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금토일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12월 25일 종영했다. 11월 18일 6.058%(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이하 같음.)로 시작한 16부작 ‘재벌집 막내아들’은 3회에서 10%대 두 자릿 수로 오르더니 최종회 시청률 26.948%를 찍었다. 이는 최고 시청률이기도 하다. 지상파가 아닌 종합편성채널 시청률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대박의 인기 드라마임을 알 수 있다.
이는 JTBC 역대 시청률 2위를 기록했던 ‘SKY 캐슬’의 23.8%를 넘어선 것이다. JTBC의 시청률 1위 드라마는 2020년 방송된 ‘부부의 세계’로 28.4%였다. 또한 ‘재벌집 막내아들’은 올해 방송된 드라마 중 처음으로 시청률 20%를 넘는 작품이 됐다. 물론 9월 24일 1회 20.5%를 찍으며 방송중인 KBS 2TV 주말극은 뺀 이야기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한국갤럽이 2022년 12월 13~15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에게 ‘요즘 가장 즐겨보는 TV프로그램’을 물은 결과(2개까지 자유응답) 선호도 16.6%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OSEN(2022.12.20.)에 따르면 ‘재벌집 막내아들’에 대한 관심은 올여름 화제작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뛰어넘었다.
2013년 1월 이후 ‘좋아하는 TV프로그램’ 전 채널ㆍ전 장르 선호도 최고치를 경신했다. 내친김에 10년 내 선호도 10%를 넘은 드라마들을 살펴보면 지상파 3사와 종편과 케이블방송 등 다양한 채널에 걸쳐 시청자 사랑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재벌집 막내아들’까지 총 9편인데, 나머지 8편은 다음과 같다.
‘내 딸 서영이’(KBS2 주말, 2013년 1월 10.6%, 2월 12.2%), ‘별에서 온 그대’(SBS 수목, 2014년 2월 11.5%), ‘기황후’(MBC 월화, 2014년 3월 10.8%, 4월 11.8%), ‘왔다! 장보리’(MBC 주말, 2014년 9월 12.1%), ‘태양의 후예’(KBS2 수목, 2016년 3월 12.3%), ‘도깨비’(tvN 금토, 2017년 1월 12.6%), ‘SKY 캐슬’(JTBC 금토, 2019년 1월 13.0%),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ENA 수목, 2022년 7월 13.1%, 8월 16.4%) 등이다.
그런데 우리집 TV론 종편 방송을 볼 수 없다. ‘재벌집 막내아들’을 애써 챙겨본 것은 그런 인기 때문이지만, 우리집 TV에 나오는 ‘채널S’에서 방송하는 걸 알고나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사상 처음인 금토일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제일 컸다. 일주일에 3회 연속방송은 파격적이라 할 수 있다. 내 기억으론 금토일드라마는 사상 처음이다.
최근 이렇다할 히트작을 내지 못한 JTBC의 고육지책 편성으로 보이는데, 성공한 셈이 됐다. 연출을 맡은 정대윤 PD는 제작발표회에서 모험적인 주 3회 편성에 대해 “처음에는 무리가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요즘 웬만한 드라마들이 OTT에서 공개될 때 전 회차가 한꺼번에 공개된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트렌드라고 생각했다”(한국일보, 2022.12.8.)고 말했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산경작가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다. 거칠게 줄거리를 요약해보면 순양그룹의 오너리스크를 관리하는 팀장으로 일하다 죽임을 당한 윤현우(송중기)가 순양 재벌가의 3세 진도준으로 다시 태어나 창업주인 할아버지 진양철(이성민) 맘에 쏙 들어 후계자가 되어가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재벌집 막내아들’은 현실에는 없는 회귀 판타지 드라마다.
주인공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드라마가 유행인지, 잠깐 정리하고 넘어가는 게 유익할 듯하다. ‘회귀물’은 “현재를 사는 평범한 주인공이 시간을 거슬러 과거의 어느 시점에 살게 됨으로써, 다른 이들에겐 없는 역사적 지식을 활용해 히어로가 된다는 판타지 문학의 한 서브 장르”다. 웹소설이나 웹툰에서 흔히 쓰인다.
드라마에서 회귀물을 자주 볼 수 있는 건 그만큼 웹소설ㆍ웹툰 원작이 많다는 얘기다. 가령 지난 4~5월 방송된,죽임을 당한 김희우 검사가 살아나 악의 화신 조태섭 국회의원을 응징해나가는 SBS 금토드라마 ‘어게인 마이라이프’(2022.4.8.~5.28)도 이해날 작가의 동명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회귀물이다. ‘어게인 마이라이프’가 그랬듯 회귀물이 다 큰 인기를 끄는 건 아니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인기에 대해 드라마 평론가 윤석진 충남대 국문학과 교수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시청자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미래에서 온 주인공이 투자 아닌 투자를 통해 자본을 축적하고 자본 권력인 할아버지도 꼼짝 못 하게 하는 모습이 보는 사람들의 세속적인 욕망을 충족시켜주고 있다”(앞의 한국일보)고 분석했다.
그런데 ‘재벌집 막내아들’은 여느 회귀 드라마와 좀 다르다. 1987년부터 2004년까지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영화 ‘타이타닉’의 전 세계적 흥행부터 노태우ㆍ김영삼ㆍ김대중 대통령 당선, KAL기 폭파사건, 반도체 개발사업의 성공, 분당 신도시 개발, IMF(외환위기), 지금의 DMC를 만든 서울시의 새서울타운 발전구상, 한일월드컵 4강 진출, 카드대란(개인워크아웃제도) 등이다.
과거로의 회귀는 드라마에서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알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그 상황에 대처하는 등 판을 유리하게 짤 수 있는 건 장점이다. 가령 KAL기 폭파 직전 진도준이 진양철을 살려내는 식이다. 이때 많은 시청자들이 대리만족을 느끼거나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지만 현실에는 없는, 그래서 판타지라는 건 단점이다.
현실에는 없는 판타지를 상당부분 상쇄할 수 있는 게 내가 보기엔 시대상황 설정이다. 재벌을 다룬 다른 드라마들과 달리 시청자들이 혹 하고 ‘재벌집 막내아들’에 빠져들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지 싶다. 재벌들의 지분 확보를 통한 경영권 차지 등 형제간ㆍ부자간 벌어지는 알력과 암투의 진흙탕 싸움을 사실감 넘치게 하는 것도 그 시대상황 덕이다.
반도체에 집중하는 진양철을 두고 많은 이들이 삼성가를 거론하지만, 파업이 나오는 등 딱히 재벌 한 군데를 겨냥하기보다는 현대 등 재벌기업 여러 개가 혼재된 모습이다. 전반적으로 재벌에 대한 찬사랄까 입장도 대변한다. 가령 “전에는 군인 한 놈이 내 주머니 돈을 노렸다면 지금은 민간인 3명으로 늘었다. 그게 민주화”란 진양철이 그렇다.
물론 진양철은 재벌 총수로서의 ‘흑심’도 수시로 내보이는 인물이다. 가령 인수하려는 아진자동차의 고용승계를 거부하는 진양철 회장은 “머슴을 키워가 등 따숩고 배부르게 만들믄 와 안 되는 줄 아나? 지가 주인인 줄 안다. 정리해고 별거 아이다. 누가 주인인지 똑똑히 알려주는 기다”라고 말한다. 주저없는 재벌 비판이다.
‘재벌집 막내아들’을 재미있어 하면서도 사실 이런 전개는 아귀가 맞지 않아 보인다. 재벌기업 횡포로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는 실직한 윤현우가 버젓한 재벌가 손자인 진도준으로 환생한 설정부터가 그렇다. 그런 원한을 갚고자 하는 치열한 진도준이 결국 하는 일들은 재벌들의 흑역사를 장식하는 온갖 나쁜 짓으로 귀결되곤 하니까 말이다.
특히 모든 것이 한바탕 꿈이었다는 식의 결말은 허탈감을 안겨주기까지 한다. 그런 허탈감은 시청자들 혹평으로 이어졌다. 앳스타일 엔터(2022.12.26.)에 따르면 트위터에서는 ‘용두사망’, ‘국밥집 첫째 아들’이 실시간 트렌드로 떠올랐고,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내 인생 최악의 엔딩”, “결말 안 본 눈 삽니다”, “이성민의 열연이 아깝다” 등의 반응이 쏟아졌다.
다음회가 기다려질만큼 몰입감을 주는 드라마이긴 하지만, 좀 겉도는 듯한 어색함도 있다. 극의 내용상 끼어들 여지가 없는데, 진도준과 서민영(신현빈)과의 로맨스가 그것이다. 가령 10회에서 서민영이 느닷없이 진도준에게 달려들어 키스하기가 억지스러워 보이는 식이다. 몰입으로 시청자 본인도 모르게 조성된 긴장감을 해치거나 재미있는 흐름을 끊어버리는 로맨스일 뿐이다.
판타지이니 기본적으로 말 안 되는 것 연속이긴 하지만, 그래도 특히 좀 아니지 싶은 게 있다. 진양철과 진도준이 타고가는 승용차를 교통사고로 위장해 죽이려한 사람이 이필옥(김현)인 게 그렇다. 자신의 핏줄이 아닌 의붓손자인 진도준을 후계자로 삼으려해 남편을 죽이려 했다는데, 이전 어떤 복선이나 암시도 없는 너무 우연적 전개여서다.
엄청난 인기드라마에 걸맞지 않게 “아버님의 가르침에 따라”(15회) 따위 오류도 있다. ‘아버님’은 나의 죽은 아버지를 일컫는 말이다. 타인이 나의 아버지나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높여 부를 때 쓰는 말이기도 한데, 사극에서 흔히 발견되는 잘못이다. 그러니까 멀쩡히 살아있는 아버지를 죽인 아들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