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은희경 / 장미의 이름은 장미 / 문학동네
한우림
은희경의 <장미의 이름은 장미>는 연작소설이다.
미국이란 무대에서 주인공만 다른 단편소설이다.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장미의 이름은 장미>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 <아가씨 유정도 하지> 총 네 편으로 모두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연작소설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하나의 주제를 놓고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 또는 여러 작가가 나누어 쓴 것을 하나로 만들거나 한 작가가 같은 주인공의 단편소설을 여러 편 써서 하나로 만들 소설이다.
은희경의 <장미의 이름은 장미> 연작소설은 등장인물들이 뉴욕에 '잠시' 머문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임시로 머물렀던 곳, 그래서 이방인이었던 주인공들, 옛 친구를 만나러 가거나, 어학연수를 하기 위해, 글을 쓰기 위해 또는 짧게 머무르기 위해 등의 이유로 머물게 되지만 철저하게 내가 결정했던 일들이 오해였거나, 다름이었거나, 잘못된 결정이었음을 느껴야만 했다.
표제작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에서도 뉴욕은 일종의 도피처처럼 여겨진다.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의 승아는 충동적으로 뉴욕에 사는 친구 민영을 찾아왔지만, 민영에게 다음주면 계약 기간 2년을 채우게 되고 정규직으로는 채용되지 않을 테니 쫓겨날 게 뻔하다는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민영 역시 본인의 결핍을 굳이 승아에게 털어놓지 않는다.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에서 현주는 길고 짧게 네 번이나 뉴욕에 방문했지만, 여전히 이곳에서 이방인이다. 현주는 뉴욕이 네 번째 방문임에도 여전히 영어는 관광객 수준에 머물러 있고 새로운 극작품을 마무리하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한국을 떠나 뉴욕으로 오면 좀 더 나을것이라 생각했지만, 여전히 글은 써지지 않고 로언과의 관계도 점차 나빠질 뿐이다.
80대 어머니와 함께 문학 행사에 초대받아 뉴욕을 찾은 ‘아가씨 유정도 하지’의 주인공도 어머니의 추억을 따라 즐겁게 여행하는 어머니와 함께 하지만 닷새간의 일정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네 편의 주인공들은 공통적으로 무언가를 탈피하고 해결책을 찾고 싶어 충동적으로 뉴욕을 찾는다. 무슨 일인가 심각하게 벌어질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다. 낯선 도시, 내가 알던 사람들에게 느껴졌던 낯설음, 내가 선택했던 결정들이 틀려버린 답안지, 어쨌든 이 소설에서 느낀 것은 모든 것은 추억이 될 수도 있지만 떠올리고 싶지 않는 삶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결국 내 삶의 단편들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책 제목인 <장미의 이름은 장미>를 읽을 때는 혹시 작가의 삶의 투영된 작품이 아닐까? 잠시 생각해보기도 했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의 주인공 수진이 이혼을 하고 홀로 뉴욕으로 떠난 마흔여섯의 ‘나’와 그녀가 어학원에서 만난 세네갈 대학생 ‘마마두’와의 관계에서 한국어가 아닌 영어를 통해 분명하고 직관적으로 말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묘한 해방감을 느끼면서 가까워지지만 7년 후, 한국에 돌아온 수진은 당시의 뉴욕을 떠올리며 “마마두와의 작별은 더욱이 기억에 없다”고 회고한다.
수진은 한국에서 뉴욕으로 오기 전 이혼을 했다. 어학연수는 그에게 도피성 여행이었다. 수진은 뉴욕에서 “자신을 둘러싼 세계뿐 아니라 자신에게서도 도망치고 싶었는지 모른다. 잘못된 장소로 와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해도 되돌아 나가서 다른 경로를 찾기에는 두려운 나이”에 처한 스스로를 발견한다.
작가 은희경은 말한다. 소설가가 되려면 일단 일상과 단절된 공간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무척 설레는 말이다. 처음 은희경의 소설 <새의 선물>을 독서회에서 읽었는지, 문학동네 1회 수상작이어서 읽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없지만 이번에 <장미의 이름은 장미>를 읽으면서 은희경작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계기는 된 것 같다.
<새의 선물>도 어머니가 다니는 불교대학의 스님이 계신 절에서 한 달 반을 살면서 쓴 소설이다.
나도 늘 어딘가를 떠나고 싶을 때가 많다. 글을 쓰고 싶은데 머릿속에서만 맴돌 때 혹은 무슨 일인가를 힘겹게 마무리했을 때, 혹은 어줍잖게 시를 중점적으로 쓰는 내가 단편소설이나 장편소설 하나를 마무리했을 때 성취감과 후련함? 그런 것들이 밀려올 때면 늘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오랫동안 떠나 있을 엄두는 나지 않는다. 아직은 소설가로서의 자질이 부족한가 보다.
독서회에서 주어진 책 읽기는 사실 부담스럽기도 하다. 내가 정하지 않는 책을 읽는 무관심과 독후감을 써야 한다는 것과 책 한 권에서 무엇인가를 찾아야 하는 숙제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 속에 은희경 작가를 떠올려 볼 수 있는 문장을 소개해본다.
그날은 아주 화창한 날이었다. 머리 위에는 푸른 하늘이 끝없이 펼쳐졌고 멀리
잔디밭에서 아이들 노는 소리가 들려왔다. 햇살 아래 신록이 눈부셨으며 나무 그림자 위로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현주에게는 낯설고도 좋은 하루였다. p.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