히 미스테리라고 하지만
근본적으로 일본의 역사는 배반의 역사다
사무라이에게는 의리라고는 없고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사생결단을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주인도 되는 오다 노부나가가
아케치 미쓰히데에게 죽임을 당하자 히데요시는 그를 찾아 나선다
이윽고 생포에 성공한 히데요시는 난젠지에서 그에게
왜 배신을 깠나 하고 묻고 스스로 자결하라 했지만
아케치 미쓰히데는 기독교인인 관계로 자결은 죄악이다라고 하며
거부하자 그를 산채로 가마솥에 넣어 삶아 처형했다
그곳이 난젠지이다
일본사는 의외로 기독교인과 얽혀있다
오다 노부나가 역시 선교사가 준 조총으로 일본을 통일했다
당시 일본의 기독교의 최종목표는 중국의 명을 무너트리는
것이였고 오다 노부나가를 이용하려 했다
유대 자본가들은 화약을 팔아먹기 위해 철저하게
일본의 전국시대를 이용하고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가 죽고 전국시대는 막을 내리니
화약장사가 시들해 지기 시작,
마침내 차기 권력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추파를 던지기 시작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천민 출신이기에 쇼군이 될수 없었고
천민출신이 최고 권력자가 되자 귀족들인 다이묘들 사이에
불만이 자꾸 팽배해져 갔다
이에 고민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불만을 잠재우는 방법을
유대자본은 넌즈시 획책한다
큰 사건을 터트리면 관심이 그쪽으로 쏠리고 불만은 사그러든다 라고
예나 지금이나 이 수법은 대동소이한 모양이다
히데요시는 큰 사건이란? 하며 솔깃해 한다
유대자본은 명을 치는것이라며 명을 치기위해 조선을 통과해야하며
조선에게 말하면 길을 열어 줄것이다라고..
속셈은 조선은 절대 길을 안열어줄것이니 조선부터 전쟁을 해야한다는 속셈.
히데요시는 하는수없이 자신의 대한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임진왜란을 일으킨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교인이 아니며 기독교도 멀리했다
심복중 교인인 고니시 유키나가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그를 임진왜란
최선봉장으로 임전하도록 명한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출세욕이 출중했으나 번번히 가토 기요마사에게 막힌다
마침내 고니시 유키나가는 십자가 깃발을 들고 부산에 입성하며
평양까지 일취월장한다 죽을줄 알던 히데요시는 난감해진다
당시 2인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유대자본의 술책이라고
깨닫고 임전을 거부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나라의 사신으로 부터 암살을 당하고
마침내 임진 정유재란은 막을 내리는데
히데요시가 죽자 다이묘들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줄을 선다
이에야스는 일본을 평정하고자 도요토미가(家)를 멸망시키려고
히데요시의 아들부터 기만으로 꼬드겨 살해하며
이른바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진다
세키가하라 전투역시 배신의 전쟁,
하다못해 히데요시의 조카인 가토 기요마사도 배신하고
이에야스쪽에 선다
히데요시파의 서군과 이에야스파의 동군의 전투
전투중 고니시 유키나가는 불리함을 인지하고 도망
사무라이도 도망가나 하지만 이것이 사무라이의 본색이다
생포되어 교토의 다리위에서 이에야스가 자결하라 했지만
역시 자살은 교리상 죄악이다라고 항명
결국 참수당한다
보통 사무라이들은 전쟁에서 패하면 자결하는것이
정석만이 아니다
요번 교토여행때 가는 오하라의 호센인의 피천장,
자결한 사무라이의 핏자국이 있다해서
기대를 갖고 가봤지만 핏자국은 보이지 않는다
흔히 일본사에서 친한파로 알려진 도쿠가와 이에야스,
그가 기독교박해를 했다는 썰.
그렇지 않다 그는 유대자본을 선별해 벌을 내렸지만
무조건적으로 박해는 절대 하지 않았고
오히려 교육쪽으로는 우대했다
교토의 스페인 신부가 세운 동지사여대가 그 상징이다
일본최초의 여대이고 여대가 먼저 생기고 나중에
남여공학이 생겼다 여대와 남여공학이 나란히 있는 대학은
아마도 세계유일하지 않을까
동지사대학의 단풍도 꽤 좋다
다음에 또 교토여행기회가 있다면 교토의 황궁과 함께
동지사대학을 탐방하면 금상첨화다
잘 아시다시피 동지사대학에 가면 제 대선배인 윤동주석비도
있고 정문초소에 얘기하면 그에 관련된 책자도 주며 환대한다
마지막으로 료안지(龍安寺)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도 극찬한 가레이산스이 정원
글쎄 제가 료안지에 갔을때는 이미 일본에 익숙한 터라
별 감흥은 없었고 다다미방안의 문에 있는 그림에 눈이 멈췄다
아무리봐도 우리 금강산그림이다
더우기 일본의 산에는 봉이란 명칭을 안쓴다
그래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전부 모른다한다
그래서 직원들이 모여있는 창구로 가서 문의한바
어디로 전화를 하니 어느 여직원이 책을 들고 나온다
일제 강점기때 일본화가가 그린 한국의 금강산이라 한다
휴.. 다행이네 또 얘들이 수탈해 갔는지 알았는데
료안지는 사시사철 큰 연못과 어우러져 좋다
여기는 금각사 라인이라 이번 여행에는 빠진듯하다
교토의 사찰메구리를 해보면 개취상
좋은곳이 덴류지,난젠지,료안지 이다
오하라도 좋은데 벚꽃이 약한것이 흠이다
단풍으로는 덴류지,조작코지,기요미즈데라,에이칸도, 난젠지 오하라등이 좋았다
근데 일본은 이상하게 길거리에는 단풍이 별로 없고 돈을 내고 들어가면
단풍만발이다
벚꽃시즌에 은각사-철학의 길-난젠지-게아게 인크라인-헤이안신궁까지
트래킹하면 환상이다
첫댓글 잘설명한 글을일고 감명 일본역사는 군이 다시는시기가 천년을 권력을잡기위하여 배신과 정약 결혼, 죽고죽이는 무가의나라
우리나라는 문인이 지배하나[ 많은경우 부패한] 일본이 무인이 칼부림으로 다스리는나라 그래외국과 전쟁에도 선전포고없시 기습공격
청일전젱 노일전쟁 중국 본토 공격 하와이 공격 으로 2차대전 미래에도 변함이 없다 우리 국력 을키우는것 애는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