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의 생명의 안전을 확보해 주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리스도가 신자의 생명이다. 부활하사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 이 분이야말로 우리를 거느리는, 모든 것을 승리하신 그리스도시다. 아담의 생명은 자기 자신의 순종에 기초했기 때문에 자기가 불순종했을 때에는 생명은 상실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말할 것 같으면, 그는 자기 자신 속에서 생명을 지니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으며 인간의 죄의 온갖 형편을 온갖 가능한 형태로 다 처리해 주셨다. 그리스도는 죽기까지 순종하사 죽음의 권세를 지닌 사람을 파괴해 버렸으며 부활하시사 그의 지극히 높으신 이름을 믿는 모든 자의 생명과 의가 되셨다.
자, 이제 알게 된 사실은 사탄은 이 생명에 전혀 관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사탄은 이 생명의 근원이나, 이 생명의 통로나, 이 생명의 능력이나, 이 생명의 영역이나, 이 생명의 기간에 전혀 해를 끼칠 수 없다. 하나님이 이 생명의 근원이며, 그리스도가 이 생명의 통로이며, 성령이 이 생명의 능력이며, 천국이 이 생명의 영역이요, 영원이 이 생명의 기간이다. 그러기에 마땅히 우리가 기대해 봄직한 사실은 이 놀라운 생명을 소유한 자에게로 모든 장면이 변해진다. 어떤 의미로는 "생명 가운데서도 우리가 사망 가운데 있다"고 말해야 하겠지만, 또 어떤 의미로는 "사망 가운데서도 우리가 생명 가운데 있다"라고 말해 볼 수도 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들을 인도해 들이시는 영역에는 사망이 없다. 어떻게 거기에 사망이 있을 수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그 사망을 폐하시지 않으셨는가? 동시에 동일인들에게 폐했는데도 아직 존재하는 것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이 폐해졌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리스도는 죽음의 장면을 비우시고 거기에 생명을 채우셨다. 그러므로 신자 앞에 놓여 있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영광이다. 사망은 신자 뒤에 있다. 그것은 영원히 신자 뒤에 있다. 그런즉 사망이 신자와는 무관할 뿐이며 미래에 있어서도 구름 한 점 없는 영광만이 보장되어 있다. 진실로 신자는 "잠자는" 운명을 가졌다. 그것도 "예수 안에서 잠자는" 운명을 가졌다. 그러나 그것은 사망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 위하여 떠나가는 단순한 문제는 신자의 특수한 소망을 변경해 놓지는 못한다.
그것은 공중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니, 곧 영원히 그와 함께 있는 것이며 그와 같이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매우 아름다운 예외 사실을 에녹에게서 볼 수 있다. 에녹은 창세기 5장의 원리에 유일한 예외사건을 형성해 준다. 여기서의 지배원리는 "죽었더라"이다. 그러나 예외사실은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았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11:5). 에녹은 "아담의 칠대손이다." 사망이 "칠대 손"에게 승리를 거두지 못했더라는 사실을 주목해 본다는 것은 매우 흥미가 있다. 그러나 그의 경우에 있어 하나님이 개입하시사 사망의 모든 권세 위에 하나님 자신의 영광스러운 승리의 트로피가 되도록 그를 만들어 주셨던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무려 여섯번이나 "죽었더라"고 하는 슬픈 기록을 읽은 후에 일곱번째는 죽지 아니하더라는 기록을 읽고서야 마음은 비로소 기뻐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가?라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믿음으로"라는 것뿐이다. 에녹은 자기가 옮겨질 것을 믿으면서 살아서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했다. 실제로 이 사실이 에녹을 주위의 모든 것과 분리시켜 주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동행하는 사람 자신을 이 세상의 모든 생각 영역 밖에 갖다 놓게 된다. 에녹은 이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에녹 당시에도 세상의 정신은 나타났다. 그런가 하면 지금도 역시 하나님께 속하는 모든 것은 거부를 당하고 있다. 믿음의 사람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장차 올 심판에 대한 꾸준한 증인이 되겠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 세상과 관여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가인의 아들들은 저주 받은 세상을 개선해 보려는 헛된 시도에 그들의 정력을 소비했을지 모르나, 에녹은 보다 더 좋은 세상을 발견했고 그 세계의 능력 안에서 살았다. 그가 믿음을 지닌 것은 세상을 개선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함이다.
첫댓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들을 인도해 들이시는 영역에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며..생명의 빛만이 있다
예수께서 요한복음 6장 47절에 "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 " 하셨고..
40절에선 "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 이라고 하셨고.
53절에서는 "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 하셨다.
영생을 얻는 문제는 어느 한 순간에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에 "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하셨고.
사도행전 14장 22절에 "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 이라고 하였다.
종합하면. 현재 예수님께 공급하심과 안도하심 속에 있어야 영생을 얻는 궤도에 있는 영혼인 것이다
과거가 전부가 아니다.. 과거에 속죄함을 받은 경험이 있거나 거듭남을 경험했더라도 현재는 도퇴될 수가 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4장 4절에 "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는 일들이 발생한다고 경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