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향만리 (人香萬里)
글 德田 이응철
(강원수필문학회고문)
신선한 녹음이 펼쳐지는 오월 초입새였다.
산과 들이 푸른 빛깔 속에 담뿍 젖어, 떡갈나무의 연둣빛과 푸르름 그리고 산벚나무들의 꽃들이 한껏 아우성치더니 이제 하나의 푸르름으로 변해간다.
맹하의 계절이 사립문 밖을 서성인다. 곡우(穀雨)가 지난 지 얼마 안 되니 아직은 봄날이리라. 남은 봄바람이 상큼하게 스친 날이었다. 미세먼지 티끌 한 올 없는 청아한 봄날, 문학탐방은 연분홍 철쭉이 불타오르던 너브내 꽃동산이었다.
1919년 4월 3일 김덕원 의사(義士)와 함께 주민 3천여 명이 일제에 항거해 만세운동을 벌인 홍천 내촌면은 삼남 지방의 동학혁명 버금가는 역사적인 현장이 아닌가! 해발 403m 높이에 총길이 3141m의 이곳 척야산 15만 평을 사비로 매입, 척야산 문화수목원을 조성, 아름다운 동산을 탐방객들에게 무료로 개방하셨다. 민족정기 광장을 건립하시어 차세대들에게 민족정기를 고취시키며 왕성한 노익장을 펼치신 분과 해후한 날이었다.
남강(南江) 김창묵 어르신-. 올해 춘추가 102세, 나직한 목소리로 찾아온 탐방객들을 친절히 맞이하신다. 증언이다. 헌칠한 키에 항상 둥근 모자를 쓰시고 겸손하시다. 독립투쟁 항일의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또박또박 전하신다. 그 신념이 전해온다. 업적을 논하면 남대문 시장에 장사꾼이었다고 겸허하시다.
동찬기업을 설립하시고 현재 대표이사, 회장으로 항상 고향 후학에 전념하신다. 남강 선생님의 나눔은 실로 놀랍다. 해마다 이 지역의 고교생들이 대학 합격의 경우 빠짐없이 장학금을 지원해 오신다.
겸손으로 나눔을 설명하실 때다. 문득 필득기수(必得基壽)란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큰 덕(大德)을 지니게 되면 반드시 그에 걸맞은 지위, 녹봉, 명성과 긴 수명까지도 얻게 된다는 중용의 말씀에 수긍이 간다.
오늘 문학인들이 찾아와 고마워서 오랜만에 가파른 등산로를 함께 오르신다며 덕담을 주신 남강 어르신의 발길에서 서린 기운을 느꼈다. 옥체가 정정하시다. 수많은 돌비석에 애국 글귀들을 오석(烏石)에 담는 일이 남강 어르신이 평생 일궈내신 과업이시다.
청로각(淸露閣)에 도착하여 오가는 탐방객들 인사를 일일이 나누신다. 오르는 정자 난간이 넓다고 어느 탐방객이 고(告)하자 흔쾌히 시정, 안전을 위해 뒷판에도 널판지로 막겠다고 접수하신다.
1919년 4월, 5개 면에서 천여 명이 만세운동을 벌이고, 홍천 서석 자작 고개 전투에 참여한 민족 의사 김덕원 님의 자랑스런 방계 혈족이 곧 남강(南江)이시다. 민족정기의 공원인 척야산 정상까지 아름다운 꽃길과 정자 비문들이 코스 여러 곳에서 숨어 반긴다.
-민중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알고 싶거든 물걸리에 와서 보아라! “척야산 푸른 솔, 용호강의 맑은 물, 바람 소리, 산새 소리 풀 내음 꽃향기에 젖어보세요”라고 비문은 전한다. 풍문에 몰려드는 탐방객들-. 정작 하루종일 거하는 사무실은 비좁은 컨테이너 두어 개가 고작 전부이다.
새로 튼 잎이 한창 흐드러질 때 초록의 내음까지 싱그러운 오월이다. 척야산 사방에서 초목들이 내뿜는 피톤차드의 성스런 향기, 그리고 주차장 위쪽 민족광장엔 실제 크기의 광개토대왕비의 또렷한 비문, 발해 석등(石燈)의 재현, 이순신, 안중근, 윤봉길, 김구 등 애국선열 어록비에서 뿜어나오는 구국의 향기 그 손길-. 군자는 말이 실천에 앞서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라는 말이 떠오른다.
백 세를 훌쩍 넘기시며 만년에 척야산 수목원과 살아가시는 애국자 남강(南江) 어르신-! 무종교라 답하시며 모든 종교의 참뜻을 존중한다는 그날, 후한 오찬까지 대접받고 성지를 떠났다.
베풀고, 나누고, 나라 걱정하며 노 저어 가는 하루에 만족하시며 남강 어르신, 거룩한 향을 전해주신 수암님께도 진정 감사드린다. 돌아와 우거(寓居)에 백골을 누이며 고희가 지난 자신의 남은 여생을 반추해본 날이다. 나의 과업은 무엇일까? 아직 소진되지 않는 내 유일한 손 재능을 불쏘시개로 태우리. 문학의 대중화라면 거창할까!
화향백리(花香百里), 주향천리(酒香千里)라 술잔을 기울이지만, 요즘 언행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SNS를 타고 순식간에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는 인향만리(人香萬里)의 시대가 아닌가? 구국의 성지에 오늘도 후손들에게 국가관을 재무장시키는 남강(南江) 김창묵 어르신의 척야산지기, 동창 만세운동기념사업 회장의 향(香)이야말로 진정 우리 강원 특별시의 살아있는 명향(名香)이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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