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과정 속에서,
혼란을 만들어 낸 부조화한 자들의 행동을,
우리는, 태어나는 전세(前世), 실재계에서 지켜보면서,
선배들의 잘못을 두 번 다시 범하지 않는다고,
마음에 맹세하고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을,
육체주를 타고 태어났을 때부터 잊고 만 것이다.
괴로움도 슬픔도, 자신의 마음의 작용을 수반해 만들어 낸 것이다.
고락의 체험도, 깨달음에 이르는 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속에서 통하고 있는 신(神)의 의식은,
인류가, 스스로 자유롭게 체험해 온,
부조화한 상념과 행위의 잘못이랑,
인생의 과제를 반성하는 것에 의해,
마음속의 어두운 부조화한 구름을 닦아,
진아 즉 선아인 위대한 지혜를 터득하도록 되는 것이다.
스스로의 노력과 실천에 의해서이다.
(반성은, 노력과 실천으로 지혜의 열매를 맺어준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인류가, 자연의 대조화에 이르는 길을 선택하는가,
혼란한 부조화에 이르는 길을 선택하는가는,
자유의 권한이 주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물질적 욕망, 정욕의 자기보존, 자아아욕,
투쟁과 파괴의 부조화한 환경을 만들기 쉬운 것이다.
몇 번인가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괴로움과 슬픔을 체험하고,
그 결과 마침내, 자비와 사랑으로 조화된 생활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부조화한 상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분별없는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진 집단은,
스스로 뿌린 악의 씨를,
괴로움과 슬픔의 혹독한 환경에서, 뽑아내야 한다.
그리고 자연은, 천재지변이랑 화재를 통해서,
인류에게 잘못을 알아차리게 한다.
그리고 같은 잘못을 범하면,
보다 큰 시련을 안겨주고,
게다가 잘못을 거듭하면 혹독한 반작용이 주어진다.
마지막에는 사면초가가 되어
스스로의 잘못을 배우게 되는 짜임새로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일념삼천(一念三千)이며,
자유자재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자유로운 마음으로, 괴로움과 슬픔의 체험을 통해서, 반성하고,
그 속으로부터 인생을 공부하고,
마음을 풍부하게 키우는 능력을 배워 간다.
마음의 본성을 잘 이해하고, 납득하는 것은,
자신의 괴로움을 완화하는 지름길이다.
남을 위해 자애(慈愛)를 베푸는 자는,
남으로부터도 자애를 받게 된다.
사회인류을 위하여 자애를 베풀려고 생각하고 있는 자들에게는,
자애를 부여받을 자격이 주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마음깊은 곳에서,
선한 상념과 행동의 조화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결점에, 강한 의지로 맞서서 성공하는 것이,
자신의 영위기를 광명으로 채우는 제1보라고 말할 수 있다.
기쁨으로 넘치는 생활은,
우리 인류 한 사람 한 사람의,
올바른 편협하지 않는 세상사의 판단과 행동에 달렸다.
그것은 결코 먼 이상향이 아니다.
인류의 마음과 마음의 대조화가 완성되어 있다면,
고통이나 불행이 일어나지 않는다.
마치, 잔잔한 수면에 둥근 달의 그림자가 비추어지듯,
마음의 이지러짐이
둥근 마음에 이지러짐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올바른 마음가짐》을 추구하고 있다.
그것은 너무나도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전생윤회의 과정에서 배운, 불변의 올바른 기준을,
인류는 스스로의 힘에 의해 생각해 내어 가는 것이다.
그것은, 올바른 기준이,
영원히 변치 않는 신의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공포심은, 악의 세계로 통하고, ‘현상화되는 것’이다.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항상 냉정하게 마음을 잃지 않고,
올바른 세상사의 판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늘 쾌활하고 명랑한 환경을 조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둡고 음습한 환경에는, 바퀴벌레와 구더기가 끓는다.
태양 빛으로 가득 차 있는 환경은,
아름다운 녹색으로 둘러싸여, 꽃들이 핀다ㅡㅡ.
인류의 한 사람 한 사람은,
실재계의 천사. 빛의 천사들의 감시하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은, 전부 환하게 보인다.
우리가, 2차원의 평면 세계에서 상영되는,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이다.
하지만 존재하고 있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천사들이 직접 말을 건네는 것은 어렵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상념의 흐림, 맑음의 방향이 잘 변하기 때문이다.
올바른 상념과 행동을 쌓아감으로써,
우리의 마음의 창은 열리고,
자유롭게 보고 들을 수 있도록 되는 것이다.
보고 듣는 것이 안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의 상태가 나빠서,
수신하는 스위치를 넣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자아아욕, 자기보존의 습관적 생활이,
⟨‘신(神)은 나다’⟩
를 잊고, 작은 마음을 만들어 내고 만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신은 빛이며, 나와 함께 존재한다.’》
신의 실재를 알기 위해서는,
정법을 자신의 마음의 잣대로 해서,
생활 행위의 실천을 하는 중에 발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조화되어, 평안의 경지에 도달하고,
집착을 떠나 족함을 안 생활이 실천되었을 때,
빛의 천사들이, 우리 마음속에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준비가 되었을 때.
수호령, 지도령들의 조력이 얻어지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혼란한 부조화한 마음과 생활이 거듭되었을 때는,
어두운 지옥령들의 침범을 받아,
더욱 마음의 혼란이 생기고,
분열증이라고 하는 병으로 자기자신의 마음과 몸을 잃는다.
인격이 변하고 만다.
하지만, 자신의 본심을 되찾았을 때는,
그 지옥령들이 옆에 가까이 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