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을 다녀온후,
김일성 생가를 갔었습니다.
제가 갔을때는 아직 김정일이 살아있을때 였거든요.
김일성생가는 굉장한 관광지로 깔끔하게 유지가 되어있고
신성한 곳이라는 분위기 였습니다.
김일성 일가는 북에서는 신급입니다.
여기저기서 결혼식 야외촬영을 하는 모습이
마치 연출된것처럼 보였습니다.
웨딩드레스는 없었고, 한복입고 머리에 쓴것을 보고 신혼부부란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진짜 부부인지 배우인지는 알수가 없었습니다.
김일성 일가가 살던 곳.
김정숙 여사의 사진등....박물관 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빨치산 영웅들 이야기도 있었던것 같아요
빨치산이 뭐냐고 우리 팀들에게 물었더니...빨치산에서 우리 독립군과 일본군들이 싸우며
피의 항쟁을 한 곳이라서 빨치산 영웅이라고 한다고 들은것 같습니다.
북한에서는 독립운동가들의 신분이 상당히 높거든요.
아마도 지금의 기득권들은 독립운동하신 분들이거나 그 후손들일것 같습니다.
적어도 일제시대에 친일파 매국노를 하던 사람들이 북한에서
고위층으로 존재하지는 않으므로,
그들이 국민들보다 특별한 신분과 기득권을 유지하는 당위성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김일성 기념관에서는...김일성의 관을 모신곳이 있었습니다.
김일성 밀랍인형은 아주 잘생기고 풍체좋고 사람좋아보이는 김일성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 어릴때 김일성...그러면 흉폭한 돼지로 그려졌었는데
이렇게 인상이 좋다니...믿어지지 않더만요.
오는길에 북한의 유명 사찰도 시찰하였습니다.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북에서도 스님은 존재하였고 사찰도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어떤 신분인지 몰겠지만 승복을 입고, 정말 빼빼 야위신 분이셨습니다.
차를 타고 오면서...놀이동산을 보았는데...모양만 남은 상태였습니다.
놀이기구들은 녹슬었고...이용안한지 오래되어보이는 놀이동산.
그나마도 보여주기 위한 놀이동산이 아닐까요?
저녁 만찬에서는 무역을 위한 북측과 우리팀들의 명함교환등이 있었습니다.
각자 관심있는 분야 분들과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주로 아이티업종에 근무하시는 분들과 명함교환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명함들 지금도 있습니다^^
함께 간 분은 뉴질랜드에서 변호사로 일하시는 분이신데
북한 변호사와 명함교환을 하셨다고 기뻐하셨습니다.
우리끼리 한 말이....북한에서 왜 변호사가 필요하지? 였습니다.
암튼 북한에도 변호사라는 직종은 존재하였고, 매우 샌님스탈에 잘생긴 사람이었습니다.
남남북녀라고 하지만...북한에도 미남자는 많이 보였습니다.
제가 만난 분들은 다들 앨리트 층이라서 그런지 매우 품위있고, 잘생기 말끔한 분들이 많았고
말에도 품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투가 모조리 조선족 말투라서...우리가 겪는 조선족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말을 상당히 조심하면서 품위유지에 신경들 쓰셨고,
넥타이와 양복을 잘 갖춰 입으셨고, 김일성 김정일 뺏지를 달고 계셨습니다.
북한은 아이티기술이 발달되어서 해커기술도 뛰어나다고 하지요.
북한의 프로그래머들이 심양등의 중국으로 가서 프로그래밍 작업을 한다고 하엿고,
일본에서 중국으로 간 하청을 받아서 프로그래밍 작업하는 노가다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보고 일본의 프로그래밍 작업을 직접 수주받아서 하고 싶다고 하여서
제가 그런 일은 발주 가능하다고 하였고, 실제로 그런일을 하청 발주하여 프로그래밍
납품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제가 북한에서 돌아온후, 심양에 있는 프로그램 팀장과 당시 메신저로 연결이 되어서
매일 채팅을 하면서 프로그래밍 작업지시와 납품을 받았습니다.
매일 채팅을 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지요.
대부분 유부남들이었는데, 특이한게...아이들은 다들 2명씩 있는데
각 나이터울이 10살정도 난다는 겁니다.
하나 다 키워놓고 또 하나를 낳아서 키우는.....그게 국가정책인지
아이에 대해서 물어보면 모조리 그렇게 답을 합니다.
그들과 대화하면서 이념차이...언어의 이질감...등이 많았습니다.
이것이 한 민족인가?
말만 같았지 같은 민족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굉장한 이질감이 있거든요.
그런데...마지막 만찬날....
대동강 맥주에 취해서 기분 좋게 얼큰히 취해있는데
마지막에...남북이 다 같이 손을 잡고 고향의 봄을 불렀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고올~~~
북숭아꽃 살구우꼬옷 아기 지인다알래~~~
흠미...이 노래는 모든 사람들이 가사도 잘 알고
노래도 똑 같이 부르는데...
그동안 들던 이질감이 싹 사라지면서,
헤어진 동포를 만난 이산가족감정이 빙의되어 통곡을 했습니다.
술이 취해있어서 더 그런지...저는 통곡을 하는 바람에 코가 막혀서 개고생을...ㅜ.ㅜ
다들 약간씩 울었는데....저는 통곡을 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에서 통곡하다가 기절하던 분들처럼...그래그래 울었습니다.
한 핏줄인데 이렇게 떨어져서 오래 지내가면서, 다른 사람처럼
다른 민족처럼 살아가야하는건가...누가 우리들을 이렇게 생이별하게 만든것인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마지막 만찬이었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조선족 이상으로도 보이지 않았고,
우리랑 피부색 같은 아프리카 주민으로도 보였었는데,
고향의 봄에서 터져버렸습니다.
빠샤~~
저 지금 병원다녀와서 또 글 쓸께요
첫댓글 부산아시안게임때 방송 안보이는 락커룸에 같이 대화한적 있지요. 신기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지기님 스펙타클하시네요.
그 나이에 북한 사람 만났으면 무서웠을것 같아요
우리는 빨갱이라고 배웠으니까요 ㅜㅜ
@영주댁 맞아요. 첨엔 무서웠는데 감독님들끼린 경기장에선 악수도 안하시다가 락커룸에선 농담따먹기. 컥 놀랬어요. 다만 선수들은 단한마디도. 아니 경멸하는듯했어요. "일없습네다" 나중 4일째 만나니 감독없을때 과자부탁. ㅋㅋ 끝날때 옷이랑 선물 바리바리챙겨줬어요. 감독이랑 선수들 허물도 없고 참 아쉬웠더랬어요.
외국시합서는 편한데 한국내에서라 감시가 심했어요. 짜증도 났는데 일단 무서움이 더 컸어요.
@돌쇠 저쪽도 마찮가지로 우리가 무서울걸여
저쪽 사람들이 순진 무구하니까요
@돌쇠 저도 첨에. 일 없습네다~~ 를 하도 많이 쓰길래 그게 머냐고 물었더니. 괜찮습니다 라고 하는 의미랬어요
@영주댁 근데 그게 아직도...
ㅋ 인상쓰고 그러면 무섭고, 웃으며 이야기하면 왠지 새침떼기같고. 나이가 드니 이제 면전에서 "일없습네다" 그러면 부러워요하고 얘기할것 같아요. ㅋ
앗 돌쇠님 종목이,,??
@구라파왕자 선출은 아니구여. ^^ 전 재활 트레이너였어요. 북선수단과는 유도, 사격, 레슬링이 기억나네요.
@돌쇠 프....프로시네요
우왕
우와 영주댁님 일대기는 정말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것 같아요!!ㅎㅎ
담에 정말 신기한 일화를 소개 하겠슴돠 ㅋㅋㅋ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고있어요. ㅠ
나의 살던 고향은 ~
고향의 봄, 노래는 모두의 노래군요. 뭉클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