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근심 어린 눈으로 중국 경제를 주시하고 있다. 구조적 결함과 금융 시스템 부실을 바로잡겠다는 당 지도부의 취지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저러다 큰 일 치르지나 않을까 걱정이 크다. 비관론자들은 중국 성장률이 4%대로 추락하는 경착륙이 조만간 벌어질지 모른다며 불안해한다. 경착륙이든 연착륙이든 변함없는 사실은 중국이라는 항공모함이 항로를 크게 바꾼 것이다. 방향을 잘못 짚어 물살에 휩쓸린 주변국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이어질지 모른다.
중국의 2분기 성장률은 전년 동기비 7.5%를 기록했다. 전분기 7.7%는 물론 2년 전 두 자릿수 성장과는 더 멀어졌다. 투자와 수출·생산 증가가 모두 둔화됐다. 소비는 조금 살아났지만 여전히 작년 연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물론 주변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성장세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걸까. 그만큼 세계 경제 성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중국 경제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연말로 갈수록 중국 경기는 더 꺾일 가능성이 크다.
중국 경제 성장률 6%대로 떨어질 가능성 커
우선 중국 당국의 신용팽창 억제책은 하반기에도 지속될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교체와 양적완화 축소가 맞물려 하반기 글로벌 유동성이 빠듯해질 확률이 높다. 특히 신흥시장 여건이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이 모든 것은 하반기 중국 유동성 여건이 경기에 우호적이지 못할 것임을 뜻한다. 신용팽창에 의지한 고정자산 투자는 더 둔화될 수밖에 없다.
추가적인 성장률 둔화는 불가피하다. 성장세와 유동성 공급이 둔화되는 상황에서 기업 부도가 현실화할 것이고, 이는 다시 자금시장에서 돈의 유속을 떨어뜨릴 것이다. 해외 여건도 별로여서 수출 경기 또한 자신할 수 없다. 분기별로 중국 경제는 올 4분기와 내년 1분기가 고비가 될 것이다. 이 시기 중국의 분기 성장률은 일시적으로 6%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일부 외신과 해외 투자은행(IB)은 중국의 경착륙 가능성을 제기한다. 최근 미국 모건스탠리는 ‘수퍼베어 시나리오(아주 비관적 시나리오)’라는 보고서에서 중국 당국의 유동성 옥죄기와 구조조정 정책이 강화되면 올 하반기 성장률은 5.5%로 떨어지고, 내년 연간 성장률은 4.5%로 추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론 이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것으로 모건스탠리 스스로도 가능성이 크지않다고 본다.
중국 경제통인 마이클 페티스 베이징대 교수는 더 비관적이다. 그는 2005년부터 중국 경제가 지속적인 고성장을 이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 인물이다. 페티스 교수는 최근 뉴스레터에서 “앞으로 10년 간 중국의 연 평균 성장률은 3~4%로 둔화될 것이고, 중국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분기마다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기 바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경착륙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재앙에 가깝다. 원자재 가격이 급락할 것이고, 중국 경제 의존도가 큰 한국·대만·호주·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도 동반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BOA메릴린치가 글로벌 펀드매니저를 상대로 매달 실시하는 설문조사에서도 중국 경착륙 우려가 커졌다.
7월 조사에서 펀드매니저의 56%가 최대 ‘테일 리스크(Tail Risk)’로 중국 경착륙과 원자재 시장 붕괴를 꼽을 정도였다. 테일 리스크는란 실현 가능성은 작지만 현실화되면 경제 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는 리스크를 의미한다.
물론 중국 지도부는 지금의 정책 스탠스에서 물러설 생각이 없다. 그렇다고 경기가 곤두박질치는 걸 내버려둘 마음도 없다. 성장률과 고용 사정이 감내 가능한 수준을 이탈할 조짐을 보이면 미세 조정에 나설 것이라고 거듭 밝혔다. 이미 당 지도부 사이엔 경기 급냉 시나리오에 대비한 방어책을 마련한 것 같다. 연내 대규모 부양책을 펴기 위한 준비가 끝났다는 게 아니라, 혹시 모를 경기 급냉에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을 마련했다는 뜻이다.
최근 리커창 총리를 비롯한 정부 고위급 인사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우선 가장 가능성이 작은 정책 수단은 인민은행의 지급준비율과 기준금리 인하다. 신용팽창 속도를 제어해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이겠다는 대의에 어긋난다. 인민은행이 이 카드를 꺼내는 순간은 실물경제가 심하게 꺾여 신용경색이 본격화하거나,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기득권 세력과 원로 세력의 반발에 굴복한 경우일 것이다.
가장 가능성이 큰 경기방어 수단은 재정을 통한 맞춤형 부양책이다. 리커창 총리는 7월 3일 국무원 상무회의에서 “올해분 세수와 남는 재정자금을 적극 활용해 경제에 보탬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정자금을 더 효율적으로 이용해 경제성장안정화와 구조조정, 인민들의 삶의 질 개선 등에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에너지 효율화 및 공공서비스, 소비촉진 등에도 재원을 할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 총리의 언급 대로 중국에는 남는 재정자금이 많다. 바로 누적 재정 흑자분이다. 5월 말 현재 인민은행과 시중은행에 분산 예치된 누적 재정 흑자 규모는 3조5000억 위안에 달한다. 왜 이렇게 많은 돈이 쌓여 있는 걸까. 중앙과 지방의 각 부처는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매년 실제 필요한 금액보다 더 많은 예산을 요구해왔다. 연말이 되면 부랴부랴 예산을 소진한다고 법석을 피웠는데, 그러고도 남은 돈이 매년 쌓였다.
3조5000억 위안이면 대략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7%다. 이 자금 중 5000억 위안만 정부 지출로 풀려도 연간 성장률을 1%포인트 가량 끌어올릴 수 있다. 더구나 올해 중국 정부(중앙+지방)의 지출 예산은 13조9630억 위안이다. 이 중 5%를 삭감하겠다고 했으니, 7000억 위안의 추가 여유분이 생긴다. 올해 세수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이 금액이 다 비축되지는 않겠지만 요긴한 곳에 쓸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앞으로 돈 들어 갈 일이 많아 허투루 쓰지는 못한다. 이 자금은 구조조정과 은행·지방정부 부실 해소, 선도산업 육성, 신도시화 사업 등에 필요한 종자돈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적지 않은 자금임에는 틀림없다. 재정 지출은 경기를 가장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는 수단이다. 리커창 총리가 경착륙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배경에는 이 자금이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여기에다 3조500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은 중국 금융시스템을 지켜낼 보루다. 재정에서의 여유 자금과 외환보유액, 그리고 필요할 때 조성할 수 있는 공적자금 등을 감안하면 중국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시스템 붕괴 위기가 나타날 가능성은 작다.
중국에 너무 의지하다간 큰 코 다쳐
경착륙이든 연착륙이든, 성장률이 7%로 둔화되든 4.5%까지 둔화되든 주변국 경제에 시사하는 건 한 가지다. 중국발 성장 모멘텀은 시간이 갈수록 약해질 것이고, 중국에 의지해 살던 나라와 기업은 당분간 어금니를 악물어야 한다는 점이다.
진정한 의미의 ‘차이나 리스크’는 중국 경제 시스템 자체가 무너지는 게 아니라 중국이라는 항공모함이 크게 선회하면서 주변국 경제와 주변 기업이 전복되는 것이다. 항공모함이 선회하는 동안에는 함께 따라 돌아야 한다. 어줍잖게 버티다가는 물에 빠져 죽기 딱 좋다. 투자자들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