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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8장, 19장
고린도 전도,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에베소 사역
, 두란노 서원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함, 고린도는 바울의 두 번째 여행에서 마지막 주요 전도 장소였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처음 사역을 시작한 뒤(1~11절) 유대인들이 바울을 총독에게 끌고가 재판에 맡긴 구체적인 한 사건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12~17절). 그러나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 수 있었습니다(18절). 바울은 고린도에서의 사역을 마친 뒤 에배소에서 잠깐 머물다가 안디옥으로 돌아갔습니다(18~22절).
1절~18절
18: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1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16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17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고린도'는 아덴에서 서쪽으로 74킬로미터 떨어져 있었습니다. 로마식민지인 이곳은 아가야 속주에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가장 영향력 있는 도시였습니다(1절)
주후 49년에 글라우디오가 '유대인을 로마'에서 추방한 사건은 유대인 회당에서 기독교의 메시지로 인해 생겨난 소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아골라'와 '브리스길라'는 유대인이고 천막 제조업자여서 바울과 공통점이 많았고 로마에서 피신했을 때 아마도 이미 기독교인이었을 것입니다(2절).
바울은 명백히 아덴에서 실라와 디모데를 보내 마게도냐의 교회를 방문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다시 고린도에서 바울과 합류했을 때 아마도 마게도냐의 여러 교회에서 바울의 사역을 위해 보낸 헌금을 가져왔을 것입니다(5절).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은 흥미와 반응이 있는 곳에서는 청중이 즉시 믿지 않더라도 기꺼이 청중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적대적인 반응만 돌아오는 곳에서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습니다. 옷을 터는 행위는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리는 행위와 거의 비슷하게 거절의 제스처였습니다.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이는 하나님의 선지자적 파수꾼에 대한 에스겔의 말을 반영합니다(겔 33:1~7). "피"는 '하나님이 너희를 심판하시는데 대한 책임'을 뜻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책임을 신실하게 이행했고 마지막 심판 때 이 유대인들이 믿지 않은데에 대한 어떤 책임도 바울이 그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는데 돌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6절).
바울은 '회당 옆'으로 거처를 다시 옮긴 사실이 보여주듯이 고린도의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완전히 포기하진 않았습니다. 바울을 대적하는 유대인들은 바울의 회당에서 그렇게 가까운 곳에 새로운 거처를 정했다는 소식에 그리 달가워했을 리가 없습니다. '디도 유스도'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그는 고린도 교회가 세워지기 오래전부터 바울과 함께 있었던 디도와는 다른 인물입니다(7절).
유대인과 이방인이 모두 주께로 돌아왔는데 '그리스보'는 전자를 대표하고 '수많은 고린도 사람'은 후자를 대표합니다. '믿어 세례를 받더라' 세례는 각 사람이 믿음을 고백한 후에 곧 뒤따랐던 것으로 보입니다(8절).
지금까지는 바울의 사역에 대한 반대는 보통 바울로 하여금 전도장소를 떠나게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환상 속에서 바울이 고린도에서 성공적인 사역을 하게 될 것과 더 이상 해를 겪지 않게 될 것을 바울에게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이에 순종하여 바울은 18개월 동안 고린도에 머물렀습니다(주후 49~51년 경 이 기간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씀). 하나님의 보증은 바울이 총독앞에서 그를 정죄하려는 시도에서 벗어난 사실을 통해 즉시 확인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대한 인간의 책임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섭리와 예정에 대한 바울의 견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라고 말씀하시면서 고린도에서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될 것임을 알려주셨지만 이 때문에 바울 자신은 더 이상 해야 할 역할이 없다고 결론짓게 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바울은 에베소를 제외하면 어느 도시에서 머문 기간보다도 더 오랜 기간인 1년 6개월을 머물며 자신의 복음선포를 통해 하나님이 택하신 이들이 믿음에 이르도록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예정은 성공적인 전도를 의미했습니다(9~11절).
기독교인에 대한 유대인의 고발은 그들 내부의 종교 문제에 불과하다는 갈리오의 판결은 기독교인들이 단순히 기독교의 교류를 가르치고 따랐을 때는 로마법을 어긴 죄가 없다는 중요한 법적 선례를 확립했습니다. 이후 25:19에서도 이와 비슷한 판결이 등장합니다(14절).
'소스데네'는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고전 1:1에서 그 이름으로 불리는 어떤 사람을 자신의 '공동 저자'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행 18:8에서는 그리스보가 '회당장'이라고 불렸지만 그리스보가 그리스도인이 되자 소스데네가 그뒤를 이었거나 그 회당에 이 직책을 가진 사람이 한 사람 이상 있었을 것입니다(17절).
바울이 고린도에 계속 머물렀던 여러 날은 11절에 18개월 이외의 기간으로 보입니다. '수리아'는 바울을 후원하고 있는 수리아의 안디옥 교회를 가리킵니다. '겐그레아'는 고린도에서 동쪽으로 약 10.5킬로미터 떨어져 있었고 고린도에서 애개 해로 나가는 주요 항구였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의 사역을 공고히 하기 위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에베소에 남겨두었습니다.
바울이 머리를 깎은 일은 아마도 그가 서원을 다 이행했음을 가리키는 표시일 것입니다. 그와 같은 서원은 머리를 깎지 않는 일 외에도 엄격한 순결과 독주를 삼가는 일을 요구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위해 하나님의 복을 구하거나 감사를 표현할 때 그런 소원을 했을 것입니다(18절).
바울은 에베소에서 머무는 것은 사양하지만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계획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단언합니다. 바울이 회당에 잠시 나타난 일은 나중에 있을 에베소에서의 사역의 길을 예비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뜻이면 돌아오겠다는 바울의 약속은 3차 선교 여행의 무대를 준비하고 주요 목적지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21절).
바울은 주후 51년에 팔레스타인의 주요 항구인 '가이사라'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대부분의 해석자들은 이 교회를 예루살렘 교회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그 지역에서 더 자세한 설명없이 그냥 교회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었고 예루살렘에 더 높은 고도를 감안할 때 가이사라에서 '올라가'야 할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 후에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내려갔습니다(22절).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경로
바울의 3차 전도 여행(주후 52~57년경, 행 18:22~21:17). 바울의 3차 전도 여행은 2차 전도 여행과 거의 같은 지역을 다녀간 여행이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지방을 통과하여 곧장 큰 항구도시인 에베소로 갔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최소한 2년 동안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친 뒤 마게도냐의 아가야 지방을 다시 여행하면서 신자들의 믿음을 굳건히 세운 다음 예루살렘 방문으로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19장 1절10절
19: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3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바울이 요한의 제자들을 만납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은 세례 요한의 몇몇 제자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했습니다. 바울의 에베소 사역은 그 후 아시아 속주 전체로 확대되었습니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 '윗지방'이란 부르기아에서 아시아를 거쳐 해안의 에베소까지 산악지역을 관통하여 서쪽으로 뻗은 주요 간선도로를 가리킵니다. 여기서의 '제자들'은 세례 요한의 추종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1절).
'그들이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다는 것은 오순절에 성령이 부어진 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고 따라서 아마도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의 많은 부분도 들어본 적이 없으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도 분명 들어본 적이 없음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되기 전에 팔레스타인에서 에베소로 이주한 것이 분명합니다. 요한의 제자들인 그들은 메시아가 성령을 가져다 주실 것이라는 요한의 메시지는 알았을 것입니다(2절).
이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세례 요한의 메시지를 어떻게 성취했는지를 알게 되자 이전에 받았던 '회개'의 세례와 대조적으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5절)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이는 그들이 오순절에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일어났던 일인 새 언약의 성령충만함과 능력을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바울을 만나기 전에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알지 못했고 그래서 그들의 믿음은 구약시대 신자들의 믿음과 비슷한 상태인 메시아를 그대로 고대하는 믿음이었습니다. 그 제자들이 '방언도하고 예언'도 한 것은 이제 그들도 성령을 받았다는 외적인 증거이자 확증이었습니다(6절).
'두란노 서원', 서방 본문 전통에 속하는 일부 헬라어 사본들은 바울이 두란노 서원에서 매일 강의가 오전 11시에서 오후 4시 사이에 있었다고 덧붙이는데, 이 시간은 낮잠을 자기 위해 일을 쉬었던 하루 중에 가장 더운 시간대를 포함했습니다. '날마다 강론하니라', 바울은 이곳에서 날마다 강론했습니다(9절).
바울은 에베소에서 약 3년 동안 사역했습니다(주후 52~55년경). 바울이 모든 아시아에 사는 자에게 전도 했다는 것은 대도시에서 사역을 시작하고 동역자들을 주변 지역에 보내 교회를 세우게 하는 바울의 사역 전략을 반영합니다(10절).
바울이 에베소에서 거짓 종교와 대결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많은 기적을 일으켰지만(11~12) 유대인 퇴마사가 되려는 자들(13~16절)과 마술적인 주문에 대해 믿음이라는 배경을 가진 사람들(17~20절)을 포함하여 기적을 일으키는 거짓된 방식을 추구한 사람들과도 대결했습니다.
11절~22절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17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21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앞에서 마찬가지로 사도행전에서 기적은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셨고 하나님이 친히 바울과 그의 메시지를 통해 역사하고 계신다는 확증을 주었습니다(11절).
'손수건이나 앞치마', 이러한 물건들은 마술용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성령이 바울을 통해 자신의 강력한 임재를 아주 강하게 드러내기를 기뻐하신 나머지 성령의 임재가 때때로 바울이 만진 물건들과 관련해서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이교적인 마술에 강력한 힘과 귀신의 활동과 관계된 종교는 바울을 통해 역사하는 훨씬 더 강력한 성령의 사역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12절).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 1세기 유대인들이 악령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사용한 광범위한 의식과 주문에 대한 기록이 있지만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으로 귀신들을 쫓아낼 수 있었을 때(눅 4:36) 사람들이 매우 놀란 것으로 보아 유대인들의 그런 마술들은 아마 별다른 효력이 없었을 것입니다(13절).
귀신을 쫓아내는 데 있어서는 '예수'의 이름도 중요했지만 그 이름을 부르는 자의 예수님에 대한 참된 믿음도 중요했습니다. 여기서는 귀신이 퇴마사를 쫓아내는 '역 축귀'가 일어났습니다 퇴마사들의 벌거벗은 몸은 그들에게 수치를 더했습니다(15~16절).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는 마술적인 주문과 주술을 매우 신뢰하여 종종 그런 주문들을 모아 책으로 내면 대량으로 팔렸습니다. 에베소의 회심자들은 이런 이교적인 과거의 유물들을 가져와서 책들을 대량으로 불사르는 의식을 열었습니다. '은'은 아마도 그리스의 드라크마 은화를 가리키는 듯하며 드라크마는 노동자 한 명의 평균 하루 임금에 해당되는 금액이었습니다. 오늘날 화폐 단위로 환산해서 시간당 1만 5000원으로 계산하면 5만 드라크마는 대략 60억원과 맞먹을 것입니다(19절).
누가는 또다시 '주의 말씀'에 내재적 능력을 강조하며 복음은 모든 귀신의 세력을 이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요약적 진술에서 누가는 계속해서 어떤 인간의 기술이나 지식이나 노력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영광을 돌립니다(20절).
'마게도냐'에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에 있는 교회들이 포함되었고 '아가야'에는 고린도에 있는 교회가 포함되었습니다. 이 구절은 사도행전의 나머지 내용에 대한 개요를 제공합니다. 바울은 에베소를 떠난 뒤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여러 교회들로 되돌아갔고 거기서부터 예루살렘(21:17)으로 간 뒤 마침내 로마(28:14)로 갔기 때문입니다(21절).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바울은 에베소에서의 사역 기간이 거의 끝나가던 무렵, 봄철에 고린도전서를 쓴 것으로 보입니다(참조, 고전 16:5~10). 바울은 그 편지를 디모데, 에라스도와 더불어 고린도로 보냈고 그 후에 자신이 직접 에베소를 떠나서 마게도냐를 지나 마침내 고린도에 이르렀습니다. 에라스도는 고린도 사람이었고 룸 16:23과 딤후 4:20에서 바울의 문안 인사 중에 포함되어 있습니다(2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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