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 리 를 찾 아 서
오늘의 우리 대종회가 이렇게 성장한 과정과 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재경서흥회가 발족되기 까지의 주역은 세영(世永 28世 영남중파 황해도 金川), 철동(鐵東 24世 영남장파 달성), 중식(重埴 26世 영남중파 창녕) 세 명입니다. 1977년으로 기억됩니다.
저 중식은 영남 중파로 창녕군 유어면 풍조리에서 희옥熙玉 子 둘째로 태어나 1966년 공직(경찰) 생활을 서울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서울에서는 일가친척이 전혀 없는 곳이라 저의 선친께서는 “서울 가면 꼭 뿌리를 찾아라!”고 말씀하셨는데 막상 상경하여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힘든 업무파악과 생소한 주위환경 등으로 처음 상경 시 선친의 말씀을 깜빡 잊고 살았습니다.
1971년 저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파출소로 근무 발령을 받고 어느 봄날 오후에 관내 정복차림으로 순찰을 하다가 어느 대문 문패에 낮익은 글자가 있어 보았더니 광식(埴)이라는 글자를 보고 종친을 처음 찾았다는 반가운 마음으로 열려있는 대문으로 들어가 보니 50대 중반에 점잖은 어른 한 분(熙久 영남중파 청도)이 놀라시면서 물으셨습니다..
“경찰이 왜 왔느냐?”
“ 예, 저는 문패를 보고 일가를 찾으려고 들어 왔습니다.”
“그럼 자네가 서흥김가냐?”
“네”
“그럼 어서 방으로 들어오시게.”
어른은 아주 반갑게 맞아 주시고 커피를 손수 가져오시고 약 1시간 가량 뿌리에 관한 소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서울 화수회는 없어진지 오래 되었지만 이렇게 처음 일가를 만나니 정말 반갑네. 자네가 앞장서서 종친을 찾아보게...”
그러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전에 들은 이야기로 산림청에 김세영 이라는 사람이 있다는데 알 수 없다고..”
제가 말했습니다.
“그럼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다음날 산림청 인사과에 확인한 바 산림청 서무계장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하여 바로 전화 하였더니 아주 반가워하시며 말했습니다.
“그러면 오늘 저녁 퇴근시간에 산림청 앞(지금 홍릉) 식당에서 만납시다”
그날 저녁 식당에서 반갑게 만나 상호 고향이야기 나누다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고 나서 희구 아제 집 앞을 지나다가 세영씨를 만난 이야기도 전할 겸 인사 차 방문해 말씀드렸습니다.
“세영씨가 반갑게 맞아 주고 다음 만날 약속을 했다”고 하였더니 희구 아제께서 말씀했습니다.
“이 사람도 한번 찾아보게. 세무서에 철동이라는 사람 있다고 하는데 자네가 경찰이니 찾기가 쉽지 않겠나.!”
“예, 그럼 제가 찾아 보겠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에 국세청에 사람을 찾는데 도와달라고 하였더니 당장은 찾을 수가 없다(당시에는 전산망이 없었음)며, 명일 오후에 다시 전화하라고 해 다음날 전화하였더니 중부세무서에 근무한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철동씨는 오랜만에 우리 일가를 만난다고 아주 반가워 하시며 수일 내애 만날 것을 약속했습니다.
약 이틀 후 철동씨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금일 저녁 종로3가 어느 고급식당에서 만나자고 하여 그날 저녁에 세영, 철동, 중식(본인) 세명이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옛날 친척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이 반갑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매달 한 번씩 만나 우리 종친을 찾아 서흥회를 만들자고 약속하고 앞으로 종친을 찾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 노력의 결과로 종친 김성석(영남중파), 김 필(안성), 김행식(초계)외 2명(이름 기억나지 않음) 등 약8명이 서흥회를 발족하여 김철동씨를 회장겸 총무로 하고 매달 회비는 500원(추정)씩 하여 매월 식사를 하고 남은 금액은 기금으로 저축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회원수가 날로 증가하여 대다수 회원들이 서울화수회의 발족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1983년 서울 화수회(편집자 註:고문 인득仁得, 회장 희구熙久 총무 창운暢云)를 발족하여 서흥회원 전원이 화수회 운영위원으로 위촉되었다. 또한 재경서흥회 기금(약 200만원 추정) 전부도 화수회로 이관하였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재경서흥회 회원 전원의 단합과 노력의 결실이 지금의 대종회가 자리를 잡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두서없이 지난날의 기억을 살려서 적어 보았습니다.
2015년 4월22일
중식(重埴 26世 영남중파 창녕) 전 재경서흥회 회장
첫댓글 정말 소중한 서흥김씨대종회 역사입니다. 중식회장님 고맙습니다.
중식 종원님과 통화하는 과정에서
최근들어 재경서흥회 모임에 참석은 못했지만
다시 불러주시면 참석하겠다는 의향도 밝히셨음을 추기합니다.
40여년 전의 우리들의 흔적을 되사려 보는 모습입니다.
참으로 순수했습니다. 모두가 열정적이였습니다.
인득 할아버님께서 '스스로 기초를 세워놓고 후원을 바라거라'
하시던 말씀, 우리 후손들에게 큰 힘과 영광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세영 전 재경서흥회장께서 카페의 글 읽고 재경서흥회가 발족된 해가 1977년이리고 알려왔습니다. 중식 전 회장께서도 세영 전회장의 기억이 더 정확한 것 같다며 재경서흥회의 발족년도를 1977년으로 바로잡는데 동의했습니다. 그러면서 철동 전 회장의 확인도 차제에 받아 달라는 부탁도 받았습니다. 관심을 갖고 살펴봐 주심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세영 전회장께 재경서흥회 초창기 발자취를 기록으로 남길 수 있도록 「남기고 싶은 이야기」 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