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인생 시대 '액티브 시니어'로 살아가는 법 1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60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가수 오승근이 부른 ‘내 나이가 어때서’와 이애란의 ‘백세인생’을 흥얼거리고 있노라면,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와 닿는다. 100세 시대를 맞아 단순히 나이로 따지는 장수(長壽)의 개념은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대신 얼마나, 열정적으로 건강하게 인생을 누리면서 사느냐가 핵심으로 떠올랐다. 그 중심에 ‘액티브 시니어’가 있다.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란, 시간적·경제적 여유를 기반으로 소비 생활과 여가를 즐기는 50~60대를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젊게 사는 70~80대까지 확대된다. 이들은 외모나 건강관리 등에 관심이 많아 자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문화 활동을 즐긴다는 점에서 기존 실버세대(55세 이상을 이르는 말)와 차이가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등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유사어로는 ‘골든에이지’, ‘노(NO)노(老)족’ 등이 있다.
1, 액티브 시니어를 말하다
몇 년 전 한 케이블TV에서 노년기에 접어든 남자배우들의 여행기를 담은 <꽃보다 할배>를 시리즈로 제작해 큰 인기를 끌었다. <꽃보다 할배>의 인기비결은 개성 넘치는 배우들이 쏟아내는 예능적인 요소로 인한 즐거움이나 여행정보도 한몫했지만, 그보다 ‘와~ 정말 멋있게 산다’ 혹은 ‘나도 나이 들면 저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을 잘 투영했다는 데 있다.
특히 81세 이순재 씨가 여행 책자를 보며 스스로 여행계획을 짜고 외국인들과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모습이나, 예쁜 물건만 보면 한국에 있는 아내를 떠올리며 사진을 찍고 선물을 사던 76세 박근형 씨의 로맨틱한 면은 100세 시대에서 젊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좀더 명확하게 보여줬다. 그래서 방송을 본 후 인생 100세 시대에서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됐다는 젊은 층도 많았다.
베이비붐 세대 포함된 액티브 시니어 매년 증가하고 있는 추세
사실 이순재 씨나 박근형 씨는 모두 ‘액티브 시니어’이다. 6·25전쟁 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포함된 액티브 시니어는 일반적인 70대 이상의 실버세대와 달리 자신을 가꾸는 데 아낌없이 투자하고 문화소비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들을 통칭한다.
보통 50~60대가 해당되는데 최근엔 70대까지로 넓어지고 있는 추세다. 국내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액티브 시니어 인구는 최근 10년간 48% 증가했다. 액티브 시니어가 증가하는 이유는 6·25전쟁 이후 약 10년간의 베이비붐 세대가 여기에 속하기 때문이다. 베이비붐 세대인 1955~1963년생 인구는 약 711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4.1%에 해당한다.
액티브시니어연구소 김경철 소장은 “우리나라 액티브 시니어의 특징은 돈도 있고, 뭔가 하고 싶고, 하려는 욕망이 높다는 점”이라며 “일반적인 실버세대가 도움을 받는 측면이라면, 액티브 시니어는 도움받길 원치 않으며 자신의 경험을 살려서 도움을 주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고 말했다.
자신의 건강과 노후에 가장 관심…
월평균 카드사용액은 30~40대보다 많아
액티브 시니어가 주로 속해 있는 50~60대는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도 큰 손으로 통한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의 ‘2015년 소비자 행태 조사’에 따르면 50~60대의 월평균 카드사용액은 177만원이다. 30대 124만원, 40대 136만원에 비해 시니어의 카드사용액이 훨씬 큰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들은 자신의 건강과 노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가족관계, 자녀의 결혼, 사업, 재산증식, 부모님 건강, 자녀의 취업 순으로 조사됐다. 자신의 정기적인 운동을 위해 월평균 17만5000원을 쓰고 외모관리에는 월평균 8만7000원, 손주를 위해서는 8만2000원, 애완동물을 위해서는 7만7000원을 썼다. 응답자 3명 중 2명은 지병 여부와 상관없이 스스로를 건강하다고 평가했다.
경제력과 생활수준은 안정적, '건강'이 가장 큰 관심사
액티브 시니어 때 중요시되는 것이 바로 ‘건강’이다. 최근 삼성생명 은퇴연구소가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7명은 ‘은퇴 후 삶을 위해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특히 40대 이상에서는 10명 중 8명이 ‘건강 유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중·장년층도 구체적으로 건강관리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기보다 관심사에 머무르는 정도다.
'은퇴 후 건강한 생활을 준비하기 위한 구체적 계획이 있다'고 답한 50~60대는 10명 중 3~4명에 불과했다. 건강을 위해 규칙적인 운동과 스트레스 관리를 하는 비중은 10명 중 4명 정도밖에 안 됐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는 “건강관리의 필수 요소 중 하나인 신체적 활동(운동)을 주 5회 30분 이상 실천할 수 있도록 은퇴 전부터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권유한다.
정기적인 검진과 운동 필수
이에 관련 전문가들은 50~60대에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검진과 규칙적인 식사, 운동, 스트레스 해소 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정기검진은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하며, 하루 시간대별로 맞는 영양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아침은 간과 뇌의 활성화를 위해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포함된 음식을 먹고, 점심은 소화가 잘 되고 에너지원으로 활용도가 높은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한다. 운동할 때에는 유산소운동과 근력운동을 병행해야 한다. 적당한 운동은 피부 탄력을 유지하는 데에도 중요하다.
은퇴 이후 고립감과 우울감 챙기는 등
정신건강 측면에 신경 많이 써야 해
정신건강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 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홍창형 교수는 “사실 은퇴 직후에 사회적 고립과 우울감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과정”이라며 “새로운 세상을 찾아나가는 모험이라고 생각하며 필연적 변화에 대해 미리부터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준비해야 사회적 고립이나 우울감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나이가 들면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마음이 편하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점차 많아진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새로운 환경에서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는 취미활동과 사회활동을 찾는 게 좋다.
홍창형 교수는 “200명의 미래학자가 연구한 ‘유엔미래보고서’에 의하면 의학기술의 발달로 2045년에는 인간의 수명이 130세가 된다고 한다”면서 “오래 산다고 해서 인간에게 꼭 축복일 수만은 없기 때문에 늘 긍정적인 마음으로 미래를 계획하고 꾸준히 실천해나간다면 인생의 후반전이 전반전보다 더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철 소장은 “인생 최고 순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인생 2막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분야, 즉 잠재된 자신의 재능과 ‘끼’를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 이들은 외모나 건강관리 등에 관심이 많아 자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정부와 지자체 등에서 은퇴 이후 대상자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 중
정부에서는 은퇴 이후 인생 2막을 시작하려는 이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놓고 있다. 퇴직(전) 후 장년세대의 사회참여 활동과 일자리 창출을 통해 성공적인 인생 후반기 지원하는 ‘50플러스센터’에서는 제2 인생 설계와 경력 개발을 돕는 교육 및 상담, 일자리 등을 연계·지원하고 있다.
또한 자기계발 및 취미, 여가를 위한 커뮤니티 활동도 할 수 있다. 한국문화원연합회에서는 노년의 삶과 문화를 결합한 미래 지향형 활동인 ‘어르신문화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 프로그램은 60세 이상 노인들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문화활동을 목적으로 ▲어르신문화활동가양성 ▲어르신문화나눔봉사단 ▲어르신문화동아리 ▲어르신문화일자리 ▲어르신문화콘텐츠 ▲어르신-청년프로젝트 등 전국의 지방문화원과 문화시설을 통해 대상별 맞춤으로 진행된다. 이밖에 지역 내 구청이나 평생교육원 등에서도 50~60대를 위한 문화활동과 교육 등을 적극 운영 중에 있다.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10계명
1, 표정을 밝게, 웃음을 달고 살라
사람은 나이가 들면 무표정해지기 쉽다. 항상 얼굴에 웃음을 달고 살도록 노력하라.
2, 불만과 잔소리를 줄이라
불만과 잔소리가 느는 것은 대표적 노화현상의 하나다. 젊은이들의 행동이나 사회 변화에 대해 잔소리해야 할 이유도 없거니와 해봤자 효과도 없고, 반감만 사게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3, 화를 길들이라
나이가 들면 참을성이 줄어든다. 화를 내면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는 동시에 화를 낸 당사자도 더 큰 정신적 부담을 받게 되고, 건강에도 해롭다.
4, 목소리는 가볍게, 약간 높은 톤으로
전화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들어보면 상대가 고령자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어투도 퉁명스러워 대화하기가 어렵다. 말을 부드럽고 친절하게 하고, 약간 높은 톤으로, 속도도 좀 빠르게 해야 상대편이 고령자라고 느끼지 않는다.
5,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하라
고령자들은 스스로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항상 감사를 표하고 칭찬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좋다.
6, 늙은이 냄새를 줄이라
나이가 들면 타액의 분비가 적어서 입안을 잘 씻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입 냄새가 날 수 있다. 몸을 항상 청결하게 하고 옷과 내의를 자주 갈아입는 것도 필수다.
7, 주변을 청결하게 정돈하라
고령자들은 시력이 떨어져서 잘 보지 못하기 때문에 주위가 지저분하고 깨끗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주위 환경을 항상 깨끗하게 하고 정리정돈을 잘 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라.
8, 밝은 색깔의 옷을 입으라.
흑색 또는 회색 계통의 우중충한 색깔의 옷차림은 고령자의 모습을 더 부정적으로 보이게 한다. 좀 과감하다 싶게 밝고 깨끗한 색깔의 옷을 선택하라.
9, 적당한 운동은 필수다
운동하지 않으면 목, 허리, 어깨 등 척추 부위의 근육과 인대가 약해지고 뼈에 골다공증이 일어나 체형이 구부정해진다. 목, 어깨, 허리 등 맨손체조를 일상화하면 반듯한 체형을 유지할 수 있다.
10, 몸과 머리를 많이 쓰라
사람의 몸이나 뇌는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기능이 좋아지고 덜 쓰면 덜 쓸수록 퇴화한다.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책읽기, 글쓰기, 컴퓨터, 바둑 등을 통해 뇌를 많이 사용하면서 살면 그만큼 노화를 늦출 수 있다.
100세 인생 시대 '액티브 시니어'로 살아가는 법 2
2, 액티브 시니어를 만나다
45년 조선소 근무 후 할리데이비슨 타고 ‘인생 2막’ 달린다 - 강정석 씨
두두두두두…
북악산 팔각정에서 강정석(68) 씨를 만나기로 한 날, 약속시간보다 먼저 도착해서 인터뷰할 장소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때 팔각정 방향으로 묵직한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강씨가 고가(高價)의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검은색 가죽점퍼에 청바지를 입고 선글라스를 낀 강씨의 첫 모습은 ‘액티브 시니어’의 표본을 보는 듯 강렬했다.
은퇴한 기념으로 자신에게 한 선물
강정석 씨는 1972년 9월 현대중공업 훈련생 1기생으로 조선소에 근무를 시작해, 2016년 6월30일 조선소에서 45년 만에 은퇴했다. 은퇴한 직후 스스로에게 할리데이비슨을 선물했다.
“젊었을 때부터 타고 싶었지만 여유가 되지 않아 시도하지 못하다가 은퇴한 후 통 크게 선물했지요.” 이렇게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이 오토바이를 타고 강원도 설악산 한계령과 미시령 등은 물론이고 서울의 명소를 누볐다. 내년에는 전국을 도는 것이 목표다.
강씨는 2007년 59세 때 현대미포조선을 정년퇴직했다. 그런데 퇴직 후에 중국과 베트남 조선소와 현대중공업에서 다시 일해 줄 것을 제안해서 네 번의 재취업이 있었다. 그리고 2016년 6월, 이제는 더 이상 일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리라 다짐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불교대학과 글쓰기 강좌, 액티브 시니어 강의 수강 등에 나서며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공부 중이다.
“이제 돈벌이는 그만하겠다고 생각하고 나니까 할 일이 참 많았어요. 일주일에 수요일과 주말을 뺀 날들을 모두 공부하는 데 투자하고 있어요.”
65~75세가 인생의 절정기
강씨가 이렇게 공부하고 즐기는 삶을 택하게 된 데는 은퇴 후 읽은 책 30권의 영향이 컸다. 이 책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은 ‘하고 싶은 걸 해라’, ‘망설이지 마라’는 것이었다. 일할 때는 늘 조선소 업무에 치여서 오전 5시30분부터 밤에 잠들기 전까지 정도관리(배를 만드는 큰 블록을 정확히 계측해서 조립할 수 있도록 하는 업무)만 생각했다. 은퇴한 후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씨는 “철학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그 수업을 진행하는 강사가 하는 말이 65~75세가 인생의 가장 절정기라고 했다”며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인생의 절정기가 지금이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고 말했다.
“새로운 것은 무조건 해본다.”
“눈치 안 보고 산다. 단, 남에게 피해 안 주는 선에서”
“내 인생의 통치자는 바로 나다”
“지금 못 하면, 나중엔 더 못 한다. 망설이지 말고 시작하자”
강씨가 은퇴 후에도 활동적인 삶을 살기로 한 또 다른 이유는 건강을 위해서다. 강씨는 “집에만 있으면 퇴보하고 확 늙게 된다”며 “친구들을 봐도 집에만 있는 친구들은 더욱 늙어 보이고 만나도 푸념 아닌 푸념을 많이 늘어놓는 측면이 많다”고 말했다.
그래서 강씨는 지금도 매일 아침 6시30분에 일어나 1시간가량 아령을 들고, 악력기 운동을 하는 등 근력운동을 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 북악산을 등산한다. 무엇보다 강씨가 1등으로 꼽는 운동은 서울 시내에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 같은 여가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무료로 개방하는 전시관을 다니면 운동도 될 뿐만 아니라 지식도 얻을 수 있어서 자연스럽게 공부가 된다.
“서울에만 박물관이 50개 있어요. 내 나이 또래에 은퇴한 친구들이 늘 갈 곳 없다고 하고 심심하다고 하는데, 일주일에 박물관 한 곳만 가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수없이 많아요.”
강씨는 정신건강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나이 들수록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져야 할 뿐만 아니라 남들과 잘 어울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늘 긍정적인 생각을 통해 맑은 정신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강씨가 추천하는 정신건강 챙기는 방법은 ‘배움’이다. 집 주변의 평생교육원이나 구청 등에만 가도 무료로 들을 수 있는 인문학 강좌부터 인생설계까지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으니 이런 정보를 늘상 찾아보고 다닐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몸을 움직이고 머리를 써야지 머릿 속 잡념이 사라집니다. 은퇴 이후에는 잡념이 많아지면 우울해지고 오만 가지 생각에 지배당하기 쉽기 때문에 몸을 움직이고 배움에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두두두두…, 강정석씨는 자신의 오토바이 소리처럼 인생 2막을 더욱 힘차게 달려가겠다는 각오다.
은행원에서 ‘맥도날드 할아버지’까지 우여곡절 많았지만 도전정신 잃지 않아 - 나재현 씨
“평범한 이야기겠지만, 오랫동안 은행과 증권사에서 일하다 외환위기(IMF) 때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오랜만에 쉬어보니 처음엔 나쁘지만은 않았어요. 그런데 온종일 집에서 놀자니 축축 처지는 게 오래 할 만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도전했지요.”
맥도날드 매장에서 만난 나재현(61) 씨는 유니폼을 말끔히 차려입고 환하게 웃으며, 덤덤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평범한 이야기라고 운을 뗐지만, 일을 그만둔 후 맥도날드에서 ‘시니어 크루’로 일하기까지 나씨의 좌충우돌 도전기는 평범하지 않았다.
▲ 액티브 시니어를 만나다 나재현 씨
고객에게는 ‘할아버지’, 매장에서는 ‘아버지’로 통해
일을 그만두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나씨는 지역 직업훈련소를 찾아가 요리 수업을 듣고, 슈퍼마켓·돼지갈비 음식점을 운영하는 등 다양한 일에 도전했다. 그러다 2011년 비로소 맥도날드에서 ‘라이더(배달원)’로 일하게 된다. 라이더로 일하던 시절에는, 고객들의 칭찬 글이 올라와 맥도날드 사보에 사연이 실리기도 했다.
“‘나는 나이가 많아서 받아주는 직장이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그건 자기 생각일 뿐이거든요. 일단 무엇이든 시도해보는 게 중요합니다.”
나재현 씨는 요즘 서울 등촌동에 있는 맥도날드 매장에서 매장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메인터넌스’로 근무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많은 맥도날드 매장에서 희끗희끗한 머리로 일하는 나씨는 단연 눈에 띄었다.
“손님들이 가끔 맥도날드 사장이냐고 묻기도 합니다. 처음엔 신기해하지만, 나중에는 할아버지가 햄버거 챙겨주시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웃으면서 받아갑니다. 간혹 나이 먹은 사람 중에는 저처럼 젊은 사람들 틈에서 일하는 것을 창피해하는 분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충분히 일할 수 있으면서도 집 안에만 있는 게 오히려 창피한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고객에게는 할아버지지만, 직원들에게는 ‘아버지’로 통했다. 인터뷰 중에도 ‘아버님, 인터뷰 잘 하고 계세요?’라고 묻고 지나가는 젊은 직원들이 눈에 띄었다.
“라이더로 근무할 때는 제가 같은 일을 하는 젊은 라이더들에게 안전모를 쓰라거나 천천히 달리라는 등 잔소리를 참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할아버지 말이라고 잘 들어주는 젊은 직원들을 보면 기분이 좋았습니다.”
“일상이 곧 운동이지요”
나재현 씨는 현재 서울 흑석동에 살고 있다. 매일 아침 7시까지 등촌동으로 출근하기 위해 30분 넘게 지하철을 타고 오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도, 피곤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은퇴 후 일을 안 하면서 느낀 것은 일을 단순히 하기 싫고, 귀찮다고만 여기지 말아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새는 오히려 일이 제 삶에 활력소라는 생각이 들어 더 기운이 넘치고 건강해지는 기분입니다.”
실제로 나씨는 등산이나 헬스장 등 특별한 운동은 하지 않지만,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유일한 건강관리라면 아침 6시에 일어나 밤 10시쯤 잠이 드는 규칙적인 생활과 평소에 자주 걸어 다니는 습관이 배어 있는 것 정도였다.
“저는 일상이 곧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시로 움직이려고 해요. 그래서 출근했을 때도 참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일거리를 찾습니다. 창문을 닦거나 식기를 정리하러 매장 층계를 오가기만 해도 땀이 날 때가 있는데, 굳이 운동이 필요할까요?” 인터뷰가 끝난 후, 나씨는 잘 닦인 창문을 보며 깨끗한지 물었다. 정말 창문이 다른 매장에 비해 유독 광이 났다.
그는 처음 메인터넌스가 됐을 때, 내가 맡은 매장만이라도 호텔 레스토랑처럼 깔끔한 식당을 만들자는 목표를 세웠다며, ‘허허’ 웃었다. 나씨는 건강관리법으로 ‘일상이 곧 운동’이라고 강조했지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성격도 그의 건강 유지에 큰 몫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재현 씨에게 직장은 매 순간 보람과 만족감으로 가득 채워진 공간이었다.
맥도날드 ‘시니어 크루’는?
나재현 씨가 소속된 ‘시니어 크루’는 맥도날드가 2000년대 초반부터 55세 이상 중·장년층을 채용하면서 만들어진 명칭이다. 2011년에는 시니어 크루에게 적합한 업무로 매장 시설관리와 유지를 담당하는 ‘메인터넌스(maintenance)’ 직무를 개발했다. 현재 전국 맥도날드에는 320명의 시니어 크루가 근무하고 있다.
교단 위 선생님에서 아이들을 품어주는 ‘이야기 할머니’로… - 민찬기·김인숙 씨
“40여 년간 초등학교 교사를 했어요. 퇴직한 후에는 온전한 자유를 누리고자 6개월간 여행도 다녔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게 전부가’아니구나 라는 걸 느꼈어요. 나 자신을 위해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가 무릎교육의 일환으로 한국학진흥원에서 ‘이야기 할머니’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게 됐고, 이것이 저의 인생 2막을 열어줄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 할머니 활동이 요즘 제 인생에서 가장 즐겁고 보람된 일상을 선물해주고 있습니다.”
서울시 종로구에서 이야기 할머니로 활동 중인 민찬기(68·사진 왼쪽) 씨의 말이다. 민씨는 40년을 초등학교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교사이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걸 평생의 업으로 삼아왔다. 그런 민씨에게 이야기 할머니는 꼭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평소 초등학교 입학 전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의 인성 교육이 중요하다는 점을 수없이 느꼈을뿐더러 책의 중요성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특히 국학진흥원의 이야기 할머니는 우리 조상들의 선현미담을 모두 외워서 전달하기 때문에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며 교육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 할머니 활동은 민씨에게 인생 2막의 즐거움을 안겨주고 있다. 민찬기 씨는 “60세가 지나고, 사회에서 은퇴한 나를 어디서 이렇게 반겨줄 수 있겠느냐”며 “자존감이 높아지고 늘 나의 존재감이 일깨워지면서 건강해지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몸 건강해지고 마음 여유도 생겨
실제로 민씨는 이야기 할머니로 활동하면서 더욱 건강해졌다. 초등학교에 근무할 때는 주로 차로 출퇴근 하다 보니, 조금만 걸어도 다리가 아프고 늘 일에 치여 운동할 시간도 부족했다. 그런데 이야기 할머니를 하면서는 주로 걸어서 이동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운동도 돼 왕복 4km도 거뜬해졌다. 주위에서도 더욱 건강해진 민씨를 보며 놀랄 정도다.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 기쁘다보니, 갈 때도 그냥 후딱 다녀와야지 하는 마음이 아니라 열과 성을 다해서, 잘 만나고 오겠다고 다짐을 하게 됩니다. 가면서도 아이들에게 들려줄 내용을 고민하고, 활동을 끝낸 후 집에 돌아오면서도 아이들이 어느 부분에서 반응이 좋았는지를 되새기며 다음번엔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줄지 고민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한결 여유로워진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놀란다고. 교사를 할 때는 직업이고, 생계와 밀접하다 보니 주변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은퇴 이후 이야기 할머니로서의 삶은 생활의 여유가 생기면서 가족 간의 대화도 더욱 많아지고 사랑이 많아졌다고 말한다. 그래서 민씨는 은퇴 이후 소소한 일거리라도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서 활동하기를 적극 추천한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해지는 걸 자신이 경험해서다.
▲ 액티브 시니어를 만나다 민찬기 씨
60대는 하루 중 오후 1~2시에 해당
“100세 시대라고 말하지요. 100세 인생을 하루에 비교하면, 은퇴하는 시점이 하루 중 오후 1~2시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오후 1~2시 때 집에 가만히 안 있지요. 뭔가 여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길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이 평생 하던 일에선 은퇴일지 몰라도 자신의 삶에서 은퇴는 아니지요. 그동안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일을 이제부터 해보는 게 어떨까요?”
민찬기 씨처럼 평생을 교단에 서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이야기 할머니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김인숙(66) 씨의 말이다. 김씨는 퇴직 직후 곧바로 이야기 할머니 활동을 시작했다. 교직에 있으면서 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라 은퇴 후 쉬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이 활동은 꼭 해야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 할머니 활동은 김씨에게 행운 같은 시간을 가져다줬다. 이야기 할머니 활동을 워낙 즐겁게 하다보니, 가족들의 반응도 남다르다. 김씨 자녀들은 엄마가 퇴직하고 울적해하면 어쩌나 11걱정한 것이 기우(杞憂)였으며, 김씨의 남편은 이야기 아내의 활동을 부러워한다고.
동화 외우니 기억력도 좋아져
김씨는 건강상에도 긍정적인 측면이 많아졌다고 말한다. 이야기 할머니 활동을 하는 동안 많이 웃게 되고, 아이들에게 에너지를 얻으면서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힐링이 돼서다. 또한 이야기 할머니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A4 용지 두장에 달하는 동화 내용을 일주일에 하나씩 외워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뇌 운동이 되면서 기억력도 더욱 좋아졌다.
“우리 나이 때는 단순히 육체적으로 건강하다고 해서 정말 건강하다고 보면 안 될 거 같아요. 마음이 건강해야 할 때이지요. 전 애기들을 만날 때마다 행복해요. 그 꽃같은 애들이 저를 보며 와락 안기면 그거보다 더 행복한 건 없는 거 같아요.” 두 액티브 시니어의 웃음이 해맑다.
100세 인생 시대 '액티브 시니어'로 살아가는 법 3
전문가 조언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이덕철 교수. 액티브 시니어의 조건… 건강이 먼저다
“그 얘기 들었어? 글쎄 김씨가 말이야. 오늘 아침 출근하다가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는데, 뇌졸중으로 의식이 없다고 하네. 최씨는 검사를 받았는데 글쎄 암이래, 다 퍼졌대…”심심치 않게 접하는 소식이다. 평소 일을 위해 정신없이 바쁘게 다니며 건강을 챙기지 못한다. 게다가 스트레스로 술·담배에 젖어 사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소식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지며 불안함과 두려움이 몰려온다. 어느새 중·장년이 됐다면 이제 자신의 건강을 돌아보아야 할 때다. 노후를 대비하려면 건강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이덕철 교수
어떤 사람이 묻는다. “선생님, 앞으로 얼마나 더 사실 것 같나요? 그때까지 노후 건강 대비는 되셨나요?” 이런 질문을 들은 사람은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아니 여보시오, 인명은 재천인데 그걸 어떻게 알아요? 주변을 보니 건강하던 사람도 갑자기 세상을 떠나던데, 사는 날까지 인생 즐기며 즐겁게 살면 되는 거지 언제까지 살지 어떻게 알아?”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한국인이 성별, 나이별로 앞으로 평균 몇 년 더 살 수 있는지는 알 수 있다. 이것을 기대수명이라고 한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태어난 신생아는 여자가 평균 86세, 남자는 80세까지 산다. 그런데 기대수명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또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꾸 늘어난다. 따라서 현재 중·장년층은 앞으로 90세 이상 산다고 생각하고 건강 관리를 해야 한다.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면 될까?
첫 번째는 믿을 만한 자신의 건강 주치의를 만든다.
편안하면서도 믿을 만하게 자신의 건강을 맡길 수 있는 주치의가 꼭 필요하다. 이를 ‘건강 매니저’ 혹은 ‘건강 주치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65세 이상의 국내 노인 중 약 50%가 3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갖고 있다. 질환별로 따져보면 65세 이상 노인 중 고혈압이 57%, 당뇨병 23%, 고지혈증이 20% 등의 빈도로 흔하다. 그런데 이런 질병은 잘 관리되지 않으면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으로 발전하여 갑자기 쓰러질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을 몸 상태를 잘 알고 있는 주치의가 이런 질병들을 잘 관리해줄 수 있다. 또한 자신에게 맞는 약을 골라 투약하고 비만이나 흡연 등의 건강에 나쁜생활 습관을 바꾸도록 조언하며, 혹시 합병증이 생기지 않았는지 주기적으로 체크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정기적인 건강검진이다.
건강검진이 가장 효과적인 영역은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의 성인병과 함께 암의 조기발견이다. 그중에서도 암의 조기발견과 치료에 따른 이득은 실로 막대하다. 건강검진이 없었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암을 조기에 발견해 수술로 완치된 이들을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암의 5년 생존율은 거의 70% 수준이다. 이는 미국, 일본 등 웬만한 의료 선진국보다 높은 수치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의료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전 국민 건강검진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세 번째는 올바른 식생활 습관이다.
평소 과도한 육류 섭취를 피하고 여러 가지 색깔의 채소를 충분히 먹는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식물 속에 풍부히 들어 있는 다양한 영양소를 피토케미칼이라고 부른다. 진한 색깔의 채소를 매끼 한 컵 정도 먹고 간식으로 두 차례 정도 먹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다. 그리고 식물성 오메가3지방산이 많이 함유된 호두나 땅콩, 아몬드 등의 견과류를 하루에 한 줌(약 30g) 정도 먹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다.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견과류를 먹는 습관이 심혈관계질환을 20~30% 감소시키고, 당뇨병과 암 발생을 억제하며 인지기능을 좋게 한다.
네 번째는 운동이다.
운동은 건강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생활습관이다. 평소보다 숨이 조금 더 차는 정도의 운동(말은 할 수 있지만 노래는 할 수 없음)을 일주일에 5일, 적어도 30분 이상 하는 것이 좋다. 또한 근력운동을 일주일에 2일 이상 해야 한다.
다섯 번째는 늘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며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삶의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명상, 요가, 댄스, 심호흡법, 심상법 등 평소 자신만의 스트레스 관리법을 잘 익힐 필요가 있다. 최근 의학에서는 몸과 마음의 건강이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하루 8시간 정도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한다.
오래 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알라메다 지방에서 시행한 연구에 의하면, 하루에 7~8시간 잠을 잔 사람들의 수명이 더 길었다. 숙면할 때 분비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은 강력한 항산화 효과가 있어 활성산소를 중화시키고 면역기능을 높이며 신체에 활력을 준다. 반대로 불면증이 있거나 밤과 낮이 바뀌어 일하는 경우 심혈관계질환과 암의 발생이 증가하고, 사망률도 높아진다.
이와 같이 간단하고 쉬운 건강법이 건강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열쇠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의 실천이 100세 건강을 지키는 첫걸음이다. 우리 모두 건강 생활습관의 실천으로 건강한 100세 시대를 누리는 현대인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가정경영연구소 강학중 소장
‘행복한 액티브 시니어가 되려면…’
세상이 급변하니 새로운 용어들이 계속 생겨난다. 액티브 시니어! 은퇴 이후에도 소비생활과 여가생활을 즐기며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50~60대를 일컫는 말이다. 그렇다면 행복한 노후를 누리는 액티브 시니어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뭐니 뭐니 해도 돈이 있어야 된다고 하지만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은 아니다.
행복한 노후에 반드시 큰돈이 필요하지도 않다. 행복경제학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조차 일정 수준 이상의 부는 오히려 화를 부르기 쉽다고 경고한다. 많은 사람들은 넓은 집, 좋은 차, 두둑한 현금만 재산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돌아보면 물질적인 재산보다 더 소중한 ‘가족 자원’이 많다. 문제가 생기거나 위기가 닥치면 오히려 더 똘똘 뭉치는 끈끈한 가족애, 누가 뭐라고 해도 서로를 믿고 격려하는 부부간의 신뢰는 천금을 줘도 살 수 없는 가족 자원이다. 즐겁고 건강하게 사시는 노부모, 자신의 일은 스스로 척척 헤쳐나가는 아이들을 어찌 금전적인 가치로 환산할 것인가.
아내의 살림 솜씨와 차려주는 대로 맛있게 먹는 가족들의 식성, 정리정돈 잘 하는 습관, 반듯한 신앙심,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원만한 인간관계, 수입 범위 내에서 아끼고 저축하는 검소함, 그 모든 것이 돈으로 살 수 없는 우리 가족의 재산이다. 어떻게 하면 큰돈을 벌 수 있을까만 생각하지 말고 소중한 가족자원을 늘려나가는 데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이유가 여기에 있다.
행복한 액티브 시니어가 되기 위해서는 ‘화목한 가족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제적인 여유도 있고 건강도 나쁘지 않지만 가족 간의 불화나 갈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 가족 관계 중에서도 부부는 가장 기초 단위로서 가족의 핵심이요, 가정의 기둥이다. 부부 문제가 악화되면 자식농사는 말할 것도 없고 일이나 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부부농사에 먼저 투자해야 한다. 끝까지 내 곁에서 일상을 함께할 가장 소중한 사람이자 친구는 배우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소홀히 하고 가장 큰 상처를 주고받는 사이가 또 부부이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잘못하고 상처를 준 것이 있다면 내가 먼저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자. 그래야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예방할 수 있다. 요즘 ‘황혼이혼’이나, 결혼을 졸업한다는 뜻의 ‘졸혼’을 고려한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행복한 부부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이혼하고 졸혼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있는 그대로 서로를 존중하면서 함께 ‘살아내는’ 것이 행복한 노후를 위한 최고의 투자다. 나이 들수록 일상을 함께하는 배우자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으며 부부가 힘을 합쳐 ‘한 팀’이 되면 그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다.
자녀들이 결혼하여 분가해나가면 부부관계를 재정립하고 역할도 재조정해야 한다.
각자의 취미를 즐기고 서로의 취미생활을 존중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부부가 함께 즐기는 취미 한두 가지 가지는 것이 좋다. 외모를 가꾸는 것에도 관심을 가지고 부부가 서로 조언도 해주자. 맹목적으로 유행을 좇고 젊은 사람 흉내내는 것도 민망하지만, 유행을 너무 무시하는 것도 ‘현재’와 소통하는 데 방해가 된다.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데이트하는 마음으로, 영화도 한 편 보고, 차도 한 잔 나눠보자. 그러면서 끊임없이 대화하고 조율하며 부부관계를 개선해나간다면 노후의 든든한 보험이 될 것이다.
대화라고 해서 듣기 좋은 소리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왜 화가 나고 서운하고 짜증이 났는지도 얘기해 주어야 한다. 특정 주제에 대해서 대화를 회피하는 것도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죽음을 거론하는 것은 쉽지 않다. 죽음에 대해서 부부가 의견을 나누고 정리된 부모의 생각을 자녀들에게 먼저 밝히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다. 정신이 맑고 판단력이 있을 때 사전장례의향서나 사전의료의향서, 또는 유언장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밝혀두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고, 죽기 전에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정리도 되며 가족 간의 분란을 예방할 수 있다.
장성한 자식과의 관계가 나빠서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부모가 많은데 내 자식이지만 한 사람의 성인으로 존중해주는 태도가 중요하다. 어릴 땐 내 자식이었지만 이제는 누군가의 아내나 남편이요, 누군가의 엄마고 아빠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 자식들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자녀가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간섭이요 잔소리가 된다.
주고 싶고 경제적인 지원을 해줄 수 있어도 자녀들의 의존심만 키우게 된다면 자제하는 것이 진정으로 자식들을 위하는 길이다. 서로 짐되지 않고 각자 잘 사는 것을 기본으로, 그 바탕 위에서 자주 만나고 나누면서 아름다운 추억을 쌓아나가자. 자식들을 떠나보내는 연습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으며, 결혼하면 미련없이 독립시키는 것이 자녀들을 위하고 내 노후를 위하는 지름길이다.
마지막으로 공부와 봉사, 신앙생활로 노후를 가꾸라고 당부하고 싶다. 공부라면 딱 질색이고 공부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학에 가기 위한 국영수만 공부는 아니다. 외국어나 컴퓨터, 글쓰기, 사진, 음식, 목공, 스포츠댄스, 노래, 악기 등 그 무엇이든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문을 두드려보자.
주변에 큰돈 들이지 않고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의외로 많다.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내 돈 내고 스스로, 주도적으로 공부하면 공부는 그 자체가 즐거움이고 기쁨이다. 친구도 사귈 수 있고 새로운 수입원이 되기도 하며 24시간이 여가인 노년을 즐겁게 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공부다. 생산성만 따져 노인을 싸잡아 폄하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다.
그러나 봉사를 통해서 내가 누군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고 열심히 살 이유가 생긴다.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신앙생활도 권하고 싶다. 부부가 함께 신앙생활이나 봉사활동을 하고, 뭔가를 같이 배울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또한 혼자 지내고 혼자 노는 연습도 틈틈이 해두자.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고 아내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는 ‘삼식이’나 ‘젖은 낙엽’은 아내에게 짐만 될 뿐이다. 남편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아내 역시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살 길이 막막해진다.
지나치게 의존적인 사람은 누구도 좋아하지 않으며, 그 부담 때문에 결국에는 모두 떠나고 만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매사에 감사하면서 젊은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인자한 어른이 되자. 그리고 내 삶의 주인공으로 즐겁고 당당하게 사는 것이 행복한 노후의 비결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