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다, 고래가 보인다.”
동해 바다를 보기 위해 밤 기차라도 탄 것이 아니냐고,
내친김에 포경선을 타고 먼 바다로 나간 것이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상한 항해가 시작된 곳은 34도가 넘는 여름, 과천 산림욕장 산길이었습니다.
상수리나무가 있는 초입에서부터 맨발로 걷던 친구가 부채 두 개를 꺼냈습니다.
대나무 손잡이가 있는 둥근 종이부채를.
몇 개의 숲을 지나 ‘쉬어 가는 숲’에서 점심을 끝낸 뒤였습니다.
친구는 부채 속의 풀밭과 꽃밭을 가리키며
그 속에 새롭게 나타나는 ‘무엇’을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눈높이에 부채를 놓고 먼 곳을 응시하듯 바라보고 있으면
완전히 다른 그림이 나타난다는 것이었지요.
부채를 먼저 받아들고 보던 옆의 친구가 탄성을 질렀습니다.
바람이던 부채가 바다가 되고 고래가 되고 한 송이 꽃이 된 것은 그때부터였습니다.
"바다야! 푸른 바다에 고래 한 마리가 있어."
친구가 너무 쉽게 고래를 발견한 바람에 다음 차례가 된 나는 잠깐 긴장이 되었습니다.
조바심을 누르며 평면의 풀밭을 지긋이 보고 있으려니 그림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바다야!”
푸르게 출렁이는 물결 위로 입을 벌린 고래가 길게 옆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고래의 검은 꼬리는 선명했고, 분수처럼 솟구치는 하얀 물줄기는 잎사귀처럼 갈라졌습니다.
고래를 보고 나니, 꽃밭인 부채에서 큰 꽃 한 송이를 찾는 일은 쉬웠습니다.
부채는 건너편에 있는 두 친구에게로 넘겨졌습니다.
부채를 가까이 또 멀리 옮겨 보지만 그림은 좀체 바뀌지 않습니다.
초조해진 친구들은 더 이상 농담이 아니야,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꽃밭을 보던 친구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한가운데 화환같이 엮어진 큰 꽃 한 송이가 보여.
줄기에는 긴 잎이 어긋나기로 나 있어.”
그림을 본 친구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꽃향기라도 나는지 벌 한 마리가 친구의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꽃을 찾은 친구는 쉽게 고래를 만났습니다.
이제 남은 친구는 하나.
갑자기 혼자가 된 친구는 빨리 고래를 찾아 이 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풀밭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이것은 착시 현상을 이용한 걸 거야. 나는 너무 정직해서 착시에 빠져들 수 없는 거야.”
그렇게 착시로 돌리고, ‘매직 아이’ 그림일 뿐이라고 내려놓으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모두 한마디씩 거들며 응원하는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으니까요.
친구는 그렇게 떠밀린 채로 고래 찾아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선장이 되었습니다.
먼저 본 사람은 더 조용히, 아무렇지 않게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고래가 보인다고 환성을 지른 우리는 고래를 발견한 포경선의 선원들처럼 흥분했기 때문에,
뒤늦게 아무것도 아닌 놀이일 뿐이라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보고 누린 자의 몸짓을 들킨 후였으니까요.
이제 부채는 마지막 남은 친구의 큰 바다,
망원경에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고래 사냥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고래를 발견하는 일은 오롯이 남은 친구의 몫이고 이루어야 할 꿈이 분명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우리 모두의 꿈이 되고 항해가 되었습니다.
숲속에 있던 우리는 마법에 걸렸던 것일까요.
무엇이 우리를 이상한 항해로 몰아 고래를 찾는 일에 그토록 열중하게 한 것일까요.
우리가 본 바다는 살아 있었습니다. 물결은 출렁거렸고 고래의 맥박은 힘찼습니다.
그 일은 고래를 잡으러 동해 바다로 떠나는 일처럼 신났고,
‘모비딕’을 찾아 먼 바다로 나가는 일처럼 비장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고래를 찾는 일은 언제부터인가 꿈을 꾸지 않게 된 우리가,
‘꿈도 없는 깊은 잠’에 빠져든 우리가 눈을 뜨는 의식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마지막 친구의 몫이던 고래 찾기가 다시 우리의 것이 되었겠지요.
우리가 놓치거나 잃어버린 꿈을 찾아 다시 떠나는 희망의 항해가….
그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해발200m 산길에서 히말라야 등반을 꿈꾸던 친구들은
이제 동네 뒷산이면 충분하다고 합니다. 가끔, 혼자 물을 때가 있습니다.
'그날 부채에서 내가 본 것은 정말 바다였을까, 고래였을까, 50의 바다에서 만난 꿈이었을까.'
고래의 힘찬 맥박과 숨결이 느껴질 때면 '꿈꾸는 것만이 진실하고 살아 있는 것’이라는 말이 떠오르고,
나는 또 한 번 물 위로 힘차게 솟구치는 고래 한 마리를 지금도, 만납니다.
혹, 내가 고래를 키우는 바다가 된 것은 아닐까요.
-작품 노트-
내 글의 발원지 《현대수필》에서 대표작을 물어왔다.
글을 쓰는 동안 혹은 발표하고 난 후의 일들로 마음에 남는 글은 여럿이지만,
무엇을 꼽을지 모르겠다. 여태 누가 물은 일도, 답한 일도 없다.
하루 동안 내 수필집을 훑은 친구가 이 작품을 권했다.
평생의 할 일로 글을 쓰라고 등을 떠밀어준 친구다.
어쩌면 ‘우영우’ 바람이 내 고래를 수면 위로 올린 것도 같다.
‘바다가 된 부채’- 첫 수필집《꿈꾸는 구두 한 켤레》에 수록된 글이다. 생각난다.
길 건너 우편취급소에 책 몇 권씩 들고 가서 어디론가 부칠 때 나는 설레고 행복했다.
책 속의 아이들이 돌아와 두루 돌아다닌 곳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았다.
턱없는 꿈이었지, 하는데, 기다린 듯 고래가 말을 걸어온다. 살아있다!
과천 산림욕장을 즐겨 찾던 90년대 초반 일이다.
귀띔하자면, 마지막 친구가 고래를 본 것은 사흘 후였고
그다음 산행 때 그부채는 시치미를 떼고 바다에서 바람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날, 숲길에서 우리 일행이 쉽게 고래를 만났다면, 한 날의 즐거운 놀이로 그쳤을 것은 분명하다.
고래를 찾지 못한 친구로 인해 글의 소재가 되고,
고래를 키우는 바다가 되고, 다시 꿈을 찾아 떠나는 항해가 되었다.
글을 쓰는 동안 신이 나서 ‘고래 사냥’(최인호 작사 송창식 노래)의 후렴을 자주 흥얼거렸다.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를 잡으러”.
내가 둘째를 낳은 해로 기억하는 1975년,
그때 벌써 꿈을 찾아 떠난 동년배들이 바람이 되어 밀어주는 듯했다.
나에게 글 문이 열린 것은 1993년이었다.
잊힌 듯 묻힌 듯해도 아주 떠나지는 않은 꿈을 찾아 막 나선 때 나온 글이다.
대표작이 정해졌으니 작품 노트만 준비하면 될 일이었다.
생각이 모여들기를 기다리다가 느긋한 마음으로 옮겨놓은 파일을 열었다.
이게 웬일? 이야기가 있는 글을 쓸 때 자주 빠지는 함정이 보였다.
처음부터 세 군데를 잘라내고 옮겼는데도, 덜어내고 줄일 것이 볼 때마다 나왔다.
글은 과학이라고, 단락과 문장이 위치를 바꾸며 제 자리를 찾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글은 나였던 50즈음의 여자와 지금의 내가 만나 함께 쓴 글이다. 서로를 존중해주면서.
내 글의 모항에 글을 부려놓는 일이어서일까, 이 작업을 하는 동안 뜻하지 않은 여행을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와 책임을 물으며 자주 멈추었고, 부끄러웠다.
그 책 평론에 있던 “…그 무엇과의 진솔한 대면을 위해 문학의 길을 자신의 삶의 지표로
설정한 사람”이라는 말 앞에서도 그랬다.
글 길 떠난 지 30년이다.
아득한 글의 바다에 물 한 방울 얹는 일에서 돌아서고 싶을 때도 있지만,
글은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고 그 길에서 이르고 만나기를 꿈꾸는 그 무엇이다.
나는 오늘도 꿈을 꾼다. 내 소소小小한 이야기에서 소소昭蘇한 글이 나오고,
심심한 이야기에서 심심甚深한 글이 나오기를!
(현대수필 2022 겨울호)
첫댓글 되돌아보고, 끄집어내고, 말의 자리 고쳐잡고.....
다시 의미를 의미를 더하는...!
이 작업 하면서 많은 걸 돌아보게 되고, 새로운 걸 또 발견하게 되던 데요.
재미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