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운 구암리 사람들
우강회에서 울릉도로 여행을 떠났다. 포항에서 출발하여 서너 시간 바다만 보며 달려갔다. 섬들이 파도를 막아주는 다도해와 딴 판이었다. 그렇게 가 보고 싶던 신비의 섬, 도동항에 닿았다.
깎아지른 바위산에 붙어사는 향나무가 신기하게 보였다. 좁은 부두에 관광객만 북적였다. 어선이나 화물선은 뵈지 않았다. 포구 좌우 산책로에 등산복 차림의 관광객이 난간을 잡고 오르내리고 있었다. 후포나 죽변처럼 바다에 선착장을 넓게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울릉도는 신비의 섬’이라는 구호가 보였다. 이 섬에서는 삼무오다(三無五多)를 자랑하고 있다. 향나무와 바람, 미인과 물, 돌이 많다는데, 내가 보기에는 나물이 많이 생산 되고 있었다. 거지와 도둑과 뱀이 없다는데 논이 보이지 않았다. 울릉도는 화산의 폭발로 생긴 섬이다. 나리분지의 분화구에서 화산을 뿜어 올려 성인봉이나 태하령을 만들고, 흘러내린 흙이 바다와 경계를 이룬 곳이다. 그러니까 들판이 없다. 산언저리에 겨우 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었다.
우리 일행은 교통이 편리한 도동에 머물지 않고 서면 구암리로 갔다. 덕인 선생이 구암 분교에 근무할 때 살던 곳이다. 그는 이번 기회에 형제처럼 지내던 동생 댁에 가서 지난날의 회포를 풀려고 갔던 것이다.
분교는 지금 폐교되어 건설회사에서 사용하고 있었다. 구암리가 번성할 때는 팔십여 호로, 학생이 구십여 명까지 되었으나 점점 줄어들어 결국 문을 닫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동네에 젊은이와 아이들이 없었다. 십여 호 되는 가구에 온통 육십 대와 칠십대 노인뿐이었다. 그러나 물이 좋아서인지 피부가 곱고 노인 같지 않았다.
구암리에도 한 때 투기 붐이 일었다고 한다. 동네에 헬기장이 생기고, 밭은 모두 외지 사람 손에 넘어갔다. 그 동네의 특이한 점은 바닷가인데 포구나 선착장이 없고, 배가 한 척도 없었다. 옛날부터 봄에 산나물을 캐고, 겨울엔 김을 말리면서 생계를 이어왔다고 한다. 여름과 가을은 한가하게 지내는데, 요즘은 태풍 피해로 유실된 도로를 보수하느라 일거리가 있단다. 가끔 산 속에 들어가 상황버섯을 비롯하여 약재를 채취한다. 그 동네는 집집마다 상황버섯이 있었다. 우리 일행 중에 자연산 상황버섯을 산 사람도 있다.
울릉도엔 나물이 많이 난다. 그 곳의 나물은 소금기 어린 바닷바람을 머금고 자라서 특유한 맛이 있다. 나물의 수요가 늘어나고 소득이 낫다고 모두 나물을 재배하고 있다. 재배도 하지만 봄철에는 산으로 들어가 산나물을 채취한다. 그 일도 꽃 피는 오월부터는 입산을 통제해 나물이 번식하도록 한다. 자연을 보호하며 살길을 찾는 그들이 현명해 보였다.
우리가 숙식하는 댁에서는 가는 날부터 나물 반찬을 선보였다. 배고픔을 알지 못하게 해 주는 풀이라는 뜻의 부지기아초(不知飢餓草)에서 유래한 부지깽이. 울릉도에서만 재배한다는 삼나물과 가난했던 시절 명(命)을 이어준다고 붙여진 명이나물 등이었다. 올해 채취한 맏물이어서 보드랍고 맛이 좋았다.
명이나물은 성인봉이나 태화령에서 많이 난다고 한다. 맛이 좋고 향도 진하였다. 원명은 산마늘인데 자양강장식물이다. 어느 부인이 ‘산에 나물 하러 갔다가 산마늘을 캐면 그 누구도 주지 않고 오직 남편에게만 준다.’는 말에 너나없이 명이나물만 찾았다. 도동항에 와서 가게마다 찾았으나 다른 산나물은 많이 있어도 명이나물은 보이지 않았다. 몸에 좋다고 누가 몽땅 사간 것인가. 나 혼자 웃고 있는데, 아내가 어디서 사왔는지 간장에 절인 명이나물을 보여주었다.
울릉도에서 가장 평평한 땅 나리분지는 육십 여만 평이다. 민간인과 군인 가족이 40여 호 살고 있었다. 그곳에는 더덕 재배가 한창이었다. 울릉도 더덕은 손아귀에 꽉 찰 만큼 크고 색은 거무칙칙하다. 육지의 더덕보다 향은 조금 덜하여도, 그놈이 힘차 보였다. 고기만 회로 만드는 줄 알았는데 그곳에서는 산나물 회도 있었다. 우리는 육미 맛이 난다는 삼나물 회와 더덕구이를 맛으로 먹어보았다. 나리 분지에서 올라간다는 성인봉에는 산행 팀과 다시 오리라는 기약을 하고 돌아섰다.
구암리 동네 오른 편 산머리에 관광 명소인 곰바위가 있다. 주민들은 그 곰을 닮았는지 하나같이 순박하고 인정이 넘쳤다. 덕인 선생의 옛날 학부형과 동네 사람들이 귀한 상황버섯 술과 더덕, 나물을 갖고 찾아왔다. 융사지도(隆師之道)가 없어진지 오랜 줄 알았는데 그 동네 사람들은 달랐다. 옛날 선생님이 왔다고 염소 잡고 잔치까지 벌였다. 솥뚜껑에 두루치기한 염소고기를 산나물에 싸서 먹으니 정말 꿀맛이었다. 상황버섯으로 후두암을 고쳤다는 노인회장이 상황버섯 술을 권하였다. 두어 잔 마시니 술기운이 돌았다.
술 맛보다 더 좋은 구암리 사람들의 인간미에 끌렸다. 바다냄새, 나물냄새, 상황버섯 술 향에 취했다. 술자리에 오래 배기지 못하는 나도 정에 취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정담을 나누다 보니 어느 듯 자정이 넘어갔다. 학교의 선생이자 주민의 지도였던 덕인 선생은 좌석의 주인공답게 의젓하게 앉아 있었다. 그의 후덕한 인간미를 다시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오는 날 아침, 저녁에 만났던 분들이 모두 나왔다. 헤어지기 서운하여 손을 잡고 또 잡았다. 차에 오르면서 손사래를 치는데, 서산마루에 앉은 곰바위도 손을 흔들며 전송해 주었다.
1) 우강회 - 강릉사범을 졸업한 울진 동기 5명이 만든 부부계 이름. 졸업 이후 40여 년간 일년에 두번 모였는데 여름에는 전국의 명승지로 여행하고, 겨울에는 가정을 돌며 정을 나눔.
2) 융사 - 선생님을 융숭하게 대접단다는 뜻.
첫댓글 원선생님 좋은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선생님 부럽습니다. 지도 명이나물 좀 필요 한데요. 남편 줄려구요. ㅎㅎㅎ 으~ 염소 불고기도...... 선생님 정말로 고맙습니다. 울릉도에 가지 않고도 선생님 덕분에 다녀온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 감사 감사 ^^ 참 거기 허원석 시인 고향인데요^^
선생님들의 즐거운 모습이 눈에 보일 듯 합니다.. 건강하시고 우강회 모임 오래오래 계속되길 빕니다.
울릉도 고비나물도 맛이있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