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가을의 꽃들
작년 우리가 이사오고 나서 부터 주위 논에 빨간 깃발을 단 말둑들이 꽂히더니 잊을 만하니까 길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길을 좀 특이하게 조성하나보다. 산을 관통하겠다고 도로를 만들다 예산이 없다며 조그만산 앞에서 멈춘 도로, 고개를 넘어 개정면 발산리와 연결되면 군산가는길이 10분 가까이는 단축될것 같은데 넘어가는 산길을 향하다 멈추는 모양이다. 아뭏든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집근처까지 가까워졌다. 개통 테이프를 끊으려나? 시커먼 몸을 뭉쳐 웅크리며 구렁이가 지나 간다. 뱀이 무서워 못본듯 시선을 돌려 가속하여 피한다. 들녘은 황금만큼 값진 벼이삭들의 물결로 넘실된다.
금잔화 빨갛거나 노란 화려한 꽃들은 뜨거운 여름 햇살에도 지치지 않더니, 밤을 새워 새벽까지 점점 차가워 지는 바람에도 꿀리지 않는다. 깊이내리지도 않은 뿌리, 무릎을 꿇은 듯한 자세의 구부러진 줄기로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꽃을 피우고, 어쩌다 뿌리가 뽑혀 어딘가에 던져져도 쉽게 죽어나가지 않는다. 겨울 찬바람에 시달리다 말라비틀어져 마침내 이번생을 다한 놈들을 아무렇게나 던져 두면 얼음의 겨울을 지나고 어디서든 피어난다. 그 금잔화 꽃색이 지금 더 찬란하다. 금년에는 벌새 같이 생긴 박각시 나방 개체수가 눈에 띠게 늘어 나, 금잔화, 녹차꽃 꿀따기에 여념이 없다.
몇년째 손길을 주지 않았던 차나무는 재각각 경쟁하듯 풀들과 섞여 살아 볼품도 없고 하얀 녹차꽃이 열매를 맺고 씨앗이 떨어진 자리에서 발아하고 뿌리내려 빽빽하게 자리한다. 한여름이 한참지나고 나서야 하얀 꽃잎속에 노란 수술을 한가득 채워 제법 볼만한 모양의 꽃을 피워낸다. 하얀 녹차꽃을 더 좋아하는지 정신없이 꿀을 따는 벌새를 사진으로 남기고 보니, 여름내 병치레한 사과나무다. 작년 경북대 사과나무 재배 교육에 엄청 실망한 기억이 올라온다. 사과는 살충제와 살균제 칵테일을 투약하지 않으면 농사를 망한단다. 이게 무슨 말인가? 대학의 강좌는 건강을 추구해야하는데 농약으로 범벅된 사과를 키우라니 기가 막힌다. 교육받고 나서 오기가 생겨 아무런 방제를 하지 않고 퇴비 투여만 했다. 제법 갯수를 늘였던 사과 송이들이 어치에게 쪼이고 병에 찌들어 떨어진 사과나무 두그루, 하나는 파란 새잎이, 다른 하나는 꽃을 올리고 있다. 시절잃은 벚꽃에 충분히 대적 할만하다. 금년에는 사과도 감도 부실하고, 밤은 좀 떨어졌는데 주워서 까는데 힘들어 인기가 없다.
새벽에는 찬바람이 게으름을 부추기어 잠자리에서 좀더 시간을 끌게 만들고 한낮의 햇살은 따스함을 동반하여 온몸으로 반갑게 맞이한다. " 언제나 돌아 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수 없어 슬퍼진다는 10월의 마지막날 빅 히트를 날리는 노래가 새삼 떠오른다. 이렇게 수상한 10월이 가고 금년에는 얼마나 혹독한 겨울이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