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 그간 잘 계셨지요?
이렇게 글을 올리시느것을 보면 나름의 여유를 찿고계신것같습니다
카페에 자주 기웃거리지못했는데 이렇게 사랑과 정성을 쏟아주셔서 정말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후배로써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겠다는 자성의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잘 되새겨서 밝은 사회 좋은 나라 만드는데 나름대로
일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4월 모임에서 뵙겠습니다(저희 12회 유삽니다)
신영복 선생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을 복역한 후 1988년 출소하여 현재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장으로 일하는 분이다.
선생은 수형생활을 하는동안 교도소에서 지급하는 작은엽서에 깨알같은 글씨와 소박한 그림을 새겨 가족들에게 보냈는데 그 엽서글이 모아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 1988년 출간되어 '시대정신'을 추구하는 이 땅의 지성들로부터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출소 이후 강단을 지키면서 『나무야 나무야』,『더불어 숲』등 저술활동과 강연으로 인간과 역사에 대한 그의 깊은 사색과 통찰을 전해주고 있다. 신영복 선생의 많은 글 중에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몇 편을 골라 싣는다.
걸어온 길(약력소개)
1941년 경남 밀양 출생
1963년 서울대 상과대학 경제학과 졸업
1965년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과 졸업
1965년 숙명여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 강사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대전. 전주 교도소 에서 20년간 복역
1988년 8.15 특별가석방으로 출소
1989년~ 성공회 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 한국사상사등 강의.
1998년3월 출소후 10년만에 사면복권
현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부장, 교육대학원 원장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1988년)
엽서(1993년)
나무야 나무야(1996년)
더불어 숲 1권 (1998년 6월)
더불어 숲 2권 (1998년 7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증보판(1998년 8월)
사랑이란 생활의 결과로서 경작되는 것이지 결코 갑자기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한 번도 보지 않은 부모를 만나는 것과 같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는 까닭도 바로 사랑은 생활을 통하여 익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를 또 형제를 선택하여 출생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사랑도 그것을 선택할 수는 없다. 사랑은 선택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사후(事後)에 서서히 경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처럼 쓸데없는 말은 없다. 사랑이 경작되기 이전이라면 그 말은 거짓말이며, 그 이후라면 아무 소용없는 말이다.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이 평범한 능력이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다. 따라서 문화는 이러한 능력을 계발하여야 하며, 문명은 이를 손상함이 없어야 한다.
Das beste sollte das liebste sein.
가장 선한 것은 무릇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여자
동생에게
'미'(美) 자는 '양'(羊) '대'(大)의 회의(會意)로서 양이 크다는 뜻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큼직한 양을 보고 느낀 감정을 그렇게 나타낸 것이다. 그 고기를 먹고 그 털을 입는 양은 당시의 물질적 생활의 기본이었으며, 양이 커서 생활이 풍족해질 때의 그 푼푼한 마음이 곧 미였고 아름다움이었다. 이처럼 모든 미는 생활의 표현이며 구체적 현실의 정서적 정돈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활 바깥에서 미를 찾을 수는 없다. 더욱이 생활의 임자인 인간의 미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용모나 각선 등 조형상의 구도만으로 인간의 아름다움을 판단할 수 없음은 마치 공간을 피해서 달아나거나 시간을 떠나 존재하거나, 쉽게 말해서 밑바닥이 없는 구두를 생각할 수 없음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너는 먼저 그녀의 생활목표의 소재를 확인하고 그 생활의 자세를 관찰하며 나아가 너의 그것들과 비교해보아야 할 것이다. 사랑이란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
'아름답다'는 것은 '알 만하다'는 숙지(熟知), 가지(可知)의 뜻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미의식의 형성과 미적 가치판단의 훌륭한 열쇠를 주고 있다. 이를테면 너의 머리 속에 들어앉은 이러저러한 여인상이 바로 너의 미녀 판단기준이 되고 있다. 기실 너는 사제(私製)의 도량형기(度量衡器)로써 측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네게 아름다운[可知] 여자가 어머니께는 모름다운[不知] 여자가 되는 차이를 빚는다.
여기서 말해두고 싶은 것은 너의 여성미 기준이 혹시 매스컴이나 부침(浮沈)하는 유행의 침윤(浸潤)을 당하고 있지나 않는가 하는 의문이다. 스스로의 착소(窄小)한 시야에 대한 반성이 있다면 인생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한 노인들의 달관과 그 관조의 안목을 낡았다고 비양하지는 못할 것이다.
미는 또한, 신선미 즉 미의 지속성을 그 본질로 한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이 있거니와 부단히 자기를 갱신하지 않는 한 미는 지속되지 않는다. 정체성은 미의 반어(反語)이며 권태의 동의어이다. 그러므로 너는 그녀가 어떠한 여자로 변화 발전할 것인가를 반드시 요량(料量)해봐야 한다.
착한 아내, 고운 며느리, 친절한 엄마, 인자한 시어머니, 자비로운 할머니 등 긍정적 미래로 열려 있는 여자인가 현재 속에 닫혀 있는 여자인가를 살펴야 한다. 이것은 현재를 고정불변한 것으로 완결하지 않고 과거와 미래의 연관 속에서 변화발전의 부단한 과정으로 인식하는 철학적 태도이며, 현실성보다는 그 가능성에 눈을 모으는 열려 있는 시각이다.
나는 이 편지로 네게 여자를 고르지 말라거나 미녀를 피하라는 것이 아니라 결혼에 임하여 미의 의미를 새로이 하는 기회를 갖도록 하잘 뿐이다. 사실이지 사람이란 사과와 같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인생의 반려이며 생활을 통하여 동화 형성되어 간다는 점에서 우리는 면밀한 선택으로부터 좀 대범해져도 좋을 것이다. '부모나 형제를 선택하여 출생하는가'라는 현문(賢問) 앞에서는 답변이 없어진다.
너는 아직도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 하겠지만 요즘 세상에는 같은 가격이면 그 염색료만큼 천이 나쁜 치마이기 십상이다. 어쨌든 금년에는 네가 결혼하기 바란다. 1975. 1. 13.
아버님께 中
우리는 거개가 타인의 실수에 대해서는 냉정한 반면 자신의 실수에 대하여는 무척 관대한 것이 사실입니다. 자기 자신의 실수에 있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처지, 우여곡절, 불가피했던 여러 사정을 잘 알고 있음에 반하여, 타인의 그것에 대하여는 그 처지나 실수가 있기까지의 과정 전부에 대해 무지하거나 설령 알더라도 극히 일부밖에 이해하지 못하므로 자연 너그럽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징역 속의 동거는 타인을 이해하게 해줍니다.
같은 방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을 꼬박 마주앉아서 심지어 상대방의 잠꼬대까지 들어가며 사는 생활이기 때문에 우리는 오랜 동거인에 관한 한 모르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성장과정, 관심, 호오(好惡), 기타 사소한 습관에 이르기까지 손바닥 보듯 할 뿐 아니라 하나하나의 측면들을 개별로서가 아니라 인간성이라는 전체 속에서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도시의 아스팔트 위 손 시린 악수 한두 번으로 사귀는 커피 몇 잔의 시민과는 거리가 멉니다. 우리는 오랜 시간과 노력으로 모든 것을 열어놓은 자기 속으로 타인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이 열려 있는 타인의 내부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타인을 자신만큼 알기에 이릅니다. 우리는 타인에게서 자기와 많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남는 차이를 이해하게 됩니다. 이 '차이'에 대한 이해 없이 타인에 대한 이해가 충분한 것이 될 수는 없으며, 그 사람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이 그의 경험을 자기 것으로 소화할 수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저희들은 이 실패자들의 군서지(群棲地)에서 수많은 타인을 만나고, 그들의 수많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가능성 속에 몸담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1977. 9. 7.
옥창의 풀씨 한 알
계수님께
우리 방 창문 턱에
개미가 물어다 놓았는지
풀씨 한 알
싹이 나더니
어느새
한 뼘도 넘는
키를 흔들며
우리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정국추추황 자모년년백
庭菊秋秋黃 慈母年年白
(뜰의 국화는 가을마다 노랗고
어머니의 머리는 해마다 희어지네.) … 1978. 8. 29.
아버님께 中
개개인이 각자 자기 완결적인 덕성을 도야해가는 개인주의적 결벽성보다는 나는 이것을, 너는 저것을 갖추어 혼자로서는 비록 인격적으로 빈 곳이 많을지라도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 연대성의 든든한 바탕에 인격의 뿌리를 내림으로써 사회적 미덕 속에서 개인적 덕성을 완성해가는 쪽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개인의 성격적 결함을 두호(斗護)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늘은 아침 나절 쓰레기장에서 무얼 태우는 매케한 연기내음이 농촌의 5월을 연상케 하더니, 어디선가 민들레씨 한 송이가 방안으로 날아들었습니다.1979. 5. 6.
계수님께 中
…… 이성부(李盛夫)의 '어머니가 된 여자는 알고 있나니' ― 한 편을 적어보냅니다.
어머니 그리워지는 나이가 되면
저도 이미 어머니가 되어 있다.
우리들이 항상 무엇을
없음에 절실할 때에야
그 참모습 알게 되듯이.
어머니가 혼자만 아시던 슬픔,그 무게며 빛깔이며 마음까지
이제 비로소
선연히 가슴에 차오르는 것을
넘쳐서 흐르는 것을.
가장 좋은 기쁨도
자기를 위해서는 쓰지 않으려는
따신 봄볕 한오라기,
자기 몸에는 걸치지 않으려는
어머니 그 옛적 마음을
저도 이미
어머니가 된 여자는 알고 있나니.
저도 또한 속 깊이
그 어머니를 갖추고 있나니. 1979. 7. 25.
형수님께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씨란 타고나는 것이며 필재(筆才)가 없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하여도 명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필재가 있는 사람의 글씨는 대체로 그 재능에 의존하기 때문에 일견 빼어나긴 하되 재능이 도리어 함정이 되어 손끝의 교(巧)를 벗어나기 어려운 데 비하여, 필재가 없는 사람의 글씨는 손끝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쓰기 때문에 그 속에 혼신의 힘과 정성이 배어 있어서 '단련의 미'가 쟁쟁히 빛나게 됩니다.
만약 필재가 뛰어난 사람이 그 위에 혼신의 노력으로 꾸준히 쓴다면 이는 흡사 여의봉 휘두르는 손오공처럼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이런 경우는 관념적으로나 상정될 수 있을 뿐, 필재가 있는 사람은 역시 오리새끼 물로 가듯이 손재주에 탐닉하게 마련이라 하겠습니다.
결국 서도는 그 성격상 토끼의 재능보다는 거북이의 끈기를 연마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더욱이 글씨의 훌륭함이란 글자의 자획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묵 속에 갈아넣은 정성의 양에 의하여 최종적으로 평가되는 것이기에 더욱 그러리라 생각됩니다.
사람의 아름다움도 이와 같아서 타고난 얼굴의 조형미보다는 그 사람의 지혜와 경험의 축적이 내밀한 인격이 되어 은은히 배어나는 아름다움이 더욱 높은 것임과 마찬가지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생을 보는 시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믿습니다. 첩경과 행운에 연연해하지 않고, 역경에서 오히려 정직하며, 기존(旣存)과 권부(權富)에 몸 낮추지 않고, 진리와 사랑에 허심탄회한……. 그리하여 스스로 선택한 '우직함'이야말로 인생의 무게를 육중하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1982. 4. 13.
아내와 어머니
어머님께
함께 징역 사는 사람들 중에는 그 처가 '고무신 거꾸로 신고' 가버리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런가 하면 상당한 고초를 겪으면서도 짧지 않은 연월(年月)을 옥바라지 해가며 기다리는 처도 없지 않습니다. 이 경우 떠나가버리는 처를 악처라 하고 기다리는 처를 열녀(?)라 하여 OX 문제의 해답을 적듯 쉽게 단정해버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세상살이의 순탄치 않음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이곳 벽촌(碧村) 사람들은 기다리는 처를 칭찬하기는 해도 떠나가는 처를 욕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떠남과 기다림이 결국은 당자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 '마음'을 탓하기에 앞서 그런 마음이 되기까지의 사연을 먼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가(媤家)에 남아 있는 사람, 친정에 돌아가 얹혀 사는 사람, 의지가지 없어 술집에라도 나가 벌어야 하는 사람……. 그 처지의 딱함도 한결같지 않습니다. 개중에는 마음마저 부지할 수 없을 정도의 혹독한 처지에 놓인 사람도 허다합니다. 그 처지가 먼저이고 그 마음이 나중이고 보면 마음은 크게는 그 처지에 따라 좌우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징역 간 남편에 대한 신뢰와 향념(向念)의 정도에도 그 마음이 좌우됨을 봅니다. 이 신뢰와 향념은 비록 죄지은 사람이기는 하나 그 사람됨에 대한 아내 나름의 평가이며, 삶을, 더욱이 힘든 삶을 마주 들어봄으로써만이 감지할 수 있는 가장 적실한 이해이며 인간학입니다.
떠나가는 처를 쉬이 탓하지 못하는 까닭은 이처럼 그 아내의 처지와 그 남편의 사람됨을 빼고 나면 그 아내가 책임져야 할 '마음'이란 기실 얼마 되지 않는 한 줌의 '인정'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정이란 것도 사람의 도리이고 보면 함부로 업수이 보아넘길 것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그러기에 고무신 거꾸로 신고 가버린 처를 일단은 자책과 함께 이해는 하면서도 그 매정함을 삭이지 못해 오래오래 서운해 하는가 봅니다.
처의 경우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음에 비하여 '어머니'의 경우는 태산부동(泰山不動) 변함이 없습니다. 못난 자식일수록 모정은 더욱 간절하여 세상의 이목도, 법의 단죄도 개의치 않습니다. 심지어는 개가(改嫁)해간 어머니의 경우도 새 남편 알게 모르게 접견 와서 자식을 탓하기에 앞서 먼저 당신을 탓하며 옷고름 적시는 일도 더러 있습니다. 처와 어머니는 동전의 양면처럼 같은 여자의 두 얼굴이지만 처는 바로 이 점에서 아직도 어머니의 어린 모습입니다. 모야천지(母也天只). 어머님의 마음은 언제나 열려 있는 하늘입니다.
불안한 처 대신 제게 태산 같은 어머님이 계시다는 것은 평소에는 잊고 있는 마음 든든한 행복입니다. 겨울밤에 잠깐 잠이 깰 때에도 등불처럼 켜져 있는 어머님의 마음을 생각하면 흡사 어릴 때 어머님의 곁에서 재봉틀소리에 잠든 듯 마음이 따스해집니다. 지금은 어머님께서도 연로하시어 재봉틀 앞에 앉으실 일도 없으시고 저도 또한 어머님을 멀리 떠나 그 맑은 재봉틀소리 들을 수 없습니다만 저는 가끔 수돗물소리나, 호남선 밤차소리에 문득문득 어머님의 그 재봉틀소리를 깨닫곤 합니다.
한 해가 저무는 세밑쯤이면 더욱 심상(心傷)해 하시는 어머님께 오늘은 고담(古談) 하나 들려드리며 세모의 인사에 대(代)하려 합니다.
옛날 어느 시아버지가 있었는데 끼니 때마다 눈썹 가지런히 제미(齊眉)하여 밥상 올리는 며느리가 하도 예뻐서 어느날 그만 망녕되이 쪽, 하고 며느리의 젖을 빨고 말았습니다. 혼비백산 버선발로 뛰쳐나온 며느리가 제 서방에게 이 변고를 울음 반 말 반으로 토설(吐說)하였습니다. 분기탱천한 서방이 사랑문을 열어젖히고 아버지께 삿대질로 호통인즉 "남의 마누라 젖을 빨다니 이 무슨 망녕입니까!", 아버지 왈 "너는 이놈아, 내 마누라 젖을 안 빨았단 말이냐!" 되레 호통이었답니다. 1982. 12. 23.
벽 속의 이성과 감정
형수님께
갇혀 있는 새가 성말라 야위듯이 두루미 속의 술이 삭아서 식초가 되듯이 교도소의 벽은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날카롭게 벼리어놓습니다. 징역을 오래 산 사람치고 감정이 날카롭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감정이 폭발할 듯 팽팽하게 켕겨 있을 때 벽은 이성(理性)의 편을 들기보다는 언제나 감정의 편에 섭니다. 벽은 그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산화(酸化)해버리는 거대한 초두루미입니다. 장기수들이 벽을 무서워하는 이유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벽의 기능은 우선 그 속의 것을 한정하는 데 있습니다. 시야를 한정하고, 수족을 한정하고 사고를 한정합니다. 한정한다는 것은 작아지게 하는 것입니다. 넓이는 좁아지고 길이는 짧아져서 공간이든 시간이든 사람이든 결국 한 개의 점으로 수렴케 하여 지극히 단편적이고 충동적이고 비논리적인 편향을 띠게 합니다. 징역 사는 사람들의 첨예한 감정은 이러한 편향성이 축적, 강화됨으로써 망가져버린 상태의 감정입니다. 망가져버린 상태의 감정이라고 하는 까닭은 그것이 관계되어야 할 대립물로서의 이성과의 연동성이 파괴되고 오로지 감정이라는 외바퀴로 굴러가는 지극히 불안한 분거(奔車)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 짝을 얻지 못한 불구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망가진 상태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더욱 복잡하다는 사실입니다. 우연히 시계를 떨어뜨려 복잡한 부속이 망가져버렸다면 시계의 망가진 상태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복잡하다는 명제를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벽으로 인하여 망가진 감정을 너무나 단순하게 처리하려 드는 것을 봅니다. 감정을 이성과 대립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이성에 의하여 감정을 억제하도록 하는, 이를테면 이성이라는 포승으로 감정을 묶어버리려는 시도를 종종 목격합니다.
이것은 대립물로서의 이성을 대립적인 것으로 잘못 파악함으로써 야기된 오류입니다. 감정과 이성은 수레의 두 바퀴입니다. 크기가 같아야 하는 두 개의 바퀴입니다. 낮은 이성에는 낮은 감정이, 높은 이성에는 높은 감정이 관계되는 것입니다. 일견 이성에 의하여 감정이 극복되고 있는 듯이 보이는 경우도 실은 이성으로써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높이에 상응하는 높은 단계의 감정에 의하여 낮은 단계의 감정이 극복되고 있을 따름이라 합니다.
감정을 극복하는 것은 최종적으로는 역시 감정이라는 이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특별한 뜻을 갖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감정의 억압이 아니라 이성의 계발(啓發)입니다. 그리고 이성은 감정에 기초하고, 감정에 의존하여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노력은 벽의 속박과 한정과 단절로부터 감정을 해방하는 과제와 직결됩니다.
그러면, 절박하고 적나라한 징역현장에서 이성의 계발이란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를 띠며, 비정한 벽 속으로부터 감정을 해방한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행위를 뜻하는가. 지극히 당연한 의문에 부딪칩니다. 아마 우리는 이러한 추상적 연역에 앞서 이미 오랜 징역 경험을 통하여 그 해답을 귀납해두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해답이란 언젠가 말씀드렸듯이 한마디로 말해서 징역 속에는 풍부한 역사와 사회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견고한 벽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각양의 세태, 각색의 사건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현존하는 모든 고통과 가난과 갈등을 인정하도록 하며, 그 해결에 대한 일체의 환상과 기만을 거부케 함으로써 우리의 정신적 자유, 즉 이성을 얻게 해줍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가슴들은 그 완급(緩急), 곡직(曲直), 광협(廣狹), 방원(方圓)으로 하여 우리를 다른 수많은 가슴들과 부딪치게 함으로써 자기를 우주의 중심으로 삼고 칩거하고 있는 감정도 수많은 총중(叢中)의 한 낱에 불과하다는 개안을 얻게 하고 그 협착한 갑각(甲殼)을 벗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의 사건에 매몰되거나 각자의 감정에 칩거해 들어가는 대신 우리들의 풍부한 이웃에 충실해갈 때 비로소 벽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바다가 하늘을 비추어 그 푸름을 얻고, 세류(細流)를 마다하지 않아 그 넓음을 이룬 이치가 이와 다름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산사신설(山寺新雪)이 냉기를 발하던 1, 2월 달력을 뜯어내니 복사꽃 환한 3, 4월 달력의 도림(桃林)이 앞당겨 봄을 보여줍니다. 반갑지 않은 여름 더위나 겨울 추위가 바깥보다 먼저 교도소에 찾아오는 데 비하여 봄은 좀체로 교도소 안으로 들어오려 하지 않습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언덕과 산자락에는 벌써 포근히 봄볕 고여 있는데도 담장이 높아선가 벽이 두꺼워선가 교도소의 봄은 더디고 어렵습니다.
우용이 중학 입학과 주용이 진급을 축하합니다. 1983. 3. 15.
꿈에 뵈는 어머님
어머님께
3월 중순인데도 뒤늦게야 해살맞은 바람에다 엊그제 저녁은 진눈깨비 섞인 비까지 흩뿌립니다. 올봄도 계절을 정직하게 사는 꽃들이 늦추위에 떠는 해가 되려나 봅니다.
세전(歲前)에 아버님 혼자 오셨을 때 아버님께선 날씨 탓으로 돌리셨지만 저는 어머님이 몸져 누우신 줄 짐작하였습니다. 접견 마치고 혼자 소문(所門)을 나가시는 아버님을 이윽고 바라보았습니다. 아버님은 어머님과 함께 걸으실 때도 언제나 네댓 걸음 앞서 가시지만 그날은 아버님의 네댓 걸음 뒤에도 어머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렇더라도 설마 치레 잦은 감기몸살이겠거니 하고 우정 염려를 외면해왔습니다만 막상 형님 편에 그것이 매우 위중한 것임을 알고부터는 연일 꿈에 어머님을 봅니다.
꿈에 뵈는 어머님은 늘 곱고 젊은 어머님인데 오늘 새벽 잠깨어 새삼스레 어머님 연세를 꼽아보니 일흔여섯, '극노인'(極老人)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징역 들어오고 난 최근의 십수년이 어머님의 심신을 얼마나 깊게 할퀴어놓은 것인지도 모르고 제 나이를 스물일곱인 줄 알듯이, 어머님도 매양 그전처럼만 여겨온 저의 미욱함이 따가운 매가 되어 종아리를 칩니다.
"인제 죽어도 나이는 아까울 게 없다" 하시며 입 다물어버리신 그 뒷말씀이 기실 저로 인하여 가슴에 응어리진 한(恨)임을 모르지 않기 때문에 제게도 어머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응어리가 되어 쌓입니다. 언젠가는 어머님과 함께 어머님의 이 응어리진 아픔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이 아픔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이며,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같은 세월을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은 어떤 아픔을 속에 담고 있으며 그것은 어머님의 그것과 어떻게 상통(相通)되는가, 냇물이 흘러흘러 바다에 이르듯 자신의 아픔을 통하여 모든 어머니들이 가슴에 안고 있는 그 숱한 아픔들을 만날 수는 없는가, 그리하여 한 아들의 어머니라는 '모정의 한계'를 뛰어넘어, 개인의 아픔에서 삶의 진실과 역사성을 깨달을 수는 없는가…….
접견은 짧고 엽서는 좁아 언제나 다음을 기약할 뿐인 미진함은 저를 몹시 피곤하게 합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어머님께선 이미 이 모든 것을 달관하고 계실 뿐 아니라 누구보다도 깊이 저를 꿰뚫어보고 계심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자막여부(知子莫如父). 자식을 아는 데는 부모를 덮을 사람이 없다는 옛말처럼, 어머님은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저를 잘 아시고 또 저의 친구들을 숱하게 아실 뿐 아니라 빠짐없이 공판정에 나오셔서 어느덧 어머님의 생각의 품 바깥으로 걸어나와버린 아들의 이야기를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시려던 그때의 모습을 회상하면, 아마 어머님은 제가 어머님을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저를 알고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어머님의 모정은 이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을 만큼 품이 넓고 그 위에 아들에 대한 튼튼한 신뢰로 가득 찬 것이라 믿습니다.
기다림은 더 많은 것을 견디게 하고 더 먼 것을 보게 하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눈을 갖게 합니다. 어머님께도 기다림이 집념이 되어 어머님의 정신과 건강을 강하게 지탱해주시기 바랍니다.
어머님께서 걱정하시던 겨울도 가고 창 밖에는 갇힌 사람들에게는 잔인하리만큼 화사한 봄볕이 땅 속의 풀싹들을 깨우고 있습니다.1983. 3. 16.
죄명(罪名)과 형기(刑期)
계수님께
생전 처음 만나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우리는 결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습관이 있습니다. 겉모양이나 몇 개의 소문으로 그를 온당하게 평가할 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좀더 가까운 자리에서 함께 일하며 그리하여 깊이 있는 인식을 마련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까닭은 이쪽의 개인적인 조급 때문이기도 하지만 크게는 인간관계가 기성의 물질적 관계를 닮아버린 세속의 한 단면인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현상은, 모두가 이마에 죄명과 형기를 낙인처럼 가지고 있는 징역살이에서 쉽게 발견됩니다. 죄명은 그 사람의 '질'을, 형기는 그 질의 '정도'를 상징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으로 충분하고 그 이상의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곳이 형벌의 현장이므로 일견 당연한 듯하지만 사실은 사람들에게 곁을 주지 않으려는 경원(敬遠)과 불신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이렇듯 멀리 두고 경원하던 사람도 일단 같은 방, 같은 공장에서 베 속의 실오리처럼 이런저런 관계를 맺게 되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관점이 열립니다. 죄명, 형기, 소문, 인상과 같은 기성의 껍질이 하나씩 하나씩 벗겨져 나가고 대개의 경우 전혀 판이한 본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관계'는 '관점'을 결정합니다.
행티 사나운 심사와 불신의 어두운 자국이 도리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사회와 인간에 대한 관념적이고 감상적인 인식으로부터 시원히 벗어나게 하고 있음을 보거나, 세상의 힘에 떠밀리고 시달려 영악해진 마음에 아직 맑은 강물 한 가닥 흐르고 있음을 볼 때에는, 문패처럼 그의 이마에서 그를 규정하고 있는 것들이 그에게 얼마나 부당한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바늘 구멍으로 황소를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대상이 물건이 아니라 마음을 가진 '사람'인 경우에는 이 바라본다는 행위는 그를 알려는 태도가 못됩니다. 사람은 그림처럼 벽에 걸어놓고 바라볼 수 있는 정적 평면이 아니라 '관계'를 통하여 비로소 발휘되는 가능성의 총체이기에 그렇습니다. 한편이 되어 백지 한 장이라도 맞들어보고 반대편이 되어 헐고 뜯고 싸워보지 않고서 그 사람을 알려고 하는 것은 흡사 냄새를 만지려 하고 바람을 동이려 드는 헛된 노력입니다.
대상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바라보는 경우, 이 간격은 그냥 빈 공간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선입관이나 풍문 등 믿을 수 없는 것들로 채워지고, 이것들은 다시 어안(魚眼)렌즈가 되어 대상을 왜곡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풍문이나 외형, 매스컴 등,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인식은 '고의'보다는 나을지 모르나 '무지'보다는 못한 진실과 자아의 상실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저는 이곳에서 사람을 보면 먼저 죄형과 형기를 궁금해하는 부끄러운 습관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과 진실, 본질과 진리에 대한 어설픈 자세가 아직도 이처럼 부끄러운 옷을 입혀놓고 있는가 봅니다.
어디 풀싹이 나오지 않았나 하고 자주 창 밖을 내다보다가 문득 놀라 깨우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연초록 봄빛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양지의 풀이나 버들가지가 아니라, 무심히 지나쳐버리던 '솔잎'이라는 사실입니다. 꼿꼿이 선 채로 겨울과 싸워온 소나무의 검푸르던 잎새에 역시 가장 먼저 연초록 새빛이 피어난다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1983. 3. 31.
증오는 사랑의 방법
계수님께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은 어떠합니까?"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면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은 어떠합니까?" "그 역시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없다. 마을의 선한 사람들이 좋아하고 마을의 불선(不善)한 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만 같지 못하다."주자(朱子)의 주석에는 마을의 선한 사람들이 좋아하고 마을의 불선한 사람들 또한 미워하지 않는 사람은 그의 행(行)에 필시 구합(苟合, 迎合)이 있으며, 반대로 마을의 불선한 사람들이 미워하고 마을의 선한 사람들 또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그의 행(行)에 실(實)이 없다 하였습니다.
구합은 정견 없이 남을 추수(追隨)함이며, 무실(無實)은 선자(善者)의 편이든 불선자의 편이든 자기의 입장을 갖지 못함에서 연유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견이 없는 입장이 있을 수 없고 그 역(逆)도 또한 참이고 보면, {논어}의 이 다이얼로그(dialogue)가 우리에게 유별난 의미를 갖는 까닭은, 타협과 기회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면서 더욱 중요하게는 파당성(派黨性, parteilichkeit)에 대한 조명과 지지라는 사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불편부당(不偏不黨)이나 중립을 흔히 높은 덕목으로 치기도 하지만, 바깥 사회와 같은 복잡한 정치적 장치 속에서가 아니라 지극히 단순화된 징역 모델에서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싸울 때의 '중립'이란 실은 중립이 아니라 기회주의보다 더욱 교묘한 편당(偏黨)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을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얻으려는 심리적 충동도, 실은 반대편의 비판을 두려워하는 '심약함'이 아니면, 아무에게나 영합하려는 '화냥끼'가 아니면, 소년들이 갖는 한낱 '감상적 이상주의'에 불과한 것이라 해야 합니다. 이것은 입장과 정견이 분명한 실(實)한 사랑의 교감이 없습니다. 사랑은 분별이기 때문에 맹목적이지 않으며, 사랑은 희생이기 때문에 무한할 수도 없습니다.
징역을 살 만큼 살아본 사람의 경우가 아마 가장 철저하리라고 생각되는데 '마을의 모든 사람'에 대한 허망한 사랑을 가지고 있거나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은 '증오에 대하여 알 만큼 알고 있기' 때문이라 믿습니다.
증오는 그것이 증오하는 경우든 증오를 받는 경우든 실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불행이 수반되게 마련이지만, 증오는 '있는 모순'을 유화(宥和)하거나 은폐함이 없기 때문에 피차의 입장과 차이를 선명히 드러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증오의 안받침이 없는 사랑의 이야기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증오는 '사랑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 1983. 7. 29.
독다산(讀茶山) 유감(有感)
아버님께
유배지의 정다산(丁茶山)을 쓴 글을 읽었습니다. 이조를 통틀어 대부분의 유배자들이 배소(配所)에서 망경대(望京臺)나 연북정(戀北亭) 따위를 지어 임금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과 연모를 표시했음에 비하여 다산은 그런 정자를 짓지도 않았거니와 조정이 다시 자기를 불러줄 것을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해배(解配)만을 기다리는 삶의 피동성과 그 피동성이 결과하는 무서운 노쇠(老衰)를 일찍부터 경계하였습니다. 그는 오히려 농민의 참담한 현실을 자신의 삶으로 안아들이는 애정과 능동성을 통하여 자신의 삶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이조의 묵은 사변(思辨)에 신신(新新)한 목민(牧民)의 실학(實學)을 심을 수 있었다 하겠습니다.
다산의 이러한 애정과 의지는 1800년 그가 39세로 유배되던 때부터 1818년 57세의 고령으로 해배될 때까지의 18년이란 긴 세월 동안 한시도 흐트러진 적이 없었으며 마침내 {목민심서}(牧民心書) 등 500권의 저술을 비롯하여 실학의 근간을 이룬 사색의 온축(蘊蓄)을 이룩하였습니다. 물론, 다산학(茶山學)과 실학에 대해서는 일정한 한계와 편향이 없지 않음이 지적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를테면 이조 후기, 봉건적 지배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농민들이 그 거칠고 적나라한 저항의 모습을 역사의 무대에 드러내는 이른바 '민강(民强)의 시대'에, 봉건질서의 청산이 아닌 그것의 보정(補整) 개량이라는 구궤(舊軌)를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하겠습니다. 목민심서의 '목'(牧) 자에 담긴 관학적(官學的) 인상(印象)과 '심'(心) 자에서 풍기는 그 관념성 역시 그냥 지나쳐버릴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다산 개인의 한계로서가 아니라 다산이 살던 그 시대 자체의 역사적 미숙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리라고 믿습니다. 더구나, 나아가 벼슬자리에 오르면 왕권주의자가 되고 물러나 강호(江湖)에 처하면 자연주의자가 되기 일쑤인 모든 봉건 지성의 시녀성과 기회주의를 둘 다 시원히 벗어
던지고, 갖가지의 수탈장치 밑에서 허덕이는 농민의 현실 속에 내려선 다산의 생애와 사상은 분명, 새 세기의 새로운 양식의 지성에 대한 값진 전범(典範)을 보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다산 선생의 유배생활을 아득히 더듬어보면서 실로 부러움을 금치 못합니다. 그가 거닐었던 고성암, 백련사, 구강포의 산천이며, 500여 권의 저술을 낳은 산방(山房)과 서재, 그리고 많은 지기(知己)와 제자들의 우의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다산 선생의 유배생활을 부러워하는 것은 그만 못한 저의 징역 현실을 탓하려 함이 아니며 더구나 저의 무위(無爲)를 두호(斗護)하려 함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무엇을 만든다는 것은 먼저 무엇을 겪는다는 것이며, 겪는다는 것은 어차피 '온몸'으로 떠맡는 것이고 보면 적성(積成)이 없다 하여 절절한 체험 그 자체를 과소평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제가 정작 부러워하는 것은 객관적인 처지의 순역(順逆)이 아닙니다. 생사별리(生死別離) 등 갖가지 인간적 고초로 가득 찬 18년에 걸친 유형의 세월을 빛나는 창조의 공간으로 삼은 '비약'(飛躍)이 부러운 것입니다. 그리고 비약은 그 어감에서 느껴지는 화려함처럼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는 '곱셈의 논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1983. 9. 21.
보호색과 문신
형수님께
월간지 {자연}(自然)에는 특집으로 [벌레들의 속임수](あざむく土たち)가 계속 연재되고 있는데 지난 달에는 애벌레[幼蟲]와 나방들의 문양과 색깔에 관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애벌레를 먹이로 하는 소조(小鳥)들은 애벌레가 눈에 뜨이기만 하면 재빨리 쪼아먹습니다. 그러나 소조가 애벌레를 보는 순간 공포를 느끼거나 과거에 혼찌검이 난 경험이 연상되는 경우에는 일순 주저하게 되는데, 이 일순의 주저가 애벌레로 하여금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애벌레들은 오히려 소조를 잡아먹는 맹금류(猛禽類) 등 포식자(捕食者)의 눈을 연상시키는 '안상문'(眼狀紋)을 등허리의 엉뚱한 곳에 그려놓고 있거나, 포식자가 입을 벌릴 때 나타나는 구내색(口內色)을 연상시켜 깜짝 놀라게 하는 '경악색'(驚愕色)을 몸에 입고 있습니다. 올빼미나 매의 눈을 몸에 그려놓고 있는 놈, 몸을 움츠려 뱀의 머리모양으로 둔갑하는 놈, 맹금의 무늬를 빌려 입고 있는 놈, 구내색으로 새빨갛게 단장한 놈……. 수천만 년(?)에 걸쳐 쌓아온 벌레들의 지혜가 놀랍기만 합니다.
부모의 보호가 없음은 물론, 자기 자신을 지킬 힘도, 최소한의 무기도 없는 애벌레들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하여 궁리해낸 기만, 도용(盜用), 가탁(假託)의 속임수들이 비열해보이기보다는 과연 살아가는 일의 진지함을 깨닫게 합니다.
교도소에는 몸에 문신을 한 사람이 많습니다. 전과가 한두 개 더 되는 사람이면 십중팔구 바늘로 살갗을 찔러 먹물을 넣는 소위 '이레즈미'[入墨]를 하고 있습니다. 용, 호랑이, 독거미, 칼……, 무시무시한 그림이나 복수, 필살(必殺), 일심(一心) 등 원한이나 독기 풍기는 글을 새겨놓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신은 보는 사람들을 겁주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애벌레들의 안상문이나 경악색과 다를 바 없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하여는 "돈이나 권력이 있든지 그렇지 못하면 하다못해 주먹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지극히 단순하되 정곡을 찌른 달관을 이 서투른 문신은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사회의 거대한 메커니즘 속에서, 지구의 자전처럼 개인이 느낄 수 없는 엄청난 '힘'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종이 호랑이'만도 못한 이 서투른 문신이 이들의 알몸을 어떻게 지켜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불행한 사람들의 가난한 그림입니다.
하루의 징역을 끝내고 곤히 잠들어 고르게 숨쉬는 가슴 위에 사천왕보다 험상궂은 얼굴로 눈떠 있는 짐승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한 마리의 짐승을 배워야 하는 그 혹독한 처지가 가슴을 저미는 아픔이 되어 가득히 차오릅니다.
주용이 아파서 입원하였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아버님 말씀이 곧 퇴원한다니 그만한가 생각됩니다만 아픈 몸도 몸이려니와 그 어린 마음이 정신적 충격을 어떻게 소화해가는지 염려됩니다. 병상의 경험이 주용이의 정신의 성숙에 값진 계기가 되도록 형수님의 차분하신 이지(理智)를 믿습니다. 어머님은 지금쯤 퇴원하셨는지……. 1983. 11. 22.
창녀촌의 노랑머리
계수님께
징역을 오래 살다보면 출소한 지 얼마 안되어 또 들어오는 친구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또 들어와 볼낯 없어 하는 친구를 만나도 나는 그를 나무라거나 속으로라도 경멸할 수가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만기가 되어 출소하는 친구와 악수를 나눌 때도 "이젠 범죄하지 말고 참되게 살아라"는 교도소에서 가장 흔한 인사말 한마디도 저는 지금껏 입에 올린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그가 부딪쳐야 했고 또 부딪쳐야 할 혹독한 처지를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까닭은 '도둑질해서라도 먹고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까지도 포함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일단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는 데에 있습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그가 몸소 겪은 자기 인생의 결론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특히 자신의 사상을 책에다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서 이끌어내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아무리 조잡하고 단편적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사상은 그 사람의 삶에 상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삶의 조건에 대하여는 무지하면서 그 사람의 사상에 관여하려는 것은 무용하고 무리하고 무모한 것입니다. 더욱이 그 사람의 삶의 조건은 그대로 둔 채 그 사람의 생각만을 다른 것으로 대치하려고 하는 여하한 시도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폭력입니다. 그러한 모든 시도는 삶과 사상의 일체성을 끊어버림으로써 그의 정신세계를 이질화하고 결국 그 사람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전의 잘 알려진 원동(元洞)의 창녀촌에는 '노랑머리'라는 여자가 있는데, 한 달에 서너 번씩은 약을 복용하고는 도루코 면도날이나 깔창(유리창)으로 제 가슴을 그어 피칠갑으로 골목의 건달들에게 대어든다고 합니다. 온몸을 내어던지는 이 처절한 저항으로 해서 그 여자는 기둥서방이란 이름의 건달들의 착취로부터 자신을 지킨 유일한 여자라 합니다.
이 여자의 열악한 삶을 그대로 둔 채 어느 성직자가 이 여자의 사상을 다른 정숙한
어떤 것으로 바꾸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여인을 돌로 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숙한 부덕(婦德)이 이 여자의 삶을 지켜주기나 개선시켜주기는커녕 오히려 무참히 파괴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똥치골목, 역전 앞, 꼬방동네, 시장골목, 큰집 등등 열악한 삶의 존재 조건에서 키워온 삶의 철학을 부도덕한 것으로 경멸하거나 중산층의 윤리의식으로 바꾸려는 여하한 시도도 그 본질은 폭력이고 위선입니다.
우리가 훌륭한 사상을 갖기가 어렵다고 하는 까닭은 그 사상 자체가 무슨 난해한 내용이나 복잡한 체계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상이란 그것의 내용이 우리의 생활 속에서 실천됨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생활 속에 실현된 것만큼의 사상만이 자기 것이며 그 나머지는 아무리 강론하고 공감하더라도 결코 자기 것이 아닙니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자기 것으로 하는 경우 이를 도둑이라 부르고 있거니와, 훌륭한 사상을 말하되 그에 못미치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 우리는 이를 무어라 이름해야 하는지…….
모든 문제의 접근이 일단 진실의 규명에서부터 출발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맨 먼저 해야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과 삶의 상응관계를 묻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그 삶과 사상이 차질을 빚고 있을 때 제3자가 할 수 있는 일의 상한(上限)은, 제3자가 갖는 시각의 이점을 살려 그 차질을 지적해줌으로써 삶과 사상의 일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어떤 출발점에 서게 하는 일이 고작이라 생각됩니다.
삶과 사상의 어느 쪽을 어떻게 변화시켜 갈 것인가라는 방법상의 문제는 전혀 그 사람의 처지에 따라 그 사람의 할 나름이겠지만 삶을 내용으로 하고 사상을 형식으로 하는 상호작용의 법칙성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삶의 조건에 먼저 시각을 돌려야 하리라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악하되 삶과 상응된 사상을 문제삼기보다는, 먼저 실천과 삶의 안받침이 없는 고매한(?) 사상을 문제삼아야 하리라 생각됩니다.
어제가 입추입니다. 폭서의 한가운데 끼인 입추가 거짓 같기도 하고 불쌍해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입추는 분명 폭염의 머지않은 종말을 예고하는 선지자임에 틀림없습니다. 다만 모든 선지자가 그러하듯 '먼저' 왔음으로 해서 불쌍해보이고 믿기지 않을 따름입니다.1984. 8. 8.
일의 명인(名人)
형수님께
1급수들은 휴일을 이용하여 노력봉사를 하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형수님이 보시고 놀라던 그 긴 복도를 청소하기도 하고, 잡초를 뽑거나 빗물로 메인 배수로를 열기도 하고 땅을 고르는 등 비교적 간단한 작업입니다.
저는 휴일에 작업이 있기만 하면 빠지는 일이 없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일을 하면 그 자체가 하나의 '학교'가 되게 마련이지만 특히 제게는 두 사람의 훌륭한 '스승'을 배울 수 있는 귀중한 기회이기 때문에 절대로 빠지는 일이 없습니다. 이 두 사람의 스승은 학식도 없고 집안 형편도 어려워 징역살이도 자연 '국으로 찌그러져' 사는 응달의 사람입니다. 제가 이 두 사람을 스승으로 마음두고 있는 까닭은 '일'이 사람을 어떻게 키워주고 사람을 어떻게 개조하는가를 이분들의 말없는 행동을 통하여 깨닫기 때문입니다.
첫째 이 두 사람은 일을 '발견'하는 눈이 매우 탁월합니다. 저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미처 일거리로 보이지 않는 것도 이 두 사람의 눈길이 닿으면 마치 조명을 받은 피사체처럼 대뜸 발견되고 맙니다. 그것도 자잘한 잔챙이를 낚아서 바지런떠는 그런 부류와는 달리 별로 힘들이는 기색이나 생색내는 일도 없이 큼직큼직한 일거리, 꼭 필요한 일머리를 제때에 찾아내는 솜씨란 과연 오랜 세월을 일과 더불어 살아온 '일의 명인(名人)'다운 풍모를 느끼게 합니다.
둘째로 이 두 사람은 일을 두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가녀린 심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변에 일손을 기다리는 일거리가 있거나 비뚤어져 있는 물건이 한 개라도 있으면 그만 마음이 불편해서 견디지 못하는 그런 심정의 소유자입니다. 이분들에게 있어서 일이란 외부의 어떤 대상이 아니라 삶의 내면을 이루는 존재조건 그 자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무심히 걷는 몇 발자국의 걸음 중에도 항상 무엇인가를 바루어놓고 말며, 다른 일로 오가는 중에도 반드시 무얼 하나씩 들고 가고 들고 옵니다. 잠시 동안도 빈손일 때가 없습니다.
셋째로 이 두 사람은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경우에는 언제나 제일 많은 사람이 달라붙는 말단의 바닥일을 골라잡습니다. 일부의, 더러는 먹물이 좀 들어 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힘이 덜 들어서가 아니라, 약간 독특한 작업상의 위치를 선호하여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일정하게 구별하려는 경향이 있음에 비하여 이 두 사람은 언제나 맨 낮은 자리, 그 무한한 대중성 속에 철저히 자신을 세우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이 두 사람은 제게 다만 일솜씨만을 가르치는 '기술자'의 의미를 넘어서 '사람'을 가르치는 사표(師表)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두 사람이 걸레를 잡으면 저도 걸레를 잡고, 이 두 사람이 삽을 잡으면 저도 얼른 삽을 잡습니다. 이분들의 옆에 항상 나 자신의 자리를 정함으로 해서 깨달은 사실은 여러 사람들 속에 설 때의 그 든든함이 우리를 매우 힘있게 만들어준다는 것입니다.
교편을 잡으시던 부모님 슬하에서 어려서부터 줄곧 학교에서 자라 노동의 경험은 물론, 노동자들과의 생활마저 부족했던 제게 징역과 징역 속의 여러 스승이 갖는 의미는 실로 막중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다가 가장 낮은 자리에서 그 큼을 이루고 꽃송이가 다발이 이루어 큰 꽃이 되는 그 변증법의 비밀이 실은 우리의 가장 비근한 일상의 노동 속에 흔전으로 있는 것임에 새삼 우리들 자신의 맹목을 탓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보내주신 책 두 권은 열독이 허가되지 않아 읽지는 못하였습니다만 보내주신 마음은 잘 읽고 있습니다. 사람도 물건도 출입이 어려운 마을에 살고 있음을 알겠습니다.
1급수 옥외접견(가족좌담)은 9월 28일(금) 12시에 있을 예정입니다. 따로 교무과에서 통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아버님께서 먼 걸음 하시지 않도록 주선해주시기 바랍니다. 조금이라도 덜 바쁜 식구가 마음 가볍게 다녀가시는 그런 접견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용이, 주용이 그리고 형수님의 가을을 축원합니다. 1984. 9. 20.
우산 없는 빗속의 만남
형수님께
남을 도울 힘이 없으면서 남의 고충[苦情]을 듣는다는 것은 매우 마음 아픈 일입니다. 그것은 단지 마음 아픔에 그치지 않고 무슨 경우에 어긋난 일을 하고 있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도운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임을 모르지 않습니다만, 빈손으로 앉아 다만 귀를 크게 갖는다는 것이 과연 비를 함께 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그에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러한 고정(苦情)에 자주 접하게 됨으로써 아픔이 둔감해지는 대신에 그것이 고정의 원인을 깊이 천착해 들어갈 수 있는 확실한 조건이 되어주길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저 혼자만 쓰고 있는 우산은 없는가를 끊임없이 돌이켜보는 엄한 자기 성찰의 계기가 되길 바랄 뿐입니다.……1985. 5. 29.
여름 징역살이
계수님께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미워하는 대상이 이성적으로 옳게 파악되지 못하고 말초감각에 의하여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혐오에 있습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하여 키우는 '부당한 증오'는 비단 여름 잠자리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라 없이 사는 사람들의 생활 도처에서 발견됩니다. 이를 두고 성급한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의 도덕성의 문제로 받아들여 그 인성(人性)을 탓하려 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 내일 온다 온다 하던 비 한줄금 내리고 나면 노염(老炎)도 더는 버티지 못할 줄 알고 있으며, 머지않아 조석의 추량(秋敭)은 우리들끼리 서로 키워왔던 불행한 증오를 서서히 거두어가고, 그 상처의 자리에서 이웃들의 '따뜻한 가슴'을 깨닫게 해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추수(秋水)처럼 정갈하고 냉철한 인식을 일깨워줄 것임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다사했던 귀휴 1주일의 일들도 이 여름이 지나고 나면 아마 한 장의 명함판 사진으로 정리되리라 믿습니다. 변함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친정부모님과 동생들께도 안부 전해주시기 바랍니다.1985. 8. 28.
작은 실패
형수님께
주역 64괘 중의 맨 마지막 괘가 소위 '미제'(未濟)괘로서 괘사(卦辭)에는 "어린 여우가 물을 거의 건넜을 때 그만 꼬리를 적시고 말았다. 이로운 바가 없다"(小狐洛濟 濡其尾无攸利)라 하였습니다.
지난 가을 교도소 앞 논으로 타작일 도우러 갔을 때의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추수 임시(臨時)에 쏟아진 폭우로 말미암아 물에 잠긴 볏단을 두렁에 옮겨 쌓으면서 우리는 흡사 비에 젖어버린 가을의 꼬리를 들고 섰는 듯 추연한 비감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세모가 되거나 또는 하루를 끝내는 저녁 무렵이 되거나 또는 작은 일 하나 마무리할 즈음에도 항상 어린 여우가 꼬리를 적시는 그 마지막 과정의 '작은 실패'에 생각이 미칩니다. 이러한 어린 여우의 연상은 어떤 일이나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더욱 신중한 태도를 갖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한 것이라고 믿어왔습니다만 지금 생각으로는 그것이 반드시 그런 것만이 아니라고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작은 실패가 있는 쪽이 없는 쪽보다 길게 보아 나은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작은 실패가 있음으로 해서 전체의 국면은 '완결'이 아니라 '미완'에 머물고 이 미완은 더 높은 단계를 향한 새로운 출발이 되어줍니다. 더구나 작은 실패는 사람을 겸손하게 하고 자신과 사물을 돌이켜보게 해줍니다. 괘사에도 완결을 의미하는 '기제'(旣濟)는 "형통함이 적고 처음은 길하지만 마침내 어지러워진다"(亨小初吉終亂)고 하여 그것을 미제의 하위에 놓고 있습니다.
도대체 역(易)의 오의(奧義)를 숙지하기도 쉽지 않고 또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지도 않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소위(所爲) 가운데 필연적으로 존재하게 마련인 '작은 실패'를 간과하지 않는 자기비판의 자세입니다. 실패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실패의 발견이 필요한 것이며, 실패가 값진 것이 아니라 실패의 교훈이 값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패와 그 실패의 발견, 그것은 산에 나무가 있고 땅 속에 바위가 있듯이 우리의 삶에 튼튼한 뼈대를 주는 것이라 믿습니다.
아버님 편에 보내주신 책 잘 받았습니다.
형님, 형수님, 우용이, 주용이 모두 건강하길 빕니다. 방학 동안에 우용이, 주용이는 평소에 겪기 어렵던 새로운 경험을 풍부히 가져서 생활의 테두리를 훨씬 넓혀갈 수 있기 바랍니다. 1985. 12. 12.
인동(忍冬)의 지혜
형수님께
형기(刑期)가 1년 6월 이상이 되면 그 속에 겨울이 두 번 들게 됩니다. 겨울이 두 번 드는 징역을 '곱징역'이라 합니다. 겨울 징역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생각됩니다.
특히 자기 체온 외에는 온기 한 점 찾을 수 없는 독거(獨居)는 그 추위가 더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지난 가을 이래 독거하고 있습니다. 제가 구태여 독거를 마다하지 않는 것은 추위가 징역살이의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는 생각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도소의 겨울이 대단히 추운 것이긴 하지만 그 대신 이곳에는 오래전부터 수많은 징역선배들이 수십 번의 겨울을 치르면서 발전시켜 온 '인동(忍冬)의 지혜'가 마치 무의촌의 토방(土方)처럼 면면히 구전되어오고 있습니다.
이 숱한 지혜들에 접할 때마다 그 긴 인고의 세월 속에서 시린 몸으로 체득한 그 지혜들의 무게와 그 무게가 상징하는 힘겨운 삶이 싱싱한 현재성을 띠고 우리의 삶 속에 뛰어듭니다.
겨울 추위는 이처럼 역경에서 발휘되는 강한 생명력을 확인하고 신뢰하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겨울 추위는 몸을 차게 하는 대신 생각을 맑게 해줍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나 여름보다 겨울을 선호합니다. 다른 계절 동안 자잘한 감정에 부대끼거나 신변잡사에 얽매여 있던 생각들이 드높은 정신 세계로 시원하게 정돈되고 고양되는 것도 필경 겨울에 서슬져 있는 이 추위 때문이라 믿습니다. 추위는 흡사 '가난'처럼 불편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불편은 우리를 깨어 있게 합니다.
저는 한 평 남짓한 독거실의 차가운 공간을 우리의 숱한 이웃과 역사의 애환으로 가득 채워 이 겨울을 통렬한 깨달음으로 자신을 달구고 싶습니다.
지리부도를 펴놓고 새로 이사한 대치동을 찾아보았습니다. 잠실에서 가까워 형수님의 잠실 출근(?)길이 줄었다 싶습니다. 407호면 4층, 이촌동 집과는 달라 화분에 햇빛 가득 담기리라 생각됩니다. 형수님의 얼굴에도 햇빛 가득 담기길 바랍니다. 1986. 1. 10.
계수님께
징역 사는 동안 자주 목격하게 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싸움입니다. 인제는 만성이 되어 순전한 구경꾼의 눈으로 바라보게끔 되었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서로 부대끼다보면 공자와 맹자도 싸우게 됩니다.
문제는 남들에게 호락호락하게 보이지 않으려면 성깔 사나운 사람으로 호가 나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싸워두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것은 폭력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소위 폭력문화의 광범한 영향입니다. 이래저래 이곳에서는 엔간한 다툼은 곧잘 싸움으로까지 직진해버립니다.
그 많은 싸움들을 보고 느낀 것입니다만, 싸움은 큰 싸움이 되기 전에 잘게 나누어서 미리미리 작은 싸움을 싸우는 것이 파국을 면하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그리고 이 작은 싸움은 잘만 관리하면 대화라는 틀 속에서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소화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상책(上策)은 못되고 중책(中策)에 속합니다. 상책은 역시 싸움에 잘 지는 것입니다. 강물이 낮은 데로 낮은 데로 흘러 결국 바다에 이르는 원리입니다. 쉽게 지면서도 어느덧 이겨버리는 이른바 패배의 변증법을 터득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사실 진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기기보다 어렵습니다. 마음이 유(柔)해야 하고 도리에 순(順)해야 합니다. 더구나 지면서도 이길 수 있기 위해서는 자신이 경우에 어긋나지 않고 떳떳해야 합니다. 경우에 어긋남이 없고 떳떳하기만 하면 조급하게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할 필요도 없고, 옆에서 보는 사람은 물론 이긴 듯 의기양양하던 당자까지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완벽한 승리가 되어 돌아옵니다. 그러나 이것도 싸우지 않는 것만은 못합니다.
싸움은 첫째 싸우지 않는 것[無爭]이 상지상책(上之上策)입니다. 그 다음이 잘 지는 것[易敗], 그 다음이 작은 싸움[靜爭], 그리고 이기든 지든 큰싸움[亂爭]은 하책(下策)에 속합니다. 1988. 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