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부와 문정부의 비슷한 느낌이 드는 두 장관
6월 18일에 한국은행은 물가안정목표상황 점검과 함께 “우리나라 물가수준의 특징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좀 이례적인 주장을 했다. 한국의 식료품, 의류 신발, 주거비는 OECD 평균대비 각각 1.6, 1.5, 1.2 배 높으며, 이는 통화정책만으로 해결이 어렵고 농업의 생산성 제고와 농산물의 공급채널 다양화 등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농림수산식품부 송미령 장관은 즉각 반박을 했다. 한국 농식품 물가수준은 OECD 38개국 중 19위로 높은 편이 아니고, 한국은 이미 농산물을 충분히 수입을 하고 있으며 수입을 한다고 농산물 가격이 안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송장관의 설명을 듣고 문재인정부 때의 김현미 국토부장관이 바로 떠올랐다. 김장관은 집값이 50% 이상, 심한 곳은 두 배 정도 오르고 있을 때인 2020년 7월, 국회에서 집값이 11% 올랐다고 답변하여 국민의 공분을 샀다. 한국의 쌀과 감자, 고기와 유제품, 빵과 과일 등 식료품의 가격이 얼마나 비싼지는 해외에 나가 본 사람은 그냥 안다. 심한 것은 3-4 배 비싸다. 이런 상황이 하도 오래되어 비정상을 정상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한국 농산물 가격은 통계를 들먹일 필요가 없다. 송장관의 주장이 맞는 지는 미국 유럽 일본 등의 대형마트 식품코너에서 사진 몇 장 찍어 올리면 바로 알 수 있다. 농림수산식품부 직원들이 해외의 주요 대사관에 주재관으로 많이 나가있어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잘 알려진 경제 이론 중의 하나가, 소득에서 식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인 엥겔계수는 못사는 사람일수록 높다는 것이다. 최근 내수를 중심으로 경기가 안 좋아져, 국민들이 식료품 가격 상승에 더 민감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고위 관료나 정치인들이 농산물가격에 둔감하다는 것은 그만큼 안정적인 고소득자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일반 국민들이 한국에서 살기 어려운 것은 임금이 낮아서도 있지만, 식료품비 주거비 교육비 등이 비싼 것이 더 큰 이유일 듯하다. 이러한 고비용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중요 방안 중의 하나이다. 식품가격 문제도 한국은행이 고민할 만한 과제인 셈이다.
젊은 사람들이 싫어할지 모르지만 옛날이야기를 하나 해 보자. 1988년 쯤 필자가 한국은행 조사부 근무를 시작할 때 첫 번째 과제가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방안”이었다. 당시 청와대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 비전문가인 필자가 6개월 이상 고생하면서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36년 전에도 한국의 농산물 유통구조는 문제가 많았는데 지금도 비슷한 듯하다. 며칠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농산물 가격 안정 방안의 하나로 전자경매제 도입 등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늦었지만 하여야 한다. 농촌에 살아보니 농민들도 농산물 유통구조에 불만이 아주 많다.
한국의 농업은 유통구조 개선 말고도 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은 듯하다. 먼저 크게 보았을 때 한국의 곡물자급률은 20%대로 아주 낮다는 것이다. 농업의 기본적 책무인 국민의 먹을거리를 책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식량자급도 국가안보의 하나이다. 앞으로 기후변화 등으로 세계 식량사정이 크게 나빠지면 한국은 북한보다 더 고통을 받을 수 있다. 다음으로 농민들의 소득과 생활수준이 떨어지고 농촌이 소멸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농촌에서는 머지않아 사람 구경하기 아주 힘들 듯하다. 지금하고 있는 정책으로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농촌 생활이 여려 면에서 불편하고 혜택도 적기 때문이다.
농업 문제의 작은 것들 몇 가지 더 짚어보자. 소 돼지 등 축산업은 사료를 거의 100% 수입하고, 일도 거의 외국인 노동자가 다 한다. 경제 상식으로만 봐도 경쟁력과 부가가치가 아주 낮을 것이다. 그래도 한국의 축산업은 어느 정도의 수익이 생겨, 하겠다는 사람은 계속 늘어난다. 축산업자는 축산분뇨와 악취 등 환경훼손을 외부화하고, 수입규제 등을 통해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축사는 농촌 환경파괴 주범의 하나이고, 농촌 기피시설의 대표가 되었다. 한국의 축산업도 보다 친환경적이고 수입 농산물에 대한 의존을 낮출 수 있는 방향으로 조금씩이라도 바뀌어야 한다. 이것도 노력하면 가능한 일이다.
다음으로 대표적인 농산물 가공 산업인 술 산업도 이상하다. 와인 위스키 맥주 등 비싼 술은 대부분 수입 산이고, 국산은 거의 싸구려 술뿐이다. 우리가 많이 마시는 소주와 막걸리는 물만 국내산이고 나머지 원료는 모두 수입 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주와 막걸리의 가격은 싸서 좋지만, 부가가치가 낮고 농업에도 도움이 거의 안 된다. 술을 발효시켜 만드는 식초 산업도 이와 비슷하다. 유럽의 농촌이 사람 살만하고 소멸되지 않는 이유는 농업의 경쟁력도 높아서도 이지만, 와인 위스키 맥주 치즈 훈제고기 등 다양한 농산물 가공 산업이 번성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농업은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 오래 묵은 과제인 유통구조 개선은 당연히 해야 한다. 이것도 이권카르텔 때문에 지금까지 개혁을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아주 시급한 과제 두 가지를 제대로 추진해야 한다. 첫째 식량자급률을 높여 언제 올지 모르는 식량위기에 대비하는 일이다. 둘째 소멸되어가는 농촌을 사람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일이다. 고민하고 찾아보면 구체적 정책방안은 많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