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말
올해에 40대 초반으로 '구력 8년에, 핸디캡 10'인 주말골퍼 K씨의 퍼팅 연습에 관한 얘기를 하나 할까 한다.
그는 골프입문 만 3년차까지만 해도 ‘80대 벽’을 한 두 번 밖에 깨지 못한 전형적인 '90대 보기 플레이어' 수준의 골퍼였다. 그런 그가 이제는 완벽하게 80대 벽을 깨고, 지금은 70타대 스코어를 거뜬히 치는 싱글 골퍼의 초입단계에 와 있다. 같은 시기에 골프에 입문한 동료들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K 비결은 뭐였을까. 바로 퍼팅이었다. 그가 90대 골퍼였을 때를 돌이켜보면 3퍼팅을 밥 먹듯했다. 그러나 지금은 한 라운드에 1개면 많이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퍼팅을 잘하게 됐을까.
K에 따르면 ‘군용모포(軍用毛布)’ 덕분이었다. 그가 이렇게 퍼텅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몇가지 사건이라면 ‘사건’이 있었다. "돈 잃고 속 좋은 사람 없다"고 그랬다.
비기너 시절 핸디(캡)를 받아도 전반 9홀을 못 버티고 ‘민족자본(?)’을 꺼내야 하는 심정이란 안 당해 본 사람은 모른다. 그가 택한 방법은 언젠가 어느 싱글 골퍼로부터 흘러 들었던 ‘군용모포’였다.
'군용모포' 준비하기
K는 그 싱글 골퍼가 자신의 집, 방 한 칸을 모두 군용모포로 깔아 그린처럼 만들고 퍼팅 연습을 했다는 얘기를 떠올리곤 어느 날 골프장을 나서자 마자 곧바로 남대문시장으로 향했다.
K에 따르면 97년쯤으로 시즌이 거의 끝나 가는 11월말이라고 하니까 모르긴 몰라도 ‘납회모임’에 나갔다가 된통 혼쭐이 나지 않았나 싶다.
K가 굳은 결심을 하고 남대문시장의 군수품을 파는 노점상에서 구입한 군용모포는 모두 5장이었다. 당시 값은 장당 3,000원씩 모두 1만5,000원. 아무리 값싼 퍼팅 연습매트를 사더라도 7~8만원은 줘야 하고 좀 더 지갑을 거덜내면 족히 15만원 이상은 투자해야 하는데 1만5,000원이면 거저였다.
'퍼팅매트' 만들기
그는 그 길로 집으로 돌아와 모포를 거실 바닥에 쫙~ 펼쳤다고 한다. 그러나 비좁은 집에서 모포 5장을 모두 펼쳐 방 하나를 그린으로 만들기에는 무리였다.
그래서 그가 생각해 낸 것이 모포를 펼치지 않고 접는 방법이었다. 그에 따르면 모포 길이는 '가로ⅹ세로=1.5m'로 각각의 모포를 가로(또는 세로)로 2번을 접은 뒤(가로 폭은 약 30cm 정도가 됨) 두 장을 잇대어 놓으니 길이 3m 짜리의 멋진 퍼팅 연습용 매트가 됐다는 것이다.
일명 ‘모포 퍼팅 연습기’의 장점은, 첫째로 보관성이 용이하다는 점이라고 K는 강조했다. 연습이 끝나면 똘똘 말아서 옷장이나 실내 창고에 넣어두기가 그만이다.
둘째는 그린 스피드를 나름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두번 접어 사용하는 것을 기준으로 한번만 접게 되면 볼의 구름이 무척 빨라지고 세번 접게 되면 가로의 폭은 줄어들지만 느린 그린에서 퍼팅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K는 이후 ‘모포 퍼팅매트’의 예찬론자가 돼 버렸다. 그리고 K가 한 일은 먼저 3m짜리 모포 퍼팅 연습기 한쪽 끝에 지워지지 않게 화이트로 출발점(50원짜리 크기보다 작게)을 동그랗게 그리고, 2m 지점에는 정 가운데를 기준 삼아서 좌우로 볼이 지나갈 3개의 라인을 7cm씩 간격으로 표시했다고 한다.
이어서 볼이 모이는 지점엔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점을 찍고, 그 점을 중심으로 홀 사이즈보다 작은 80mm짜리 점선 원을 그렸다고 하니 그 정성이 무척 대단하다.
효과적인 '퍼팅연습'
얼마나 퍼팅에 한이 맺혔으면 이런 열성을 보였을까. K는 어떻게 연습했을까
"날(生) 밤을 새워가며 퍼팅 연습을 해 본적이 있는가. 아침에 눈 뜨자마자 신문이나 담배 대신 퍼터(putter)를 들고 화장실에 가 본적이 있는가." 다만, 모두 K가 묻는 질문으로 ‘단 한번이라도…’라는 단서조항이 붙는다.
그렇다면 그해 겨울 K에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는 하루에 평균 1시간 이상씩 무려 3개월하고도 15일 정도를 퍼팅 연습에 매달렸다. 그렇다고 무작정 볼만 놓고 퍼팅 연습만을 한 것은 아니었다. 몇 가지 원칙을 가지고 몰두했다.
① 보폭 정하기
먼저 ‘3m 거리를 몇 걸음(보폭)에 갈 것인가’ 하는 게 문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걸음(1보)에 대한 자신의 보폭 길이를 정해야 했고 항상 일정한 걸음으로 3m를 3보 아니면 4보, 또는 5보 등으로 기준을 삼는 것이 급선무였다. 즉 온 그린시킨 볼이 홀까지 몇 미터이고, 그 거리에 따른 자신의 퍼팅 스트로크의 크기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기본 개념이 필요했다.
물론 ‘퍼팅은 감(感)’인데라며 혀 끝을 찰 수도 있다. 어쨌든 K는 줄자를 꺼내 평소 자신의 보폭을 재보았다. 얼마나 될까(여러분도 한번 재보시라). 의식하지 않고 걷는 평소 걸음은 35~40cm 안팎(신체 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이었다.
그때 잔꾀에 영특한 K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뭐 이거 한 걸음이 50cm도 안돼? 그냥 1m씩 3걸음에 가면 계산도 간단한데….”
그런데 K의 이같은 건방끼는 가랑이를 1m 간격으로 벌리는 순간 ‘앗!’하고 고개 숙인 번데기(?)처럼 바로 꼬리를 내려야 했다. 그 1m가 보통 먼 거리가 아니었다. 의도적으로 1m 간격으로 보폭을 맞추기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균형을 바로 잡고 일관성 있게 걷는다는 것은 무리였다. 그가 1m의 잔꾀를 생각해 낸 것은 미국 PGA투어 프로들의 경우 평균 보폭이 90cm 정도로 일정하다는 확인되지 않는 정보(?)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K가 고민 끝에 내린 자신의 보폭 길이는 60cm였다. 즉 3m 거리를 5보폭으로 등식화시켰다.
② 볼에 줄긋기
둘째는 골프백에 나뒹굴고 있는 헌볼을 꺼내서 검정색(또는 붉은색) 매직으로 볼의 중심을 따라 라인을 긋는 일이었다. 모두 50개의 볼에 이 같은 라인을 그렸다. 볼의 구름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정확하게 임팩트된 볼은 검은색(또는 붉은색) 라인이 선명한 상태를 띤다. 볼의 회전이 목표방향으로, 직진성향의 회전이 먹게 되면 다음의 기호처럼 (ⓛ) 뚜렷한 라인을 형성하게 된다.
③ '일관성 있는 규칙' 만들기
그리고 10회 퍼팅에 한번 꼴로 3m거리의 퍼팅 매트를 2회 정도 왕복하면서 자신이 정한 보폭 60cm를 유지하며 거리를 실측하는 습관을 길렀다. 마치 현재 그린 위에 있는 것처럼.
샷이든 퍼팅이든 셋업하는 과정, 즉 자신만의 특정한 루틴(일관성 있는 규칙)을 체계화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많은 아마추어 골퍼들은 그린에 올라가면 원칙 없이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퍼팅의 집중력을 높이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그린에 오르기 전에 그린 밖에서 먼저 ▲ 볼이 핀을 중심으로 어느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 그린의 전체 기울기, ▲ 홀까지의 거리, ▲ 홀 반대편에서의 퍼팅 라인, ▲ 볼 라이 상태(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에 따른 퍼팅 스트로크의 크기 등이 물 흐르듯 순차적으로 머리 속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그것도 동반 경기자의 플레이 흐름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속전속결로 이뤄져야 한다. 참 복잡한 얘기다. 일관성을 갖고 퍼팅하기 위해서는 연습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이러한 과정이 몸에 익혀져야 한다.
④ 연습습관 유지하기
이 같은 흐름을 염두에 두고 앞으로 한달 동안 매일 30~40분 이상 투자하게 되면 당신의 퍼팅감은 놀라울 정도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3m의 거리감과 시계추처럼 퍼팅 스트로크의 일관된 리듬감을 갖추게 될 뿐만 아니라 집중력 또한 높아질 것이다.
당시 K는 아무리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새벽에 집에 들어가더라도 최소 50번은 꼭 퍼팅 연습을 했고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동전치기’ 등을 했다고 한다. 또 1m나 2m 거리 양쪽에 동전을 놓고 스트로크한 볼이 동전 A을 지나서 B를 관통(A→B)하도록 하는 연습법 등 매우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⑤ 퍼터무게 느끼기
K의 퍼팅 연습법은 이것 말고도 10여가지 이상이 된다. K가 아침에 눈 뜨자마자 맨 먼저 퍼터를 들고 화장실에 간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K는 집요했다. 그는 퍼터의 헤드의 무게를 느끼기 위해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했다. 특히 그는 주말 새벽 라운드 때의 상황을 전제로 아침에 눈 뜨자마자 침대 머리맡에 놓아둔 퍼터를 들고 화장실에 가는 것을 습관화했다.
그는 그 이른 시간에 퍼터를 들고 무엇을 했을까. 내용은 간단하다. 양치를 하면서 또는 세수를 하고 난 뒤 바둑판처럼 정교하게 깔린 타일의 라인을 따라 퍼팅 스트로크를 연습했다고 한다.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돼 있는 타일은 퍼터 헤드가 앞 뒤로 움직일 때 기준 선을 벗어나는지를 확인시켜주는 아주 좋은 나침반과 같았다.
또 가상의 볼이 놓여있다고 가정한 뒤 타일 2개나 3개 크기로 백스윙과 폴로스루가 똑같이 대칭이 되도록 10여 차례 이상 연습한 뒤에야 화장실 문을 나섰다. 자신만의 일정한 퍼팅 리듬감과 템포를 익히는데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롱퍼팅 감각을 위해서는 2:3 비율로 연습했다. 백스윙 크기는 타일 2개, 폴로스루는 타일 3개로 정해놓고 감각을 익혔다. 물론 어느 날은 들고 갔다가 지팡이처럼 받치고 서서 볼일을 보고는 그냥 나오기도 했다.
아침에 출근할 때에도 퍼터를 들고 다녔다. 승용차가 있는 주차장까지 들고 갔다가 차를 몰고 운전을 할 때는 퍼터 커버를 벗겨 놓고 조수석에 세워 놓았다. 신호 대기중일 때는 반드시 퍼터를 만져보았다. 헤드의 무게를 최대한 느끼기 위해서였다.
K에게 있어 그해 겨울 약 2개월 가까이 퍼터는 자기 몸의 일부였다.
⑥ 동전치기
K는 단순하게 이러한 연습에만 매달린 것이 아니다.
그에게 퍼팅감각의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 것은 바로 '동전치기'였다. 퍼팅의 기본인 낮고 길게 밀어치는 스트로크를 익히고 임팩트 때의 집중력을 높이는데 동전치기는 대단한 효과를 발휘했다.
준비물은 100원짜리와 500원짜리 동전 2개다. 거실 마루에 500원짜리 동전을 놓고 그 위에 100원짜리 동전을 포개 놓은 뒤 퍼터로 볼을 치듯 100원짜리 동전만 쳐내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대단한 인내가 필요했었다. 밑에 놓인 동전을 건드리지 않고서 100원짜리 동전만 쳐내야 하기 때문에 대단한 집중력이 요구됐다. 임팩트 순간 머리를 들거나 잠시만 긴장을 늦춰도 헛손질을 하기 일쑤였다. 무엇보다 일정한 리듬을 타지 못하면 동전을 쳐내기가 쉽지 않았다.
K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어느 정도 숙달되면 500원짜리 동전만은 놓고 같은 방식으로 연습하고 훈련 강도를 더 높이고 싶으면 10원짜리 동전 위에 50원짜리 동전을 올려놓고 50원짜리 동전만 정확하게 쳐내도록 연습하라"고 귀띔했다. 한 쌍의 동전으로는 번거롭기 때문에 여러 쌍의 동전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⑦ 깡통 굴리기
또 한가지는 '깡통 굴리기'였다.
'깡통굴리기'가 퍼팅과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 생소하게 들릴 것이다. '동전치기'가 집중력과 정확한 임팩트를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면, '깡통 굴리기'는 임팩트 때 퍼터 페이스가 볼에 대해 직각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특히, 1m 안팎의 짧은 거리에서의 퍼팅때 볼이 홀 오른쪽으로 흐르거나, 한 두 바퀴 정도의 힘이 모자라 멈춰서는 경우라면, 이 '깡통 굴리기'가 즉효약이 될 수 있다.
준비물은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캔 커피' 빈 통을 하나 마련하면 된다.
그런 다음 임팩트 때 ‘텅 텅’거리는 소리를 방지하고 캔의 좌우측 끝 라인이 올바른 구름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캔 한 가운데를 기준 삼아 포장용 테이프를 2~3mm 두께가 되도록 감는다. 이 때 주름이 잡히지 않게 정교하게 감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은 연습이다.
집안의 어느 한 벽면을 기준으로 1m 거리에서 평소 때와 같이 퍼팅 스트로크를 연습한다. 깡통이 좌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벽면을 향해 곧게 굴려 보낼 수 있어야 한다. 몇 차례 연습해보면 똑바로 곧게 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금새 알 수 있다.
마무리말
"이처럼 퍼팅 연습을 하루 30분씩 지속한다면 리듬감은 물론이고 집중력이 높아져 볼을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이는 ‘자신감’으로 이어질 것이다."
K의 말이다.
그는 빙그레 웃으며 농담처럼 “잠을 자면서도 퍼터를 팬티 속에 꽂고 잔적이 있다”고 말했다. 뭐 미친 놈이 따로 없다. 이제 가을 시즌도 얼마 남지 않았다. 여러분도 한번 미쳐 보시라. 스코어가 확 줄 것이다.
첫댓글 아! 저희 집에 모포 있는데~~ 한번 해봐야겠어욧!!! 아자~
정말 부지런하시다... 열정에 대한 노력의 댓가가 아닌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