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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세월의 어느 한 흔적 하나 쓰레기
- 우린 서로 흔적을 주며 살아간다. -
교사를 해 보면 직무상 귀찮은 일도 많다.
2016학년도 1학기 어느 한 시간이다.
정년을 1년 남짓 남겨 놓고 있지만, 계원으로 할 일이 많다.
교사가 수업 외에 다른 사무를 업무분장으로 붙여 맡는 규정은 일본과 한국뿐이라고 한다.
북미와 남미, 서구와 동구, 호주는 당연하고 심지어 동남아와 중국, 아프리카 등도 다른 사무는 행정과에서 관장을 한다고 한다. 1910년 이래 일본의 식민지로 35년 간 있으면서 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천지개벽 수준의 근대화를 한꺼번에 왕창 급조로 하다 보니, 아쉬운 부문도 그대로 그 흔적이 지워지지 않고 버젓이 당연한 것으로 정신없이 서서 있다. 경비를 크게 아끼는 데에 일조를 계속 하고 있는 셈이다.
당시 내가 맡은 업무는 당연한 교과 수업 외에 ‘돌봄 학생 결연(다문화·탈북학생 등), 월요진로상설코너 운영, 복지업무, 봉사활동업무’ 등이었다. 그래도 3년간 근무한 직전학교보다는 수월했다. 그 학교에선 방과후 부장 1년과 정보부장 2년 등을 맡았는데, 정보부장도 교내 인터넷 관리 및 컴퓨터 유지 및 보수에 골이 다 아팠지만, 특히 1년간 맡은 방과후 부장업무는 강사모집과 수당지출 및 수업조정과 강사근태관리 등등 너무 복잡하고 힘들어서 죽다가 살아났다. 방과후 부장 때 평일 방과후 강사 수업업무외도 토요외부강사수업도 관리를 맡아 토요일 출근은 당연했다. 초과수당을 신청하여 받긴 받았지만 영 마음이 내키지 않는 업무였다.
나의 정년(停年) 마지막 학교는 남녀공학공립중학교로 부산북부의 기장군 정관의 한적한 시골에 거처하지만 건물도 깨끗하고 크기와 공간 등등을 세계10대 경제대국답게 여유롭게 지어서 작은 대학 캠퍼스처럼 아늑했다. 하지만 업무는 업무다. 다 골치가 지근거리지만 봉사활동업무도 만만찮다. 고입성적에 연관되기 때문에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가 신경을 쓴다. 착오가 생기면 곤란하다.
어느 날 오후도 많은 학생들이 나의 계속된 안내 홍보와 담임교사의 지도에 따라 각개 자신의 봉사활동 인정서류들을 담임교사를 통하여 제 때 나에게 제출하였다. 단체행사로 행한 학급인정점수는 담임교사가 NEIS등에 공통으로 기재를 했지만, 개인별 인정점수는 제출한 서류를 보고 담당교사인 내가 일일이 진위여부확인 후 대장에 먼저 기입 후, NEIS에 접속하여 학급별로 순번대로 일괄 입력해 주었다. 당연히 실수에 대한 모든 책임은 담당교사인 내가 진다. 당연히 공개확인기간도 부여했다.
동네주민 행정센터로 보면 일종의 민원업무인 셈이다. 학생들이 제출한 서류를 일일이 점검하고 또 점검하던 중 다소 해석이 필요한 사본 하나를 발견했다. 원본은 돌려주어야하기 때문에 복사기로 한 사본을 받아 해당학생 졸업 후 1년까지 제출당시 학급별로 담당교사 보관서류함에 철(綴)해 놓는데, 어느 1학년생이 제출한 사본 하나가 판단에 해석이 필요했다. 사본이랍시고 A4용지에 볼펜으로 기재하여 제출한 것이다. 그런데 그 용지 하단에 ‘○○행정사 확인’이란 주인(朱印)이 작게 두 줄로 날인이 돼 있었다. 그 참 간단하게 보통의 복사기 사본으로 제출하면 되는데 아니었다.
그 주인(朱印)을 보는 순간 나의 지난 43년 전의 일이 갑자기 떠올랐다. 이제야 수면에 떠 오른 아득히 지나긴 흔적의 43년 전의 쓰레기 하나다. 1973년도 1학기 즈음 당시 나는 실업계고등학교 학생이었다. 다음 학기 후 졸업을 앞두고 졸업통과서류에 필요한 자격증에 사본이 하나 필요했다. 대개 복사기로 복사한 사본을 제출하면 되는데 난 그만 아무 생각 없이 대필을 하는 대서방에 가서 사본을 의뢰했다. 대서방에 가서 보니 복사기가 안 보였다. 그래도 대서방 주인에게 사본을 해 줄 수 있느냐고 물으니 가능하다 하여 원본을 주고 기다렸다.
주인은 내가 준 원본을 보고 백지에 볼펜으로 열심히 써서 대서방 확인 도장을 찍곤 완성했다며 내게 주면서 대서료를 요구했다.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대서료를 주고는 서류를 다 받고 나왔다. 당시 돈으로 100원으로 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어 다음날 그 대서방에 가서 어제 그 사본은 내가 바란 사본이 아니라고 하였다. 주인이 이상한 소리하지마라 했지만 더 따지기 어려워 그냥 나왔다. 환불을 요구하진 않았지만 내심 꽤 불쾌했다. 쓰레기로 기억에 저장되었는지 간혹 불쾌한 일로 몇 번 회상이 되었다. 그 대서방 서류는 불쾌한 감정 속에 받은 다음날 찢어서 버렸다.
그런데 그날과 매우 유사한 어쩌면 똑같은 경우의 서류를 내가 그 시간에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행정사의 사실확인증명서라면 무조건 법정 인정을 해야 하지만, 일반 A4 용지에 볼펜으로 내용을 기재하고 하단에 작은 두 줄의 행정사의 확인 주인(朱印)이다. 이런 경우 당시와 같은 유사한 경험이 없는 교사라면 당연히 퇴자를 놓아도 큰 무리가 없다. 하지만 나는 진본과 동일하게 여기고 인정점수를 대장에 기재하고, 제출 사본은 확인서류철에 합하여 보관함에 넣었다. NEIS 기입 후, 1학년이니까 앞으로 4년을 서류철로 보관해야 한다.
그런데 그 인정 작업으로 나에겐 길고 긴 기나긴 세월의 어느 한 불쾌한 기억이 발기하면서, 동시에 흔적도 없이 깨끗이 청소가 되었다. 어쩌면 이 학생을 위해 43년 전, 신(神)이 나에게 작은 시련을 미리 준 것 같다. 그 학생에게는 그도 모르게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나도 43년 만에 수면 위로 떠 오른 지저분한 기억 하나가 승화가 되어 흔적 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 쓰레기가 그 시간에 수명을 다 한 것이다.
우린 이렇게 서로 흔적을 주며 살아간다.
2003학년도 공립에 오기 전에, 1982학년도 이후 사립에서 두 군데 도합 21년 근무했다. 6년과 15년이다. 사립에서도 교사들이 나이가 차면 관리자가 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평소엔 형님먼저아우먼저 하다가 승진을 위해선 이사장님을 몰래 찾아가는 등등 권모술수가 조선시대 당쟁 못지않다. 공립에 오니 승진연구점수라는 것이 있다. 팀을 이루어 공모에 응하는 등 귀찮지만,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한 15년 이상 계속 모으면 교감 승진에 유리하다. 다들 그 점수에 신경을 두고 있다. 나도 공립에서 매년 열심히 하여, 2017년도 8월말 정년 직전에는 나름 만족한 점수가 되었다. 교직이 5년만 남았어도 승진을 바랄 수 있는 점수이었다.
2005학년도 1학기 5월 어느 날 일이다. 국립사대를 나와 2년 전에 역사전공 사회교과로 임명된 여교사가 나에게 따지듯 말한다. 자기가 멤버로 보고서 쓰는데도 보조를 했고, 자료수집도 열심히 하고, 자주 남아서 일도 했는데 자신에겐 승진점수를 안 주고 다른 교사가 받아 갔다며 항의하듯 말한다. 내가 오던 해부터 2년 기간의 사회과관련 연구과정이 있었는데 타 교과교사 3명이 얍삽하게 몰래 승진점수를 받아 간 것이다.
즉, 아직은 승진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젊은 교사들의 점수를 고(高) 경력교사 3명이 가로 챈 것이다. 3명 중 한 명은 체육교과로 작년의 연구부장이 양보한 점수로 받아가서 제외한다손 치더라도, 나머지 2명은 소리 없이 들어 온 자로 기술교과와 영어교과로 사회교과완 거리가 있는 자들이다. 징계를 한다면 이들도 조사대상이지만 승진점수를 양보로 주고받는 것도 모두 징계감이다. 공직자로서 두 사람 다 정신 나간 짓이다. 양보한 부장은 여자 분으로 2년 후 다음 학교에서 명퇴를 했고 자가용 국산차를 외제차로 바꿔 몰고 다녔다.
당시 나는 전입 1년간은 일반계원교사로 있다가 2년차에 연구부장이 되어 교원들의 연구대회에 직·간접으로 관계가 있긴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나에게도 따질 만은 하다. 그런데 해당 대부분의 연구를 거의 혼자 처리하다시피 한 연구담당주무 도덕교사가 마지막 연구점수부과 결재로 상신한 문서에 자기네들의 이름이 분명히 빠지고 버젓이 다른 교과 3분이 이름이 올라가 있음에도 빠진 명단의 사회과 분들의 협조사인이 필(畢)로 되어 있었다. 이는 서류상 동의를 한 꼴이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에 이들 3명이 하는 짓이 장차 문제로 수상하여, 관심 있게 내가 죽 보아 왔는데 결재서류협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주무교사가 교감과 교장의 결재를 득하고, 학년말 온 결정공문을 보니 그 타 교과 3명의 이름이 점수수혜자명단에 실려 있었다. 실로 고대 그리스 신화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의 비극의 한 장면이다.
세 분 중 직전 연구부장의 점수를 대신 받아간 분은 그 후 근무평정점수가 내내 안 좋아 승진에서 실패를 했고, 나머지 두 분은 계속 노력으로 무사(無事) 승진하여 기술교과 1분은 학교장으로 공업고등학교에서 정년을 했고, 영어교과 1분은 중학교 교감으로 있다가 명예퇴직을 했는지 어느 순간부터 안 보였다. 3분 다 이야기 해보면 다들 책임감 있고 동료나 학생들에게 인정이나 존경을 받는 자들이다.
당시 2년 간의 사회과관련 연구에 수혜자 정원은 7명으로 교감, 도덕2명, 사회과 4명이 대상이었다. 이 가운데 사회과 4명 중에 여교사 한분은 신임이지만 연구담당주무 도덕교사 못지않게 일을 하고, 외부인사 상대 공개수업도 하는 등 혹시 수혜자에서 빠뜨리면 공개 사달이 날 정도로 큰 활약을 하여 자기 점수를 챙겨 갔고, 나머지 3명분의 점수에서 길이 엇갈린 것이다. 이런 얍삽한 짓은 못하게 교감이나 교장이 미리 선을 그어 놓아야 하는데, 사전암약(事前暗約)이 있었는지 별탈없이 넘어갔다. 그 결과 교장과 교감을 포함하여 5명이 단체 합동으로 죄를 짓고 만 것이다.
본의아니게 점수를 받지 못한 2명 가운데, 나에게 항의하듯 말한 그 교사와 같은 날 임용된 사회과교사 여자 한 분은 그런 것에 전혀 문제를 삼지 않고 한 학교 근무연한 4년을 다 채우고는 고등학교로 전보 신청을 하여 갔다. 당시에 그분의 부친도 고등학교 교사로 계셨고, 여동생도 국립사대에 재학 중인 교육자 집안이었다. 나중에 이야기 들으니 여동생도 교사로 진출하였다고 한다. 항의한 그 교사도 나중에 부산에서 경남으로 가 버렸다. 마산의 한 사립학교교사와 결혼을 한다고 근무지 이동을 신청하여 경남의 공립학교로 가버린 것이다. 유능한 교사 한 분이 불쾌한 추억 하나를 가지고 부산에서 경남으로 갔다. 파워 있고 유능했다.
경남으로 간 그분은 교직 내내 불쾌할 것이다. 아니지, 교직을 마치고도 생각날 때마다 그들 2명이, 아니면 3명 모두가 교감, 교장과 함께 쓰레기로 여겨질 것이다. 그런데 국립사범대학을 나온 나름의 엘리트 교사라면, 같은 수작으로 보이는 평교사인 나에게 지나가는 말로 항의할 것이 아니라, 학교장에게 정식으로 항의를 해야 하고, 그것도 뜻대로 안 되면 교육부나 청와대, 감사원 등에 서면으로 정식 항의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쓰레기들이 많이 줄어들 것이다. 그래도 해당 교육청은 곤란하다. 지인인 경우 너만 알라면서 연락을 해주는 괴이한 특성을 지닌 한국인이 예상외로 많다.
한국인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 그대가 자기의식을 가진 시민으로서, 남의 ‘노예’가 아닌 스스로의 ‘자유인’이라면 나이가 20세가 넘어서면 모든 것에 남을 핑계하지마라는 것이다. 잘되어도 자기 덕분이고, 못되어도 자기 탓인 것이다. 더구나 국민세금지원으로 타대학보다 훨씬 적게 학기별 등록비로 4년 공부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탄탄한 교사 국가자격증을 교부받은 국립사범대학출신 교사라면 더 당연한 것이다. 파워가 있어도 동네용이면 곤란하다. 용기(勇氣)조차도 아니다.
적어도 1973년의 나처럼 대서방에 가서 불평은 하더라도 환불은 요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대서방 주인에게 일을 시킨 내가 잘못인 것이다. 그런 경우도 작금에 생각해보면 내가 섣불리 미리 화내지 않고 침착하게 담임교사에게 줬다면 사본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대서방 주인이 나에게 용도를 물어보고 좀 더 자상히 설명해 주었다면 전혀 문제가 안 되는 것이다. 아쉬운 일이다.
다행이 나는 정년을 1년 남기고 하늘이 43년 만에 제시한 유사한 사례로 정신적 쓰레기를 청소했지만 경남으로 간 그 교사는 힘들 것이다. 자기도 제법 나이가 들어서 승진에 아직 관심이 없어 보이는 젊은 교사의 승진점수를 고의로 얍삽하게 가로채지 않는 한 그 정신적 쓰레기는 정년 후라도 청소가 내내 어려울 것이다. 그런 불쾌한 짓은 자기도 쓰레기가 되어 같은 짓을 하면 해소가 된다. 그러면서 우리 인간들이 사는 것인가? 안티고네의 비극이다.
개인이고 국가고 회사이고 간에 힘이 다하면 그 자리를 뺏기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 30대 재벌 가운데 15개나 주인이 바뀌었다. 대기업사주들도 평소엔 전경련이나 경총회, 대한상의 등에서 형님아우하면서 계를 모아 상부상조로 친한 척 하다가 이때다 싶으면 날로 쳐 먹으려고 한다. 그곳에 평소엔 화기애애하게 넘치든 그 세계적으로 유명한 A. Smith의 자본주의 윤리가 갑자기 온대간대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도 나에게 따지는 그 교사에게 이 말은 하지 않았다. 어~ 그날 결재서류를 보니 선생님의 협조사인이 있던데~~~. 이런 추잡한 말은 굳이 내가 안 해도 문제가 커지면 지적하여 할 사람이 세 명이나 있다. 중국 춘추시대 말 손자병법에 잘 나와 있다. 그리고 점수를 받아간 3명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체육교사는 용감하게 '전 양보를 받았습니다.' 기술교사와 영어교사는 '상대방이 아무런 말이 없어 양보하는 줄 알았습니다.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도 허락을 했습니다.' 한심하지만 다 실력이 있는 말이다.
동업자에게 사기를 치는 전형적인 한국인들이다. 교장, 교감, 체육교사, 기술교사, 영어교사 다들 교사 자격증 있고 학교 관리자와 경력교사로 멀쩡해 보이는데 평소에 주변에 친절하게 웃어가면서 사기를 치고 스스로 쓰레기가 된 것이다. 교사가 이런데 다른 곳은 어떨까? 그래도 역사는 신의 의지에 따라 돌아간다.
유사이래 매년 태풍이 심히 불어 4대강 유역에 경제성 운하형 댐으로 제방을 지으니 그 제방을 허물라고 각종 언론 및 대학교수, 교사, 학생 등등이 시민단체들과 합심하여 야단이다. 오직 이에 반대하는 이들은 강유역에 사는 주민들 뿐이다. 단군이래 이런 혜택은 처음이다. 해마다 가뭄과 홍수로 농작물 피해는 당연했고, 물난리로 몇 명씩 꼭 죽었다. 그런데 제방 이후엔 그런 일들이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싹 사라졌다. 강을 따라 주변에 관광용 자전거 도로도 길따라 길게 생겨 풍광도 즐긴다. 하지만 그 제방을 만든 이명박이는 자신의 안전자산용으로 아무도 몰래 미리 투자해 놓은 가족회사 다스의 차명사건 등등으로 퇴임 후 불법 사기꾼으로 몰려 징역형이 확정되면서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는 모두 박탈되고, 노환의 병마와 함께 감옥에서 독방으로 지내고 있다.
그래도 남이야 감옥에 가든말든 자기도 사기를 치고 싶은 분들에게 하나 말 하고자 한다.
그래요? 꼭 그렇다면 '미국국제유대인뉴욕금융단'처럼 쳐라. 그들은 구름처럼 매우 잘 보여도 도무지 잡을 수가 없다.
도리어 피해를 입은 상대방이 매우매우 역사의 은인으로 대우하면서 내내 굽신굽신 고마워한다.
구름으로 단비를 내리주시고, 구름으로 뜨거운 태양을 가려주시고, 모자라는 달러를 빌려주시고, 우리의 부실기업을 사 주어 흑자로 만들어 다시 우리에게 거의 원가로 팔아 넘겨 주시고 등등으로 교과서에 기록까지 하여 하여 2세 교육에 활용한다.
그러면 적어도 공부에 공부를 하고 또 공부해야겠지.
그 정도 실력이 안 되면 자행적 사기는 피하고, 그냥 조용히 소시민으로 살았으면 한다.
그리고 사립과 공립에서, 또는 대학원 등에서 느낀 바에 의하면 한국인들은 지적으로 남녀노소불문 아직 늙고 흉한 추녀의 '에리니에스'에서 중용과 절제의 미녀인 '에우메니데스'로의 변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에리니에스와 에우메니데스는 동일한 하나의 고대 그리스 여신이다. 동일한 한 무리가 혈연의 부족을 넘어 폴리스의 시민으로의 변모를 말한다. 이 과정은 쉽지도 않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신(神)들도 토론하는 고대 그리스의 적자(嫡子)들만 가능할 것이다. 그들의 후예 가운데 하나인 미합중국은 1776년에 여러 명의 국부들로 출발을 했다. 서로간의 토론과 설득, 타협을 거쳐 Founding Fathers가 연대와 법치, 소명으로 출발을 한 것이다. 아마 그 사회에서 상기 5명처럼 행동했다간 정신적 교수형으로 생매장을 당할 것이다. 그리고 피해를 당했다싶으면, 피해자는 실수하면서 후에 불평하지 않고 1:1 정면승부로 이의신청을 했을 것이다. 피해자부터 똑똑한 그런 사회가 정치 공동체로 철학과 사상, 과학이 그 사회의 발전 소이가 될 것이다. 그에 대한 바탕은 서로에 대한 자유의 정신이다.
설사 자유의 수준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 한국사회는 범죄자들에게 생각이상으로 매우 관대한 편이다. 그것은 용서로서의 관대함이 아니고 미몽(迷夢)의 어리석음의 결과이고, 용기가 내재하지 못한 우리의 심성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타고난 기본적 인격이 수준이하로 무지해서 자신만의 일신의 안위를 노리기 때문에 범죄의 장차 여부에 대하여서도 분별력을 무시한다. 도리어 자행적(恣行的) 행위로 약자를 수탈하는데 강자의 앞장을 스스로 미리 서는 불상사가 오히려 더 많다. 사기도 많고 도적도 많고 부정(不正)도 많다. 심지어 공공연하게 자랑하는 배임(背任)도 있다. 또 암암리의 횡령(橫領)과 음양으로 착복(着服)도 있다. 상기 5명은 무조건 교직사회에서만큼은 공개척살로 결론시켜야 할 자인데, 오히려 학교 관리자가 되어 정년 때 존경과 찬탄를 받고 후배교사들이 주는 황금 열쇠까지 집에 가지고 간다. 이는 이들 5명의 잘못이 아니라, 상기의 일처럼 교무실에서 단체로 바라 보고도 방관하는 우리의 잘못이다.
나의 경우는 매우 유사한 일로 43년만에 대서방의 주인의 수준을 이해해 줄 수 있지만, 그 교사는 정년 후라도 그 5명의 쓰레기를 청소하기 힘들 것이다. 잘 나가다가도 간간히 생각날 것이다. 이런 일은 너나나나 이해 불문으로 용서가 안 되는 재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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