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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의 맑고 푸른 물이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 한가운데 세개의 봉우리가 솟아있다. 가운데 봉우리는 늠름한 장군처럼 위엄 있는 자태를 하고 있는데 이를 남편봉이라 부르고 그보다 좀 작은 북쪽 봉우리는 처봉, 남쪽 봉우리는 첩봉이라 부른다. 이 삼봉 가운데 처봉은 아들을 얻기 위해 첩을 둔 남편을 미워하여 돌아앉은 모습을 하고 있고 첩봉은 아기를 밴 모습으로 남편봉을 바라보고 있다.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 선생이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할 만큼 젊은시절 이곳에서 청유하였다고 전해지는 도담삼봉은 원래 강원도 정선군의 삼봉산이 홍수 때 떠내려와 지금의 도담삼봉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단양에서는 정선군에 매년 세금을 내고 있었는데 어린 소년 정도전이「우리가 삼봉을 정선에서 떠내려 오라 한 것도 아니요,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으니 도로 가져가라」고 한 뒤부터 세금을 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장군봉에는「삼도정」이라는 육각정자가 있었다. 영조 42년(1766) 가을 조정세 단양군수가 이곳에 능영정을 창건했었는데 폐허되었고 1807년 김도성이 목조 사각정을 건립 보존해오다가 1972년 대홍수로 인하여 유실된 것을 1976년 10월 철근콘크리트 육각정을 신축하고 삼도정이라 명명하였다.
나룻배를 타고 이곳 삼도정에 올라 시 한 수를 읊으면 누구나 신선이 된듯 감흥에 젖는다. 경치가 좋아 많은 선비들이 주옥같은 시를 남겼다.
山明楓葉水明沙(산명풍엽수명사)
三島斜陽帶晩霞(삼도사양대만하)
爲泊仙橫翠壁(위박선사횡취벽)
待看星月湧金波(대간성월용금파)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석양의 도담삼봉엔 저녁놀 드리웠네
신선의 뗏목을 취벽에 기대고 잘 적에
별빛 달빛아래 금빛파도 너울지더라
도담삼봉에는 1997년 11월부터 7억여원의 사업비를 들여 국내 최초로 노래방식 음악분수시설을 설치하여 1998년 5월 25일부터 본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음악분수는 최첨단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노래를 부르면 음정에 따라 36가지의 다양한 모양으로 분수를 분출하여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토록 시설되어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도담삼봉 지구
도담삼봉 지구 내에는 공예전시관과 광공업전시관이 건립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주변에는 민물고기 매운탕 등을 판매하는 10여 개소의 관광식당이 영업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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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수동굴 (단양팔경은 아님)
- 차량으로 고수대교를 건너 5분거리에 짧은 시간 이나마 태고의 신비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주굴과 지굴의 길이가 1,300m인 자연동굴로써 천연기념물 제 256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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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지명은 임진왜란(1592년) 당시 한양을 떠나 피난길에 오른 밀양 박씨 형제 중 아우는 청주에 형은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당시 이곳에는 키큰 풀(姑)이 많이 우거져(藪) 고수라고 부르게 된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갈대밭이 많았던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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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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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삼봉 음악분수대에서 300m 정도 올라가면 전망대를 지나 수 십 척에 달하는 무지개 모양의 돌문이 나타나는데 신선들이 드나들고 천상의 선녀들이 하늘하늘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노래를 불렀음직하다. 석문 우측 아래에는 작은 동굴이 있는데 굴속에 깔린 암석은 아흔 아홉 개의 논다랭이를 이루고 있다. 물이 담겨져 있어 농촌의 한적한 계곡의 논두렁을 연상케 하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마고할미가 하늘나라에서 물을 길러 내려왔다가 비녀를 잃어버려서 비녀를 찾으려고 흙을 손으로 판 것이 99마지기의 논이 되었는데 비녀를 찾지 못한 논다랭이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비녀를 찾을 때까지 기다리며 농사를 지었다. 그 논을 옥전(玉田)이라 한다. 술과 담배를 좋아하던 마고할미는 일생을 이곳에서 보내다가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어서 바위 가 되었다. 지금도 긴 담뱃대를 물고 술병을 들고 있는 마고할미의 형상이 바위에 남아있다.>
석문에서 상류로 조금 더 올라가면 자라의 모습을 정교하게 조각해 놓은 듯한「자라바위」를 볼 수가 있으며 석문 부근의 절벽에는 측백나무들이 자라고 있어서 주변경치를 사시사철 푸르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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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담봉
구담봉은 깎아지른 듯한 장엄한 기암절벽 위의 바위가 흡사 거북을 닮아 구담봉이라 한다.
조선인종 때 이지번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하였는데 푸른 소를 타고 강산을 청유하며 칡넝쿨을 구담의 양쪽 언덕에 매고 비학을 만들어 타고 왕래하니 사람들이 이를 보고 신선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제비봉과 금수산, 멀리는 월악산이 감싸고 있어 충주호 수운관광의 최절경지로 손꼽히고 있다.
曉過龜潭月在山(효과구담월재산)
高居想像有無間(고거상상유무간)
主人今作他山隱(주인금작타산은)
鶴怨猿啼雲自閒(학원원제운자한)
새벽에 구담을 지나노라니 달은 산마루에 걸려있네
높이 웅크린 구담봉은 무슨 생각 저리 깊을까?
예 살던 신선은 이미 다른 산으로 숨었으리라.
다만 학과 원숭이 울고 구름만 한가로이 흘러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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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순봉
희고 푸른 바위들이 대나무 순 모양으로 천여 척이나 힘차게 치솟아 절개 있는 선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봉우리를 옥순봉이라 한다.? 여러 개 기이한 봉들은 조화의 묘를 다하였으며 산세의 기복과 굴곡이 자유분방하다.
옥순봉은 원래 청풍에 속해 있었는데 조선 명종 때에 관기 두향이가 단양 군수로 부임하는 퇴계 이황 선생에게 옥순봉을 단양군에 속하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퇴계 이황 선생이 청풍부사에게 청을 하였으나 청풍부사가 이를 허락하지 않자 퇴계선생이 석벽에 丹丘洞門(단구동문) 이라는 글을 암각하여 이곳을 단양의 관문이며 군경계로 정했다고 한다. 뒤에 청풍부사가 남의 땅에 군계(郡界)를 정한 자가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 옥순봉에 가보니 글씨가 힘차고 살아있어서 누구의 글씨냐고 묻자 퇴계의 글씨라고 하니 감탄하면서 옥순봉을 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옥순봉은 소금강이라는 별칭을 가질 정도로 비경인바,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연산군 때 문신 김일손(金馹孫)도 이곳을 탐승하면서 절경의 협곡을 극찬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주변에는 강선대와 이조대가 마주보고 있으며 특히 강선대는 높이 15m의 층대가 있고 대위에는 100여명이 앉아 놀수 있는데 호서읍지에 의하면 당시의 관기 두향이 풍기군수로 전임한 퇴계 이황을 그리면서 강선대 아래에 초막을 짓고 살다가 죽으면서 이곳에 묻어 달라 하여 장사하였는데, 그후 기녀들이 이곳에 오르면 반드시 제주 한 잔을 그의 무덤에 올렸다 하며, 충주댐 수몰로 이장하여 강선대 위 양지바른 산에 이장하여 매년 관기두향의 넋을 기리는 제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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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암
대강면 사인암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맑은 운계천을 따라 명명된 운선구곡(雲仙九曲) 중 제7곡에 해당되는 사인암은 우리고장 출신인 고려말 대학자 역동 우탁(易東 禹卓) 선생이 사인(舍人) 벼슬로 재직 할 당시 이곳에서 청유하였다하여 조선 성종 때 단양군수로 재임한 임재광 선생이 명명하였다.
수직으로 치솟은 석벽은 보는이로 하여금 감탄사를 절로 자아내고 있으며 조선시대 화원인 단원 김홍도를 비롯하여 많은 시인묵객들이 이곳을 찾아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남기거나 석벽에 각자(刻字) 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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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선암
단성면 대잠리 575지방도 아래 위치한 하선암은 삼선구곡을 이루는 심산유곡의 첫 경승지로 3층으로 된 흰 바위는 넓이가 백여척이나 되어 마당을 이루고 그 위에 둥글고 커다란 바위가 덩그렇게 얹혀 있어 가관인데 처음에는 부처바위(佛岩)로 불리다가 성종 때 군수 임재광이「선암」으로 고쳐불렀다. 후에 퇴계 이황선생이 하선암(下仙岩)이라고 하였다.
거울같이 맑은 물이 주야장천 흐르고 있고 물속에 비친 바위가 마치 무지개 같이 영롱하여「홍암(紅岩)」이라고도 한다. 봄철에는 진달래와 철쭉, 여름에는 운무,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적설노송이 절경을 이루어 조선시대의 많은 화원들이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았다고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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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선암
조선 효종조의 문신인 곡운 김수증 선생이 명명한 곳으로 삼선구곡의 중심지이다.
흰색의 바위가 층층대를 이루어 맑은 계류와 더불어 여름철 유람과 휴양지로서 최적의 절경을 이룬다. 골짜기로 흐르는 맑은 물속에서 쌍용이 승천하였다는「쌍룡폭포」가 있고 백색의 웅장한 2개의 바위가 있으니 하나는「옥염대」또 하나는「명경대」라 부른다. 옥염대 암벽에는 사군강산 삼선수석(四郡江山三仙水石)이라 대서특필한 각자가 있으니 이는 조선 숙종 43년 충청도 관찰사 윤헌주(尹憲柱) 선생이 특서한 것으로 사군이란 당시의 단양, 영춘, 제천, 청풍을 일컫는다.
도락산의 흰 바위와 노송이 느릿느릿 내려 있고 화강암석의 빛과 맑은 하늘의 구름이 중선암 물에 비쳐있는 절경에 반해 조선시대부터 수많은 명현 묵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아 현재까지 전해지는 바위에 각자된 이름만도 300명이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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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선암
크고 널찍한 바위는 없으나 작고 올망졸망한 바위들이 서로 모여 있는 모습은 소박하고 정겨운 한국인의 이웃을 연상케 한다.
그 주위는 만장의 청단대석이 벽을 이루고 계수는 반석사이를 용출하여 평평히 흐르다가 좁은 골에 이르러서 폭포가 되니 그 음향은 우레와 같고 튀는 물방울은 좌우종횡하여 관광객의 옷깃을 적셔주니 그 즐거운 선경은 형용하기 어렵다. 양안의 기암과 밤낮없이 흐르는 계류의 청음은 울창한 숲에서 사방 우짖는 새소리와 함께 현유선객들의 탐승의 흥취를 돋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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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도락산과 단양팔경 가고싶어요~~
빨리 가고싶어요..어서!
언젠가 가 봐야지 ㅎㅎ 잘 봤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