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목,금요일에 아파서 정리를 하지 못해 지금에서야 올립니다..... 늦게 제출해서 죄송합니다.
<고조선의 건국연도에 대해... 202100520 장예영
1.서론
흔히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조선의 건국연도를 기원전 2333년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보통 중국사, 일본사등 세계사를 보면 고조선처럼 특정연도가 나오는 것이 아닌 대략 ‘기원전 몇 세기, 혹은 몇 년경’이라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고조선 건국연도가 정확히 기원전 2333년이라고 나왔는지 그리고 이 표현이 잘못된 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비판하려고 한다.
2. 본론
2009 개역과정 미래엔 교과서에는 이렇게 서술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기원전 2333)’.
이처럼 교과서 서술에는 고조선의 건국연도를 기원전2333년이라고 명확히 제시되어있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기원전 2333년이라고 정해졌을까? 그 이유를 살펴보면 고조선 건국 연도에 대해 <동국통감>, <해동이적>, <동국역대총목>, <삼국유사>는 기원전 2333년 <제왕운기>는 기원전 2357년으로 각각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건국 연도가 역사책마다 다르기 때문에 기록을 신뢰할 수 없다고 하지만, 반대로 건국 연도를 누군가 임의로 지어낸 것이라면 이렇게 편차가 생길 수도 없다. 사관들은 그때까지 전해지는 여러 건국 연도들을 놓고 고민한 끝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 역사책에 기록했다고 봐야 한다.
고려 충렬왕때 보각국사 일연이 저술한 <삼국유사>에는 고조선 건국 연대에 대해 두 가지 견해를 소개하고 있다. 첫 번째로는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사서인 <위서>를 인용해 중국 고대의 요임금과 동시에 나라를 세웠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고기>에 의해서 요임금 즉위 50년인 경인년에 나라를 세웠다고 말한다. 그런데 일연은 ‘경인년’에 고조선이 세워졌다는 것에 의문을 품고 주석을 붙여놓았는데, 요임금 즉위원년은 무진년이고 50년은 정사년이므로 경인년에 세웠다는 것은 이상하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또한 조선 성종때 고조선 건국년도에 대한 새로운 설이 제기되었는데, 서거정이 편찬한 <동국통감>에는 이때까지 따라오던 요임금 게국 무진년설을 버리고 소옹등이 주장한 갑진년설을 따르기로 한다. 그런데, 이렇게 ㅗ디자 문제가 생겨쓴ㄴ데 우리나라 기록에는 요임금과 같은 때 나라를 세웠다는 기록과 무진년에 나라를 세웠다는 기록은 많지만, 갑진년에 나라를 세웠다는 기록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거정은 <동국통감>에 이렇게 썼다. “지금 살피건대, 요가 일어난 것은 상원 갑자 ’갑진‘의 일이며 단군이 일어난 것은 그 후 25년 무진의 일이니, 즉 요와 동시에 세워졌다는 것은 그릇된 것이다”
<동국통감은 성종 때 출간되었지만 세조의 왕명으로 편찬을 시작했다. 중국의 <자치통감>에 비견되는 정통 사서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만들어진책이었다. 세조는 자주적인 사서를 만들고자 했으나 성종때로 편찬이 넘어가자 사림들이 편찬에 대거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성리학적 사고가 많이 반영되었는데, 요임금과 동시에 고조선이 건국되었다는 것을 잘못이라고 말한 데는 이런 성리학적인 사고가 반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명나라는 조선보다 건국이 24년 빠르다. 요임금의 나라와 단군의 나라 차이도 24년이다. 즉, 서거정은 중국과 조선이 같은 변화의 주기를 가진 대등한 나라라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즉 이 연대는 굉장히 정치적으로 결정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고조선 건국은 요임금 25년인 무진년으로 결정되었는데, 바로 이 해가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기원전 2333년이다.
또한, 조선시대 사관들도 기원전 2333년 고조선의 건국을 신화가 아닌 역사로 인식했는데 이는 <세종실록지리지>에 있는 고조선 관련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다.
“<단군고기>에 이르기를 상제환인이 서자가 있으니 이름이 웅인데 세상에 내려가서 사람이 되고자 하여 천부인 3개를 받아 가지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강림하였으니 이가 곧 단웅천왕이 되었다. 손녀로 하여금 약을 마시고 임신이 되게 하여 단수의 신과 더불어 혼인해서 아들을 낳으니 이름이 단군이다.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조선이라 하니, 조선, 시라, 고례, 남북옥저, 동북부여, 예와 맥이 모두 단군의 다스림이 되었다. 단군이 비서갑하백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들을 낳으니 부루이다. 이를 곧 동부여왕이라고 이른다. 단군이 당뇨와 더불어 같은날에 임금이 되고 우가 도산의 모임을 당하여 태자 부루를 보내여 조회하게 하였다. 나라를 누린지 1038년 만인 은나라 무정 8년 을미에 아사달이 들어가 신이 되니 지금의 문화현 구월산이다.” (<세종실록지리지> 평안도)
‘단군이 장가를 들고 장인의 이름이 비서갑하백이며, 고조선뿐만아니라 옥저, 부여 예와 맥까지 다스렸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소한 이야기다. 건국과 관련해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는 이런 내용들이 왜 국사 교과서에는 언급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기원전 2333년 고조선 건국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첫 번째로 고조선이 문헌상에 처음 나타난 것은 기원전 7세기 부터이고, 두 번째로 단군은 역사적인 실존 인물이 아니라 신화인물인 즉 가공의 인물이라는 것, 세 번째로 단군신화는 고조선이라는 국가가 세워지고 난 이후 만들어진 건국신화가 구전되다가 고려시대에 정리된 것이고 마지막으로 세계적으로 청동기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국가가 성립되는데 우리나라의 청동기 문화는 대략 기원전 1000년경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2333년은 그때 당시 신석기 시대이기 때문에 시기가 안 맞는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3. 결론
이처럼 고조선의 건국 연도는 정치적으로 결정되었다고도 하고, 고조선이 건국된 기원전 2333년은 당시 신석기 시대라는 것과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성립된 것 즉 모순된 서술이 있다. 또한 이것을 단지 ‘삼국유사에 따르면...’이라고 서술해 이 모순이 마치 삼국유사에 쓰인 고조선의 건국연도가 잘못되었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또한, 이를 교과서에 표기해 흔히 사람들이 고조선 건국연도에 대해 기원전 2333년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잘못된 역사라고 생각한다. 이에 필자가 주장하는 것은 특정하게 기원전 2333년으로 정하지 말고 기원전 몇 세기 경 등 대략적으로 서술하면 더 역사적으로 옳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또한, 역사 교과서에 서술된 고정관념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고, 사실 중고등학생 시절 당시 모순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마냥 주입식으로 배운 역사에 대해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첫댓글 좋은 분석을 담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른 수업 시간에도 교과서에 서술된 고조선 건국 연도가 정확한 역사가 아님라고 여러 번 들어와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조금 모순적이고 오류가 있는 연도 측정이라고 해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에 있어서 기원전 몇 세기 경보다는 몇 년이라고 정확하게 제시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역사 교육의 목적인 '애국심 함양' 등을 위해 우리 민족의 형성을 더 높고 정확하게 가늠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연도가 정확하지 않다는 것에는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삼국유사에 따르면 고조선은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되었다 라고 서술하는 것이 오히려 단정된 연도가 아니라 연도에 대한 여러 주장들 중 하나를 제시할 뿐이다- 라고 서술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러한 것에 대해서 학우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