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6:1-30
찬송가 290장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죄를 해결하는 제사장(1-30)
포로 생활을 마치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질문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의 백성인가?", "하나님의 약속은 아직도 유효한가?" 역대기는 이에 대한 답입니다.
역대기에서 왕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다윗과 솔로몬 왕에 대한 내용이 역대상 10장부터 역대하 9장까지 나옵니다. 이후 왕들은 역대하 10장에서 36장에 몰려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다윗과 솔로몬을 중심으로 역대기가 서술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이 여전히 다윗의 자손이며, 다윗의 약속을 이어받은 자라는 것과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임이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별 의미 없어 보이는 1-9장에 나오는 족보에서도 그들의 정체성과 소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장은 아담으로부터 내려온 계보입니다. 아브라함에 이어 야곱 곧 이스라엘에 이르는 족보는 그들이 여전히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줍니다. 2장부터 9장은 이스라엘의 지파별 계보가 나옵니다. 순서와 분량만 살펴봐도 무엇이 강조되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창세기 29-30장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자녀는 '르우벤-시므온-레위-유다-단-납달리-갓-아셀-잇사갈-스불론-요셉-베냐민' 순입니다. 그러나 역대기에 나타나는 순서는 다릅니다. '유다-시므온-르우벤-갓-므낫세-잇사갈-베냐민-납달리-므낫세-에브라임-아셀-베냐민'입니다. 장자를 우선하는 이스라엘 문화 속에서 르우벤이 첫번째로 나오는 게 자연스럽지만, 유다가 먼저 소개됩니다. 베냐민(7:6-12; 8:1-40)은 두 번 등장하고, 단과 스불론은 언급조차 되지 않습니다.
분량으로는 유다가 가장 많고, 다음은 레위, 베냐민입니다. 그 외 나머지는 다 빈약합니다. 양이 많다는 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겁니다. 유다와 베냐민은 포로 귀환 공동체 중 실세였습니다. 그래서 그만큼 비중을 주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레위 지파가 두 번째로 분량이 많은데, 위치를 통해 보면 중요도를 더하게 됩니다. 구조로 보면 유다와 베냐민이 양 끝에 있고, 레위가 중앙에 위치합니다. 마치 유다와 베냐민이 주축이 되어 이스라엘로 돌아오는데, 레위를 중심에 두고 오는 모양세입니다. 히브리 구조에서는 이럴 때 중앙에 있는 것이 강조됩니다. 곧 포로로 돌아온 자는 레위인을 중심으로 뭉친 공동체라는 겁니다. 귀환 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과 거룩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때 레위인이 그 역할을 맡을 겁니다. 어떤 학자는 이를 두고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행진할 때 진을 쳤던 모습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정리하면, 포로에서 돌아온 자는 여전히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며, 다윗의 약속을 이어 받고, 성전 속에 임하시는 하나님을 모시는 자라는 정체성을 역대기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 읽은 6장에 나오는 레위 지파 계보를 통해서도 역대기의 주제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1절입니다.
(1) 레위의 아들들은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요
1절은 레위의 아들 세 명을 언급합니다. 나이 순대로 게르손, 그핫, 므라리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다음 2절부터 15절에는 첫째 게르손과 셋째 므라리 자손은 서술되지 않습니다. 둘째 그핫의 계보만 나옵니다. 히브리 문화에서 첫째가 우선 되고 많은 지분을 가진다는 점에서 이것은 의외입니다.
(2-15) 그핫의 아들들은 아므람과 이스할과 헤브론과 웃시엘이요 아므람의 자녀는 아론과 모세와 미리암이요 아론의 자녀는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이며 엘르아살은 비느하스를 낳고 비느하스는 아비수아를 낳고 아비수아는 북기를 낳고 북기는 웃시를 낳고 웃시는 스라히야를 낳고 스라히야는 므라욧을 낳고 므라욧은 아마랴를 낳고 아마랴는 아히둡을 낳고 아히둡은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히마아스를 낳고 아히마아스는 아사랴를 낳고 아사랴는 요하난을 낳고 요하난은 아사랴를 낳았으니 이 아사랴는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세운 성전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행한 자이며 아사랴는 아마랴를 낳고 아마랴는 아히둡을 낳고 아히둡은 사독을 낳고 사독은 살룸을 낳고 살룸은 힐기야를 낳고 힐기야는 아사랴를 낳고 아사랴는 스라야를 낳고 스라야는 여호사닥을 낳았으며 여호와께서 느부갓네살의 손으로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을 옮기실 때에 여호사닥도 가니라
그핫의 계보만 언급된 이유는 그핫이 대제사장 가문이기 때문입니다. 역대기 기자는 제사장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초대 제사장인 아론이 그핫의 장자입니다. 하나님은 아론과 그의 후손을 대제사장이 되게 하셨습니다. 같은 레위인이라도 대제사장이 될 수 없습니다. 그핫 자손 중에서도 아론 자손만 해당됩니다. 마치 대제사장 가문이 일반 레위 사람보다 더 우선되는 듯 보입니다.
레위 족보 중 제사장직이 부각되는 것은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이 제사직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된다는 말과 같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을 중보합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진노를 풀고 백성을 하나님께로 돌이킵니다.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은 레위 제사장을 품고 돌아왔고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시는 것을 알리는 징표입니다. 곧 회복은 회개가 시작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돌아오게 하실 때는 반드시 죄의 문제를 해결하게 합니다. 성전이 회복되지 않고, 제사가 형편없이 드려지면서 회복을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나머지 레위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레위의 첫째 아들 게르손은 성전이 지어지기 전, 성막의 외형을 이루는 천막과 휘장, 그리고 그 부속물들을 관리하고 운반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제사 제도가 정비된 후, 성막과 장막 부속물들을 관리했습니다. 셋째 아들 므라리는 성막의 널판, 띠, 기둥, 받침 기구 등과 같은 성막의 골격을 이루는 것들을 관리하고 운반하는 일 담당했습니다. 성막 널판과 그 부속품을 관리하는 일입니다.
이후 16-30절에 레위의 세 아들의 계보가 다시 등장합니다.
(16-30) 레위의 아들들은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이며 게르손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립니와 시므이요 그핫의 아들들은 아므람과 이스할과 헤브론과 웃시엘이요 므라리의 아들들은 말리와 무시라 그 조상에 따라 레위의 종족은 이러하니 게르손에게서 난 자는 곧 그의 아들 립니요 그의 아들은 야핫이요 그의 아들은 심마요 그의 아들은 요아요 그의 아들은 잇도요 그의 아들은 세라요 그의 아들은 여아드래이며 그핫에게서 난 자는 곧 그 아들은 암미나답이요 그의 아들은 고라요 그의 아들은 앗실이요 그의 아들은 엘가나요 그의 아들은 에비아삽이요 그의 아들은 앗실이요 그의 아들은 다핫이요 그의 아들은 우리엘이요 그의 아들은 웃시야요 그의 아들은 사울이라 엘가나의 아들들은 아마새와 아히못이라 엘가나로 말하면 그의 자손은 이러하니 그의 아들은 소배요 그의 아들은 나핫이요 그의 아들은 엘리압이요 그의 아들은 여로함이요 그의 아들은 엘가나라 사무엘의 아들들은 맏아들 요엘이요 다음은 아비야라 므라리에게서 난 자는 말리요 그의 아들은 립니요 그의 아들은 시므이요 그의 아들은 웃사요 그의 아들은 시므아요 그의 아들은 학기야요 그의 아들은 아사야더라
하나님 앞에 제사장의 직분과 레위인의 직분 모두 거룩하고 귀합니다. 다만 역대기에서는 바벨론 포로기를 마치고 온 이스라엘에게 정체성과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제사장직이 강조된 겁니다.
대제사장 중에는 주어진 제사장 역할을 잘 감당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힐기야는 요시야 왕 때에 성전에서 성경책을 찾은 대제사장입니다. 비느하스는 우상숭배하던 자를 칼로 찔러 죽임으로 이스라엘의 거룩을 지킨 자입니다. 아사랴는 웃시야 왕이 스스로 성전에서 분향을 하려 할 때 과감히 나서서 이를 막은 제사장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대제사장 족보에 들었으나 이를 가벼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 인물은 나답과 아비후 입니다. 그들은 아론의 첫째와 둘째 아들로, 아론의 뒤를 이어 제사장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넘치는 은혜와 복을 받았으나 그들은 하나님이 명하신 불이 아닌 다른 불을 드려 하나님의 진노를 사, 불로 심판받습니다. 제사를 가볍게 여기고, 욕망을 따르다 제사장직을 이어가지 못 한겁니다. 결국 셋째인 엘르아살이 대제사장이 됩니다.
레위 족보를 이어가시는 하나님(15, 28)
족보를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또 한가지는 하나님이 레위 족보를 이어가신다는 겁니다. 15절입니다.
(15) 여호와께서 느부갓네살의 손으로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을 옮기실 때에 여호사닥도 가니라
15절은 하나님이 온 이스라엘을 옮길 때 여호사닥도 간다고 합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을 마지막으로 섬겼던 남유다의 대제사장입니다. 그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 갔다 돌아왔습니다. 성전이 무너진 후 제사장은 의미를 잃게 됩니다. 바벨론 포로기가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간 동안 대제사장 계보 아론의 자손이 이어지게 하셨습니다. 여호사닥은 그 기간을 견디고 다시 돌아옵니다. 그의 아들 여호수아가 대제사장이 되어 스룹바벨 성전을 짓는 것을 봅니다.
역대기가 쓰여졌을 당시 여호사닥에게는 자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호사닥까지만 언급합니다. 아들 여호수아조차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사닥이 첫번째 예루살렘 성전과 두번째 스룹바벨 성전을 연결시키는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의 종말을 지켜보았고, 다시 성전이 지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전의 제사장직이 이어져 내려갑니다. 이스라엘은 다시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나라로 회복됩니다.
15절에서 바벨론에서 돌아오게 하신 것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의 손으로 온 이스라엘을 옮기셨다.' 다시 예루살렘으로 옮기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방나라 왕조차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고, 궁극적으로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바벨론 유수도 하나님의 큰 틀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아무도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결코 무너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성전은 무너졌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다시 그들이 하나님으로 인해 돌아오게 됩니다. 언약을 어겨 심판을 받았지만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없어 끝이 났던 겁니다.
이제 16절부터 30절에 대해 좀더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는 레위의 세 명의 아들이 다시 언급됩니다. 이번에는 나이 순서대로 나오고, 레위의 세 명 아들의 직계 자손이 모두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그핫 자손이 강조됩니다. 분량이 가장 많습니다. 또한 내용도 독특하게 전개됩니다. 앞에서는 그핫 자손 중 아론의 자손만 언급 되었는데, 여기서는 이스할의 자녀만 나옵니다. 22절입니다.
(22) 그핫에게서 난 자는 곧 그 아들은 암미나답이요 그의 아들은 고라요 그의 아들은 앗실이요
방금 읽은 22절에서 이스할이 나오지 않아 어리둥절 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암미나답이 이스할입니다. 역대상 6:38을 보면 고라의 아버지가 이스할이라 합니다. 이스할이 암미나답의 다른 이름입니다. 대상 6:38입니다.
(대상 6:38) 고라는 이스할의 아들이요 이스할은 그핫의 아들이요 그핫은 레위의 아들이요 레위는 이스라엘의 아들이라
그핫의 자손 중 셋째 헤브론과 넷째 웃시엘을 두고, 암미나답 계보를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스할 족보에서 사무엘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28절입니다.
(28) 사무엘의 아들들은 맏아들 요엘이요 다음은 아비야라
사무엘은 사울과 다윗 왕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제사장이자, 선지자이자, 사사였습니다. 사무엘이 살던 시기는 사사시대였는데 모두 각자 자기 소견이 옳은대로 살았습니다. 그때 한나가 불임으로 고통하다 하나님께 부르짖고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사무엘은 부폐하고 영적으로 어두워진 엘리 제사장 밑에 자랐으나 하나님은 그를 그곳에서 신실하게 기릅니다. 이상과 말씀이 희귀하던 시대, 불임과 같은 시대에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이스할의 계보를 언급한 이유는 결국 영적 암흑기에 사람을 일으켜 이스라엘을 회복시킨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더 사모하게 되는 이유는 연약한 우리를 붙들어 가시는 하나님을 보기 때문입니다. 예배 속에는 은혜를 발견할 때 말씀이 들리고 삶이 달라집니다.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를 받았기에 회개할 수 있습니다. 은혜에 감격한 자는 하나님께 나아가게 됩니다. 주님밖에 답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죄를 해결되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죄를 해결함으로 시작합니다. 죄를 해결하여 은혜의 역사를 이어가시는 하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예배란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우리가 드리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부르신 겁입니다. 온전했기 때문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변함 없으시기 때문에 주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 손이 거치지 않은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손길이 큼을 볼때, 이걸 발견할 때 우리 결코 그저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없습니다. 주가 부르실 때 멈춰설 수 있으십니까?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배를 통해 참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형식적이지 않고, 진실되게 주 앞에 서게 하옵소서. 죄를 끊어내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그러기까지 우리를 붙들며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을 보게 하옵소서. 우리 자신을 내어 드리기까지 성장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영적 회복을 바랄 때 해야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2.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죄는 어떤 것이 있나요?
3. 예배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은 어떠한가요?
4. 자기의 약함을 마주할 때 어떻게 해야할까요?
(작성: 김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