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웃고 즐기는 건, 그만큼 고단한 일상생활을 잊기 위함이요, 그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건, 오만가지 들끓어 오르는 감정을 발산하기 위함이다.
환희, 슬픔, 증오, 사랑, 실의, 희망...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이래, 노래와 춤은 단 한번도 우리들의 삶에서 떠나가 본 적이 없다. 인간의 이성이 감정의 지배하에 있다는 가장 훌륭한 증거가 바로 가무를 즐기는 우리의 본성에 있지 않겠는가!
금번 역사의 라이벌은 대한민국 댄스 그룹의 전성기였던 90년대 중후반에 대립했던 두개의 그룹, 에쵸티와 젝키에 관한 이야기다. 사설은 접고 본론으로 후딱후딱 가보자.
2. 전사의 후예들 서태지와 아이들이 4집 발표를 하고, 또 은퇴선언을 했던 격동의 1995년이 지나고, 가요계는 황무지로 남겨질 것 같았다. 그러나 다섯명의 남자들이 앨범을 내고 가수활동을 개시함으로서 그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강타, 문희준, 토니안, 장우혁, 김재원. 이 들은 <전사의 후예>란 타이틀 곡을 내고 강한 비트에 랩, 그리고 파워풀한 춤을 선보이며 가요계에 일대 파장을 몰고 왔다. 그렇다. 그들이 바로 훗날 포스트-서태지 시대를 선도하게 될 HOT였던 것이다.
그러나 전사의 후예는 곧바로 표절시비에 휘말려 에쵸티는 위기에 처한다. 참으로 재밌는 것은, 전사의 후예와는 정반대 스타일의 곡 <캔디>로 오히려 더 큰 인기몰이를 했다는 것이다. 만약 전사의 후예가 표절에 걸리지 않았다면 에쵸티는 그저그런 댄스그룹으로 남겨졌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알록달록한 털옷, 털장갑, 털모자를 입고 쓴 그들. 엉덩방아 춤과 망치 춤을 추며 닭살돋을 정도로 달콤한 사랑을 속삭이는 <캔디>를 부르게 된다. 십대 소녀들의 악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후, 에쵸티는 <립씽크 아이돌 댄스 그룹>이란 독특한 장르를 개척해 나가며 가요계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게 된다. 즉 극성팬들을 확보해 나가고, 거대 음반회사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으며 가요판 자체를 현재의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으니, 서태지와는 또 다르게 가요계의 큰 영향을 미쳤다 볼 수 있다.
간지나는데? 이 사람들, 이제 삼십대다.
3. 여섯 남자, 여섯 보석 가요계에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패왕,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를 하고 남겨진 천하를 접수한 에쵸티. 그러나 하늘은 또 다시 서태지 같은 파천황(破天皇)을 원하지 않았나 보다. 바로 다음해인 1997년, 에쵸티에 필적할 만한 여섯 남자가 나타나 그들의 행보에 제동을 걸게 되었다. ...이제 눈치 채셨겠지? 그렇다. 바로 여섯 보석, 젝스키스가 그들이었다.
데뷔하자 마자 곧바로 에쵸티의 라이벌로 급부상한 그들은 훗날 <커플>, <폼생폼사>, <기사도>등을 발표하며 에쵸티의 강력한 라이벌로서 가요계의 한축을 담당했다. 소녀떼들은 물론, 소년떼들도 두 그룹사이에서 각자가 좋아하는 가수들을 위해 첨병역할을 맡아야만 했었다.
젝키가 있었기에, 에쵸티는 서태지 수준의 장악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젝키가 있었기에, 소녀떼들은 두 패로 갈라져 강력하게 대립했다. 그리고 젝키가 있었기에, <커플>을 들으며 필자는 울어야 했다.
개인적으로 필자 주변에서는 남자들은 젝키, 여자들은 에쵸티였지만 다 그랬던 것은 아닌 것 같다. 특히 에쵸티가 <We are the future>를 발표하고 나서는 남자들도 에쵸티에 쏠렸던 것은 사실이다. 하여튼 몸치인 필자를 제외하고는 다들 춤따라 하느라 난리도 아니었다.
은초딩으로 부활한 은지원. 요즘 아이들은 그를 개그맨으로 안다.
4. 황금시대, 그리고... 에쵸티와 젝키가 활동하던 90년대 중후반은 한국'음반'계의 황금기였다. 가요말고, 음반말이다 음반. 서태지가 남겨놓은 유산을 상속한 두 그룹과 그를 따라 일어선 수많은 가수들. 립싱크와 한탕주의적 음악제작 덕분에 오히려 한국'가요'계는 퇴보하지 않았나 싶다. 극성팬들의 박터지는 싸움박질도 문제가 되곤 했었다. (간미연의 면도칼 사건 기억하시는가?)
일회성 노래에 뻔한 가삿말, 감정이 전달되지 않는 립싱크 공연으로 사람들은 서서히 지쳐나갔고, 2000년도에 들어서며 급속히 퍼진 고속인터넷 덕분에 공짜음악을 듣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음반시장은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공짜라는 메리트이외에도 음악성을 인정받지 못한 가수들에게도 어느정도 책임은 있다고 본다. 다시말해 '소장가치있는 명품'으로서의 노래가 아니라 한두번 듣고 잊어 버릴 노래들만 주로 발표해온 가요계 주류의 실책이란 뜻이다.
5. 차세대 라이벌 에쵸티 vs. 젝키, SES vs. 핑클 이후 한동안 라이벌을 찾기 힘들었는데 최근에 원더걸스 vs. 소녀시대가 작게나마 라이벌 구도를 그려가는 것 같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박진영스타일을 좋아하지 않고, 아직 파릇파릇한 소녀의 감성을 보여주는 소녀시대에 한 표를 던지지만, 대세는 원더걸스인듯 하다.
아무튼 요원하기만하던 제 3세대의 아이돌 그룹이 나래를 펼쳤다고 볼 수 있어, 감회가 새롭기는 하다. 옛날에는 소위 아이돌 그룹이라 해도, 필자보다는 연상이었었는데, 지금의 아이돌은 그야말로 띠동갑들이 아니던가...!
척박해진 가요계에서 원더걸스, 빅뱅등이 얼마나 롱런할지 궁금하다, 그리고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된다. 이들이 무너지면 가요계가 더더욱 위축되지나 않을까하는 생각에서다.
노래방을 가면 최신곡보다 흘러간 노래를 부르는 필자 스스로를 발견하며 벌써 나이를 먹었다는 걸 느낀다. 그래도 젊은 애들 뛰노는 거 보는게 좋기는 좋더라...
소녀시대. 음악이나 안무나 딱 에스에무 스타일이다.
끝났냐고? 어허, 필자 성격 알면서 그런다. 물론 아직 더 남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역사의 라이벌 코너 마지막에는 부록이 붙지 않는가? 배보다 더 큰 배꼽이.
오늘의 부록은 에쵸티, 젝키와 함께 90년대 초중후반에 활동했던 댄스 가수들을 모아 보았다. 시대순이 아닌 생각나는 순이다.
룰라 1994년, <100일째 만남>으로 투투와 함께 레게 열풍을 주도한 그룹. 후속곡 <비밀은 없어>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2집 <날개잃은 천사>에서 김지현의 엉덩이춤으로 뭇 남성들을 넉다운 시켰지만...<천상유애>의 표절로 완전히 케이오 당했다. 이현도가 만들어준 <3,4>로 화려하게 재기해 꾸준히 활동하다가 요새는 잠잠하다.
1994년...개인적으로 정말, 많이, 아주, 무척 기억에 남는 한해...
투투 <1과 2분의 일>의 경쾌한 멜로디를 앞세운 룰라의 좋은 라이벌이었던 그들. '반쪽' 춤과 황혜영의 무표정한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그 뒤로는 룰라에 비해 지지부진하다 사라졌다.
터보 강렬한 인트로가 인상적이었던 <나 어릴적 꿈>, 익숙한 멜로디 <검은 고양이>, 그리고 <선택>의 잇달은 히트로 무시무시한 기세로 가요계를 장악해 나갔었다. 김정남의 각기춤과 김종국의 모기 소리가 절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마이키는 요즘 뭐하고 사나...
Ref <고요속의 외침>, <이별공식>으로 순식간에 치고 올라온 세 남자. 이성욱의 절규하는 듯한 독백이 인상깊었던 <찬란한 사랑>도 참신하면서 좋았었다. 한동안 인기를 끌다가 어느사이엔가 사라저 버렸다.
SES 에쵸티 vs. 젝키에 못지않은 라이벌이었던 SES와 핑클이었다. 바다, 유진, 슈. 이 세 소녀는 각기 다른 매력으로 남자들의 마음을 홀렸다. 데뷔곡 <I'm your girl> 이후, <너를 사랑해>, <Dreams come true>등으로 립싱크 여자 아이돌 댄스 그룹의 최강자로 군림해왔다. 그룹은 해체되었지만 바다나 유진은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필자는 예나 지금이나 유진파다!
핑클 SES보다 더 연약하고 소녀적이었던 핑클. 데뷔곡 <Blue Rain>은 대단한 인기를 끌지 못했었지만, 후속곡 <내 남자친구에게>가 공전의 히트를 날리며 일발역전에 성공하였다. 근데 필자만 그런 것인지 내 남자친구에게 이후로는 '약속해줘~' 밖에 떠오르는 노래가 없다...SES와 마찬가지로 멤버 보두 각자의 영역에서 치열한 생존게임을 벌이고 있다.
박지윤 <하늘색 꿈>. 성숙한 소녀 박지윤이 부른 곡이다. SES나 핑클처럼 귀엽고, 깜찍한 스타일이 아니라 감성적이고 몽환적 눈빛으로 남자들을 설레게 하던 그녀다. 훗날 <성인식>으로 기존이미지를 벗고 섹시다이나마이트로 등극하지만... 어째 요새는 지지부진하다. 왜 그럴까...
역시 소문이 무섭다...
자자 가슴에 와닿는 가사와 신나는 후렴구로 <버스 안에서>를 히트시켰지만, 그 다음에는 볼 수 없었다.
UP 1집때는 그저그랬었다. 그러나 <뿌요뿌요>, <바다>를 히트시키며 깜찍, 발랄계열의 다크호스로 등장했다. 근데 그 뒤로는 대체 '어딜 간거야?'
영턱스 클럽 딸꾹질 노래, <정> 딸랑 하나 히트시키고 사라진 그들. 나중에 재기한다고 나왔지만 별볼일 없었다. 안타깝다.
구피 이들이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기억은 나지 않고, 서세원쑈에서 말한 '배고파' 여러분들만 떠오른다.
컨츄리 꼬꼬 독집앨범을 들고 나왔다가 망한 배성...아니 탁재훈. 룰라의 멤버로 화려한 데뷔를 했지만 군대갔다 와서는 채리나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할게 없었던 신정환. 이 둘이 모여 그룹을 결성했다. 그 이름도 촌스런 컨츄리 꼬꼬. <오! 해피>에서 부터 가볍게 즐기는 노래를 부르는 그룹인걸 눈치챘다. 그 후 <텔미>, <키스>등이 히트했지만 <콩가>를 마지막으로 개그계로 자리를 옮겨왔다. 유재석과 함께 서세원쑈 최대 수혜자.
이승환과 맞짱을 뜰 정도로 많이 컸다.
태사자 김희선이 지었다는 그룹명 태사자. 뭐, 삼국지에서 잘 싸우고 충성스럽지만, 정작 공을 세운 적은 별로 없고 일찍 죽었다. 그래서일까. 가수 태사자도 그리 장수하지는 못했다.
베이비 복스 데뷔곡 <머리하는 날>은 실패했다. 그러나 와신상담, 절치부심. 2집의 <야야야>는 머리하는 날과는 달리 귀엽고 청순한 노래와 가사, 춤과 복장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그뒤로 승승장구, 국내에서 뿐만아니라 동남아에서 먹어준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정현 영화 꽃잎으로 데뷔해 차세대 연기자로 인식되었던 그녀가 <와> 하나로 테크노 여전사의 위치에 등극했다. <바뀌>, <너>, <반>등 파워풀한 곡들과 더불어 <줄래>, <섬머 댄스>같이 귀엽고 깜찍한 이미지를 동시에 사용한 보기 드문 가수였다.
엄정화 신해철의 <눈동자>는 별로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러나 작곡계의 수다꾼 주영훈, 그녀를 <배반의 장미> 특유의 섹시도발로 폭발시키며 가요계의 거물로 자리매김 시킨다. <초대>, <포이즌>등 도도하면서 섹시한 매력으로 오랫동안 큰 인기를 얻어왔다. 최근에는 어쩐지...
이모, 이건 좀...
임창정 <이미 나에게로>. 제목에 그가 좋아하던 여자의 이름이 들어있단 일화가 퍼졌지만, 가수로서의 임창정이 인기를 얻은 것은 그가 모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정선희와 기묘한 커플을 이룬뒤 발표한 <그때 또 다시>때문이었다. 댄스 가수는 아니었지만 <늑대와 함께 춤을>에서 촐랑거리는 춤이 인상에 남아서 리스트에 올린다.
신화 <T.O.P>의 익숙한 선율과 함께 나타난 여섯남자. 포스트-에쵸티를 이어가게된 차세대 아이돌 그룹. 아직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그들이다. 멤버 서로간의 라이벌의식이 팽배한 보기드문 그룹이지 않을까 싶다. 국내 연예인들 중에서 가장 번지 점프를 잘한다.
지오디 <어머님께>는 그때까지 들어오던 사랑타령의 노래들 하고는 전혀 달랐다. 아니, 김창완의 <고등어> 이후 어머니의 정을 그린 기발한 노래였다. 에쵸티, 젝키, 신화와는 달리 성실하고 건실한 청년들 이미지로 먹고 산 그들이다.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에서 뭉클하지 않았던 사람이 있을까? 재민이는 잘 크고 있을지 궁금하다.
김현정 <그녀와의 이별>, 시원한 가창력의 소유자, 김현정의 데뷔곡. '돌려놔~'로 유명한 <멍>, <너 정말>, <떠난 너>등으로 인기를 이어왔으나 최근에는 역시나 지지부진.
샤프 룰라의 이상민이 키웠다고 하던 그들. 뭐, 여러가지 곡을 발표하고 인기를 끌었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이지혜와 서지영의 피튀기던 싸움뿐.
쥬얼리, 샤크라 아마 90년대는 아닌 것 같다.
클레오 <Ready for love>는 참 즐겁고 사랑스런 노랜데. 그것말고는 기억나는게 없다. 음...<모순>정도? 파파야하고 헷갈린다.
최창민 그야말로 반짝가수. 인생사 새옹지마를 느끼게 하는 남자.
개인적으로 처음에는 싫어했지만, 나중에 그의 인생사를 듣고 미안해졌다.
언타이틀 꽤 음악제조 능력이 있었다고 여겨졌는데, 잊혀진지 오래.
채정안 또다른 반짝가수. 연기자로서는 아직까지 잘나가고 있다.
박명수 반짝가수였어야 하는데, <탈랄라>를 발표한게 작년이었나?
~~우리나라는 유전국이다~~어쩜 봐도 봐도 질리지 않냐...
박진영 <날 떠나지마>, <허니>, <난 여자가 있는데>, <그녀는 예뻤다>등이 히트했고, 요즘에는 비와 원더걸스를 성공시켜 제작자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별로...
소찬휘 전율적인 가창력의 소유자이지만 정상하고는 거리가 있는듯. <헤어지는 기회>의 이중발표로 첫 단추부터 어그러진 셈이라 안타깝다.
스페이스 A <성숙>, <어떤욕심> 음...또 뭐가 있더라? 아...루루의 누드집.
원타임 'One time for your mind' 필자가 고등학생이었을때, 정말 대 히트였다. 학교에서 따라부르고 난리도 아니었다.
ART 에이알티. <슬픈얼굴>은 꽤 고급스럽고 좋았는데 그 뒤로 찾아 볼길이 없다.
지누션 <개솔린>으로 데뷔한 까스형제. 양현석이 아이들에서 벗어나 키운 첫번째 가수로 기억된다. <말해줘>의 와이퍼 춤. <태권V>, <A-yo>등 따라부르기 쉽고 흥겨운 노래들을 발표해왔다. 특히 션은 미녀 배우 정혜영을 사로잡아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있다.
클론 국민 가요, <꿍따리 샤바라>의 주인공인 그들. <난>, <도시탈출>, <돌아와>, <초련>. 더 이상 무슨 말과 소개가 필요하랴? 원래, 파워풀하고 정열적인 가수들었지만 강원래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다음에도 포기하지 않는 삶의 자세로 많은 이의 귀감이 되고 있다.
싸이, 조피디 소위 막말가수의 선두그룹. 근데 이들도 90년대에 소속되는 건가?
드렁큰 타이거 댄스그룹은 아니지만 서도...
업타운 <다시 만나줘> 다음엔 영...윤미래가 발굴된게 최대 히트다.
디제이 디오씨 <슈퍼맨의 비애>가 몇년도 작품이더라?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전설은 설명하지 않으련다.
서태지 기념 앨범. 다운시대인 요즘에서도 꽤 많이 팔렸다지?
코요태 신나고 즐거운 멜로디에 신지의 째지는 음색을 버무린, 녹록치 않은 내공을 지닌 그들. 어리버리 김종민과 회사 사장님을 이긴다는 신지의 카리스마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유승준 <가위>로 데뷔해 가위춤을 히트시키고, <나나나>시절에는 머리에 더듬이를 달고 나오더니만, 이현도의 곡 <열정>으로 가요계를 평정한 후, <찾길바래>에서 '착낄 부아래애~'로 유재석을 웃겼던 청년. 아...그러나, 이 화려한 경력을 한방에 장렬히 뽀개버린 군기피 사건. 군대가겠다는 거짓말 한것도 화나는데, 병무청에 잠깐 다녀오겠다고 서약까지 하고 일본으로 날라버린 죗값에 입국조차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버렸다. 그 한몸 희생해서 연예인이라도 군대다녀오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는 것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성 싶다. 문희준을 보라. 10만 안티를 비웃듯, 군대를 다녀와 '무뇌충'에서 '문보살'로 등극하지 않았는가. 문희준이 유승준을 보며 느낀게 많았을 것이다.
오.. 최창민은 스톰오브런던 모델로 데뷔해서 막 테크노 뜰때 뽀쓰가 아주... 영웅이랑 그녀의 곁에는 항상 내가 있었다.. 딱 두곡 띄우고 사라져간 비운의 가수... 갠적으로 UP는 1집의 1024가 젤로 맘에 들고, DJ DOC데뷔년도는 94년이었던듯... 샤크라는 확실히 2000년대에 데뷔했죠. 베이비복스는 역시... 김이지의 슴가뽀스가 절절에 달했던... 야야야 이후 노래였는데 제목이 기억이 나질 않네... 3집이었나, 그때가 짱이었고, 이정현은 삐삐밴드의 보컬 윤정씨의 솔로앨범 스딸을 그대로 가져와 히트를 쳤지만, 결국은 가창력의 부재로 사라졌죠. 윤정씨는 너무 앞서가서 아무도 알아주지 못했었다는... 아까워아까워...
개인적인 취향은 메이저에서 살짝 엇나간 비주류라, 역시 에쵸티보담은 젝키가, 서태지보담은 듀스가 좋긴한데... 워낙에 서태지는 전설이다보니.. 흠. 92년 4월에 처음으로 서태지의 테잎을 들었었는데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들었던 Yo Taiji!가 처음엔 팝송인줄 알았었죠. 듣다보니 한국말... 엄청난 충격이었죠. 당시에는 '랩'이라는 개념은 음악 좀 안다.. 하는 사람들에게나 있었던 거니까. 박남정씨나 신해철씨, 이승철씨, 홍서범씨, 공일오비 등등이 좀 하긴 했지만 뭐, 거의 나레이션과 랩과의 경계가 애매모호해놨던 터라... 거의 봄여름가을겨울같은 밴드들이 노래 중간에 나레이션 하는 것과 동급으로 여겨졌었으니까요. 서태지의
비트가 들어간 랩은 가히 혁명이었죠. 사실 90년대 그룹가수들은 결국 비주얼이니 춤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가 없겠는데, 에쵸티-젝키 이전 태지나 듀스, 노이즈 등등은 맞춰춘다고는 해도 어느정도 여백의미(?)가 있었던 편이었지만, 에쵸티와 젝키 이후로는 정말... 특히 젝키 같은 경우는 에쵸티보다는 단순한 동작임에도 불구하고 손가락 각도까지 딱딱 맞춰주는 엄청난 허슬... 팀플레이였죠. 95년, 96년 듀스 백댄서니 하는 전국에서 날리는 댄서들도 윈드밀 세바퀴 반... 뭐 이랬었는데, 요즘은 한국 비보이들이 전세계를 휩쓸고 있으니, 90년대 비쥬얼그룹들이 그쪽으로는 상당한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 싶네요.
님이말씀하신 지금의 혹은 다소몇년전의 10대말고 다른분들이 10대이셨을때를 말하는겁니다..그러니까 족히 15년전에는 그구도를 구성할수가 있었단 얘기죠...비와 쎄븐의 문제도 비가 비교우위를 점하기전에 쎄븐의 위치를 이용을 했다면(이른바 타겟맨으로써) 비가 그렇게 빨리 치고나가지 못했을꺼란 말입니다..시장성은 가수의 발목을 잡았다 놓았다 하는 법입니다 ..가수가 시장을 잠식한다는 발상은 좀...
제가 나비님과 감히 음악쪽으로 토론할 수준이 아니라 뻘쭘하기는 해도, 당시의 김건모와 신승훈이 벌였던 라이벌 구도는 거기까지가 한계였다고 봅니다. 그들을 이용하지 못해 가요계가 침체되었단 전제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군요. 또한, 비와 쎄븐의 경우 당시 밀려왔던 한류열풍때문에 어느 한곳의 시장에 집중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싶어요. 물론 가수 개개인이 시장을 잠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당시에도, 현재에도 한국의 가요계는 철저히 유행을 따른다는 것을 상기하면, 시장성이 가수의 발목을 잡는다기 보다는 가수가 시장의 흐름에서 도태되지 않으려 발버둥을 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만. 좋은 의견 잘 들었슴다
첫댓글 역사의 라이벌도 벌써 세번쨉니다. 소재가 고갈되고 있어요...
오.. 최창민은 스톰오브런던 모델로 데뷔해서 막 테크노 뜰때 뽀쓰가 아주... 영웅이랑 그녀의 곁에는 항상 내가 있었다.. 딱 두곡 띄우고 사라져간 비운의 가수... 갠적으로 UP는 1집의 1024가 젤로 맘에 들고, DJ DOC데뷔년도는 94년이었던듯... 샤크라는 확실히 2000년대에 데뷔했죠. 베이비복스는 역시... 김이지의 슴가뽀스가 절절에 달했던... 야야야 이후 노래였는데 제목이 기억이 나질 않네... 3집이었나, 그때가 짱이었고, 이정현은 삐삐밴드의 보컬 윤정씨의 솔로앨범 스딸을 그대로 가져와 히트를 쳤지만, 결국은 가창력의 부재로 사라졌죠. 윤정씨는 너무 앞서가서 아무도 알아주지 못했었다는... 아까워아까워...
윤정양은 저도 아깝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취향은 메이저에서 살짝 엇나간 비주류라, 역시 에쵸티보담은 젝키가, 서태지보담은 듀스가 좋긴한데... 워낙에 서태지는 전설이다보니.. 흠. 92년 4월에 처음으로 서태지의 테잎을 들었었는데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들었던 Yo Taiji!가 처음엔 팝송인줄 알았었죠. 듣다보니 한국말... 엄청난 충격이었죠. 당시에는 '랩'이라는 개념은 음악 좀 안다.. 하는 사람들에게나 있었던 거니까. 박남정씨나 신해철씨, 이승철씨, 홍서범씨, 공일오비 등등이 좀 하긴 했지만 뭐, 거의 나레이션과 랩과의 경계가 애매모호해놨던 터라... 거의 봄여름가을겨울같은 밴드들이 노래 중간에 나레이션 하는 것과 동급으로 여겨졌었으니까요. 서태지의
비트가 들어간 랩은 가히 혁명이었죠. 사실 90년대 그룹가수들은 결국 비주얼이니 춤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가 없겠는데, 에쵸티-젝키 이전 태지나 듀스, 노이즈 등등은 맞춰춘다고는 해도 어느정도 여백의미(?)가 있었던 편이었지만, 에쵸티와 젝키 이후로는 정말... 특히 젝키 같은 경우는 에쵸티보다는 단순한 동작임에도 불구하고 손가락 각도까지 딱딱 맞춰주는 엄청난 허슬... 팀플레이였죠. 95년, 96년 듀스 백댄서니 하는 전국에서 날리는 댄서들도 윈드밀 세바퀴 반... 뭐 이랬었는데, 요즘은 한국 비보이들이 전세계를 휩쓸고 있으니, 90년대 비쥬얼그룹들이 그쪽으로는 상당한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 싶네요.
노이즈를 빼먹었었군요. 아무튼 현재의 그 비보이들의 토양에 비를 내려준 건 에쵸티와 젝키가 아닐까 싶어요. 아무튼 민석님의 탁월한 견해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위에서 부터 쭈~욱 읽어 내려오니..머릿속에 중학교 고등학교 학창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네여~ ㅋㅋㅋㅋ 당시 트렌드와 패션~ 나이트뮤직 스퇄~ 등등.. ㅋㅋㅋㅋ
나도 쓰면서 많이 추억에 잠겼단다.
현 한국 가요계의 대대적인 침체는 김건모와 신승훈의 라이벌구도를 적절하게 이용하지 못했다라는점을 간과할수 없군요..어찌보면 가요계에 마지막으로 내려진 선물이 비와 쎄븐의 구도였는데 그마저도 그냥 넘겨버렸으니...소녀시대와 원더걸스는 임팩트가 약한것 같꼬..암튼 저도 살짝 주절주절..^^
글쎄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미 10대 위주로 재편된 가요계에서 그 둘의 라이벌 구도가 얼마나 더 먹혔을지는 의문입니다. 비와 쎄븐은 라이벌이 되기엔 쎄븐이 좀 약해 보였죠.
님이말씀하신 지금의 혹은 다소몇년전의 10대말고 다른분들이 10대이셨을때를 말하는겁니다..그러니까 족히 15년전에는 그구도를 구성할수가 있었단 얘기죠...비와 쎄븐의 문제도 비가 비교우위를 점하기전에 쎄븐의 위치를 이용을 했다면(이른바 타겟맨으로써) 비가 그렇게 빨리 치고나가지 못했을꺼란 말입니다..시장성은 가수의 발목을 잡았다 놓았다 하는 법입니다 ..가수가 시장을 잠식한다는 발상은 좀...
제가 나비님과 감히 음악쪽으로 토론할 수준이 아니라 뻘쭘하기는 해도, 당시의 김건모와 신승훈이 벌였던 라이벌 구도는 거기까지가 한계였다고 봅니다. 그들을 이용하지 못해 가요계가 침체되었단 전제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군요. 또한, 비와 쎄븐의 경우 당시 밀려왔던 한류열풍때문에 어느 한곳의 시장에 집중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싶어요. 물론 가수 개개인이 시장을 잠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당시에도, 현재에도 한국의 가요계는 철저히 유행을 따른다는 것을 상기하면, 시장성이 가수의 발목을 잡는다기 보다는 가수가 시장의 흐름에서 도태되지 않으려 발버둥을 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만. 좋은 의견 잘 들었슴다
가요계 라이벌은 남진 나훈아를 빼고는 거론하지 말라는 우리 엄마의 말씀 -_-
착한 아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