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반대말은 당연, 당연의 유의어는 교만(추수감사주일)
시 140:13
(13) 진실로 의인들이 주의 이름에 감사하며 정직한 자들이 주의 앞에서 살리이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이란 “범사(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올 한 해도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모든 은혜들과
고난을 통한 영적성장을 허락해주심에 감사하고,
특별히 우리에게 허락해주신 결실에 대해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정성껏 준비한 예물을 올리며 예배를 드리는 주일입니다.
올해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주신 여러 가지 결실과
모든 은혜(고난도 포함)에 진심으로 감사를 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올려드리십시다.
오늘 추수감사주일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더 나아가 천국에서도 영원토록 감사만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엡 5:20-21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감사의 반대말은 원망과 불평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감사의 반대말은 ‘당연‘이라고 합니다.
감사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여김으로서
누구에게도 감사하지 아니하며 살아가다가
그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갑자기 잃게 되었을 때
‘감사했어야 했는데 그동안 내가 감사를 하지 않았구나...’ 하며 깨닫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느냐!”, “XX 진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라며
그저 원망과 불평과 짜증과 분노를 발하는 특징을 보입니다.
그래서 감사에 반대되는 우선적인 개념은 불평보다
‘당연하게 여기는 마음’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반면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들이 전부 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라는 확실한 사실을 진실로 깨달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모든 일에 감사를 하는 이들로서
그들이 바로 창조의 보람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부분에서 중요한 것은 이들이 감사하는 ‘모든 것’에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모두 포함된다는 점입니다.
즉 엄청나게 힘든 일,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며
충동적으로 생각할 정도로 괴로운 일, 외롭고 슬픈 일, 누가 봐도 피하고 싶을 만한 일,
그저 빨리 해결되었으면 하여 주변에 기도부탁까지 했던 일 등등
나를 괴롭게 했던 일들마저도 이제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게 된 이들이
감사의 참된 의미를 올바르게 깨달은 사람들이라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의 참된 의미를 알게 된 그리스도인은
삶의 모든 문제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그동안 경험했던 일들 중 우연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면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 또는 허용하신 모든 일들,
하나님께서 부분적 혹은 일시적으로 친히 개입해주신 일들,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한 교훈과 책망과 징계,
우리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며 겸손히 내려놓는
영적 성장을 위한 여러 가지 고난들을 비롯한 우리 인생의 모든 일들 중에
아무 의미 없이 그냥 일어난 우연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전혀 없다고 못 박듯이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좋은 일이든 나빠 보이는 일이든, 모든 일에 다 감사하기로 결정한 이런 생각은
막연한 상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있는 진실한 믿음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나보다 나에 대해 더 잘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해주신다는 사실,
그 사랑의 크기를 생각해보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실 만큼,
즉 측량이 불가능할 만큼 나를 사랑해주신다는 바로 그 사실,
유일한 신이시며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바로 나의 친아버지이심을 진실로 믿기 때문에
좋은 일이든, 나빠 보이는 일이든 모든 일에 감사하게 되는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를 아는 그리스도인은 ‘아, 오늘 되는 일이 없네...’ 하는 생각이 들 때
먼저 짜증을 내면서 불평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아가 먼저 감사를 하면서 마음속에 있는 생각들을 다 말씀드리며,
지혜롭고 조심스러운 자세로 자신이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면 깨닫기를 힘쓰고,
돌이켜야 할 것이 있다면 겸손히 돌이키며,
마음에서 내려놓아야 할 것이 있다면 즉시 내려놓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합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항상 존재한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반대로 ‘아, 요즘은 하는 일마다 잘 되네.’ 하는 즐거운 생각이 들 때엔
‘역시 나는 대단한 사람이야.’ 하며 당연하게 여기면서 교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아가 먼저 감사를 하면서 마음속에 있는 생각들을 다 말씀드리며,
지혜롭고 조심스러운 자세로 자신이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면 깨닫기를 힘쓰고,
돌이켜야 할 것이 있다면 겸손히 돌이키며,
마음에서 내려놓아야 할 것이 있다면 즉시 내려놓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합니다.
실수로 같은 내용이 복사되어 붙여넣기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정말로 감사하는 사람은 힘든 일 앞에서도, 즐거운 일 앞에서도
그 마음과 말과 행위가 동일하다는 내용입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에도 일단 먼저 감사하며 하나님께 아뢰고,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즐거운 일이 있을 때에도 일단 먼저 감사하며 하나님께 아뢰고, 자신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사람의 일이 육신적으로 항상 잘 풀리기만 하면
영적으로 큰 위험에 빠진 상태일 수도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태도가 맞습니다.
고후 13:5
(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히 12:6-8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만났을 때에 그 입에서
“하나님~! 빨리 이 문제 좀 해결해주세요! 어서 속히 해결해주셔서
제 마음을 다시 평안하게 만들어주시길 바랍니다.” 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저에게 또 도착했네요. 참으로 감사합니다.
저를 하나님의 나라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시려고,
예수님의 보혈로서 깨끗해진 하얀 예복을 해 입히시려고 이렇게 또 저를 초대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비록 지금 제 마음의 평안은 깨지고, 불편함이 한 가득인 것이 솔직한 심정이지만
그래도 감사하면서 저에게 이런 일이 허용된 이유를 겸손히 잘 살펴보아
저를 항상 사랑해주고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의도를 알고 싶습니다.
그렇게 진리를 바르게 깨닫고 싶습니다.“라고 기도하여
하나님과 한 걸음 더 가까워지면서 하나님과의 소중한 추억이 하나 더 생기는 겁니다.
따라서 육신적으로 즐거운 일이 있을 때만, 하나님께서 뭔가 좋은 것을 주셔야만,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해주셔야만 감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영적으로 걸음마 수준의 자라지 않은 어린 아이와 같은 상태로서
아직은 감사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충분히 자랐으면 이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
고전 13:11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 더 알게 된 우리는 앞으로 고난이 찾아왔을 때,
그때도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십시다.
아직은 솔직히 마음 한구석이 조금 괴로울지언정
객관적인 생각과 입으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확실히 맞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닮고 싶다며 하나님께 기도한 사람들입니다.
그 간절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께서 주관/허용하신 일들,
즉 예수님을 더욱 닮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 또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감사하며 내심 즐거워하는 것이 논리적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닮고 싶긴 한데 고난은 싫어요. 힘든 건 싫거든요.
저는 십자가를 지는 것이 너무 싫어요. 달콤한 꿀만 좋아요.
평생 꿀맛만 보면서도 구원은 받고 싶습니다.”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불가능한 것을 원하는 마음이
자꾸만 우리의 마음에 생기는 이유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대하 32:24-25
(24)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25)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서두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감사의 반대말은 ‘당연’입니다.
그리고 이 당연의 유의어는 ‘교만’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교만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고개가(마음이) 빳빳해지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도 않고,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그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신적으로 평안하고 즐거운 것만 좋아하게 되고,
영적으로 성장하고 싶은 마음도 없기 때문에 고난이 죽도록 싫어지는 겁니다.
반드시 내려놓아야 할 옛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며,
훈련과 성장의 재료인 고난이 찾아 왔을 때 교만한 마음이 있으면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해?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라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도무지 인정하지 않기에,
즉 매우 좋은 약이지만 입에선 쓰다는 이유로 지극히 싫어하기에
당연하다는 듯이 감사하질 않고, 결국 스스로 어둠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어디에 사는 다른 누군가의 얘기가 아닌 바로 저와 여러분들의 진짜 모습입니다.
이처럼 영적인 문제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그 고리를 끊지 못하면 계속해서 악순환을 낳는 것입니다.
솔직하지 못하여 자신의 교만함을 인정하질 않고, 고집이 가득하여 꺾지도 않고,
자신의 패역한 모습과 딱딱하게 굳은 마음에 대해 애통하지도 않고
오히려 변명과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계속 유지하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되기로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잠 5:22-23
(22)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23)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죽겠고 심히 미련함으로 말미암아 혼미하게 되느니라
잠 13:1
(1)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는 교만한 모습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훈계를 멸시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을 끝까지 멈추지 않고 시간만 계속 흘려보내다가는
영원히 불이 꺼지지도 않고, 벌레도 죽지 않는 지옥에서
슬프게 이를 갈고, 잔인한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영원토록 후회만 하게 됩니다.
이것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교만한 자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의 결정 앞에선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신 32:4-7
(4)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5)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고 삐뚤어진 세대로다
(6)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
(7)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
롬 1:20-21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하나님의 은혜와 기회가 풍성한 지금, 우리 각 사람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솔직하게 인정하여 생고무처럼 질긴 자신의 옛 자아를 다 내려놓고
십자가에서 죽은 후, 이후로는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즐겁게 지고
예수님께서 가신 길, 즉 좁은 문과 협착한 고난의 길을 즐겁게 따라 나서야만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느끼기에 너무나도 무거운 십자가를 즐겁게 질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제는 우리가 가장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진리의성령교회 가족 여러분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우리에게 허락해주신 결실들에 대해 감사할 뿐만 아니라 모든 일, 즉 범사에 감사하십시다.
매일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십시다.
그동안 우리에게 있었던 좋았던 일들도, 그리고 나쁜 일이라고 생각해왔던 일들도
그 모든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원망하는 마음, 불평하는 마음, 당연하게 생각했던 교만한 마음 등
전부 다 내려놓고 백지와 같은 하얀 마음으로
그저 모든 일에, 모든 것에 하나님께 다 감사하십시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정직한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가족이 될 것입니다.
또한 감사하는 마음을 해치는 강력한 적 중의 하나는
게으름이라는 중요한 사실도 기억해두십시다.
‘감사와 게으름이 대체 무슨 관계야?’ 하는 이들도 분명 있겠지만
놀랍게도 나태함과 게으름이 우리에게서 감사를 빼앗아갑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영적인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서로 많은 영향을 미치는데 나태하고 게으른 생활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도 찾기가 힘든 것이 당연하다는 듯 관찰됩니다.
귀찮아하는 게으름과 나태함 자체가 교만에서 파생되는 태도이고,
성실한 자세와 감사하는 마음은 겸손에서 파생되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평소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풍성한 사람은
“하나님, 이것도 감사하고, 저것도 감사합니다. 이 부분은 솔직히 힘든데 그래도 감사합니다.
더욱 성장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하면서
성실히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소화하며, 지금보다 더 성장하려고 애쓰지만
감사를 하기 싫어하는 교만에 가까운 사람은
‘하... 귀찮아. 하기 싫어. 대체 왜! 아! 짜증나...XX’ 하며 하나님과 더욱 멀어집니다.
더불어 힘들었던 자신의 하루일과에 대한 보상심리로
그저 세상의 쾌락만을 찾으면서 공허한 마음을 채우려 애쓰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에
그 마음에서 감사를 찾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것입니다.
이처럼 나태함과 게으름은 우리에게서 감사를 없애버리는 마귀의 강력한 무기 중의 하나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마귀에게 이 부분을 쉽게 내어주진 않았는지 심각하게 살펴보고,
또한 나태함과 게으름 외에도 또 어떤 것들이 우리에게서 감사를 빼앗아가고 있는지
각자 스스로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동을 주의 깊게 살펴보십시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저와 여러분들이 마음에 깊이 새기고 즉시 삶에 적용함으로서
나는 과연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감사로서 구원의 길을 잘 따라가고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교만하여 목이 굳어 하나님께서 주신 달콤한 은혜들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고난의 은혜는 완강히 거부하여 원망하고 불평하며,
짜증을 내뿜으면서 점점 영혼이 썩어가고 있는 사람인지
스스로 솔직하게 객관적으로 살펴봄으로서
의인은 없나니 한 명도 없다는 그 사실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는 겸손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모든 은혜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서
깨끗하고 하얗게 준비된 예복을 갖춰 입은 택한 자들이 되어
부디 늦기 전에 예수님께서 다시 와주실 그 날을 미리 잘 준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 22:1-14
(1)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9)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진리의성령교회 윤경훈 목사 올림
진리의성령교회 2022.11.20. 추수감사주일 설교
감사와 다짐의 노래
507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1.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그 맘에 평강이 찾아옴은
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이 하늘로부터 임함이로다
2. 주 모습 내눈에 안보이며 그 음성 내 귀에 안들려도
내 영혼 날마다 주를 만나 신령한 말씀 늘 배우도다
3. 가는길 거칠고 험하여도 내 맘에 불평이 없어짐은
십자가 고난을 이겨내신 주님의 마음 본 받음이라
4. 주 예수 세상에 다시 오실 그 날엔 뭇성도 변화하여
주님의 빛나는 그 형상을 다함께 보며 주 찬양하리
[후렴]
주님의 마음 본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첫댓글 아멘
매일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감사를 올리며
구원의 길을 걸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늘 당연해 보이는것과 고난 조차도
감사할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 합니다.
모든 것의 주인되시며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항상 감사와 영광을 올리는 모습으로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로서
안전하게 좁은 문과 협착한 길로 나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