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선교 이야기 (24년 5월 11일)
5월이 훌떡 지나가고 11일이 되도록 선교이야기를 보내지 않으니 많은 분들이 저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하셔서, 왜 소식이 없냐고 여쭤보셨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렇게 많은 날들이 이렇게 훌떡 지났네요. 신학교 기말고사 기간이다보니, 수많은 리포트와 시험공부에 치어서 책들과 씨름하느라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고, 또 새롭게 적응하는 도미니카 삶도 그닥 녹녹하지는 않습니다. 도미니카가 분명히 아이티보다 훨씬 편안하고 안전한건 사실이지만, 여기는 저에게는 “집”이 아니었습니다. 도미니카 물가가 너무 높아서 깜짝 놀랐고, 아이티의 좁은 저희 집이 너무 그립고, 아이들과 저희 사역자들이 너무 보고 싶습니다. 미국에서는 오늘이 어머니의 날이어서, 아이들이 저에게 어머니날 감사 인사를 보냈는데, 아이들 모두 너무너무 그립습니다.
얼마전, 제가 남편사업 때문에 아이티와 도미니카의 국경지역인 다하봉(Dajabon)이라는 곳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삼거리가 있고, 그곳에 푯말이 서있는데, 그 푯말에 세번째에 아이티라고 써 있고, 오른쪽으로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20분이면 아이티 땅에 발을 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냥 서있는 푯말만 보았을 뿐인데, 뱃속 깊은 곳에서 얼마나 깊은 눈물이 나오는지…그 땅을 생각하며 쏟아져 나오는 눈물이 쉽게 그치질 않았습니다. 함께 갔던 도미니카 목사님이자 남편의 비즈니스 파트너도 저 때문에 숙연해졌고, 남편도 숙연해졌습니다. 그리고 길거리에는 시커멓고 더러운 남자 아이들이 구두통을 들고 다니면서 구걸하고 있었고, 많은 흑인 여자들이 머리에 잡다한 것을 넣은 바구니를 이고, 물건을 팔러 다니고 있었습니다. 도미니카 한 마을에 아이티의 시내 도로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된 것 같았습니다. 아이티에서 제가 이렇게 구걸하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키우기 시작한게 10여년이 넘었는데, 이렇게 타국에서 아이티 아이들이 구걸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메여 왔습니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다가, 그 아이들 앞에서 닭다리를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서 도시락을 여러 개 주문해서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는데, 정말 정신없이 먹는 아이들을 보면서 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 모습을 보며 저는 신명기 15:7-8,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그 뒤로 다하봉은 저에게나 남편에게 잊혀질 수 없는 곳이 되었고, 그 아이들을 마음에 품게 하셨습니다. 아이티의 아이들도 챙겨야하고, 또 투르찌에 아이들도 챙겨야 하는데 계속해서 주님께서는 더 많은 아이들을 마음에 품게 하십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들을 주님께서 마음에 주실때는, 그 마음조차도 주님께서 책임져 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월드쉐어와의 미팅 날짜가 14일로 다가 왔습니다. 평강함과 감사함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날 미팅에서 투르찌에 아이들 지원이 끊기지 않고 계속되고, 주님께서 아이티를 향한 긍휼한 마음이 월드쉐어 지도부에 부어져, 계속해서 아이티를 지원해주시기를 기도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기도로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고, 이제 현지 시간으로 이틀밖에 남지 않은 월드쉐어 미팅을 위해 더 뜨겁게 기도 부탁드립니다.
** 저희 기도편지를 편집해주시던 캐나다 김혜리 자매가 아주 잘생긴 아들을 낳아, 지금 조리중이라 이번에는 아이티 소식이 편집없이 나갑니다. 이 아이가 주님 축복으로 잘 자라도록 또 이 가정에 주님의 축복이 임하도록 기도부탁드립니다.
** 이번 월드쉐어 리더쉽이 오실 때, 제가 아이티 상황을 보여드려야 하는데, 저희의 기도용사이신 한국의 정현서집사님께서 그래픽 디자이너이셔서,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이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많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