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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의 출생지는 지금의 외항강 하구의 처용암이다. 이 바위섬에서 처용을 비롯한 동해 용왕의 일곱 아들이 출현하였다고 한다. 처용암은 지번이 처용리 1번지로 온산면 관할이었던 것이 1997년 10월 9일 부로 울산광역시 관할에 속하게 되고 울산시 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었다.
울산광역시 남구청 관할지인 황성동 668번지의 1호 소재로 되어 울산광역시에서 해마다 처용문화제를 대대적으로 실시하고 또 울산의 상징물로 처용탈과 문화를 상품화 하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처용의 실체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고자 하는 이가 별로 없는 실정이다. 설화 속의 경우이기는 하지만 처용의 출생지는 온산임에는 틀림없다. 이러한 처용을 온산지역민들은 어떤 인물로 인식하여 왔는지 온산에서 전해오는 구전들을 모아 보았다.
처용 마을의 전설
처용 마을 앞을 흐르는 작은 개울이 끝나고 바다로 유입되는 지점의 해변 가까운 수중에 넓쩍 바위라고 부르는 사방 3∼5m 정도 되는 멧방석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이 바위 위에는 사람의 엉덩이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데, 신라가 망국의 길로 접어들 무렵에 처용이 매일 나타났다고 한다. 용왕의 아들로서 인간 세상에 발을 들여 놓게된 이후 다시는 용궁으로 돌아가지 못하게된 처용이 이곳에 앉아 하염없이 먼바다를 바라보며 시름에 잠겨 있었다고 한다. 바위 위에 흔적이 남을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앉아서 기울어 가는 국운을 혼자의 힘으로 어쩔 수 없음을 한탄하며 또 용궁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떠올리곤 하였다. 그러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는 어디론가 떠나가고 다시는 이곳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당목 마을의 전설
당목 마을은 산암리의 자연부락으로 온산국가공단이 조성되자 제일 먼저 철거되어 1978년 이후에는 인적이 끊어지고 S-oil 공장 연구소가 들어서 있는 곳이다. 이곳은 바닷가에 우뚝 솟은 아름다운 산이 있어 춘도·온산의 초.·중학교 소풍지로도 유명하다. 육지에서 산을 넘어 동쪽으로 탁 트인 넓은 동해 바다가 펼쳐져 있고 바닷가에는 굵은 자갈들이 깔려있는 가운데 넓은 바위가 바다 속으로 비스듬히 기우러져 많은 사람들이 야유회 놀이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여 주는 곳이 있다. 이 바위 위에는 사람의 발자국이 몇 개 있는데 이 발자국은 처용 장군의 것이라고 한다. 왜 이 마을 사람들이 처용을 힘세고 날랜 장수로 보았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처용이 이곳 바닷가에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할 정도의 큰 바위들을 들고 와서 이처럼 넓은 터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경치 좋은 이곳에 이와 같은 터를 만들어 두고 춤추며 놀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무거운 바위를 옮기는 동안에 그의 발자국이 여기에 남게 되었다고 한다.
달포와 솔개마을의 전설
산암리 달포마을에서 달포 뒷산 너머 솔개마을을 가다보면 바닷가 산기슭에 높이 40∼50m정도의 정상부근에 바다를 향하고 있는 병풍 같은 모양과 그 아래로 7∼8명이 앉을 수 있는 넓은 바위가 있었다. 이곳을 마을 사람들은 신선바위라고 불렀는데, 아주 옛날에 이곳에서 신선들이 모여 놀다가 200m정도 거리의 수중바위섬인 거무도(신성한 섬이란 뜻)에 날아가서 놀기도 하였는데, 그 신선들 가운데에는 처용도 있었다고 한다.
대덕산 마을의 전설
화산리 내동마을 뒷산인 이 곳에는 신라시대에 아주 큰 사찰이 있었다고 하며, 산 아래로는 역원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산이다. 지금은 산을 절개하여 S-oil공장과 비축단지, 지원단지 등이 들어서 있어 볼품 없는 모습이지만 산의 정상에 넓은 초지(草地)가 펼쳐져 있어 소풍이나 화전놀이터로 주민들의 사랑을 받던 곳이다. 이곳에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바닷가 돌을 옮겨 놓은 것 같은 넓은 바위가 있고 이 바위에는 사람의 손가락까지 선명한 손자국이 있었다. 이곳 주변 마을 사람들은 처용이 신선들과 함께 거무도와 신선암 등지에서 놀다 달 밝은 밤이면 이곳 대덕산 정상으로 날아와 달빛에 출렁이는 동해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고 한다. 손자국은 처용이 바위 위로 날아와 내릴 때 손을 짚은 자국이라고 한다.
그외의 구전들
위에서 기술한 내용 이외에도 거남, 용암 등 온산 북쪽마을 여러 곳에는 이와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들이 구전되어 오고 있다. 다른 마을에서는 처용에 대하여 장군이라 하여 하늘을 날고 몸이 날래고 힘이 무척 세어서 수십평이 되는 바위를 들어 옮기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달포의 경우에는 신선으로, 처용마을에서는 유일하게 인간적이고 고뇌하는 선비로 표현하는 내용이 구전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